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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울산신문 본사 회의실에서 서덕출문학상 심사위원들이 심사를 하고 있다.  이상억기자 agg77@
지난 13일 울산신문 본사 회의실에서 서덕출문학상 심사위원들이 심사를 하고 있다. 이상억기자 agg77@

울산출신 아동문학가 서덕출(1906~1940)선생의 삶과 작품세계, 문학정신을 기리고 역량 있는 아동문학가의 창작의욕을 높이고자 제정된 '서덕출 문학상'이 열다섯 번째 수상자를 배출했다. 해마다 아동문학인 사이에서 권위를 더해가고 있는 '제15회 서덕출 문학상'에서 수상의 영예를 안은 남은우 작가의 수상소감을 들어본다. 작품의 심사평과 수상 작품집 속 주요 작품도 함께 소개한다. 편집자

● 심사평
응모된 작품집 가운데 심사위원들이 공통으로 제15회 서덕출문학상 수상 후보에 올린 것은 셋이었다. 각각 서로 다른 매력이 있어서 심사위원들 사이에 격론이 벌어졌다.
 '송아리네 집'은 어린이의 시선을 술술 읽히는 간결한 언어로 풀어낸 것이 돋보였다. 동시를 표방하면서도 어린이가 아니라 어른의 시선으로 대상을 바라보는 경우가 많았다. 말의 아름다움보다 사유의 깊이를 앞세우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에 비하면'송아리네 집'은 꾸밈없고 호기심 많은 어린이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고 노랫말로도 어울리는 음악성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서덕출의 동시와 가장 닮아 있었다. 다만 동시의 전통을 충실하게 계승하고 있다는 점이 한편으로는 새로움과 역동성의 부족으로 보이기도 했다. 유아나 초등학교 저학년에게는 안성맞춤이지만 그 이상에게는 진부하고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바람의 사춘기'는 세상을 바라보는 넓고 따뜻한 시선이 미덕이었다. 사춘기 청소년의 일상과 예민한 감성을 드러내면서도 환경문제, 영세 소상공인의 몰락, 북한 핵실험, 동물 보호, 세월호, 사할린 강제 이주 등 세상 보는 안목을 확장 시켜줄 수 있는 작품이 많았다. 동시라고 해서 사회·문화적 현실을 소거해 버리거나 삶의 경계를 가족으로 한정해 버리는 경우에 비하면 삶의 다양한 측면에 밀착하려는 핍진성이 돋보였다. 신체장애로 고생하면서도 세상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았던 서덕출의 정신과도 맥이 닿아 있는 작품집이었다. 말을 다루는 솜씨에서 느껴지는 연륜과 깊은 내공도 무시할 수 없는 장점이었다. 다만 역시 새로움이라는 측면에서는 조금 부족하고, 장점일 수도 있는 교훈적인 요소가 요즘 청소년들의 감성에는 흥미를 반감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염려가 제기되었다.

 '우산이 뛴다'는 경쾌한 상상력과 작가만의 독창적인 시각이 도드라졌다. 어쩌면 실험적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만큼 동시의 기존 문법을 일탈하면서도 문학성을 확보해낸 것은 이 작품집만의 독보적인 장점이었다.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는 것처럼 새롭고 신선하면서도 누가 읽어도 흥미로울 만큼 상상력과 말을 다루는 솜씨가 탁월했다. 서울과는 멀리 떨어진 울산에서 장애로 인해 방에 틀어박혀 지내는 불우한 처지를 독창성으로 승화시켜 '천재' 소리를 들었던 서덕출의 면모를 상기시키는 작품집이었다. 수록된 모든 작품이 고르게 일정 수준 이상을 보여주고 있는 것도 다른 후보에 비해 돋보이는 미덕이었다. 다만 지적 실험이 청소년에게 다소 난해하게 보일 수 있다는 염려가 있었고, 지나친 실험으로 인해 동시의 경계가 흐트러질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세 동시집을 두고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공동 수상을 고민할 정도였다. 오랜 시간 격론을 벌인 끝에 '우산이 뛴다'를 수상작으로 선정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전통과 안정감도 무시할 수 없는 미덕이지만 이번에는 개성과 독창성을 선택하는 것이 서덕출의 문학을 계승하고 서덕출문학상을 더 빛낼 수 있다고 판단했다. 다소 난해하고 실험적으로 보일 수 있다는 염려에 대해서도 청소년 독자의 높은 수준을 믿어 보기로 했다. 예상과는 달리 청소년 독자가 환호할지도 모른다는 기대도 품기로 했다. 수상하지 못한 분들과 함께 아쉬워하고, 수상하신 분과 함께 기쁨을 나눈다.
  -소래섭 심사위원장
 울산대학교 국어국문학부 교수

