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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년간 울산지역의 청년인구유출이 가속화되면서 20~30대 청년들은 울산에서 미래를 찾지 않고 '탈울산'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지난 5월 7일 동남지방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1분기 동남권 인구이동통계에 따르면 울산의 청년층 중 대학에 진학하거나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시기인 20~24세의 인구 순유출률은 -7.4%를 기록했다. 지방소멸위기 상황에서 여전히 울산에서 부흥을 꿈꾸고 울산 지역을 알리기 위해 발로 뛰는 젊은이들이 있다. 울산을 빛내기 위해 고군분투 중인 청년 예술인, 울산에서의 성장을 선택한 청년 단체, 울산에 의한 울산을 위한 청년 기업. 이들은 뜨겁게 울산을 사랑하며 꿈꾸고 희망하며 몸과 마음을 달궈내는 중이다. 오늘도 '울산'이란 생활전선에 뛰어든 청춘들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편집자 

구지은(1986년생/미디어 기반 공간 설치 작가). 김동균기자 justgo999@
구지은(1986년생/미디어 기반 공간 설치 작가). 김동균기자 justgo999@

구지은(1986년생/미디어 기반 공간 설치 작가)
경기도 부천에서 태어난 구지은 작가는 초등학교 입학 전 아버지의 이직으로 울산에 내려왔다. 

 울산에서 초·중·고를 마치고 울산대학교 예술대학 서양화를 전공하고 대학원까지 진학한 구지은 작가. 작가로 활동하며 프로젝트 기획을 병행하기 시작한 건 2017년. 유니스트 '사이언스월든 센터'의 과학&예술 융합프로젝트 연구원으로 생활하면서 평면을 넘어 본격으로 공간설치 작업과 프로젝트를 기반으로 다양한 사람들과 협업하며 활동 범위를 넓혀가기 시작했다. 

 현재는 창작스튜디오 장생포고래로 131 레지던시 입주작가로 활동하면서 미디어를 기반으로 한 공간설치미술에 주력하고 있다. 

 다른 작업실에 비해 외진 곳에 자리한 장생포고래로 레지던시. 구 작가는 지난해 '장생포에는 고래가 없다'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되면서 장생포를 제대로 마주했다. 

 몇 달간 매일 장생포를 오가면서 복잡한 노동시스템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가 있는 경계의 지점으로 보여 너무나 매력적으로 느껴졌다는 구 작가. 

 이곳은 잔잔한 물결 따라 더할 나위 없이 고요하기도, 배가 입출항할 때 확성기로 울려 퍼지는 무전 소리로 시끌벅적할 때도 있다. 주로 장소를 기반으로 작업을 하는 구 작가에겐 이런 사소한 하나하나가 다 영감이 되고 귀감이 된다. 

 구 작가는 특유의 화려하고 현란한 색감의 디지털 꼴라주 기반의 공간설치 작업으로 장소특정적 미술을 보여주며 끊임없이 새로운 시선을 만들어내면서 작품관을 구축해 가고 있다.

 1980년대생 작가로서 살아간다는 것, 그녀는 스스로 지난날 뿌려놓은 씨앗을 추수해야 할 때라고 빗댄다. 최근 구 작가는 24시간 중 19시간을 깨어있을 만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 시간 중 절반은 작가가 아닌 기획자로 활동하며 여러 국가지원 사업에 선정돼 행정적 서류 작업, 기획서 관련 업무 예산 처리 등 또 다른 현실을 마주해 열을 올리고 있다. 

장생포고래로 131 레지던시 입주
미디어 기반 공간설치미술 주력
문화 통합 플랫폼 구축 홍보 활성화
시민에 더 다가갈 수 있는 환경 필요 

구지은 작가. 김동균기자 justgo999@
구지은 작가. 김동균기자 justgo999@

 다양한 분야에서 여러 활동을 할수록 아쉬운 점도 남기 마련이다. 

