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 책상 위의 신문 더미입니다.하루에 한 부씩 차곡차곡 쌓인 것들이 훌쩍 키를 넘었습니다.뉴스의 가치는 예전에 사라지고 지금은 기록의 편린으로 남았지만,지난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있어 쉽사리 버리지 못했습니다.인터넷 클릭 몇 번만으로 더 빨리, 더 많이 뉴스를 볼 수 있는 시절이지만,그래도 아침마다 잉크냄새 풍기는 지면을 넘기는 그 맛 이상일 수는 없습니
지난 주말 간절곶 해안의 풍경입니다.어느 순간 파란 하늘이 농밀한 해무 뒤로 사라졌습니다.스멀스멀 안개의 입자들은 해안선을 지우고 등대를 지우며 뭍으로 상륙했습니다.세상은 색을 잃고 뿌연 형체로 남았습니다.짙은 해무는 잠시 시야를 가렸고,뜨거웠던 대지는 금세 싸늘하게 식었습니다.머리 위로 갈매기 두 마리 정물처럼 날았습니다.해무에 갇힌 바다는 열리지 않았지
남구 달동 한 공사장에 뿌리내린 포도입니다.언제 어떻게 이 척박한 땅에 견고한 삶의 뿌리를 내렸는지 알 수 없지만장기간 공사가 중단된 덕분에 아직 그 생명을 이어가고 있는 듯합니다.담장 안에 터를 잡은 포도나무는 이제 훌쩍 키를 키워담장 너머까지 그 시야를 넓혔습니다.무성한 잎 사이로 아직 여물지 않은 포도송이가 아기자기합니다.군데군데 병이 옮아 미처 영글
어릴 적 고향 집 처마에서 떨어지던 장마 끝자락의 그 톡톡 거리는 빗소리가 생각납니다. 기왓골을 따라 흐르던 비가 스타카토처럼 흙 마당에 홈을 패곤 했습니다. 마당엔 길게 사행천 마냥 골이 생겼고 담벼락 아래 풀밭엔 생기가 가득했습니다. 옅어진 비가 방울방울 떨어지며 패인 구멍 속에서 리듬으로 퐁퐁거렸습니다. 구름 사이로 햇살이 비치면 옆집 계집아이 놀러
밀양호에 핀 금계국입니다.길가에 지천으로 핀 흔한 꽃입니다.원산지가 미주대륙이라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쉽게 적응했습니다.척박한 땅에서도 물만 잘 빠지면 뿌리내리는 강인한 생명력을 자랑합니다. 금계국의 꽃말은 '상쾌한 기분'입니다.파란 하늘과 어울린 노란 금계국을 보면한적한 시골 길을 바람처럼 떠나고 싶은 그런 끌림을 자아냅니다. 금계국은 또 여러 번 덖음을
테트라포드 하나씩 차지하고 앉은 북구 우가포항 갈매기의 망중한입니다.금세 날아오르고 하늘을 배회하며 먹이를 찾는 다른 갈매기들과 달리 이 세 놈은 한동안 약속이라도한 듯 정물처럼 앉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힘찬 날갯짓의 비상은 테트라포드에 공허함만 남겼습니다. 이 세상 무엇이든, 어떤 일이든한동안 함께하다보면 제 것이란 착각이 들곤 합니다.잠시 머
사진파일을 정리하다 우연히 발견한 몇 해 전 부산 영화의 전당입니다.당시 취재의도와 상관없이 찍은 사진이라 기억 속에서 사라졌고,숫자와 영문으로 된 수많은 파일의 하나로 남아 있었습니다. 책갈피 속 잊어버렸던 비상금을 발견한 것처럼 이런 의도하지 않은 그림이 주는 행복이 있습니다. 사진의 구도와 빛, 그리고 피사체가 주는 느낌이 좋은 게 아니라이 사진에서
밀양 표충사 우화루 마룻바닥입니다. 엇갈린 판재들의 무늬가 어느 것 하나 같은 것이 없습니다. 가로와 세로로 켜는 모양새에 따라 달라지는 나무의 나이테에는 어느 해에 가뭄이 들었는지, 어느 해에 많이 자랐는지 일생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그 섬세한 결은 오랜 시간을 건너오면서 많이 무디어졌지만, 여전히 선명합니다.맨발로 올라보면 나무 특유의 질감이 정갈하게
울주군 언양의 한 농가 처마 밑 풍경입니다.얼마 만에 보는 제비입니까.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온다던'말이 실감 났습니다. 먹이를 찾아 땅 위를 스치듯 날며 급강하와 급선회를 반복하는 경쾌함은 발랄, 그 자체였습니다. 암수 교대로 둥지에 앉아 있는 모습이 알을 품고 있는 듯합니다. 얼마 후면 새빨간 주둥이를 벌리며 먹이를 받아먹는 새끼들이 알을 깨고 나
지난 17일 부처님 오신 날, 경주 남산 초입의 그림입니다.남산은 150여곳의 절과 100여기의 탑, 130여구의 불상이 남아있는 신라의 불국토였습니다. 정갈한 길을 따라 할머니와 손녀가 부처를 만나러 갑니다.돌들이 가지런히 깔린 길에서 손녀는 징검다리 건너듯 폴짝폴짝 즐겁습니다. 누구나 깨달으면 부처가 될 수 있다했지만,부처가 될 수 없는 평범한 삶들은
13일 한낮 울산시청 옆의 풍경입니다.계절은 초여름인데 기온은 한여름이었습니다.울주군 삼동면은 35.7도까지 치솟았다는 소리까지 들렸습니다.그 작열하는 뙤약볕 아래서 전국건설기계노조의 집회가 있었습니다.레미콘노조를 응원하는 2차 징검다리 파업이었습니다.사측의 침묵에 그들은 항의의 핏대를 올렸고 투쟁가로 협상을 촉구했습니다.그 뜨거운 열기 속으로 작은 커피
경북 양남 바닷가의 휴일 풍경입니다.봄햇살이 꽃가루처럼 가는 아침에박제되어 가는 가자미의 시간들이 또렷합니다. 무리지어 한살이를 살던 가족들이고스란히 인간의 식탁 위로 향하는 시간은아무리 꾸며도 욕망의 편린일 뿐이지만가자미는 아무렇지 않은듯 가끔 몸을 뒤척입니다. 만장처럼 화려한 집게가 눈길을 사로잡습니다.입맛없는 이른 등굣길 아이들의 배를 채워줄 조림으로다시 태어날 생의 마지막이 찬란합니다.의도하지 않은 아낙의 배려가 곱습니다. 잠시 머문 5월 오후의 바닷가,미물인 물고기마저죽어서도 입맛으로 되살아날 생으로 환한데사람은 부모님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