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톡 소리가 오뉴월 무논의 개구리 울음소리처럼 숨이 가빴다. 핸드폰을 열어보니 문학회에서 캠프에 참여할 사람을 모으는 중이었다. 누군가 중구난방으로 이름을 올리기보다 순번대로 이어 붙이기를 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냈다. 회원들은 앞다투어 줄줄이 이름을 올렸다. 나도 이에 뒤질세라 올렸지만 커서가 말을 듣지 않았다. 가까이 지내는 젊은 친구의 도움으로 몇 번 시도 끝에 근근이 이름을 올렸다. 새로운 기술 하나 습득했다는 만족감에 취해있는데 득달같이 카톡이 날아들었다. "쌤, 왜 세 번씩이나 이름을 올렸어요?" 그 말에 서둘러 카톡
내 안에는 나도 모르는 내가 숨어 산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이는 놈이어서 더러 곤혹스러울 때도 있다. 어제가 그런 날이었다.반듯한 성품으로 여러 문우의 모범이 되는 선배님의 차를 얻어 탔다. 자주 어울릴 기회가 없었던 분이라 이물 없는 자리는 아니었다. 그런 자리에 끼면 말주변이 없는 나는 대화가 궁해진다. 가만있으면 중간은 가는데 그걸 못 참고 한소리 거들다 보면 아차! 하는 순간 놈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만다. 화제에 오른 인물은 나와 가까운 사이였다. 요 근래에 의견이 맞지 않아 관계가 소원해진 친구였다. 마음이 꼬여있던
아이 갖기를 기피는 세상이다. 아들이 늦은 나이에 결혼했는데도 출산에 대한 얘기는 꺼내지도 못했다. 우리 세대는 결혼하면 출산은 당연한 걸로 여겼었다. 요즘 세대는 경제적인 이유로 니, 결혼해도 출산하지 않고 맞벌이로 사는 이니 하는 말들을 많이 해 섣불리 입을 뗄 수가 없었다. 결혼 한 것만도 감지덕지 처분만 기다리고 있었다. 한데 며느리가 결혼하자마자 허니문 베이비를 가졌다고 했다. 놀랍고도 고마웠다. 결혼한 것만도 과분한데 손주까지, 이건 겹경사가 아닌가. 출산의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경사가 이어졌다.
전남 광양, 망덕포구에 자리한 '윤동주 시 유고 보존 정병욱 가옥'을 다녀왔다. 지인을 따라나섰던 건 민족시인 윤동주를 있게 한 정병욱의 본가라 하기에 관심이 쏠려서다. 이 세상에 윤동주 시詩를 알린 사람, 그런 인물이라면 입소문이라도 났을 법한데 내 귀가 어두웠던 걸까. 어디에서도 윤동주 시에 얽힌 내력을 들어본 적이 없다.정병욱 가옥이 문화재로 등록된 것은 2007년도라고 한다. 중요한 역사의 한 토막이 반세기가 넘도록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는 게 의아했다. 한국인이라면 윤동주의 시 한 소절쯤은 알고 있을 법한데
태화강 십리대숲 산책길이다. 강가에 사람들이 모여 강에 시선을 준 채 웅숭그리고 서 있다. 무슨 일일까. 뛰어가 보니 꼬물거리는 수만 마리의 숭어 치어들이 강 가장자리를 까맣게 잠식하고 있다. 이 어마어마한 치어들이 어디서 몰려온 것일까. 짙은 암회색 생물이 스멀거리는 게 자연의 순환으로 보기에는 섬뜩하다. 이건 이변이다. 이렇게 단정 지은 데는 어젯밤 들은 최재천 교수의 강의 영향 때문인지도 모른다. 생물학자 최재천 교수의 환경 강의는 충격 그 자체였다. "생물의 대멸종에 다다랐는데, 사람들은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계속 생태계
예능 프로에 중장년의 부부들이 초대됐다. 주제가 '잊을 수 없는 선물'이었지 싶다. 어느 부인이 결혼반지 얘기를 꺼내자 옆자리에 앉아있던 남편이 슬그머니 자라를 털고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부인의 이야기는 계속됐다. 결혼반지로 백금 쌍가락지를 받았었다고 한다. 지금은 백금과 금값의 차이가 없지만, 그 시절엔 혼인할 때 금반지보다는 백금 반지를 더 선호했었다. 부인은 예물 반지인만큼 소중히 간직했다. 살다 보니 아들이 대학에 가야 하는데 등록금이 없었다. 집안을 둘러봐도 돈 될 만한 것은 없고, 그때 장롱에 고이 간직해
