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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꼭 한번 가보고 싶었던 중국 황산(黃山)의 출사팀이 꾸려져 참가를 했다. 황산 현지의 일기예보를 계속 관찰하며 기온이 가장 추운 시기를 골라 미리 예약한 항공편까지 변경해서 1월 하순 황산으로 향했다. 인천공항에서 출발해 중국 난징(南京) 공항에 도착해 내륙 황산시로 이동해 호텔에서 1박을 했다. 다음 날 운곡사(云谷寺) 케이블카 승강장에서 8인승 케이블카를 타고 백아령(白鵝領, 해발 1,667m)에 올라 황산에 입산을 했다. 이미 많은 눈이 내려 있었고 새로운 눈이 내리고 있었다. 묵직한 카메라 장비를 메고 눈이 쌓인 수많은 계단을 오르내리며 숙소인 사림호텔(獅林大酒店)에 도착해 짐을 내렸다. 산 아래 호텔에 비하면 엄청나게 비싼 숙박료·식대가 부담이지만 사진을 제대로 찍으려면 산속에서의 숙박은 불가피하니 감수해야 했다. 카메라를 메고 눈 내리는 숲 속을 걸으면서 이제까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기적 같은 사진을 찍을 수 있었던 많은 행운을 떠올리며, 그 행운을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기원했다. 

황산은 중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산

중국 안후이성 황산시에 위치한 황산(黃山) 설경. ⓒ이상원
중국 안후이성 황산시에 위치한 황산(黃山) 설경. ⓒ이상원

   황산은 중국인들이 평생에 한번은 꼭 가보고 싶어하는 안후이성(安徽省)에 있는 산이다. 중국 10대 명승지 가운데 산으로선 유일하고, 1990년 12월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과 세계문화유산으로 동시에 등재되었다. 황산을 얘기할 때 흔히 서하객(徐霞客)이라는 명나라 말기의 지리학자의 표현이 인용되곤 한다. 그는 30여 년에 걸쳐 중국을 두루 여행한 후 1,616년과 1,618년 두 차례 황산을 탐방하고 “오악(五岳)을 보고 난 후엔 다른 산이 보이지 않고(五岳歸來 不看山), 황산을 보고 난 후엔 오악조차 보이지 않는다(黃山歸來 不看岳)”고 했다. 중국의 오악은 태산(泰山), 화산(華山), 형산(衡山), 항산(恒山), 숭산(嵩山) 등의 명산이다. “황산을 보기 전엔 천하의 아름다움을 논하지 마라”, “황산을 보기 전에는 산을 보았다고 말하지 마라”라는 말이 황산의 아름다움을 대변하고 있다. 예술과 문학을 통해 끊임없이 찬사를 받아왔고, 오늘날에도 방문객, 문인, 화가, 사진가들을 매혹시키고 있다. 16세기 중엽에 번성한 ‘산수화’ 양식으로 유명하고 서양인들은 황산을 보고 동양화를 이해했다고 한다.

   황산은 면적 154㎢, 둘레 120km로 한라산국립공원의 면적(153㎢)과 비슷하고, 1,000m 넘는 72개의 봉우리와 24개의 계곡이 있다. 1년에 200일 이상 비가 오거나 구름에 가려져 있어 ‘운산(雲山)으로도 불린다. 황산은 원래는 바다였으나 2억 년 전 지각변동으로 화산 활동에 의해 용암이 솟아오르면서 화강암 산으로 바뀌었고, 그 후 오랜 세월 동안 침식과 풍화 작용을 거쳐 기암괴석이 산을 이루었다고 한다. 오늘날 황산에서 볼 수 있는 바다, 그것은 구름바다(雲海)다. 골짜기를 따라 갈라지는 운해(雲海)의 모양을 본 따서 북해(北海), 서해(西海), 동해(東海), 천해(天海), 전해(前海) 등으로 구분하여 부른다. 이 산의 원래 이름은 ‘검은 산’이라는 뜻의 ‘이산(黟山)’이었으나 중국 고대 전설상의 시조 중 하나인 ‘황제(黃帝)’가 이 산에서 온천욕을 하고, 선단(仙壇)을 만들며 신선으로 살았다는 전설에 따라 당나라 현종이 황제(黃帝)의 황(黃) 자를 따서 황산(黃山)으로 부르도록 명하여 이름이 바뀌었다. 

