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0월, 일본 구마모토성에서 '한일 우정의 콘서트'가 열렸다. 현지 무궁화 모임 회원과 주민 수천 명이 함께했다. 2010년 4월 26일 울산시와 구마모토시는 400여 년의 구원을 넘어 우호 협력 도시 약정을 체결했다. 아직도 일본은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인식이 남아 있다. 특히 구마모토는 울산 사람들이 포로로 잡혀간 원수의 땅이며 임진 전쟁의 선봉장이자 울산에 큰 상흔과 악몽을 남긴 가토 기요마사의 영지로 그를 영웅시하는 곳이다. 지금도 울산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는데 구마모토성(城) 축성에 동원된 노동력과 기술자들
1928년 4월 15일. 착공 1년 만에 울산 최초의 공원이 준공됐다. 지금의 학성공원이다. 울산시 중구 학성동 100번지 일원. 개원 당시 면적은 7,000여 평, 공사비는 5,700원이 들었다고 한다. 부지의 절반은 김택천(거부 김홍조 아들)이 기부한 사유지였다. 학성공원은 1980년대까지 도심에서 가장 가까운 벚꽃 명소이자 유일한 시민공원이었다. 신라 때 쌍학이 내려왔다는 설화에서 신학성 또는 학성이라 불렀고 산 모양이 섬인 듯 해서 도산(島山)이거나 시루를 엎은 것 같아 시루성(증성 甑城)이라고 했다. 임진·정유재란 때 가토
"울산의 '3·1만세운동'은 4월에 있었다."라고 하면 많은 이들이 "뜬금없이 왜 4월이냐?"는 반응을 보인다. 울산에서도 1919년 독립만세운동을 치열하게 벌이며 일제에 저항했다. 적지 않은 울산 사람들이 목숨 걸고 만세운동에 뛰어들었다. 울산의 3대 만세운동은 언양과 병영, 남창 의거이다. 언양은 4월 2일, 병영 의거는 4월 4과 5일 이틀이었고 그리고 남창은 4월 8일에 거사했다. 병영은 서울 유학생들이 고향에 돌아와 주도했고 언양은 천도교, 남창은 학성 이씨 문중이 중심이었다. 서울 등에선 1919년 3월 1일 독립만세운동
남녀가 일심동체가 되는 혼인은 음양의 합이자 완전함을 이루는 것이고 만복의 근원이다. 그 부부가 하나 되는 것이 가화만사성의 시작이고 해로하는 것이 인생의 목표 중 하나이다. '슬픔은 짧았고 기쁨은 길었네' '달 속의 항아가 다계 마을의 즐거움을 안다면 닷새 밤낮을 함께 해도 좋으리' 2012년 11월 울산에서 처음 확인된 언양 '회근록'에 실린 축시 중 일부이다. '회근록, 癸亥 二月 二十 七日' 언양 평리(괴말) 안동 권씨 집안에서 보관한 필사본 문집의 표지 제목이다. 혼인 60주년을 맞아 연 회혼식에서 낭독하고 남긴 축시(7언
1974년 7월, 나라 전체가 '마이카 시대'란 기대에 잔뜩 부풀었다. 승용차 1대를 내건 5주간의 공모전에서 최종적으로 선택된 자동차 이름이 '포니(pony)'다. 그리고 1976년 2월 포니가 처음 출시되면서 한국은 세계 16번째 고유 모델 자동차 보유국이 되었다. “무슨 놈의 차가 꽁지 빠진 닭처럼 생겼어?" 정주영 회장은 썩 달가워하지 않았다지만 이후 미국, 캐나다, 아프리카로 많이 수출했다. 1980년대 사회에 나온 베이비붐 세대들은 생애 최초의 '애마'를 대부분 포니로 결정했다. 60개월 할부 대열에 겁 없이 동참하고는