 "문화예술계 시스템에서 매순간 무력함을 느끼는 부분이 있다. 홍보가 너무 저조하다. 울산에서는 문화 공연, 전시가 상당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마니아 층을 제외하고는 일반 시민들이 관심을 가지고 직접 찾아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시 자체가 나서 어떤 기관에서 어떤 행사를 하는지 통합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플랫폼이 구축됐으면 하고 사회안에 문화로 정착할 될수 있는 교육이 병행됐으면 한다" 

 구 작가는 작업기간 수개월 내내 오프닝 하나만 보고 앞으로만 달려 나간다. 

 정작 전시가 시작되고 대중앞에 작품을 처음 공개하면 상기된 마음때문에 본인의 작업을 객관적으로 감상하는걸 잠시 미루기도 하지만, 그럴땐 관객들의 반응과 응원 한마디가 구 작가를 움직이게 했다. 

 "한 작품을 완성해 내보내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쉽지 않지만 그 끝에서 만나는 대중들의 관심은 혼자 작업실에서 고루한 힘겨루기를 하던 고단함을 해소해주고 또다른 위로를 받아 새롭게 작업을 할 수 있는 힘을 줍니다. 이전과 달리 울산은 더 이상 문화 불모지가 아니에요. 전시와 공연들이 많고 그에 따른 지원도 다른도시에 비해 많은 편입니다. 대중들이 관심이 없는건 취향을 떠나 어디서 어떤게 진행되는지 손쉽게 알 수 없고 정작 전시장이나 공연장이 생소하고 낯설어 어려움을 느끼는 것 같아요. 그에 따른 문화교육이 병행된다면 공급과 수요가 원활히 돌아갈거라고 생각해요. 어디선가 오늘도 고군분투 중일 청년 작가들에게 응원과 열정을 보냅니다" 구 작가의 작품처럼 힘 있고 스펙터클한 그녀의 화려한 여정은 계속된다. 

김아해(1990년생/홍익대 회화 전공). 김동균기자 justgo999@
김아해(1990년생/홍익대 회화 전공). 김동균기자 justgo999@

김아해(1990년생/홍익대 회화 전공)
남들과 같은 길을 걷지 않아도 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 나다운 삶. 5개의 일과 작가 일을 하며 살고 있는 33살 '김아해'씨도 '나다운 삶'을 잘 살아가고 있다. 

 울산의 문화 명소로 불리는 성남동 끝자락 어귀, 초콜릿을 연상시키듯 갈색 타일로 이뤄진 건물 3층에서 김아해 작가를 만났다. 'Sywisy 씨위씨'로 불리는 이곳은 기존의 그림을 사고파는 화랑이나 미술관과 다르게 작가가 직접 운영하는 전시만을 위한 공간이다. 

 김 작가는 기획자와 작가들이 시도하고 싶은 기획이나 전시가 있을 때 편하게 문을 두드릴 수 있는 공간이라고 소개했다. 

 울산에서 나고 자란 김 작가는 지난 2019년 다시 울산으로 돌아왔다. 

 김 작가는 고등학교 졸업 후 미술계의 메인스트림이 아닌 울산에서 스스로 작업을 지속할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런던 석사시절 전시회가 시작되면
가족·친구들이 찾는 모습에 충격
멋진 작품 가까운 이들과 즐기도록
울산서 나다운 모습으로 창작 심혈 

김아해 작가. 김동균기자 justgo999@
김아해 작가. 김동균기자 justgo999@

 이런 생각을 바꿔놓은 건 런던 석사시절 만난 작고 커다란 충격. 전시가 시작되면 찾아오는 친구들의 가족들. 김 작가에게 그 환경은 신선하고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김 작가는 그제야 문화의 지역 불균형, 불균등에 대해 생각해봤다고 한다. 

