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 무더운 날씨다. 누가 말을 걸지 않아도 짜증이 날 만한 날씨다. 부축을 받아야 운신하시는 어머님은 오늘도 소파에 누워 가만 계시질 않는다. 몇 분 간격으로 에어컨 켜라. 꺼라 선풍기 켜라 꺼라 하시며 "얘야"를 불러 젖힌다. 그것까지는 괜찮다. "화장실 불은 왜 끄지 않니, 사람도 없는 방에 왜 선풍기가 돌아간다니, 젊은 사람이 왜 저럴꼬 끌끌." 그놈의 왜, 왜, 왜…. 노모의 지청구는 결국 나의 건망증으로 귀결된다.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속에선 '좀 켜 놓으면 어때서'라는 볼멘소리를 내지른다. 저 연세에 기
이런저런 연유로 해서 새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30년 정든 집을 떠나 새 거처로 옮기는 일은 무척 성가셨다. 이사한 동네는 모든 게 낯설었다. 이삿짐은 몇 날 며칠을 정리해도 끝이 없었다. 경황없는 동안 아파트 위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저녁 퇴근길에 입구를 잘못 들어 한참을 헤매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마침 폭우까지 쏟아져서 더 방향 감각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하는 수 없이 남편을 불러내어 에스코트를 부탁했다. 어이없다는 남편의 실소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마나님이 타고난 길치라는 걸 여태껏 몰랐단 말인가. 부산함을 잠재운 후,
내가 편해지기 위해서라도 그를 용서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쉽지 않았다. 머리로는 다 털어낸 미움이 가슴에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미혹의 덫에 걸려 허우적대는 나를 꺼내고 싶었다. 혼자 산길을 걸으면서 거미줄처럼 얽힌 마음을 정리하고 싶었다. 하늘이 잔뜩 낮게 내려앉은 날, 지리산 자락을 걷기 위해 마천으로 차를 몰았다. 늦은 시간에 혼자 떠나기가 망설여졌지만 용기를 냈다. 어둠이 내려앉을 때쯤 숙소에 도착했다. 지워버리고 싶은 한 사람의 모습이 잠을 훔쳐 달아났다. 뒤척이며 새벽을 맞았다. 아침밥을 먹는 둥 마는 둥 배낭을 꾸렸다.
다큐멘터리 인사이트에서 '천년 거목의 죽음'이라는 제하의 방송을 보았다. 생텍쥐페리의 소설 에 나오는 바오밥 나무이다. 여태까지 나는 그 나무가 지구에는 없는, 동화 속 신비로운 식물로만 알았다. 한데 그 나무는 열대 아프리카를 상징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 사는 식물 중 하나라고 한다. 아프리카에서 바오밥 나무는 우리나라 소나무처럼 그 나라 사람들에게 상징적인 사랑받는 신령한 나무다. 건기와 우기가 분명한 지역에서 우기 때 줄기 속에 많은 양의 물을 저장했다가 가뭄이 들면 물을 공급해 생명을 살리곤 하는
