진달래, 복숭아, 벚꽃 등 봄꽃이 앞다투어 피고, 날씨도 한층 포근하다. 오늘은 울산소설협회 봄 문학기행이 있는 날이다.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사뭇 궁금해하며 집결지인 선바위 주차장에 도착한다. 차 세 대에 나누어 타고 첫 번째 탐방지를 향해 출발한다. 차는 새싹이 푸릇푸릇한 봄 들판을 달린다. 차창 밖, 청초한 목련과 꽃눈을 터뜨린 벚꽃이 함박웃음을 짓는다. 고개 너머 꼬부랑 산길을 타고 넘으니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 입구다. 천전리 각석은 국보 제147호로, 최근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었다. 잦은 비로 굽
촉촉한 봄비가 스며들고 따사로운 햇살이 깃들면서 들녘에 쑥이 고개를 내민다. 들판에는 쑥을 캐는 아낙네들이 봄 향기를 줍느라 손발이 바쁘다. 어릴 적, 바구니를 들고 다니며 쑥을 캤던 기억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몸이 봄기운을 느끼는지 자주 나른하다. 이맘때면 도다리와 쑥을 넣어 끓인 도다리쑥국이 생각난다. 쑥은 직접 캐든지 시장이나 마트에서 살 수 있지만, 싱싱한 도다리는 구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초봄이면 도다리쑥국을 끓여 파는 식당을 찾는다. 남편도 봄 향을 맡았는지 아침부터 도다리쑥국 타령을 한다. 부리나케 옷을 갈아입고 남
주말에 가족과 거제도에 있는 매미성으로 향했다. 거제도는 몇 번 다녀온 곳인데 매미성은 못 가봤다. 최근에, 텔레비전에서 소개된 적이 있어 궁금하던 차였다. 차로 한 시간여쯤 달리면 해저터널이 나오고 이어서 거가대교가 모습을 드러낸다. 거가대교는 가까이서 보면 웅장하고 멀리서 보면 예쁘다.매미성 주차장에 도착해 차를 댔다. 매미성으로 가는 길에는 음식점, 카페 등 상가가 제법 많았다. 매미성을 짓기 전에는 사람들의 왕래가 별로 없는 곳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전국에서 사람이 모이는 명소가 돼서, 지역 상권 형성에도 많은 도움이 되는
는개가 부슬거리는 날, 석남사를 찾았다. 석남사는 신라 헌덕왕 16년에 도의국사가 처음 세웠다고 전한다. 가까이에 있는 절이라 생각날 때면 들르곤 한다. 여느 날처럼 어깨 물리치료를 마치고 나자 문득 산사의 향기가 그리워지는 것이었다. 차를 몰고 석남사로 향했다. 흐릿한 하늘에는 가늘게 비가 날았지만, 개의치 않았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가지산 석남사'라 적힌 산문 앞에 선다. 오른쪽으로 안내소와 '휴휴정'이 있다. 이름처럼 휴휴정은 행인이 쉬어가라는 장소다. 산문 오른쪽으로는 수령이 250년가량 되는 노거수인 소나무가 자리하고
가을빛이 짙어가는 만추다. 영남알프스 주변에 살기에 길을 나서면 단풍 구경을 하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오늘은 산 너머 밀양에 가보기로 한다. 십여 년 전 가지산 터널이 뚫리고 난 뒤부터 밀양으로 가기가 수월해졌다. 운전대를 잡은 남편은 평소라면 빨리 가는 가지산터널을 택했겠지만, 산허리를 돌아 오르는 석남 터널로 방향을 잡았다. 봄에 진달래꽃이 붉게 물들어 운치를 더하던 기암절벽은 울긋불긋 단풍이 들어 꽃처럼 화려했다. 음식점이 늘어선 석남 터널 앞에는 단풍을 구경하러온 차들이 즐비했다. 서행하며 그곳을 지나 터널을 통과했다.
