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하마드 동네에 있는 숙소에서 하루 쉬기로 했다. 여느 마을과 다름없는 언덕을 돌아서는데, 공터에는 보라색 들꽃이 장관을 이루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보라색 꽃향기는 붉은 노을에 대비되며 한껏 멋을 더해 내게로 다가왔다. 우마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의 좁은 농로를 따라 흙담 길을 꺾었다. 겨우내 쌓인 눈이 녹아 저 산비탈을 비켜 작은 도랑을 타고 돌돌돌 노래를 부르며 앞의 집으로 흘러 들어갔다. 그 집이 오늘 밤 나의 숙소였다. 집을 들어서는데 우리네 어느 대감마님이 살았던 오래된 전통 가옥 같았다. 아마도 옛날 이 동네의 족장
며칠을 지내니 이제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을까. 밤새 강물 소리도 아니고 돌 깨는 공장 기계 소리도 아닌 데 얼마나 시끄러웠던지 잠을 설쳤다. 새벽녘이 되어서야 겨우 잠잠해서 조금 잤던 것 같다. 무하마드는 벌써 일어나 마당 의자에 앉아 나를 기다리는 듯했다. 이제 잠을 못 자는 것 보니 파키스탄 사람이 다 되었다며 놀렸다. 나는 밤새 그렇게 시끄럽던 소리의 정체가 매우 궁금했다. 무하마드가 웃으며 그건 교량으로 지나가는 자동차의 바퀴 소리란다. 알고 보니 이곳은 시멘트나 건축 자재가 열악하다 보니 굵은 쇠밧줄에 나무를 엮어서 강의
평생 국경 안에 머물지만 신과 함께 하는 삶남자들의 로망이라면 대게의 경우 히말라야의 끝없는 설산을 걷는 일일 것이다. 먼 네팔고원에서 안나푸르나, 에베레스트산을 바라보는 일은 꿈같은 여행이라고 생각했다. 야크가 밤마다 울어대는 고산에서 하룻밤을 묵으며 이마에 부딪히는 별을 세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무한한 행복임을 다 안다. 그러나 대게의 경우 이 일을 위해 무거운 배낭을 둘러메고 집을 나서는 일은 쉽게 할 수 없다. 8,000곒가 넘는 고산준령이 마치 바다의 물결처럼 일렁이는 산맥을 어떻게 감히 내가 바라볼 수 있으랴 싶었다. 그런
버스로 19시간 달려 드디어 도착 어제 수도인 이슬라마바드에서 출발한 지 꼬박 19시간이 지나서 드디어 이 나라 끝자락의 가장 큰 도시 길기트(Gilgit)에 도착했다. 밤새 버스 맨 뒷좌석에 앉아 잠을 설쳤던 터라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비행기도, 배도 아니고 버스로 이렇게 긴 장거리 여행을 누가 감히 해볼 수 있겠나. 햇볕이 내리쬐는 뜨거운 길기트의 첫인상은 내 몸보다 더 지쳐 보였다. 버스에서 짐을 챙겨 내리자 택시 기사는 용케도 따라와 나의 짐을 벌써 들어 옮긴다. 어디로 가야 할지 아직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는데 어쩌란
이곳 사람은 인샬라! 가 일상어다. 만나면 인샬라, 헤어질 때도 인샬라! 그냥 평소의 후렴구처럼 즐겨 쓰는 단어다. 즉, 모든 것은 신의 뜻대로 하소서! 이러니 무슨 약속을 해도 시간 개념이 없다. 혼자 기다리게 해 놓고서도 태연하게 신의 뜻이 그러했다면 만사가 통용된다. 신의 뜻이 과연 어디에 있기에 이 파키스탄은 가난을 면치 못하는가. 아이러니하다. 라왈핀더버스터미널서 출발계획하고 온 여정의 첫 목적지는 나란 밸리. 하루 정도 수도를 여행하고 싶었지만, 4월인데도 이미 35도를 웃돌아 너무 덥고 딱히 갈만한 곳도 모르는지라 내일
누구에게도 축복받지 못한 여행길에 오르다떠나는 일은 설렘이고 모험이다. 많은 남자는 살면서 아마 히말라야의 산자락을 걷는 꿈을 꿀 것이다. 8,000m가 넘는 고봉들이 즐비한 산맥을 바라보며, 어느 한적한 시골의 초록 밀밭의 바위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일! 참으로 기막힌 아름다움 아닌가. 일생을 살면서 우물 안 개구리처럼 저에게 바라보이는 하늘이 전부인 양 사는 일상을 벗어나고 싶었다. 갈 수 없다고 생각하면 포기가 빠르지만, 가고 싶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면 그날부터 몸은 이미 반응하기 시작한다. 전문 산악인도, 등산도 취미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