시신봉(始信峰)의 일출

황산 시신봉(始信峰) 일출. ⓒ이상원
황산 시신봉(始信峰) 일출. ⓒ이상원

   사진가들 사이에서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은 어디서든 치열하다. 황산의 일출 명소는 제한되어 있어 더욱 그러하다. 황산은 중국의 남쪽에 위치해서 평소 눈이 그다지 오지 않는데 이번에 많은 눈이 내렸고, 거기에 기온이 급격히 내려가고 날씨까지 맑아 설경과 일출 촬영에 최적의 조건이 아니던가. 새벽 1시에 숙소와 가까운 청량대(淸凉台)와 후자관해(猴子觀海) 전망대에 상황을 파악하러 갔다 온 우리 출사팀의 리더는 이미 그곳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삼각대를 받쳐놓고 기다리고 있어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라고 했다. 그래서 우리 일행은 새벽 1시 50분에 숙소를 나와 시신봉(始信峰 : 해발 1,668m)으로 향했다. 

황산의 하얀 숲길을 걷는 관광객. ⓒ이상원
황산의 하얀 숲길을 걷는 관광객. ⓒ이상원

   눈 쌓인 수많은 계단을 올라 가쁜 숨을 내쉬며 20분만에 시신봉에 도착했다. 거기서도 자리 다툼을 해야 했다. 큰 암석으로 된 봉우리에 삼각대를 세웠다. 보름달에 가까운 달빛을 받고 희미하게 보이는 눈 덮인 나무와 바위의 야경이 새로운 아름다움을 보여 주였다. 일출 예정 시간은 7시 5분! 그때까지 그곳에서 5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별 궤적 사진을 찍는 일! 앞에 있는 기암을 바닥에 깔고, 노출을 맞추고, 30초마다 연속 촬영이 되도록 카메라를 설정하고 하염없이 기다렸다. 간간이 휴대폰으로 야경 촬영을 했다. 

황산 시신봉의 별 궤적. ⓒ이상원
황산 시신봉의 별 궤적. ⓒ이상원
황산 시신봉의 별 궤적과 여명. ⓒ이상원
황산 시신봉의 별 궤적과 여명. ⓒ이상원

   현지 일기 예보로 최저기온은 영하 15도! 산 봉우리 위라 세차게 부는 바람까지 맞아야 해서 체감온도는 더 떨어졌다. 바위 위의 좁은 공간이라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었고, 조금씩 다리와 허리를 움직이며 추위를 견뎌야 했다. 동상에 걸리지 않도록 호주머니 속에 있는 핫팩으로 손가락을 수시로 데웠다. 이날 일행 중 한 사람이 장갑을 벗고 카메라를 만지느라 추위에 노출된 시간이 길어 오른쪽 두 손가락이 제법 심한 동상에 걸렸다. 

   길고도 긴 시간이 지나면서 여명이 밝아오고 일출 시간이 다가오자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 왔다. 그들은 거의가 중국인들이었다. 그들은 미리 가서 기다리지 않고 늦게 도착해서 작은 틈이라도 비집고 들어가서 막무가내로 사진을 찍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나중엔 거의 난장판 수준이어서 카메라 장비를 온전히 지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황산 시신봉 일출. ⓒ이상원
황산 시신봉 일출. ⓒ이상원
눈을 뒤집어 쓴 황산의 기암과 소나무, 운해. ⓒ이상원
눈을 뒤집어 쓴 황산의 기암과 소나무, 운해. ⓒ이상원

   운해 위로 떠오른 해는 찬란했다. 100m에 이르는 협곡의 기암과 눈을 뒤집어 쓴 나무, 눈이 얼어붙은 상고대가 아침 햇살을 받아 빛났다. 수많은 산에서 설경과 일출을 보았지만 이보다 아름다운 풍광을 보지 못했다. 선경(仙境)이 따로 없었다. 강추위 속에서 떨며 고생한 보상을 제대로 받았다. 시신봉(始信峰)이란 이름은 ‘황산의 아름다움에 대한 믿음이 시작되는 봉우리’라는 의미인데, 과연 그 말이 맞는 말이었다. 