올해는 추석 연휴가 길어서 명절을 쇠고도 여유가 있었다. 우리 가족은 포항에 있는 내연산 보경사와 근처 바닷가를 둘러보기로 했다. 아침에 출발했지만, 경주를 지난 후에 차가 밀리기 시작했다. 앞쪽에 사고가 났는지 레커차가 경고등을 울리며 지나갔다. 차들은 지체와 정체를 거듭하며 느리게 나아갔다. 한참 지나서 보니까 사고를 당한 다섯 대의 차량이 서 있었고, 차 한 대는 앞 범퍼가 심하게 파손돼 있었다. 차량 이동이 많다 보니 사고도 잦은 듯했다. 시간이 지체되다 보니 배꼽시계가 울렸다. 우리는 보경사 입구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비가 내린다. 초록의 대지가 밤새 흠뻑 젖었다. 우산을 챙겨 길을 나섰다. 광복절이 지나면 아침저녁으로 열대야가 사라지고 시원해지곤 했는데, 올해 무더위는 가을 절기인 처서를 지나고도 이어졌다. 폭염도 심했지만, 비 오는 날도 잦았다. 시시각각 변하는 기후변화에 걱정이 앞선다. 예전엔 비가 오면 감성에 젖어 걷곤 했는데, 지금은 건강을 위해 걷는다. 걷다 보면 긴장된 마음이 풀리면서 사색에 빠질 수 있어 더없이 좋다. 얼마나 걸었을까. 보라색 꽃잎을 매단 무릇이 비를 맞고 함초롬한 모습으로 서 있다. 초록 풀잎 사이에서 화려하지도
빙하가 녹는 현상을 보여주는 다큐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펭귄, 바다사자 등 바다 동물들이 서식처를 잃어가는 현장을 생생하게 보여줬다. 만년설도 예외는 아니어서 해마다 녹아내리는 속도가 빨라지고, 면적이 넓어지고 있다고 한다. 그 영향으로 바다 온도는 조금씩 올라가고, 지구 환경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수온 상승으로 지구는 점점 더워져 지구온난화가 심화하고 있다. 올해 장마가 유독 길었다. 긴 장마 기간 집중호우가 내리는 바람에 산사태, 침수 등으로 수해 피해가 막대했다. 갑자기 불어난 물로 인해 수많은 사상자를 냈고, 농지와
오랜만에 가족이 다 모였다. 딸들이 장성하고부터 네 명의 시간을 맞추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남편과 나는 최근에 청송을 둘러보았지만, 딸들은 어릴 때 가본 게 다라서 계획한 여행이었다. 함께 있을 땐 몰랐는데 떨어져 생활하니 한 번씩 모이는 시간이 더없이 소중하다. 청송(靑松), 한자를 풀이하면 '푸른 소나무'다. 내 닉네임이기도 해서인지 지명부터 친근감이 들었다. 차 뒷자리에서 들려오는 신세대 노래를 감상하며 가는 길은, 설렘 그 자체였다. 사춘기 때부터 딸들이 듣는 노래를 간접적으로 접하다 보니 가락이 낯설지 않다. 이윽
갑작스레 오른팔이 찌르듯이 아팠다. 팔을 들어 올리거나 움직일 때 심한 통증을 느꼈다. 그런데도 한의원에 다니면서 내가 해야 할 일을 멈추지 않고 해나갔다. 근육이 뭉쳤을 것으로 추측했다. 팔은 손을 쓸 때 꼭 필요한 신체의 일부로 자칫하면 무리하기 쉽다. 글쓰기, 가사, 어머니 돌봄 등으로 꼭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옷을 입을 때 불편할 정도로 팔이 아팠지만, 일상의 삶을 멈출 수 없었기에 주어진 일들을 했다.시간이 지나면서 팔은 어느 정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었지만, 어느 순간 손바닥에 열감이 느껴지면서 몸이 매우 피곤했다.
