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짜기마다 수수가 붉게 익는 가을날, 산길 따라가는 영월 여행의 맛은 향기롭고 달았다. 변덕스런 이상 기후에도 맺힌 데 없이 자연은 곱게 물들어가고, 비탈밭은 어느 암자에서 본 이불 모서리처럼 둥글고 푸근해 끝없이 말을 걸어 본다. 이처럼 강원도의 고졸한 기운은 범상치 않아 기대감으로 마음이 설레었다. 영월은 소나무가 참 좋은 고장이다. 키가 크고 청정한 나무가 뿜어내는 기운은 대체할 수 있는 게 없을 듯했다. 여행자가 현장에 섰을 때만이 경험할 수 있는 고유한 느낌이다. 그 기운은 마치 밝고 환한 이상 세계로 초대를 받은 듯한 착
최근 주변 사람이 누구와 실랑이하는 과정에서 감정이 격해져 말이 날카로운 무기가 되는 것을 보았다. 그런 일이 있고 난 후로 그 사람을 보면 내 입은 요지부동이다. 인사도 나오지 않는다. 본래 관대하거나 대범한 사람은 아니지만 나와 직접 관련 없는 일에 입이 말을 듣지 않아 당황스럽고 난처하다. 난감함 속에 며칠을 지내면서 말 부리는 일에 미숙한 나를 생각하자니 인품도 훌륭하고, 말까지 잘하는 사람이 새삼 부럽다. 그런 사람의 입은 주인과 호흡이 얼마나 잘 맞겠는가. 그와 반대로 주인이 허당끼까지 있으면 입도 나긋하기가 쉽지 않다.
정원 아래에 이웃의 고사리 농장이 있다. 일반적인 농작물과는 달리 이른 봄에 새순을 거두고, 지각한 순들은 남아서 녹색의 여름 들판을 만든다. 고사리가 텃밭머리 쪽 빈터로 넘어오기 시작한 것은 삼 년 전부터다. 처음에는 눈치채지 못한 채 늙어버린 몇 포기를 보고서 그들의 이동이 시작된 것을 알았다. 이듬해는 실하게 열 포기 정도 올라와 산초잎과 달래를 함께 넣고 된장찌개를 끓였다. 성찬의 고명이 되어 봄날 향기로운 저녁 식사의 추억을 선물해 주었다. 뜻하지 않게 상수리나무 아래 한 평 정도의 고사리밭을 갖게 된 나는 경사지에 돌계단
자신이 멋지다는 생각을 가끔 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다. 자존감 지수가 사정없이 올라가는 날이다. 그런 날은 나무와 꽃 색이 다르게 보인다. 일상이 투명하고 경쾌하게 다가와 그냥 신이 난다.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근사한 소우주로 보여 경배하고 싶다. 며칠 전 오랜만에 단골손님이 가게에 들렀다. 아이가 셋이나 되는 워킹맘이라 늘 바쁜 사람이라는 게 말하지 않아도 훤히 보여 그녀가 오면 내가 먼저 서두르게 된다. 올해 막내까지 학교에 들어갔다고 하더니 모처럼 여유가 있는지 이번에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청바지와 티셔츠에
두 해 가까이 고객의 눈치를 살피며 지내고 있다. 눈만 내놓고 사는 세상이 되어 눈썰미가 없는 나에게는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다. 어지간히 친밀한 사이가 아니고 가끔 만나는 사람이라면 단박에 알아보기는 쉽지 않다. 그것도 여러 사람이 동시에 다가올 때는 상대방의 특징을 찾는 일에 집중할 수 없어 더욱 곤란을 겪는다.'마스크 여사' 두 분이 왔다. 전에도 우리 가게를 찾은 적이 있는 듯한 분위기다. 하지만 얼굴 가리개에 가려 겨우 드러난 두 눈과 이마만으로는 짐작조차 할 수가 없었다. 음성만으로 상대를 알아야 하는 상황
초가을 밤에 재킷 한 장 걸치고 마을 길을 나선다. 어둠 속에 존재하는 빛이 어둠을 더욱 강조한다. 벌레들의 사랑가에서 배어나는 간절함의 농도가 걸쭉하다. 하룻밤의 인연을 찾으려는 노래가 풀숲이나 계곡, 습지와 돌 밑에서 뭉글뭉글 밀려 나오고 있다. 마을 끝자락에 이르자 올봄 홀아비가 된 남자의 집에는 거실에 불을 켜둔 채 자동차만이 밖에 덩그러니 있다. 나는 가던 길을 더 가지 못하고 돌아서 걷는다. 홀로된 남자의 외로움이 전염될까 두려워서인지도 모르겠다. 모든 생명체가 겪는 혼자만의 길을 그 남자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걷고 있다