 "모두가 커리어를 위해 일자리가 있는 큰 도시로 가게 되면 내 가족, 그들의 가족이 있는 지역에는 누가 남지? 그럼 그 지역은 계속 변함없이 불모지인가? '필요에 의해서 대도시로 지역이동을 하는 게 마냥 바람직하지는 않겠구나'라는 생각에 학교를 떠나 독립적인 작업 환경을 구축해야하는 시점에 울산으로 왔어요"

 그렇게 김 작가와 울산은 다시 재회했다. 김 작가는 회화 제작 과정에 일정한 규칙을 부여하는데, 여러 방법론을 시도하며 시간과 기억 또는 의식에 관한 뜨문뜨문한 인상을 직조한다. 

 하루에 어떤 시간대의 기억 또는 의식이나 혹은 인상에 남았던 이미지들을 작은 회화로 기록하고 그것을 토대로 다시 조합해 큰 회화로 표현하고 있다. 사람들은 말한다. "겁 없는 저 다채로운 컬러감이 우리를 이끈다"고. 김 작가 역시 여느 청년 예술가들이 그래 왔듯, 치열하게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다. 

 개인의 작업과 공간운영을 이어나가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마다치 않고 뛰어들어 올해 상반기에만 5개의 일을 병행한 '프로 N잡러'다. 그러다 간혹 만나는 가혹한 현실. "아티스트피가 뭐예요?" "전시를 시켜주는데 왜 돈을 줘야 해요? 전시의 기회 제공만으로 어드벤티지 아닌가요?" 

 하루에도 열댓 번 작가로서의 삶이 고달프고 그 속에서 좌절을 안고 상처를 받기도 한다. 

 본인이 느낀 고충과 경험을 토대로 이런 현실 속에서 그녀의 뒤를 따라갈 또 다른 '김아해'들은 겪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대학교 강의에 임하고 있기도 하다. "울산도 하루가 다르게 문화도시로 성장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전업작가로만 살기엔 어려운 환경이지 않나 싶어요.  미약하지만 경력이 쌓인 저 조차도 현실이 이런데 신진작가들 혹은 울산으로 유입된 예술인들이 할 수 있는 일자리 뭐가 있을까요. 행정과 현장의 교집합이 잘 어우러져 큰 변화가 있길 바라봅니다" 

곽은지(1988년생/홍익대·대학원 회화과 졸업)
곽은지(1988년생/홍익대·대학원 회화과 졸업). 김동균기자 justgo999@

곽은지(1988년생/홍익대·대학원 회화과 졸업)
태생이 울산 출신인 곽은지 작가는 홍익대학교·대학원 회화과를 졸업하고 지난 2016년 고향으로 다시 내려왔다. 

 서울, 외국 타지생활 10년, 결코 짧지 않은 시간 속에서 본인을 보살필 시간도 없이 앞만 보고 달려온 곽 작가. 오롯이 내가 나의 보호자가 되어 나를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들이 어느 순간 곽 작가를 날카롭게 지내게 만들었다. 지칠 대로 지친 곽 작가는 2016년 울산으로 귀향하면서 작가를 더하겠다는 욕심 없이 개인적으로 혼자 작품활동을 해나갈까 생각했다. 

 파도치던 마음을 잔잔하게 잡아준 조용하고 단조로운 내 고향 울산. 누군가는 단점이라고 말할 때 곽은지 작가는 나만의 속도를 찾아갈 수 있는 좋은 계기이자 발판이 된 곳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다 문득 든 생각 '내가 또다시 지치지 않으려면 작가 곽은지로서의 삶과 평범한 곽은지의 삶을 구분해서 살아야겠다' 그렇게 곽 작가는 그녀만큼이나 따뜻하고 고요한 울주군 범서읍 굴화리 한 골목 사이 건물 안에 자리를 잡았다. 