황산의 소나무

황산의 기암과 수 백 년 수령의 소나무. ⓒ이상원
황산의 기암과 수 백 년 수령의 소나무. ⓒ이상원

   “시신봉에 오르지 않으면 황산송(黃山松)이 보이지 않는다(不上始信峰 不見黃山松)”는 말이 있다. 실제 시신봉 주변에는 깎아지른 절벽 바위에 뿌리 내린 소나무 군락이 지천이다. 크고 작은 소나무가 눈을 뒤집어쓰고 있으니 바위의 일부분 같았다. 이곳의 소나무는 해발 1,000m가 넘는 곳에서 잎이 짧고 유난히 무성하게 자라 독립된 품종이 되어 ‘황산송’이라 불린다. 황산송은 척박한 환경에서 자라다 보니 3m 자라는데도 수백 년의 세월이 걸릴 만큼 성장 속도가 느리다. 키 작은 소나무도 환갑이 넘었다. 그 끈질긴 생명력이 참으로 경이로웠다. 황산 소나무의 어머니는 바위이고, 운해가 젖이 되어 키운다고 했던가. 

   이 황산송을 보호하기 위해 중국 당국의 노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황산 풍경구에서 70km 떨어진 곳에서 소나무재선충이 발생하자 2001년부터 2003년까지 2년에 걸쳐 황산 주변을 빙 돌아가며 폭 4km, 길이 100km에 이르는 지역의 소나무를 모두 베어내어 무송(無松) 구역 즉 일종의 재선충격리 벨트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는 재선충 매개체인 솔수염하늘소가 태풍 때는 3km까지 비행한다는 점을 감안해 폭 4km 안의 소나무 360만 그루를 모두 베어낸 것이다. 과연 중국다운 발상이고, 황산에 대한 중국인의 애정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길가의 작은 소나무도 그물을 씌워 보호하고 있다. 황산 주변에 대나무를 많이 심은 것도 대나무가 병충해에 강해서 소나무를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황산의 수많은 소나무 중에서 10대 명품 소나무가 있다. 영객송(迎客松), 송객송(送客松), 접인송(接引松), 탐해송(探海松), 수금송(竪琴松), 흑호송(黑虎松), 연리송(連理松), 기린송(麒麟松), 포단송(抱團松), 용조송(龍爪松)이 그 주인공으로 각기 모양과 특색에 따라 이름이 붙여졌다. 그 중 5개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목록에 올라 있다.  

이백(李白)의 전설이 깃든 몽필생화(夢筆生花)!

중국 황산 몽필생화(夢筆生花)와 오지봉(五指峰) ,필가봉(笔架峰)의 설경. ⓒ이상원
황산 몽필생화(夢筆生花)와 오지봉(五指峰) 그리고 필가봉(笔架峰)의 설경. ⓒ이상원

   흑호송에서 청량대 쪽으로 가는 길에 있는 산화오(山花塢)라는 반원형 전망대 앞에서 볼 수 있는 ‘몽필생화(夢筆生花)’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중국의 시선(詩仙)이라 불리는 이백(李白)이 황산에 와서 그 절경을 보고 시흥이 넘쳐 하늘을 우러러보며 큰 소리로 시를 읊었다. 이 소리를 들은 사자림 사찰의 노주지 스님이 그 고장 최고의 곡주를 대접했고, 천하의 애주가인 이백이 노승의 성의에 대한 답례로 시를 한 수 남기고, 술기운에 붓을 허공에 던져 버렸다. 노승이 이백을 배웅하고 고개를 돌려보니 이백이 던진 붓은 봉우리가 되었고, 봉우리의 뾰족한 부분에서는 어느덧 소나무가 되었다’. 그런데 이 소나무가 1970년대 초 죽었는데 당국에서는 그 자리에 플라스틱으로 모조의 소나무를 심었다가 뽑아내고 다시 살아있는 소나무를 심어서 정성껏 돌봐서 지금도 살아있다고 한다. 5개의 손가락처럼 생긴 오지봉(五指峰),  붓꽂이 모양의 필가봉(筆架峰), 강태공이 낚시하는 모양의 강태공조어(姜太公釣魚), 낙타바위(駱駝岩) 등이 나란히 펼쳐져 있다. 사진가 이상원 

이상원 사진가 swl5836@naver.com
이상원 사진가 swl583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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