어릴 적 고향 곳곳에 많은 신들이 있었다. 특히 동짓날부터 음력 2월까지는 신들의 시간이었다. 대부분 '여신'이었다. 남녀를 결합하는 항아(姮娥)는 하늘나라의 선녀였고 아이를 점지해 준 삼신할매나 마을의 안녕을 지키는 당산할매(골맥이할매), 성안 숯못에서 동방삭을 잡아챈 마고할매와 부엌에 있던 조왕신 등 모두가 여신 아니면 할매였다. 참새미나 미륵, 장승과 산신각에도 여신이 있었는데 모두 무섭거나 두려운 신이 아니라 그냥 응석 부리고픈 만만한 할매들이었다. 할매신 또는 여신들은 자신만의 고유한 시간에 맞춰 특정 공간에 모습을 드러냈
김밥, 삶은 달걀 그리고 사이다. 유년 시절 '행복한 추억'으로 기억되는 단어들이다. 그중에 사이다는 단순히 음료를 넘어 특별한 날의 상징이었다. 단단한 뚜껑을 이로 악물어 따 마시는 순간, 톡 쏘는 탄산 맛에 정신이 번쩍 들었던 '오복사이다'였다. 병목 둘레에 파인 홈에 녹이 굳어 있었고 톡 쏘는 맛에 속은 시원했지만, 침전물이 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비단에 수를 놓은 듯 아름다운 산천, 삼천리 금수강산에 물은 또 얼마나 좋았을까. 울산의 초정약수와 산전샘, 오봉사나 지장 물탕 그리고 강원도 오색약수, 청송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울산엔 농경사회의 풍속과 유례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 그중에 음력 설날부터 2월 초하루까지의 세시풍속은 종류도 다양하고 보기에도 놀기에도 참 좋았다. 정월 대보름은 한해의 첫 보름달이 뜨는 날이고 보름달은 풍요와 부, 다산의 상징이었다. 이날 벌이는 세시풍속의 하이라이트는 지신밟기였다. '매구친다, 걸립논다'라고 불렀다. 포수를 앞세우고 다양한 오방색 종이꽃으로 치장한 걸립패가 온동네 집집마다 구석구석 지신을 밟으면 주인은 복채와 술로 답례했다. 1988년 초 이유수 선생이 사본을 공개했다
역사를 뒤바꾼 사건이나 역사와 관련된 장소가 있다. 역사적 사건이나 내용, 주역 인물은 익히 알고 있는 사람도 역사적 장소에 대한 기억은 중히 여기지 않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그렇게 잊힌 울산의 지명 중에 이 있다. 기록상으로 보면 울산의 저항정신은 초전의 효심의 난에서 시작된다. 1987년 6월 항쟁이나 노동자 대투쟁, 나아가 일제강점기 때 민족적 항쟁이나 1862년 또는 1875년 을해민란 등의 뿌리라 할 수도 있겠다.초전(草田)은 1193년 7월의 고려 무인 정권 시기 많은 민란 가운데 규모가 크고 세력이 막강했던
울산 출신의 세계적 무용가. 한국 현대무용의 맹아. 일본에서 활동을 시작해 독일 헝가리 등 유럽과 미국은 물론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남미에서 먼저 알아주고 찬사를 받았지만 고향이나 우리 무용사엔 논의의 대상에서 빠져 있다. 최승희 조택원과 함께 '우리 민족의 자랑스런 3대 거장(1939.1.4. 동아일보)'으로 유럽 무대를 휩쓴 무용가라고 칭송받던 그는 박영인이다. 박영인(朴永仁, 1908年~2007年)은 일본에 가면서 고향과 가족, 고국을 지우고 일본을 선택했다. 일본에서 태어난 일본인으로 자처하며 귀화했다. 그는 “일본 쇼난(
"1옥타브 이상의 고음은 치유의 음이자 신비한 소리, 영혼의 소리다" "해녀들의 숨비소리와 유사하다. 높은 주파수에 가냘프며 신비한 소리는 곧 고래의 소리이고 해녀의 숨비소리이다" 돌피리 소리를 처음 들은 사람들은 한결같이 신기하다는 반응과 공명을 얘기했다.2015년 5월 27일, 울산대 고래문화 세미나장에 반구대암각화의 가 나타났다. 암전된 객석 맨 끝에서 핀 조명을 받으며 '돌피리'를 부는 남자가 무대로 걸어 나갔다. 시카고에서 온 김성규 선생이다. 객석에선 또 한 사람이 돌피리 이중주를 선보였다. 수백만년 전