 일상생활이 다 영감이 된다는 곽 작가는 눈으로 보이지 않고 손으로 만져지지 않는 것을 시각으로 옮기는 작업을 하고 있다. 명시적인 사물보다는 비 가시적인, 비 물질적인 것을 시각적인 은유로 표현한다. 

 작품을 봤을 때 한 가지의 해석으로만 봐지지 않게끔, 여러 가지 해석이 있을 수 있는 부분을 담아내며 자신만의 독특한 예술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파도치던 마음을 잡아준 내 고향
일상생활 모든 것이 영감 돼
지역내 교류할 인력 없다는 아쉬움
행정적 적극 홍보 문턱 낮아졌으면

곽은지 작가. 김동균기자 justgo999@
곽은지 작가. 김동균기자 justgo999@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마음이 대중들에게 통할 때, '붓질이 시원하다' '울산에서 많이 봐오지 않은 모양의 그림이다' 뜨거운 환호가 그녀를 반겨준다. "뇌가 계속 쉴 틈 없이 활성화 돼 있어요. 어쩔 땐 직장인 하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니까요" 

 곽 작가의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의 경계. 곽 작가는 지금 몸이 2개라도 부족하다. 전시 기획부터 콘텐츠 회의, 작업, 운반·설치, 그 후에도 줄줄이 남아있는 마무리 작업 등 하나부터 열까지 오롯이 혼자 해내야 되는 지금이 벅차게 느껴질 때도 있다. 곽 작가는 현재 작가로서의 삶이 직급이나 체계로는 설명하긴 어려운 중간지대에 있는 직업인 것 같아 고민이 많다. 이러한 생각들이 작업에 고스란히 반영되기도 한다. 

 곽 작가의 수많은 작업물 중 단연 가장 눈에 띄는 'Pouring Series'. 직역 '쏟아지다'. 쏟아진다는 건 한꺼번에 많은 양이 내려오는 느낌. 참다 참다 인계점을 넘어 확 쏟아질 때의 그 에너지가 표현된 이 작품들은 그림이지만 압도적인 아우라를 자아낸다. 쏟아진다는 말 앞에는 빗방울, 눈물, 박수 등 정형화될 수 없는 말들이 붙는다. 곽 작가의 비 가시적이고 비 물질적인 작품 세계관과 일맥상통하다. 

 현재 곽 작가는 개인으로 주로 활동하면서 마음 맞는 작가들과 함께 비영리단체를 운영 중이다. 비영리단체 MM (Mixed Media)은 스터디 형식의 모임으로 3~5명의 작가들이 모여 해마다 한 번씩 기획전을 꾸려나가고 있다. 흔하게 볼 수 있는, 구태의연한 단체전 말고 신선하고 재밌는 주제를 기획해서 선보이는데 의의가 있다. 곽 작가에게 예술이란 재료를 공부한다기보단 사회의 관점을 보는 행위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학술적인 부문 가치를 높게 산다. "개인적으로 문화라는 것, 특히 예술이라는 것은 대중들이 느껴야 하는 부분도 크지만 학술에 가까운 부분도 분명 있어요. 그러나 학술에 가까운 부분은 울산에서 높게 평가되지 않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또 혼자일 때 보다 여러 사람들이 모였을 때 다양한 관점이 발생하면서 더 큰 힘이 생긴다고 믿는 곽 작가. "울산 예술계에는 인력이 없다는 게 가장 아쉬워요. 또 사람들은 크게 미술관, 박물관 위주로만 접하다 보니 이런 개인 미술을 접할 접점이 없어 더 멀어지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자주 접하고 자주 눈에 띄어야 별일 아니게 느껴지는데 이런 홍보 부분에서 행정적으로 더 신경 써주시길 바라봅니다. 저희 전시는 언제나 두 팔 벌려 대중들을 환영합니다. 어서 오세요!" 

 시원한 붓질만큼이나 시원한 성격을 가진 곽은지 작가의 이야기에 모두가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글=김수빈기자 usksb@·사진=김동균기자 justgo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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