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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아직도 흥정하고 있다
 
이한열
 
생전에 아내와 함께
가까워도 북적대는 태화 장보다
조금 멀어도 한산한 다운 장에 가곤 했다
 
중략
 
막 입는 여름 내의 하나 사는데
이만 원짜리 고르다가 
질이나 디자인이 조금 나아 보이는
삼만 원짜리를 다시 골랐다
이삼천 원 깎아도
손톱이 들어가지 않는 주인과
이십여 분 동안이나
깎고 붙이고 밀고 당기는 실랑이 속에
오늘 큰맘 먹었다면서 
이만 사천 원에 지갑을 여는 아내
진작부터 입고 싶었다면서 배시시 웃었다
 
요즈음 
나 혼자 다운 장에 가면
그 옷 가게를 바로 보지 못하고 지나간다
 
중략
 
오늘도  파장 되어가는 
장터 모퉁이 돌아 나오면서
힐끗 쳐다보니
아내는 아직도 그 옷 가게에서 흥정하고 있다
 
△이한열 : 경남 마산 출생. 한국교원대학원 졸업. 1997년 '詩와 詩論'으로 등단.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으로 정년퇴임, 한국작가회의 이사. 울산작가회의 회장 역임. 시집 '사랑이란 함께 낯선 풍경을 바라보는 일이다' '누구나 한 편의 영화를 품고 산다' '아내는 아직도 흥정하고 있다'

도순태 시인
도순태 시인

'둘만의 소풍길, 끝까지 웃지 못하고 먼저 떠난 아내에게 졸문의 시집을 바친다'. 시인의 말에서 보듯 끝까지 해로 못하고 떠난 아내에 대한 그리움이 울컥울컥 올라온다. 애잔한 그리움이다. 기억의 광에 웅크리고 있는 것들이 많을수록 세월이 흐름에 관계없이 불쑥불쑥 찾아온다. 시인에겐 회한도 그리움처럼 다운 장으로 발길을 옮기게 한다. 그래서 그리움의 공간에서 아내의 환영을 통해 소소한 행복을 찾는 방법을 알고 있는 것이다.

 부재는 쓸쓸한 뒷모습처럼 가슴 한 쪽을 서늘하게 한다. 그러나 그 서늘함 안으로 파고드는 그리움은 종종 시인을 아내와의 추억을 꺼내 같이 걷게 한다. 늘 그곳엔  검소한 아내가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시인과 아내는 생사를 넘어 사랑을 흥정하고 있는지 모른다. 3월이 세상과 한바탕 흥정할 봄날이 따스한 눈길로 잎을 틔우기 시작할 것이다.  도순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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