요즘 없던 버릇이 생겼다. 폐품 수거장에 가면 쓸모없어 버리는 물건들을 눈으로 스캔하는 일이다. 윗집이 이사하면서 버린, 바퀴 달린 화분 받침 셋을 주워오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베란다 화초들이 바퀴 달린 받침을 사용하고부터 물 빠짐이 좋아 잎에서 윤이 나고 개화기의 수명도 길어졌다. 그러다 보니 이곳저곳에 건져 올린 가재도구가 늘어났다. 안방 경대 옆에 얌전히 서 있는 베이지 톤의 미니 책장과 소량의 김치를 버무릴 때 쓰고 있는 큼지막한 스틸 대야도 들고 온 것이다. 생각잖게 건져 올린 습득물을 요긴하게 쓰고 있으니 '보물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잠시 망설였다. 우등 고속버스와 일반 고속버스 차이는 만원이었다. 구태여 걸리는 시간이 같은데 우등 고속을 이용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에 일반 고속을 탔다. 삶이 고단해 쉬고 싶은 사람이라면 모를까 전업주부다 보니 잠에 취해 시체 놀이로 시간을 버릴 만큼 일상이 피곤한 것도 아니다. 시집에 일하러 가는 데도 차를 타고 어디론가 떠난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여행이다. 평일 일반 고속은 한 사람이 두 자리를 차지하고 갈 수 있을 정도로 여유롭다. 오늘은 형편이 달랐다. 옆자리에 내 또래의 우아한 차림의 여자 손님이 앉
비대면 강의 수업 중이었다. "사진 찍겠습니다, 얼굴 좀 보여주세요." 출석 체크를 하겠다는 주문이다. 집행부에서 인증샷이 필요하다고 하니 피할 수도 없다. 이 일을 어쩌나, 얼굴을 내보이기는 정말 싫은데. 내가 사진 찍기 싫은 데는 이유가 있다. 일전에 가스레인지 사용 부주의로 머리를 태워 버렸다. 불을 켜 놓고 엎드려 물건을 꺼내는 틈에 머리에 불이 옮겨붙었다. 옆 지기가 쫓아와 화재 진압에 나섰지만 이미 머리는 밑동만 남긴 채 타버린 뒤였다. 진짜 이유는 또 있다. 첫 수업 때 카메라에 비친 내 얼굴을 보면서부터다. 젊은 회원
비어있던 위층에 새사람이 이사 왔다. 여름 내내 보수하느라 쿵쾅거리더니 오늘은 사람이 뛰는 소리가 신경을 자극한다. 짓궂은 개구쟁이라도 있으면 어쩌나 하는 노파심에 촉각을 곤두세우게 된다. 그 속에는 은근히 그동안 불편했던 심기도 깔려있다. 사과는 아니더라도 미안했다는 인사 정도는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며칠 지나도 감감한 것으로 보아 그런 인정도 기대할 수 없는 사람인 것 같다. 아쉬움이 남는다. 이럴 때 이사 떡을 돌리며 웃는 얼굴로 퉁 치면 봐줄 수도 있는데…. 아니지. 내가 덜떨어진 인간이다. 바랄 걸 바라야지 지금이 감히 어
엄청 무더운 날씨다. 누가 말을 걸지 않아도 짜증이 날 만한 날씨다. 부축을 받아야 운신하시는 어머님은 오늘도 소파에 누워 가만 계시질 않는다. 몇 분 간격으로 에어컨 켜라. 꺼라 선풍기 켜라 꺼라 하시며 "얘야"를 불러 젖힌다. 그것까지는 괜찮다. "화장실 불은 왜 끄지 않니, 사람도 없는 방에 왜 선풍기가 돌아간다니, 젊은 사람이 왜 저럴꼬 끌끌." 그놈의 왜, 왜, 왜…. 노모의 지청구는 결국 나의 건망증으로 귀결된다.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속에선 '좀 켜 놓으면 어때서'라는 볼멘소리를 내지른다. 저 연세에 기
다큐멘터리 인사이트에서 '천년 거목의 죽음'이라는 제하의 방송을 보았다. 생텍쥐페리의 소설 에 나오는 바오밥 나무이다. 여태까지 나는 그 나무가 지구에는 없는, 동화 속 신비로운 식물로만 알았다. 한데 그 나무는 열대 아프리카를 상징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 사는 식물 중 하나라고 한다. 아프리카에서 바오밥 나무는 우리나라 소나무처럼 그 나라 사람들에게 상징적인 사랑받는 신령한 나무다. 건기와 우기가 분명한 지역에서 우기 때 줄기 속에 많은 양의 물을 저장했다가 가뭄이 들면 물을 공급해 생명을 살리곤 하는
벚꽃이 펼쳐놓은 축제 자리다. 축제에 초대받은 손님답게 들뜬 기분에 발보다 마음이 앞서 달린다. 오늘따라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장범준의 '벚꽃 엔딩'이 달달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벚꽃 잔치에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축가는 없을 듯하다.분위기 탓일까. 여느 때와 달리 선남선녀 커플들이 유독 눈길을 끈다.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봄바람, 꽃바람에 환호하는 인화의 물결이 오색 무지갯빛이다.봄꽃으로는 단연 벚꽃이 으뜸이다. 나무 크기의 웅장한 면에서도 당해낼 꽃나무가 없다. 일찍 핀 꽃잎이 눈꽃이 되어 흩날리는가 하면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