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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화 소설가
정정화 소설가

촉촉한 봄비가 스며들고 따사로운 햇살이 깃들면서 들녘에 쑥이 고개를 내민다. 들판에는 쑥을 캐는 아낙네들이 봄 향기를 줍느라 손발이 바쁘다. 어릴 적, 바구니를 들고 다니며 쑥을 캤던 기억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몸이 봄기운을 느끼는지 자주 나른하다. 이맘때면 도다리와 쑥을 넣어 끓인 도다리쑥국이 생각난다. 쑥은 직접 캐든지 시장이나 마트에서 살 수 있지만, 싱싱한 도다리는 구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초봄이면 도다리쑥국을 끓여 파는 식당을 찾는다. 남편도 봄 향을 맡았는지 아침부터 도다리쑥국 타령을 한다. 부리나케 옷을 갈아입고 남편을 따라나선다.

 식당에 들어서니 평소보다 덜 복잡하고 전망 좋은 창가에 빈자리가 있다. 식탁에 놓인 테이블오더에 도다리쑥국 두 그릇을 주문한다. 창밖으로 서생면 신암 앞바다가 펼쳐져 있다. 연녹색과 짙푸른 색이 어우러져 바다가 더욱 예쁘다. 주문을 넣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음식이 나온다. 큼직한 국그릇에 가득 담긴 도다리쑥국이 먹음직스럽다. 싱싱한 도다리 두 동강과 봄 향 가득 품은 쑥, 그리고 들깻가루가 들어간 진한 육수까지 눈으로 한 번 맛보고, 입으로 또 한 번 맛본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했던가. 시각과 미각을 동시에 사로잡는 맛에 그만 빠져들고 만다. 도다리의 하얀 속살이 주는 부드러움과 입안으로 퍼지는 쑥 향에 금세 몸이 반응한다. 봄날 기지개를 켜느라 지친 몸에 활력을 불어넣어 준다. 갈치구이 네 동강을 노릇하게 구워 반찬과 함께 곁들여 나온다. 갈치구이의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도다리쑥국 한 그릇을 먹으니 생동하는 봄의 기운이 느껴진다. 춘곤증을 일시에 날려버릴 맛이다. 신선한 재료를 구할 수 있다면, 직접 끓이면서 추억을 쌓아도 좋을 성싶다.

 부른 배를 두드리며 근처에 있는 진하해수욕장으로 간다. 드넓게 펼쳐진 백사장과 해안선이 아름답다. 해변으로 군데군데 해송이 그 운치를 더한다. 팔각정 앞에 서니 자그마한 섬, 명선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명선도는 만조 때 가면 안 되고 간조 때 가야 하며, 간조 때도 기상 상황에 따라 출입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고 한다. 따뜻한 봄기운과 달리 바닷바람이 몰려와 으슬으슬 춥다. 다행히 모세의 기적에 비유되는 바닷길이 열려 있어 우리를 반가이 맞는다.

 길 입구에는 정월대보름에 달집태우기를 한 흔적이 거무스레하게 남아 있다. 바다에서 떠오르는 보름달을 맞는 기분은 어떨까. 산으로 둘러싸인 곳에 살다 보니 사뭇 궁금해진다. 바다를 배경으로 달은 맞는, 춤추는, 붉은 불덩어리를 상상해 본다. 불꽃의 춤사위에 바다가 빨갛게 물들고 달님이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었으리라. 바다와 달과 불꽃이 함께 어우러졌을 흔적을 보니 아직 불내가 나는 듯하다. 진입로의 돌과 모래는 축축하게 젖어 있다. 파도가 길 양쪽으로 다르게 치는 것이 흥미롭다. 젖은 길을 걷다 보니 간이 부교가 나온다. 물이 들 때를 대비한 장치인 것 같다.

 명선도는 진하 앞바다에 있는 섬으로 둘레는 330m이고 면적은 6,744㎡이다. 본래 매미가 많이 운다고 하여 명선도(鳴蟬島)라 불렀으나, 지금은 옛날에 신선이 내려와 놀았던 섬이라는 뜻으로 명선도(名仙島)라 부른다고 한다. 섬 이름에 얽힌 유래가 재밌어 고개가 끄덕여진다. 섬 입구에는 야간 관람에 대한 안내가 돼 있다. 일출 명소로도 유명하고, 특히, 신비로운 빛과 함께 미디어 아트를 조성해 놓아서 밤에 화려한 볼거리가 많다고 한다. 명선도는 처음이고 낮에 들렀지만, 밤에 꼭 다시 와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명선도에는 약 50년생의 곰솔 군락과 후박나무 군락이 동서쪽에 형성돼 있다. 입구에 들어가면, 동백나무 기념식수장이 조성돼 있다. 온산읍 방도리 천연기념물 제65호 목도 상록수림에서 가져온 동백나무 50주가 심겨 있다. 아직은 동백나무가 작지만, 언젠가 아름드리나무에 동백꽃이 붉게 흐드러질 날을 기다려본다. 조금 더 가면 산죽 군락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 사시사철 푸름을 뽐낸다.

 전망대에서 보면 강양항과 명선교가 한눈에 들어온다. 바다 건너편에는 조선소가 우람하게 서 있고, 수평선을 바라보면 큰 배들이 곳곳에 보인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진하해수욕장의 아름다운 경관을 조망하는 건 덤이다. 갯바위를 치고 흩어지는 파도가 울산 산업역군의 힘을 상징하듯 우렁차다. 작지만 강하고 아름다운 이미지를 품은 명선교에서 봄 향기를 물씬 맡는다. 철썩철썩 쏴아아, 봄 바다가 역동적으로 출렁인다. 정정화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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