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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의 발

강봉덕

아름다운 것은 쉬이 사라진다
고래의 발이 사라지고 흔적만 남았다
그러므로 고래의 발은 아름답다
하여, 나는 아름다운 고래의 발을 기다린다
하루에 한 번 일 년에 한 번 지구가 도는 이유는
사라진 것들이 다시 돌아온다는
굳은 약속의 표식이다 가끔
고래가 해변으로 올라와 뻔한 죽음을 맞이하는 것도
계절을 건너고 숲과 해변으로 사냥을 나가던
사라진 발에 대한 기억 때문이다
근질근질한 고래의 발이 돋아나는 미래의 어느 날
우리는 고래와 공원을 산책할 것이리라
분홍 꽃신을 신고 큰 엉덩이를 사각사각 흔들며
황홀한 저녁 하늘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는
고래의 발을 만날 수 있으리라
우리가 살아오면서 잊어버린 것 천천히 가슴으로부터 멀어진 것
눈앞이 캄캄해 놓쳐 버린 것 움켜쥐다 빠져나간 것
가령, 이런 것들이 다시 돌아온다면
돌아오는 것들은 어디에 숨어 있었을까
차가운 암각화나 눈물 같은 별자리 속이거나 아니면,
당신이나 나의 가슴 저 깊숙한 자리에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름다운 고래의 발

△강봉덕: 1969년 경북 상주에서 출생. 2006년 '머니투데이' 경제신춘문예 등단, 2013년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당선, 계간 '동리목월' 신인상 수상. 울산하나문학상 수상. 시집 '화분 사이의 식사'

김감우 시인
김감우 시인

이 시는 서두의 전개방식부터 참 재미있다. 일반적인 것에서 개별적인 것을 이끌어내는 연역 추론방식을 쓰고 있다.
"아름다운 것은 쉬이 사라진다"라는 첫 행은 지나간 것에 대한 그리움을 자극한다. 돌아갈 수 없는 곳을 향해 저마다 간절해져 있는 귀향(歸鄕)점을 '툭' 치면서 순식간에 독자의 가슴 속에 참인 명제로 자리잡아버린다. 바람이 존재를 드러내고 창문이 유난히 덜컹거리며 달랑 한 장만 남은 달력으로 자꾸 눈이 가는 이 계절이면 더욱 그렇다.

연역추론 방식은 각 단계의 명제가 참인 경우 결론이 항상 참이 되는 추론방식이라고 한다. 첫 행의 사유가 참이라는 신뢰로 와 닿으면서부터는 우리는 사라진 고래의 발이 아름답다는 시인의 말에 기분 좋게 설득된다. 시 한편을 다 읽고 나면 마치 새로운 세상을 안내하는 프리젠테이션 하나를 본 것처럼 시 속에 있는 시인 고유의 논리를 통과하는 체험을 하게 된다. 

이를 통해 독자는 어느새 시인과 나란히 앉아 아름다운 '고래의 발'을 함께 기다리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지구가 하루에 한 번, 일 년에 한 번 도는 이유가 사라진 것들이 다시 돌아온다는 약속의 표식이라는 시인의 말은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가. 그래서 우리가 살아오면서 잊어버린 것과 천천히 가슴으로부터 멀어진 것에 이르러서도 이 시는 우리를 아프게 하기 보다는 꿈꾸게 하는 것이다. 올 한 해는 코로나19로 모두에게 지칠 대로 지친 시간이었다. 막막하고 어두운 터널에서도 묵묵히 제 수위를 지켜내는 이런 시는 든든한 힘이 된다.

'눈앞이 캄캄해 놓쳐버린 것과 움켜쥐다 빠져나간 것'들을 기다리는 일은 다시 꿈을 꾸는 일이다. 그것은 '당신이나 나의 가슴 저 깊숙한 자리'에 있는 아름다운 것들을 간절히 기다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김감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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