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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화 소설가
정정화 소설가

주말에 가족과 거제도에 있는 매미성으로 향했다. 거제도는 몇 번 다녀온 곳인데 매미성은 못 가봤다. 최근에, 텔레비전에서 소개된 적이 있어 궁금하던 차였다. 차로 한 시간여쯤 달리면 해저터널이 나오고 이어서 거가대교가 모습을 드러낸다. 거가대교는 가까이서 보면 웅장하고 멀리서 보면 예쁘다.

매미성 주차장에 도착해 차를 댔다. 매미성으로 가는 길에는 음식점, 카페 등 상가가 제법 많았다. 매미성을 짓기 전에는 사람들의 왕래가 별로 없는 곳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전국에서 사람이 모이는 명소가 돼서, 지역 상권 형성에도 많은 도움이 되는 듯했다. 매미성은 경남 거제시 장목면 복항길에 위치하고 있다. 입구에는 매미성을 쌓은 사연이 적혀 있다.

"매미성은 2003년 태풍 매미로 경작지를 잃은 시민 백순삼 씨가 자연재해로부터 작물을 지키기 위해 오랜 시간 홀로 쌓아 올린 성벽이다. 바닷가 근처에 네모반듯한 돌을 쌓고 시멘트로 메우길 반복한 것이 이제는 유럽의 중세 시대를 연상케 하는 성이 되었다. 그 규모나 디자인이 설계도 한 장 없이 지었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훌륭하다."

계단과 성곽이 백순삼 씨의 손길을 거쳐 하나하나 완성한 것이라고 하니 놀랍다. 현대적인 장비가 동원돼 후딱 지은 것이 아니고 수작업으로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니 그 인내와 내공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군데군데 나무를 심어 성곽에 자연미를 더한 것도 좋다. 성곽 위에 종려나무 한 그루가 바다를 내려다보고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대금리의 아름다운 바다가 한눈에 펼쳐진다. 종려나무는 오랫동안 파도 소리를 들으며 행복하겠지. 성벽 사이사이 사진 찍기에 좋은 장소가 몇 군데 있다.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면 운치가 더하다. 우리도 사진을 몇 장 찍는다. 사진 잘 찍는 딸이 마음껏 실력을 발휘한다. 계단을 따라 내려오면 사람들이 쌓은 몽돌탑이 장관을 이룬다. 돌 하나하나에 사람들의 소망이 담겨 있으리라.

가까운 곳에 갯바위가 있어 그곳으로 간다. 바람이 갯내를 훅 실어 온다. 바다가 훨씬 가까이 느껴진다. 깨끗한 거제 바다의 푸른빛이 싱그럽다. 아래쪽에서 성곽을 올려다보니 감탄이 절로 나온다. 규모는 작지만 단아한 아름다움이 있다. 지금도 백순삼 씨가 작업 중이라니 놀라운 일이다. 20여 년을 성곽 쌓는 일에 몰두했다니 건축가이자 예술가가 아닌가 싶다. 근래에 바르셀로나에 갔을 때 인상 깊었던 건축가 가우디가 문득 떠오른다. 카사바트요 등의 주택, 구엘 공원, 파밀리아 대성당까지 곡선과 자연을 중요시한 그의 건축 작품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지금도 비싼 입장료를 줘야만 감상할 수 있는 역작들이다. 이에 비해 매미성은 무료입장이다.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친다고 볼 수 있다. 아직 미완인 매미성이 어떤 모습으로 완성될지 기대된다.

숙소에 짐을 풀고 저녁을 먹기 위해 주인에게 맛집 소개를 부탁했다. 섬에 왔으니 신선한 해산물이 좋을 것 같았다. 음식 잘하는 횟집을 추천해 달라고 했더니 근처 횟집을 소개해 줬다. 우산을 쓸 정도는 아니었지만, 겨울비가 조금씩 내렸다. 우리는 주인이 소개해 준 횟집으로 들어섰다. 횟집은 왁자지껄한 분위기였다.

 "예약했어요?"
 "아뇨, 예약 안 했어요."
 "자리가 없어서 안 돼요."

우리는 일순 당황했다. 자리가 없다는 것도 그랬지만, 주인아주머니의 단호하고 불친절한 태도 때문이었다. 자리가 없으면 당연히 거기서 저녁을 먹을 수 없겠지만, 말투와 표정, 태도가 고압적이었다. 장사가 잘된다고 해서 손님에게 불친절할 권리는 없을 것이다. 우리가 왜 안 되냐고 물은 적도 없는데 오만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곳을 돌아 나오며 기분이 언짢았다. 공짜로 주는 음식도 아닌데 그렇게까지 불친절할 필요가 있나 싶었다.

그 횟집을 지나 안쪽에 있는 횟집으로 갔다. 손님이 두 팀밖에 없어서 음식이 맛이 없으면 어쩌나 걱정이 됐다. 하나씩 음식이 들어오면서 기우에 불과한 생각임을 알게 됐다. 음식도 괜찮고 갖가지 회도 신선했다. 그중 양념을 끼얹은 우럭튀김을 먹으니 입맛이 돌았다. 조금 전 불친절한 주인아주머니 생각도 서서히 옅어졌다.

이번 여행에서는 상반되는 두 가지를 경험했다. 불특정다수를 위해 오랜 기간 자신의 노력에 대한 대가조차 받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엄연히 돈을 받고 하는 장사임에도 손님에게 불친절하게 대하는 사람도 있다. 말하는 데는 돈이 들지 않는다. 거절의 말도 완곡하게 한다면 듣는 이의 마음이 상하지 않을 것이다. 새해에는 이왕이면 고운 말로 사람들과 마주하고 싶다. 정정화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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