4월 초순경에 내가 소속해 있는 울산 소설가협회에서 봄 문학기행이 있다고 했다. 텔레비전 역사 관련 프로그램에 나오시는 L 선생님이 안내를 한다는 것과 보물찾기가 있다는 공지가 떴다. 보물찾기라는 말에 단번에 초등학교 소풍날이 떠올랐다. 작은 종이에 잉크로 단순한 동물 모양이 찍힌 종이를 찾으면 소정의 선물을 줬다. 하지만 그 종이는 쉽게 발견되지 않았다. 어쩌다 찾아서 공책이라도 한 권 받을라치면 기분이 매우 좋았다.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나서 살짝 가슴이 설빀다. 문학기행 장소는 서생포 왜성이었다. 서생포 왜성은 임진왜란이 일어난
'언행일치(言行一致)'는 '말과 그에 따른 행동이 같음'이라는 뜻이다. 살다 보면 모든 일에서 말과 행동이 일치하기가 참 어렵다. 말과 행동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지만, 말이 앞서기도 하고 행동을 먼저 하기도 한다. 시내에서 모임이 있어 점심을 먹고, 회원 몇 명과 함께 지인이 개업한 작은 책방에 갔다. 생각보다 좁았지만, 특색 있게 꾸며 놓아서 구경할 만했다. 깔끔한 턴테이블에 얹힌 LP판에서는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작은 옷걸이에는 빈티지한 옷이 몇 개 걸려 있었다. 소장하고 싶은 책 두 권을 골라놓고 있으니 주인이 차를 내
주말에 남편과 거제를 다녀왔다. 첫 방문지는 반백 년에 걸쳐 만든 노부부의 수목원인 공곶이였다. 아이들 어렸을 때 두 번 정도 다녀온 곳이지만, 아직 겨울 기운이 남은 날씨에 더 포근한 곳으로 가면 꽃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어서였다. 거제를 들어섰을 때 낯선 느낌이었다. 절반도 떠오르지 않는 기억을 채워가며 공곶이로 향했다. 시멘트 길을 따라 한참 올라가니 바다가 내려다보였다. 아왜나무가 양쪽으로 줄지어 선 숲길에 접어들자 탄성이 나왔다. 아름다운 숲길에 걸음이 저절로 느려졌다. 하늘과 나무와 바람이 함께하는, 오래
누구나 한 번쯤은 날 수 있으면, 하고 꿈꾼다. 창공을 가르며 나는 새들을 보며 날개를 가지지 못한 사람들은 새들의 능력을 부러워한다. 자라면서 가끔 꿈속에서 날개 없이도 허공을 나는 꿈을 꾸기도 한다. 비행기, 행글라이더, 열기구 등은 인간이 날고 싶은 욕망이 만들어낸 것들이 아닐까 싶다. 새를 만나기 위해 주말에 남편과 우포늪을 찾았다. 몇 년 전에 아이들과 동행했지만, 이번에는 단출하게 둘이 떠난 길이었다. 입구에 도착하니 점심때쯤이었다. 우리는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인근의 식당에 들어갔다. 자그마한 전기난로 하나가 난방을
새해 첫날에 일출을 보러 가려고 했다. 가족끼리 약속도 했건만, 하필 남편이 컨디션이 안 좋아져서 가지 못했다. 이맘때면 일출을 보러 가고 싶은 마음과 늘 뜨는 해를 꼭 보러 가야 하느냐는 양가감정에 빠진다. 그래서 내 삶을 통틀어볼 때 새해에 일출을 보러 가는 것은 들쭉날쭉하다. 몇 년 전에 동해 일출을 보려고 가족이 하루 전에 출발한 적이 있었다. 창문을 열면 감포 바다가 바로 내려다보이는 곳에 숙소를 잡았다. 일출이 보이는 곳은 보이지 않는 곳보다 가격이 더 비싸다고 했지만, 일출 장면을 포기할 수 없었다. 일출을 볼 생각에
