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오밥 나무의 경고
바오밥 나무의 경고
  • 배정순
  • 2020.12.10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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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를 읽는 금요일] 배정순 수필가
배정순 수필가
배정순 수필가

다큐멘터리 인사이트에서 '천년 거목의 죽음'이라는 제하의 방송을 보았다.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 왕자>에 나오는 바오밥 나무이다. 여태까지 나는 그 나무가 지구에는 없는, 동화 속 신비로운 식물로만 알았다. 한데 그 나무는 열대 아프리카를 상징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 사는 식물 중 하나라고 한다.
 
아프리카에서 바오밥 나무는 우리나라 소나무처럼 그 나라 사람들에게 상징적인 사랑받는 신령한 나무다. 건기와 우기가 분명한 지역에서 우기 때 줄기 속에 많은 양의 물을 저장했다가 가뭄이 들면 물을 공급해 생명을 살리곤 하는, 없어서는 안 될 보배 같은 나무다. 수령이 2000년 넘는다고 하니 사람이 그 나무가 죽는 것을 보는 일은 드문 일이다. 한데 근래에 그 나무가 고사하고 있다. 나무의 몸살 정도로 보기엔 사태가 심각하다. 사람이 앓는 고뿔 정도라면 시간을 두고 기다리면 그만인데, 이곳저곳에서 고사목이 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리 간단히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빙하기에서 간빙기까지 지구 평균 온도가 만 년 동안 4도 오른 것에 비해 근래 백 년간 1도가 올랐다고 한다. 무려 25배에 달하는 속도다. 바오밥 나무는 건조한 곳에서도 잘 견디는 식물이지만, 그 나무마저도 살 수 없는 환경이라는 얘기다. 환경파괴가 불러온 폐해가 그곳만의 현상일까. 
 
내 주변도 심상치가 않다. 상록수인 소나무가 단풍이 드는가 하면, 푸른 잎도 매연에 절어 우중충한 암회색이다. 뒷산 입구의 아름드리 소나무가 고사해 요란한 전기톱 칼날에 잘려 나가더니 산 곳곳에 흉물스럽게 소나무의 푸른 방습 포 무덤이 늘어났다. 지금은 무덤 속에서 3년 동안 살균을 끝낸 나무토막들이 맨살을 드러낸 채 산 곳곳에 나뒹군다. 헐벗은 채 얽기 설기 누워있는 모습이 마치, 사람의 그것 같아 섬짓하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우리가 겪고 있는 코로나가 사람을 공격하는 것도 뿌리는 환경파괴에 닿아있다. 수만 명의 목숨을 앗아가고도 성이 안 차는지 계속 번져가고 있다. 입 막고, 거리두기로 살다 보니 다들 무력증에 빠져있는 듯하다. 이 사태의 근원이 인간 행위에 있다고 하니 괴질을 탓할 수도 없다.
 
이젠 우리가 신앙처럼 믿고 사용하던 용어 해석도 바꿔야 할 것 같다. 뭉쳐야 산다는 말은 의미를 잃었다. 몸은 멀어도 마음은 가깝다? 그 또한 현실에 맞지 않는 해석이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 멀어지는 건 인지상정이다.
 
기계 문명이 삶의 질은 높인 건 사실이다. 사람이면 세상 참 좋아졌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 속에 복병이 숨어있다는 걸 어찌 알았으랴. 그때만 해도 한 가지를 얻으면 한 가지를 내놓아야 한다는 정한 이치를 깜빡했다. 이대로 가다간 지구 멸망의 마지노선인 기후 재앙까지 온다고 하니 간담이 서늘하다. 
 
근래 기온이 심상치 않았다. 올해도 여느 해 보다도 긴 장마와 잦은 폭풍으로 자연훼손이 컸다. 많은 나무가 부러지고 소실되는 상처를 입었다. 이 사태가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편리한 세상이라도 자연이 고사한다면 빛 좋은 개살구가 아닌가. 
 
어린 시절 흙 토담집에 살면서도 행복했다. 그곳에는 따뜻한 온정이 넘나들었다. 어머니는 뒷산에서 솔잎을 따와 관절에 효험이 있다며 술을 빚기도 하고, 추석이면 솔향이 솔솔 나는 송편을 쪄 이웃과 나누기도 했다. 소나무는 좋은 목재로, 화력 좋은 땔감으로도 한몫했지만, 음식에 독특한 향으로, 약효를 인정받아 효소로도 활용했다. 그렇게 자연과 공존의 삶을 살았으면 좋은데 인간의 탐심은 겁 없이 이미 선을 넘었다. 사랑받던 소나무가 아프리카 바오밥 나무와 같은 길을 가고 있다. 나무의 고사는 지구촌이 사람이 살 수 없는 환경이 되어 간다는 지표, 우리 모두가 환경 살리기에 나서야 할 할 시점이다.  
 
이미 스웨덴의 어린 소녀 '그레타 툰베리'가 길거리로 나섰다. 어른들에게 지구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어리석음을 중지하라고. 어른들은 환경을 생물이 살 수 없는 지경을 만들어 놓고도 돈과 끝없는 경제 성장에만 빠져있다. 천년 넘은 바오밥 나무의 죽음은 나무가 인류에게 보내는 경고다"며 지구온난화에 무책임한 어른들을 규탄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서울 세종로에서 500명이 동참, 시위를 하고 있다고 한다. 이게 나를 향한 절규라고 생각하니 오금이 저린다.
 
다행히 내 주변에서도 변화가 일고 있다. 가정에서부터 직장 공공단체까지. 오늘 모임에도 개인 컵을 지참하라는 문자가 떴다. 하려고만 들면 동참할 수 있는 부분은 한둘이 아니다. 일회용 용기사용 자제, 냉난방 적정온도 사용, 대중교통 이용, 장바구니 들고 다니기, 비닐봉지 제 활용, 물 절약하기. 
 
자연을 파괴하기는 쉬워도 원상회복하는 데는 몇십 배 노력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 사태는 강 건너 불이 아니다. 자손 대대로 살아야 할 삶의 터전을 건강하게 살리는  길이다. 언제나 큰 것은 작은 것 하나에서부터였다. 지금부터라도 사소한 것의 가치를 제대로 알고 실천한다면  밝은 미래를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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