오늘따라 유난히 바람이 심하다. 연신 창문이 흔들리고 아귀 맞지 않은 문틈으로 비명을 울리는 바람소리가 요란하다. 창문을 여며 닫으려다 창을 열어젖혔다. 세찬 바람과 함께 어둠이 물컹 온몸에 느껴진다. 잊고 있었던 차갑고 따뜻하고 쓸쓸하고 그립던 겨울밤 시간들이 어둠 속에서 꽃피듯 피어오른다. 밤과 어둠을 떼어 생각할 수 없듯이 나의 겨울밤엔 몇 가지 요소를 빼버린다면 어떤 의미도 갖지 못하는 겨울밤이 될 것이다. 그 요소 중 하나는 어둠을 뚫고 멀리서 들려오는 개 짖는 소리와 다듬이 소리다. 이들은 고요한 밤공기를 흔들며 마음 깊
쓸쓸하다고 말하지 않아도 쓸쓸한 느낌을 주는 말들이 있다. 11월, 낙엽, 저물녘, 가을비, 빈집 혹은 빈 들판, 그리고 절터, 이런 말들. 지난 일요일 저물녘에 운흥사지를 다녀왔으니 '가을비'를 빼고는 쓸쓸함의 요소를 다 갖춘 셈이다. 운흥사지는 웅촌면 정족산에 있다. 그전에 두서면 구량리의 은행나무를 보러 가서 찬란한 황금빛 잎들에 눈이 황홀해져 있던 터라, 폐사지 들어가는 길가의 반쯤 잎이 떨어진 갈색 나무들을 보니 사색에 잠긴 듯 고요하고 우울해 보였다. 그러다 갑자기 물결이 일 듯 잔바람이 불면서 남은 잎들이
결혼해서 처음 자리한 곳이 장생포와 인접한 야음동이었다. 그때 남편 사무실이 장생포 부둣가에 있었기 때문에 출퇴근 거리가 가까운 야음시장 옆 단독주택에 전세방을 마련했다. 좁은 단칸방에 차린 신혼살림이었지만 알뜰살뜰 일구어서 새 보금자리 아담한 아파트를 장만한다는 꿈에 하루하루 희망 속에 살았다. 점심시간이면 도시락을 싸서 남편 사무실 옆 바닷가로 가서 같이 먹었다. 집에서 혼자 먹는 둥 마는 둥 하던 밥맛이 푸른 바다 넘실대는 파도 소리 속에서 먹으니 꿀맛이었다. 안동 두메산골이 고향인 나는 광활한 바다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휴대전화 속 지도를 불러내 걸어온 길을 더듬어 본다. 길은 평탄하기보다는 쉼 없는 굴곡으로 이어졌다. 이제 평지이겠거니 하면 오르막이 나타나고 다 올랐겠거니 하면 다시 내리막을 걸어야 했다. 무성한 숲속에서 길이 보이지 않아 헤맬 때도 있었지만 길이 실금처럼 희미한 곳에서도 결국 방향을 찾아냈다. 무사하게 산행을 마쳤다는 생각에 안도의 기운이 온몸에 퍼져 나른하다. 오늘은 제법 긴 산길을 걸을 생각을 하고 이른 새벽 집을 나섰다. 배내재에서 시작해 배내봉과 간월산, 신불산을 지나 신불재에 이르고 나니 피로감이 몰려왔다. 오랜만의 산
가을 나들이라 여기며 어머니를 보러 간다. 그런데도 발걸음이 가볍지 만은 않다. 어머니에게 가는 길은 대부분 혼자였다. 고독하게 남은 생을 살아내고 있는 어머니에 대한 연민으로 마음은 늘 복잡하다. 연로함으로 몸을 마음처럼 움직이지 못한다. 그것이 가슴 한 쪽에 늘 부담으로 남는다.우리는 아이러니한 시대에 살고 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는 시간들이 빠르게 흘러가고 있다. 부모는 당연히 부양해야 하는 세대가 되었다. 슬프고 힘든 시대를 살아온 부모세대 곁에서 껌 딱지처럼 붙어 유년을 온 몸으로 느끼며 살았다. 그런 이유만으로도 부모
재채기소리가 하루 열두 번도 더 들려온다. 재채기 한 방에 창문이 덜커덩거리고 이 여파로 아파트 담벼락까지 흔들리는 것 아닌가 싶다. 사람 몸속에 장착된 대 포탄. 버튼을 제 맘대로 조작하는 천지무법자 하나가 분명 몸 어딘가에 살고 있다. 심심하면 쏘아대며 이웃인 내 마음에 난동을 부린다. 뉴스에서 보니 위층에서 들려오는 소음을 견디다 못한 아래층에서 막대기로 천장을 쑤셔댔다는 보도가 나왔다. 내 이웃 아파트에서는 한밤중에 어느 아저씨가 코뿔소처럼 씩씩대며 윗집을 들이박았다는 소문이 돌았다. 결국 한쪽이 이사를 가는 일이 일어났다.
