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황산 최고의 절경, 서해대협곡(西海大峽谷)

오전 촬영을 마치고 호텔에 도착했다. 초췌해진 얼굴을 씻고, 이불 속에 긴 시간 추위에 떨었던 몸을 묻고 잠시 쉬었다. 그리고 점심식사 후 곧바로 촬영을 위해 다시 길을 나섰다. 새벽에 나갈 때부터 함께 촬영을 했던 중형필름 카메라 '노블렉스(NOBLEX) 프로 6/150 E'와 슬라이드 필름 '코닥(KODAK) E100'을 망설이다가 다시 챙겨 넣었다. 몸이 지치니 카메라 배낭은 천근만근이었다. 

독일제 파노라마카메라 '노블렉스(NOBLEX) 프로 6/150 E' 제품 사진(출처 : 온라인 커뮤니티). 이 카메라는 노블 드레스덴사의 아날로그 카메라로 독일 칼 자이스사의 테사(Tessar) 50mm f4.5 렌즈가 장착되었으며 120mm 필름 한 통으로 6장을 촬영할수 있다.
독일제 파노라마카메라 '노블렉스(NOBLEX) 프로 6/150 E' 제품 사진(출처 : 온라인 커뮤니티). 이 카메라는 노블 드레스덴사의 아날로그 카메라로 독일 칼 자이스사의 테사(Tessar) 50mm f4.5 렌즈가 장착되었으며 120mm 중형 필름 한 통으로 6장을 촬영할수 있다.

 

황산에서 두 번째로 높은 봉우리, 광명정(光明頂, 해발 1,860m) 설경. ⓒ이상원
황산에서 두 번째로 높은 봉우리, 광명정(光明頂 : 해발 1,860m) 설경. ⓒ이상원

   백아령 서쪽 광명정(光明頂, 해발 1,860m)에 오르는 길은 가파른 계단의 연속이었다. 광명정은 황산에서 연화봉(蓮花峰, 해발 1,864m) 다음으로 높은 산으로 “광명정에 오르지 않으면 황산의 경치를 보았다고 할 수 없다(不到光明頂 不見黃山景)”는 말이 있을 정도로 황산의 전경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최고의 전망대이다. 일출과 일몰을 동시에 볼 수 있고, 황산의 명물인 비래석(飛來石)과 대표적인 절경인 서해대협곡을 내려다 볼 수 있다.   

황산 서해대협곡(西海大峽谷)의 파노라마 풍경. ⓒ이상원
황산 서해대협곡(西海大峽谷)의 파노라마 풍경. ⓒ이상원

   1979년 76세의 중국 최고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이 황산에 오른 후 그 절경에 탄복하여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누구나 아름다운 황산을 볼 수 있게 하라”고 지시했다. 그 후 21년간 14만여 개 돌계단이 만들어진 후 2001년 서해대협곡이 일반에게 개방되어 방문객들이 대자연의 장대한 풍광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눈 내리고 얼음이 어는 겨울철엔 서해대협곡은 출입이 제한되어 멀리서 보아야 했다. 거기에는 깊은 골짜기의 풍경을 해치지 않으면서 험준한 협곡 사이사이 절벽을 깎고, 바위 사이 좁은 틈 속으로 만든 아찔한 계단들, 거대한 암벽을 뚫어 만든 석굴 통로, 천 길 낭떠러지에 설치한 인공의 절벽 잔도(棧道)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황산의 네 가지 유명한 것 즉 4절(絶)은 기암(奇岩), 기송(奇松), 운해(雲海), 온천(溫泉)을 말하고, 거기에 설경(雪景)을 더하여 5절(絶)이라 부른다. 어떤 이는 돌계단이 황산의 6절(絶)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황산의 계단을 만든 주역인 황산의 짐꾼을 빼놓을 수 있겠는가. 자연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차가 다닐 수 있는 도로를 만들지 않아서 산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공사는 하나하나 사람의 손으로 해야 한다. 건설기계와 현대식 장비를 사용하지 않고, 돌 모래 시멘트 철근 등 모든 자재를 산 아래에서 큰 대나무를 반으로 쪼개 만든 긴 막대의 양쪽에 매달고 올라와 방문객이 편하게 다닐 수 있게 계단을 만들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땀과 인내, 장인의 빼어난 솜씨가 황산의 또 다른 명물인 돌계단을 탄생시킨 것이다. 하기야 그 옛날 진시황 때부터 명나라 때까지 2,0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산 위에 6,350km에 달하는 만리장성을 쌓은 나라가 중국 아니던가. 

비래석(飛來石)

황산의 비래석(飛來石)과 서해의 기암. ⓒ이상원
황산의 비래석(飛來石)과 서해의 기암. ⓒ이상원

   ‘날아온 돌과 같다’고 붙여진 이름 비래석(해발 1,726m)은 높이 12m, 길이 7.5m, 넓이 2m, 무게 600톤의 거대한 바위이다. 광명정과 천해, 서해 등의 위치에서 볼 수 있는 황산 명소중 하나이다. 이 바위에는 ‘그림을 그린 듯 아름다운 경치’라는 의미인 ‘화경(畵景)’이 새겨져 있다. 그 곳에서 서해대협곡을 바라보고, 일행끼리 기념촬영도 했다. 이 바위를 만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기에 나도 쓰다듬으며 소원을 빌었다. 

