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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정순 수필가
배정순 수필가

카톡 소리가 오뉴월 무논의 개구리 울음소리처럼 숨이 가빴다. 핸드폰을 열어보니 문학회에서 캠프에 참여할 사람을 모으는 중이었다. 누군가 중구난방으로 이름을 올리기보다 순번대로 이어 붙이기를 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냈다. 회원들은 앞다투어 줄줄이 이름을 올렸다. 나도 이에 뒤질세라 올렸지만 커서가 말을 듣지 않았다. 가까이 지내는 젊은 친구의 도움으로 몇 번 시도 끝에 근근이 이름을 올렸다. 

 새로운 기술 하나 습득했다는 만족감에 취해있는데 득달같이 카톡이 날아들었다. "쌤, 왜 세 번씩이나 이름을 올렸어요?" 그 말에 서둘러 카톡 단체 방에 "제가 폰 맹이라 방법을 몰라 저지른 실수이니 봐 주이소."하는 거로 입막음부터 했다. 이미 내 손에서 날아간 말을 주워 담을 수는 없지 않은가. 다들 발 빠르게 사이버 세상으로 건너가는데 나만 길을 몰라 질척대는 꼴이다.

 집안에서도 같은 유의 실수가 잦다. 그럴 때마다 남편은 그리 가르쳐 줘도 모르는 걸 보면 머리가 박치인 게 분명하다는 치명적인 질책을 들어도 배워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이 나이에 새로운 기술을 배워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골머리를 앓으랴 싶었다. 이대로 어찌어찌 생활이 된다면 군말이 필요 없는데 해를 더할수록 행동도 생각도 뒷걸음질 친다. 그 태무심함이 코로나의 긴 터널을 건너오면서 생각의 변화를 가져왔다. 

 멀리 갈 것 없이 현관 앞만 나서도 시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 젊은 부부가 사는 앞집은 연일 택배가 배달된다. 필요 욕구를 온라인으로 해결해 불편 없이 살고 있다. 늙은 나는 손안에 폰이 있어도 방법을 몰라 온라인 쇼핑은 그림의 떡이다. 물건 사기 싫어하는 남편 손을 빌릴 수도 없고 자식들이 곁에 있는 것도 아니다. 기계치인 내가 세상 흐름을 따라 살자니 걸리는 게 한둘이 아니다. 현실 대처 능력이 떨어지는 나 같은 인간은 삶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유튜브에 들어가 보니 가상 세계의 미아는 나뿐만이 아니었다. 우리나라가 디지털 선진국이라고 하지만 앱을 깔 줄 아는 노인은 18%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대부분의 노인층은 통화, 문자만 사용하고 있다는 얘기다. 혹자는 백세 장수 시대라고 좋아들 하지만, 준비 없는 백 세 장수가 과연 그럴까? 오래 사는 건 불상사라고밖에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늙은이가 밖에 나가 차 한잔 마시기도 쉽지 않은 세상이다. 늘 지나다니는 도로변 찻집도, 계산대가 온라인화 되어 있어 가상 세계의 현장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서울 사는 아들 집에 가서 세상 돌아가는 상황을 제대로 읽을 수 있었다. 음식점, 주차장, 마트의 상거래에 네 살배기 손주가 계산할 때마다 앞장서서 자기가 하겠다고 나섰다. 늙은 나는 기계 앞에만 서면 몸이 움츠러드는데 어린 손주는 호기심 천국이다.  

 현금이 사라지는 세상, 신줏단지 모시듯 하던 돈 지갑은 물밑으로 가라앉고 온라인 상거래가 수면위로 떠올랐다. 이런 시대에 간단한 홈뱅킹, 온라인 쇼핑을 할 줄 모르니 어찌해야 하나. 세대 격차는 젊고 늙음에 있지 않고 폰맹, 비폰맹에 있는 것 같다. 사실 나도 폰맹 이라고 하지만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이슬비에 옷 젖듯 내 의지와 상관없이 가상 세계에 물들어 산다. 음식 만들 때, 모르는 정보교환, 멀리서 사는 자식들과 영상통화 등등, 사이버 세상에 발 담그고 산 지 오래다. 어차피 세상의 흐름은 내가 싫다고 멈추는 것도 아니다. 한데도 감사는커녕 왜 이런 걸 개발해 나를 욕보이나 하는 생각이었다. 지금 나에게서 AI 기기를 거둬간다면 어찌 살까.

 사는 날까지 내 몫의 삶은 내가 책임져야 한다. 나를 책임지려면 이대로는 안 된다. 시대의 흐름을 배워야 한다. 일인 가족 세대가 늘고 있고 보면 나라고 그런 환경을 비껴가라는 법은 없다. 새 시대에 온라인 세상은 사회 안전망이다. 아무리 편리한 세상을 만들어 들이대도 수급자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다.

 유튜브를 탐색하다 보니 '뉴 식스티'라는 단어가 눈에 띈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문화소비 활동을 하는 육십 대 노년층을 이르는 말이다. 나는 뉴 쎄븐티지만 오십보백보다. 업계에서 왕성한 소비력을 갖춘 노인 세대를 사로잡아야 한다고 할 정도면 이미 노년층의 일부는 모바일 쇼핑을 즐기고 있다는 얘기다. 노인복지관에서도 모바일 교육을 하고 있다는 남편의 전언이다. 사회는 나를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는데 그간 덜떨어진 생각에 갇혀 기술 습득에 눈을 감아 왔다. 

 대형 마트 문화교실 입구에 구미가 당기는 광고문구가 걸렸다. 시니어를 위한 AI 교육 프로그램 이수할 회원을 모집한다는 광고였다. 신청하려 했으나 희망자가 없어, 그냥 돌아서고 말았다. 찾으면 기회는 또 오리라. 

 이 시대를 살아가려면 사이버 생활화는 선택사항이 아니다. 잠자고 밥 먹는 것만큼 당연한 일상사다. 뒤늦은 깨달음으로 발걸음이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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