추석 연휴가 예년보다 길다. 모처럼 휴일이 주는 여유로움에 따끈따끈한 햇살을 받으며 걷고 싶었다. 얼마간의 경사도가 있는 산책로를 따라 걷자니 호사도 이런 호사가 없다. 주변의 자연경관이 나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 같다. 한참 걸으니 콧등에 송글송글 땀방울이 솟는다. 얼마만의 일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요즘 사회 분위기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식민국가처럼 느껴진다. 그가 대장인 것만 같다. 호랑이보다 무서운 곶감이다. 하지만 내 생각엔 역시 사람이 대장이고, 곶감이다. 그 무섭다는 바이러스 속을 뚫고 추석 연휴를 맞아 모두 떠
사범대학 새내기 때였다. 비록 40여 년 전 일이지만 어느 노교수님의 첫 강의시간에 들은 통렬한 일갈은 이제 막 서리가 내리는 내 귓가엔 여전히 쟁쟁 살아 있다. 무슨 대단한 금언을 기대하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도 그 순간은 너무도 당혹스러웠다.스위스의 교육사상가이며, 조건 없는 사랑과 고매한 인격을 교육의 필요조건으로 내세우고 실천한 페스탈로치, 아니면 일제 강점기 심훈의 농촌계몽 소설 『상록수』의 주인공 채영신과 박동혁, 우리민족의 냉혹한 식민 현실에 아낌없이 모두 던진 그 헌신적 삶과 생활철학 등을 본받아 소박하나
집안일 중에 좋아하는 게 뭐냐고 묻는다면 빨래라고 대답하겠다. 빨래는 세탁기가 하는 게 아니냐고? 대부분 세탁기의 일이지만 수건이나 행주, 속옷 같은 삶아야 하는 빨래부터 물 빠짐이 있거나 블라우스 같이 천이 상하기 쉬운 옷은 아직 손빨래를 해야 한다. 그러니까 내가 말하는 빨래는 이불 호청이나 청바지 같은 게 아니라 손안에 잡히는 부피가 작은 걸 말한다. 물론 세탁기가 없을 때야 빨래는 큰 일감 중 하나였다. 일이 힘드니 돈을 주고 품을 사기도 했다. 드가의 이란 그림을 보면 힘주어 다림질하는 여직공 옆에 술병을
오지다 오지다 이보다 더 오질까, 빨랫줄에서 참깨 떨어지는 소리를 들어보셨는지요? 쥐새끼 풀방구리 드나들 듯 하루에도 수십 번 현관문을 열고 베란다로 나가 참깨를 흔들고 들어옵니다. 어깨가 슬쩍만 스쳐도 챠르르~ 손끝만 닿아도 차르르~.옆에 세워 둔 참깨털이 전용 싸리나무 막대기로 칩니다. 로또 당첨 사운드보다 더 듣기 좋은 소리로 또 챠르르르~ 챠르르르~!흔히 '깨가 쏟아진다'는 말을 할 때 약간 비아냥처럼 하던 이유를 알 것도 같다. 담 너머 지나가던 어르신이 본다면 충분히 배가 아플 만도 하기에.인근에 놀이터 같
우한발 코로나19를 막지 못한 것에 책임 논란이 분분했다. 다들 초기에 문을 닫아걸었어야 했는데 싶었던 게다. 다행히 철저한 관리로 불길 가닥이 잡히는가 싶었다. 한숨 돌리는 새 틈이 생긴 것일까. 인간의 우매함을 비웃기라도 하듯 바이러스가 재확산,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2차 불씨의 근원지는 광화문 집회장이라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웃사랑의 선봉에 서있어야 할 종교, 정치인이 가세해 혼돈을 빚고 있는 양상이다. 개개인의 성향이 다르다 보니 그럴 수도 있지 하다가도, 끝 간 데 없이 번져가는 바이러스를 보면 마음이 불안하다.어느