처음으로 강원도 영월 땅을 찾았다. 설레는 길에 남편과 둘째가 동행했다. 문학기행을 갈 기회가 있었는데 사정이 여의찮아 참여하지 못해 꼭 가고 싶었던 곳이다. 고속도로에서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것을 제때 못 봐 다른 길로 가는 바람에, 20분 정도의 거리를 둘러서 갔다. 여행에서 예상치 못한 일이 전혀 없다면 오히려 밋밋하겠지. 우여곡절 끝에 청령포 주차장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자 콧속으로 스며드는 공기에서 청량감이 느껴졌다. 입장권을 끊고 배를 타기 위해 이동했다. 배는 정해진 시간에 운영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이 모이는 대로
단풍이 들고 한 잎 두 잎 낙엽이 지는 계절에 오래 몸담은 독서회에서 야외 토론이 있었다. 회원들은 도서관 나무 아래서 만나 차량 두 대에 나눠서 타고 출발했다. 차가 속력을 내자 어릴 때 소풍 갈 때처럼 설레기 시작했다. 때 이른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들어 가을 분위기를 한층 고취시켰다. 목적지인 통일전 주차장에 도착했다. 통일전은 삼국통일의 정신을 계승하고 다가올 남북통일을 기원하는 국민의 전당이다. 경내에는 태종무열왕, 문무대왕, 김유신 장군의 영정이 모셔져 있으며, 통일의 격전을 생생히 보여주는 기록화가 긴 회랑을 따라 전시되
해거름 무렵, 길을 나선다. 고인 생각은 정신을 어지럽히기에 흘려보내러 간다. 집 주변에 둑길이 있어 사시사철 걷기에 좋다. 요즘은 나팔꽃, 억새꽃, 쑥부쟁이, 코스모스, 고마리꽃을 볼 수 있다. 개체가 많지는 않아도 눈 맞추고 걷기에 부족함이 없다. 두 차례 태풍이 지나간 탓인지 벚나무는 예년보다 적은 이파리를 매달고 있다. 그중 몇 잎은 떨어지고, 몇몇 잎은 물이 들었다. 가을이 오는 소리에 귀 기울이다 보면 내가 걷고 있다는 사실을 잊을 때도 있다. 발가락을 다쳤을 때 제일 힘든 일이 걷지 못한다는 거였다. 지금은 자유롭게 걸
핸드폰 사용자라면, 자녀를 가장한 문자나 국가기관을 사칭한 전화를 받아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요즘은 보이스피싱을 주의하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만큼 핸드폰을 이용한 사기가 우리 삶 깊숙이 들어와 위협하는 게 현실이다.며칠 전, 도서관 사서에게서 전화가 왔다. "예전에 독서회 회원이셨던 분이 찾아와 선생님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해서 전화드렸습니다. 동기일 수도 있다고 하시는데, 성함이 정연수(가명) 씨라네요." 독서회를 하다가 나간 사람은 많았다. 그중에 남자 동기를 떠올려 보니 아무리 해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남자 동기, 여자
노란 은행잎이 질 때 밀양에 있는 금시당 백곡재에 다녀온 적이 있다. 금시당은 조선 명종 때 좌부승지를 지낸 금시당 이광진이 1566년에 지은 별장으로 제자들을 교육하기 위해 지은 건물이다. 거기에는 마당 한 편에 자리 잡은 420년이 넘은 은행나무가 곧게 하늘을 향해 손을 뻗고 있다. 둥치를 안고 가만히 수액이 흐르는 소리를 들었다. 오랜 세월에도 도도히 흐르는 기상에 감탄하며, 사진을 찍은 기억이 선명하다. 그곳 배롱나무에 꽃이 피었다는 소식을 듣고 남편과 길을 나섰다.초입에 차를 대고 걸어가는데 양옆으로 소나무 군락이 우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