남은우 동시인
남은우 동시인

● 수상 소감
해가 해가 빠졌네/태화강에 빠졌네/문수산을 넘다가/발병 나서 빠졌네
 
제 마음을 울렁이게 하는 서덕출 선생님의 시입니다. 일제강점기라는 민족의 아픔과 척추장애라는 육체의 고난에 굴하지 않고 시로 살다 가신 서덕출 선생님. 그 시혼이 흐르는 땅 울산 중구 태화강변에 사는 특혜를 원도 없이 누리고 삽니다.
 유배지라고 명명하던 양산 대운산 기슭에서 돌아왔을 때, 탕자의 아버지마냥 맨발로 달려 나와 입맞춤해주던 태화강. 그리고 10년……. 소원하던 서덕출 문학상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인디언 할매 까무잡잡' 이필귀 여사(어머니)께 이 상을 바칠 수 있어 무엇보다 기쁩니다. 
 밤새 발병이 나은 해가 태화강을 비춥니다. 해처럼 밝게 세상을 비추는 시를 쓰고 싶습니다. 모난돌 다듬는 데 지치지도 않으시는 하나님께 영광 올려드립니다. 가족들, 문우님들, 출판그룹 상상, 선해주신 다섯 분 심사위원 선생님, 울산신문사에 큰절 올립니다.      

남은우 작가는 
·경주 치술령 아래 관문성에서 태어남
·2004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2013년 푸른문학상 새로운 작가상 수상
·2013년 '어린이와 문학' 동시 추천 완료
·동시집 '화성에 놀러 와' '콩알밤이 스물세 개''강아지 학교 필독서' '우산이 뛴다'를 냈다.

'우산이 뛴다'
'우산이 뛴다'

● 수상자 주요 작품 

우산이 뛴다

 
태풍이 섬 끝 마을 지붕들 발랑발랑 뒤집고 있을 시간
우산도 급하다
 
달맞이꽃 노란 대문들 잘 붙들어 맸는지
모래톱에 놀던 백로 아이들 대숲 집에 돌아갔는지
링거가 주렁주렁 달렸던 팽나무 할머니는 무사한지
 
삼킬 것 찾아
우우웅 곰 울음 퍼지르는 태풍에게서
강 지켜 내려고
 
뛴다, 손잡이 하나로 남게 되더라도

봄날의 사진관
 
사진관을 연다면
'봄날의 사진관'이라 이름 짓겠다는 엄마
 
동물들 공짜
 
커다랗게 써 붙이는 것 잊지 않을 거란다
 
목 더 늘여 달라는 기린
코주름 없애 달라는 코끼리
줄무늬 덜 어룽대게 해 달라는 얼룩말
초록 점으로 바꿔 달라는 치타
 
동물들 밀려들수록 좋다는 엄마
말리려니 동물들 변신 막는 거 같고
응원하려니 배 쫄쫄 굶게 생겼고
 
뭐든
봄날처럼 따뜻하긴 하겠다   

반달곰 동네가 웅성웅성
 
큰일났는가벼
저 아래 덕산장에 온 사람들
모두 입에 구름을 둘렀더라구
 
구름 동나면
우리 반달 떼 가는 거 아녀
 
어이, 말이 씨가 된다고
그저 지리산 곰답게
묵묵히 살면 되지러
 
알지러
그래도 가심이 벌렁벌렁
반달에 자꾸 손이 가는 기
뭔 일 날 것만 같으이

까마귀 뜨개방

이름도 나이도 다 까먹어 버린 증조할머니
뜨개질만큼은 까먹지 않았어요
 
벙어리장갑 뜨고
조끼 뜨고
고깔모자 뜨고
 
캄캄한 밤이 되어 버린 증조할머니 머릿속
불 켜러
대바늘 형제 부지런히 걷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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