"강렬히 호소합니다. 제발, 여러분의 말을 행동으로 보여 주세요…"세상의 이슈를 찌른 소녀의 외침은 비장했다. 가슴에 한 방의 일침을 맞은 것처럼 찌릿했다. 하나둘 일어서서 밖으로 나가는데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하고 앉아 있었다. 불교대학 연합회에서 주관하는 환경 세미나 자리였다.어릴 때부터 앓은 폐 질환 때문에 평소에 환경문제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직장과 봉사, 취미 활동으로 하는 소속된 단체에서 서슴없이 환경 담당을 맡아 꾸준히 소임을 다해 나가고 있다. 재활용품을 판매하는 아름다운 가게에서는 장바구니 갖기 캠페인을 꾸
시골에 집을 얻어놓고 주말마다 드나들던 때였다. 짬을 내지 못해 보름 만에 시골로 향했다. 땡볕 속의 작물이 걱정되어 집 뒤의 밭에 나가보니 가뭄이 들어 엉망이었다. 참외는 바짝 말랐고, 수박은 쩍쩍 갈라진 땅 위에 시든 잎을 늘어뜨리고 있었다. 종종걸음으로 들통에 물을 가득 퍼서 축 처진 수박의 갈증부터 풀어 주었다. 저녁밥을 먹은 뒤 손전등을 들고 다시 밭으로 나갔다. 시들었던 잎사귀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싱싱해진 것을 보니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유년기의 우리 집에는 수박 농사를 지었다. 당시는 요즘처럼 하우스 재배가 아닌 노지
오토마센 마을에 저녁이 온다. 오렌지빛 지붕위로 잿빛 굴뚝 속으로도 석양이 기어들고 주먹만 한 수국들이 울타리 안으로 고개를 숙인다. 여행을 온 지 어느덧 한 달. 아무 일을 하지 않았다는 불안감을 떼려고 길을 나선다. 하필 청색 남방을 펄럭이며 훌쭉한 배낭을 메고 달려가는 한 사람이 보인다. 혹시, 내 안의 좀머 씨인가. 딱 필요한 만큼의 버터 발린 빵과 혹시 내릴지도 모를 소나기 대비용 우비 한 벌이면 족했던 그는 아직도 무에 그리 불안하여 저리 급히 뛰고 있을까. 2차 대전 후 독일이 놀라운 경제성장으로 선진국 대열에 우뚝 섰
나란 사람이 못하는 게 잘하는 것보다 많다는 것을 웬만한 지인은 다 눈치를 챈 것 같다. 자신의 그런 약점을 뻔히 알면서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 사람의 심리다. 상대방도 밝혀야 좋을 것 없는 일인 줄 알기에 굳이 나의 약점을 꾹꾹 찌르지는 않는다. 그점 또한 나도 알지만 모른 척 그냥 살아간다.이웃 주변 상가의 눈치 9단의 고수 사장님들이 나를 배려할 때 엿보이는 얄팍한 권위의식 내지는 우월감은 어쩔 수 없이 내 약점을 인정하게 한다. 물론 그때의 묘한 기분을 드러내지 않는 게 좋다는 것쯤은 나도 알고 있다. "보소, 그거 그집
트로트 열풍이 거세다. 모 방송국의 트로트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자 다른 방송국에서도 우후죽순처럼 트로트 관련 프로를 내보내고 있다. 그래서 텔레비전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보면 거의 하루 종일 트로트 방송을 볼 수 있다. 전화로 트로트 곡을 신청하는 어느 프로그램을 보면 고등학생부터 80대 어르신에 이르기까지 세대를 불문하고 참여를 하고, 오백 번 천 번 이상 전화를 해야 겨우 연결될까 말까 할 정도라니 그 인기가 하늘을 찌르는 중이다. 가히 트로트 전성시대다. 트로트는 일제 강점기에 일본 대중가요 엔카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대중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