배운정(排云亭) 

황산 배운정(排雲亭)에서 바라본 서해대협곡의 일몰. ⓒ이상원
황산 배운정(排雲亭)에서 바라본 서해대협곡의 일몰. ⓒ이상원

   서해대협곡을 조망하는데 최적의 장소인 배운정(해발 1,590m)은 보석 진열관이라고도 불린다. 운해가 가장 잘 모인다는 곳이고, 일몰의 명소이다. 여기서도 사람들이 몰려와 자리 다툼이 치열했다. 대협곡을 가운데 두고 석양에 물든 거대한 암봉과 설경·일몰을 촬영하니 어느새 날이 어둑해졌다. 군데군데 켜진 가로등 불빛을 따라 호텔에 도착하니 컴컴한 밤이었다. 

   참으로 길고도 힘든 하루였다. 그래도 또 한번 꿈같은 행운을 만나지 않았는가. 언제 다시 황산에 올 수 있을지, 온다고 해도 이렇게 쾌청한 날 멋진 설경을 볼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겨울에 왔는데도 일주일 내내 비가 와서 호텔에서 한 발자국도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는 다른 출사 팀의 일화도 있을 만큼 황산의 날씨는 예측할 수 없으니 말이다.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선 수많은 요소가 있겠지만 열정과 인고의 시간은 기본적으로 필요하지 않을까. 또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체력일 터. 행운도 준비하고 정성을 다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선물이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하도 고생을 해서 내일은 절대 일출 촬영을 위해 새벽 일찍 나가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면서도 갑자기 뛰어나갈 상황에 대비해 촬영에 필요한 모든 준비를 해놓고 잠자리에 들었다. 

황산에서의 마지막 여정, 후자관해(猴子觀海)

황산의 후자관해 전망대에서 바라본 시신봉(始信峰)의 일출. ⓒ이상원
황산의 후자관해 전망대에서 바라본 시신봉(始信峰)의 일출. ⓒ이상원

   황산에서 3일째, 새벽 5시 30분 일출 촬영을 위해 호텔을 나섰다. 청량대(淸凉台)는 미리 온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었고, 그 위쪽 후자관해 전망대도 사람들이 이미 자리 잡고 있었다. 황산에 여러 번 온 경험이 있어 촬영 포인트를 잘 아는 룸메이트의 안내로 후자관해 전망대 앞에 있는 구석진 장소에 갔다. 그곳은 바위가 비탈지긴 했으나 의외로 전망도 좋았고, 사람들도 없었다. 전날보다 기온이 오른데다 뒤에 있는 큰 바위가 바람을 막아주어 춥지 않아 좋았다. 마침내 시신봉 위로 일출이 보였다. 솔잎 위의 잔설과 여러 봉우리의 기암, 동해의 얕은 구름과 일출이 어우러져 새로운 멋을 보여 주었다. 골짜기에 채워진 운해를 기대했으나 아쉽게도 운해는 없었다. 대자연 앞에 인간이 욕심을 부린다고 모두 채워지겠는가. 햇살을 받으니 눈이 조금씩 녹기 시작했다. 

황산의 후자관해(원숭이 바위)의 아침 풍경. ⓒ이상원
황산의 후자관해(원숭이 바위)의 아침 풍경. ⓒ이상원

   첫날 왔을 때 내리는 눈 때문에 전혀 보지 못한 후자관해(猴子觀海)에서 마지막 촬영을 했다. 사자봉 앞에 있는 ‘원숭이가 운해를 바라보는 듯한 형상’의 바위이다. ‘변신술에 능한 원숭이가 인간으로 변신해 좋아하는 여인과 결혼을 하려다가 정체가 드러나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이 바위에 앉아서 그 여인을 그리워하다가 돌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추위 속에서 그리움으로 밤을 새고, 아침 햇살을 받은 원숭이 바위가 애잔하게 보였다. 

황산의 기암과 운해, 설경. ⓒ이상원
황산의 기암과 운해, 설경. ⓒ이상원

   한번 와서 보고 어찌 황산을 보았다고 얘기할 수 있으랴. 미처 보지 못한 황산의 수많은 명소가 있고, 계절마다 달리지는 황산의 비경이 있지 않은가. 여운을 간직한 채 아침식사 후 삼청산 출사를 위해 서둘러 하산을 했다. 산 속엔 벌써 아침 일찍 온 많은 방문객들이 가득했다. 특히 학생들이 많았다. 겨울 비수기인데도 주말엔 이미 하루 방문객 제한인원 3만 명의 예약이 다 채워졌다고 했다. 이제 황산은 관광객의 증가로 어느 계절이든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게 다반사가 되었다.  

   황산의 겨울 풍경을 만끽하며 촬영을 해서 큰 숙제를 하나를 끝낸 것 같아 개운하다. 황산을 보고 나니 이제 다른 산은 눈에 들어오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쓸데없는 걱정이 생겼다. 

   내 안에서 ‘나이를 생각해서 몸을 아껴야 한다’는 목소리와 ‘더 늦기 전에 하고 싶은 일에 계속 도전해야 한다’는 또 다른 목소리가 부딪히고 있다. 여전히 그 선택이 쉽지 않다. 

   뭐니 뭐니 해도 사진과 함께 해온 나의 삶은 행복했다. 사진가 이상원

이상원 사진가 swl5836@naver.com
이상원 사진가 swl5836@naver.com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