일 년 전 태풍 '마이삭'이 지나가던 날 자정의 굉음을 잊을 수 없다. 그 전해에 경주 지진의 공포를 경험한 탓인지 이번에는 아예 집이 두 동강 나는 줄 알고, 서재에 있던 나는 몸이 굳어져 미동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바람만 세차게 불 뿐 집에는 별다른 이상이 없는 듯했다.날이 밝을 무렵 정원에 나가보았더니 북쪽에 있던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쓰러져 있었다. 직경이 58센티미터나 되는 거목의 밑동이 싹둑 자른 듯이 부러져 있었다. 집이 아니라 느티나무가 넘어진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 할 수도 있지만 사람의
들꽃 한 다발을 아침 식탁에 올렸다. 세상의 색을 모두 모아 식사를 마련한 듯 밝고 따듯하다. 커튼을 걷자 곱고 얇은 햇살이 보글거리는 된장 뚝배기에 내려앉는다. 맑은 얼굴에 주름살이 늘어가는 마주 앉은 남자가 반가워할 상차림인 듯싶다. 우리 부부가 한 달에 두 번 가질 수 있는 여유롭고, 귀한 시간이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일 중독자처럼 쉬는 날이면 오히려 일을 더 많이 하느라 주변의 변화에 눈길조차 주지 못하고 하루를 소진했다. 최근엔 좀 느긋해졌다. 풀을 뽑다가도 새로운 녀석을 만나면 인사가 길어지고, 기념촬영도 잊지 않는다
동산의 등성이에 차오르는 아침 기운이 서재 안으로 들어와 나에게 스민다. 이런 순간을 느껴본 지가 오래전 일 같다. 힘이 넘치는 듯한 능선의 모습은 산이 맞고 보낸 서사의 형상이다. 오늘 아침에서야 그 곡절에 마음을 기울인다. 코로나19 때문에 어부지리로 얻은 사흘간의 완벽한 여유 덕분이다. 오르락내리락하는 산행으로 숨이 찬 시간을 사람들은 험한 길 탓이라며 편한 길을 찾아 걷기도 하지만 난삽하고 거친 능선의 매력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다. 등산을 즐기지 않지만 고된 산타기를 선호하는 사람들을 조금은 이해할 것 같다. 산과 사람의 행
추석 연휴가 예년보다 길다. 모처럼 휴일이 주는 여유로움에 따끈따끈한 햇살을 받으며 걷고 싶었다. 얼마간의 경사도가 있는 산책로를 따라 걷자니 호사도 이런 호사가 없다. 주변의 자연경관이 나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 같다. 한참 걸으니 콧등에 송글송글 땀방울이 솟는다. 얼마만의 일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요즘 사회 분위기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식민국가처럼 느껴진다. 그가 대장인 것만 같다. 호랑이보다 무서운 곶감이다. 하지만 내 생각엔 역시 사람이 대장이고, 곶감이다. 그 무섭다는 바이러스 속을 뚫고 추석 연휴를 맞아 모두 떠
더디게 올라오던 봄이 우수를 지나자 개난초 잎을 쑥 밀어 올리며 초록 미소를 짓습니다. 무채색의 겨울 한철을 보내느라 우울하던 차에 반갑기 그지없습니다. 십여 년을 한 곳에 모여 살더니 식구가 많이도 늘었습니다. 화초는 대개 꽃을 보기 위해 심는 경우가 많지요. 하지만 개난초는 꽃도 좋지만 이른 봄의 빈 뜰에 대지의 녹색기운을 듬뿍 머금고 힘차게 올라와 봄을 치는 모습이 매력적입니다. 마침 봄철인데다 이사하기 좋은 날씨라 미룰 것 없이 새 터를 정하고 옮겨심기를 합니다. 어느새 보라색 아이리스도 묵은 잎 사이로 녹색기운이 번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