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유적조사 문명대 교수팀 주민이 알려줘 1년 간격 발견
불교유적조사 문명대 교수팀 주민이 알려줘 1년 간격 발견
  • 울산신문
  • 2020.01.01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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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로 읽는 암각화군 50년사] 1. 발견과정과 가치 재조명
천전리 각석 발견 초기 모습(1970)
천전리 각석 발견 초기 모습(1970)

 

2020년은 울주 대곡천 암각화군이 발견된 지 50년이 되는 해다. 인류의 역사가 담긴 탁월한 가치를 지닌 문화유산임에도 불구하고 반구대 암각화는 발견 이후 보존에 관한 산만한 논의로 끊임없이 몸살을 앓았다. 본보는 반구대 암각화 발견 50년을 맞아 반구대 암각화의 지난 50년사를 되돌아보며 그 가치를 재조명하고, 바람직한 보존을 위한 앞으로의 과제 등을 세 차례에 걸쳐 짚어본다. 편집자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포경유적
너비 8m·높이 5m의 수직 암면 위
인물·동물 등 300여점 그림 발견
한국 암각화 연구 분야 개척 첫걸음


# 1970년 12월 24일 천전리 각석 발견
국보 제285호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이하 반구대 암각화)'는 울산 도심지에서 서북쪽으로 약 15㎞, 동해로부터 약 25㎞ 떨어진 깊은 골짜기인 울주군 언양읍 반구대안길 285 일대에 위치하고 있다.
울주군 반구대에서 대곡천을 따라 하류로 약 1㎞ 떨어진 곳에 국보 제285호 '반구대 암각화'가, 상류로 약 1.4㎞ 떨어진 곳에 국보 147호 '천전리 각석'이 각각 자리해 있다.


국보 147호 '천전리 각석'은 우리나라에서 처음 발견된 선사시대 암각화 유적이다.
1970년 12월 24일 문명대 교수가 이끄는 동국대 박물관 조사단은 원효대사가 머물었던 것으로 알려진 반고사지를 찾기 위해 울주군 두동면 천전리를 방문했다. 조사단은 답사의 목적이었던 절터를 찾는 과정에서 마을 주민들의 제보를 바탕으로 탐문조사를 벌인 끝에 천전리 각석을 발견했다. 당시 문 교수의 천전리각석 발견 뉴스는 각종 신문에 대서특필 될 정도로 눈길을 끌었다. 

암각화 발견 당시의 반구대 풍경(1971)
암각화 발견 당시의 반구대 풍경(1971)

 

그로부터 1년 후인 1971년 12월 25일, 문명대 교수는 연세대박물관 연구원이던 이융조 교수, 고려대 김정배 교수와 함께 다시 이곳을 찾았다. 이들은 집정청 주인인 최경환 옹의 제보로 배를 타고 하류로 천천히 내려가면서 주변의 암벽을 샅샅이 조사했고 마침내 '반구대 암각화'를 발견했다.
이로 인해 이들 암각화는 '크리스마스의 기적' 또는 '크리스마스의 선물'로 불리곤 한다. 마을 주민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각석과 암각화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선사시대 문화유적인지는 알지 못했다고 전한다. 이들 암각화의 발견은 우리나라에서 '암각화'라는 연구 분야를 개척하는 계기가 됐다.

# 1971년 12월 25일 반구대 암각화 찾아
바위에 어떤 형상을 새겨 가능한 오랜 시간 바위에 남겨두는 인간의 행위는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암각 활동은 표현 욕구를 가진 인간이 그들의 신앙, 세계관을 드러내고 공유하며 후세에 전승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행위였던 것으로 풀이된다. 때문에 암각화는 선사인들의 영적인 갈망을 담은 일종의 다큐멘터리 영화로도 일컬어진다.


