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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순태 울산작가회의 회장·시인
도순태 울산작가회의 회장·시인

사람과의 만남에서 유독 정이 많은 사람이 있다. 작은 것에도 상대가 미안할 정도로 따뜻한 눈빛으로 무엇이든 그 이상 정을 담아 표현하는 사람, 부담스러울 때도 있지만 마주하고 있음 그냥 기분이 좋아질 때가 많다. 마음 한쪽에 솜사탕 같은 감미롭고 부드러운 덩어리들이 돌아다니는 것 같기도 하고. 

 

 다정에 감염되다

 이대흠

 다정에게는 내가 나를 어쩌지 못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병아리 털처럼 순하고 병아리 눈동자처럼 동그랗습니다 정은 손을 내밀고 다정을 담은 그릇에는 모서리가 없습니다 다정에는 가시가 많습니다만 너무 많은 가시에서는 가시를 느낄 수 없습니다

 언뜻 본 다정은 안경 닦이 같습니다 어떤 다정은 너무 커서 다정의 날카로운 발톱이 흙 언덕으로 보입니다 여력이 있다면 한평의 땅을 사는 것보다는 다정을 구입하는 게 낫습니다 다정은 소모되지 않고 늘릴 수 있으니까요

 주의 사항은 있습니다

 유통기한은 없습니다만 쉽게 흘릴 수 있습니다 다정을 과자 봉지에 넣는 방법을 개발 할 수 있다면 놀라울 것입니다 한봉지의 다정을 담아 건네면서 달의 이마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요

 나는 다정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중독은 아니고요 감염된 건 분명합니다

 내게는 갓 낳은 달걀 같은 다정이 또 생겼습니다 사랑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병의 씨앗입니다 여전히 남아 있는 다정을 당신께 드립니다

 당신의 다정이 싹틀 때가 오면 풀잎들처럼 나란히 앉아 봄을 낭비합시다 

 

 시인의 다정은 힘이 있고 순하고 모서리가 없고 가시는 있지만 가시를 느낄 수 없는 다정이다. 어쩜 그럴지도 모른다. 정이란 많을수록 믿음도 생기고 이해의 폭도 넓어지기 때문에 사람과의 관계를 견고하게 하고 지루하지 않게 기다리게 하는 윤활유가 되는 것은 아닐까. 

 '언뜻 본 다정은 안경닦이 같습니다'로 다정은 무한한 사랑을 볼 수 있음을 일러준다. 놓치고 있었던 아니면, 보이지 않았던 것을 볼 수 있게 하는 맑은 마음을 가지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다정은 소모되지 않고 쌓이고 모여서 마음은 풍요로워지는 것이다. 그래서 다정은 어느 재산보다 값진 것이다. 다만 다정을 나눌 수 있을 때.

 시인은 기발한 생각을 한다. '다정을 과자 봉지에 넣는 방법'으로 다정을 쉽게 흘리지도 넘치지도 않게 건네는 것을 고안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정이란 것이 어떤 그릇에 담아서 건넬 수 있는 것이 될까? 담을 수 없는 것이 마음인데 그 마음 안에 다정이 늘 움직이고 작은 바람에도 떠다니는 것이라 가만히 제자리에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어디까지 그리고 언제쯤이라 정해지지 않는 유통기한 없는 것이기에 주의 사항이 필요한 것임은 분명하다.

 '나는 다정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중독은 아니고요 감염된 건 분명합니다' 라 하니 시인의 다정은 매일 퐁퐁 솟아나나 보다. 다정이 너무 많아 서서히 젖어 기침 같은 표현도 하나 보다. 그리고 다정에 의해 온몸 뜨거워져 한동안 열 앓이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 중독보다 더 생생한 경험이 오래 시인을 앓게 할 것 같기도.

 시인의 다정은 참 다양한 감각으로 오기도 한다. '갓 낳은 달걀 같은 다정'이 생기면 어떨까? 만지기도 아까운 그리고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따뜻한 다정은 처음처럼 신선한 사랑일 것이다. 오래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이미 다정은 봄빛이 출렁이는 연두의 부드러움과 순함이 함께 할 것이다. 어찌 그 마음이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일찍이 이조년의'이화에 월백하고'의 시조에서 '다정도 병인양 하노라' 했거늘. 시인은 주체할 수 없는 많은 다정을 나누게 되는지 모른다. 아프지 않으려고. 

 그 다정도 혼자는 외로울 것이다. 꽃그늘이 산천 여기저기 자리를 잡을 때 같이 다정을 서로 교환할 수 있는 봄을 기다리는 시인. 이름도 다 읽을 수 없는 꽃들을 보고 무성한 초록잎들이 물고기 떼처럼 이리저리 일렁이는 아래를 걷고, 며칠을 하루 같이 보내도 모자라는 봄이고 싶은 것이다.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2월 끝자락의 청매의 꽃망울, 꽃이 열리기 시작하면 몇 날 며칠을 봄을 낭비해도 좋겠다.

※ 이대흠 시인은 1994년『창작과 비평』에'제암산을 본다'외 6편의 시를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눈물 속에는 고래가 산다』『상처가 나를 살린다』『물속의 봄』 『귀가 서럽다』『당신은 북천에서 온 사람』『코끼리가 쏟아진다』가 있다. 조태일문학상, 현대시동인상, 에지문학상, 육사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도순태 울산작가회의 회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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