'박정희 대통령의 반려견 스케치, 노태우 대통령의 퉁소와 김영삼 대통령의 조깅화, 김대중 대통령의 원예 가위와 노무현 대통령의 개량 독서대, 이명박 대통령의 자전거 헬멧…'모두 우리 현대사를 관통했던 역대 대통령의 소품들이다. 대통령의 물건은 시대와 주인의 성정, 취미를 알게 해 준다. 대통령의 상징물이자 현대사의 한 자락이 되는 단초를 제공하기도 한다.울산에도 '대통령의 물건'이 있었다. 지금은 사라졌다. 2002년 6월까지는 울산시청(구관) 시장실 입구 복도에 걸려 있었다. 이름하여 '대통령의 삽'이다.어느 날 시청의 대통령의
유리 상자 안 빛을 받으며 서 있는 한 여인이 있다. 한손에 쥐어도 될 작은 몸체에 잘룩한 허리와 풍성한 엉덩이를 가진 신석기 시대의 여인이다. 그날 국립중앙박물관 전시실에서 본 수많은 유물 가운데 가장 반가운 대상이었다. 여인의 이름은 '신암리 여인상'이다. 흔히 신암리 비너스라고 부른다. 비너스는 로마 신화에 나오는 미와 사랑의 여신이다. 그리스 신화의 아프로디테, 태양계의 두 번째 행성인 금성을 일컫는 단어이기도 하다. 밀로의 비너스상 이래 서양인의 미의 기준은 언제나 비너스였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비너스상은 독일 빌렌도르
역사를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계사적 보편성과 지역적 특수성'을 균형 있게 파악해야만 한다. 모든 민족의 역사에는 보편성과 특수성이 함께 존재하기 때문이다. 울산역사도 마찬가지다. 한국사 속의 보편성과 울산만의 특수성을 동시에 살필 줄 알아야 한다. 아직도 성행하는 향토사에 대한 왜곡과 찬양, 과잉된 애향심 발로나 최초 최고 최상 유일이란 단어를 남발하고 자타칭 '향토사학자' 내지 '역사전문가'라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이지 지긋지긋하다 못해 울산의 인문학 풍토가 적이 염려되기도 한다. '울산 지역사'는 소설이나 픽션이 아니다.
뉴스가 역사다. 시사가 곧 역사가 된다. 그러니 매일 기사를 쓰는 기자는 왕조시대의 사관이나 승정원일기를 쓴 주서(注書)라는 정7품 국정기록비서관과 다름이 없다. 승정원일기는 세계기록유산이자 국보 제303호이다. 조선왕조를 대표하는 기록유산이자 조선왕조실록과 함께 조선사 연구자들이 꼭 봐야 하는 기록물이다. 대략 2억 4,250만 자라는 방대한 분량이다. 조선왕조실록 역시 1,893권 888책으로 조선 태조 때부터 철종 때까지 25대 427년간의 역사적 사실을 연대순으로 적은 역사책이다. 둘 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니 인류 전체의
거대담론이나 정치와 같이 심각하고 큰 사건만이 역사가 아니다. 소소한 일들이나 인물들도 역사의 주인이 되는 시대다. 신석기시대의 그림쟁이부터 울산공단 수립의 주역들, 임란 때 의병장이 된 울산의 천한 노비, 반구대암각화 속의 무당이나 천전리 각석의 중, 무룡산 아래 고래 논의 주인공인 평범한 어부에 이르기까지 울산 역사 속의 소소하지만 시시하지 않은 얘기들을 밝히고 알리고자 한다. 당시에는 주목받지 못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뒤늦게 조명받는 인물이나 이미 알려진 일도 시대에 따라 변한다. 새해에 뜨는 해는 어제의 해, 작년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