학계에 따르면 반구대 암각화는 지금으로부터 약 7,000년 전 신석기시대 이른 시기부터 새겨진 것으로 추정된다. 바위의 암질은 셰일(shale)과 혼펠스(hornfels)로 구성돼 있으며, 암면의 방향은 북향이다.
가파른 수직 절벽의 윗부분은 처마처럼 앞으로 돌출된 바위그늘 구조를 이루고 있어 그 아래 새겨진 그림들이 오랜 세월 비바람으로부터 온전히 보존될 수 있었다.

빼어난 경관으로 이름났던 대곡천
고래사냥·수렵 관련 의식 성소 추정
특별한 목적으로 찾아 암각화 남겨
공룡화석 비롯 문인 흔적도 곳곳에


약 300여점에 이르는 암각화는 너비 약 8m, 높이 약 5m 가량의 판판한 수직 암면에 집중돼 있으며, 주변 암면 10곳에서도 소수의 암각화가 확인된다.
암각화는 해발 52m~58m 절벽에 분포해 있으며 절벽의 자연적인 균열과 그림 위치 등을 고려해 중심암면 6개, 우측 3개, 좌측 7개 등 총 16개 암면으로 구분할 수 있다. 그림의 종류는 크게 △인물상 △동물상 △도구상 △기호 △미상 등으로 분류할 수 있고 이중 동물상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도상 안에는 고고학적인 자료와 연결시킬 수 있는 배, 작살, 다양한 종의 동물들을 비롯해 특징적인 문양 등 많은 정보가 담겨있다. 이를 통해 제작 집단은 어떠한 문화를 영위했는지 당시 사람들의 삶을 살펴볼 수 있다.
특히 반구대 암각화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고래사냥 장면을 담고 있다. 그림은 고래의 세부 종을 구분할 수 있을 만큼 구체적이다. 그림의 목적은 집단의 사람들이 오랜 세월을 거쳐 사냥방법에 관한 지식을 새겨 넣고 가르치거나, 풍요를 기원했던 문화적 맥락의 산물로 추정된다.


이들 그림은 신석기시대의 전기에 주로 제작된 것으로 나타나며, 이는 울산의 신석기시대 조기·전기 유적의 생업 문화양상과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반구대 암각화를 제작했던 집단은 신석기시대 한반도 남부지방 해안지역에서 해양어로를 생업으로 정주생활을 영위했던 복합수렵채집민이었던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반구대 암각화 발견 당시 신문기사.
천전리 각석 발견 당시 신문기사.

# 당시 신문 1면에 대서특필 되기도
암각화가 발견된 반구대 계곡은 오래 전부터 널리 알려진 명승지로 주변 산세와 기암절벽이 어우러져 마치 거북이가 엎드린 모습 같다고 해 '반구대(盤龜臺)'라고 불렸다.


반구대 암각화가 새겨진 절벽 앞으로 흐르는 대곡천은 울산 시가지를 가로질러 동해로 흘러드는 태화강 상류에서 합류하는 지류하천이다. 대곡천변의 반구대 일대는 수직절리와 감입곡류 하천의 발달로 독특하고도 아름다운 경관을 갖추고 있어 고래 사냥이나 육지동물 수렵 등에 관한 의례, 의식을 행하는 성소로 오랜 기간 지속적으로 활용됐을 것으로 추측된다. 전문가들은 이를 통해 당시 사람들이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반구대 일대까지 찾아왔으며, 그 결과 현재의 암각화가 남겨지게 됐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한 반구대 계곡은 선사시대 암각화 유적뿐만 아니라 백악기 공룡발자국화석을 비롯한 지질학적 유산들과 지리적으로 삼국시대 신라의 수도였던 경주에 인접해 있어 신라시대 왕족들과 화랑, 승려들이 바위에 새긴 명문(銘文)과 고려시대 이름난 학자인 정몽주와 관련된 비석들, 조선시대 지방 관리나 문인들이 이곳을 찾아 바위에 남긴 흔적 또한 계곡 곳곳에 남아 있다.  강현주기자 uskh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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