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은 '반구천 암각화'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기념비적인 해이다.
반구천 암각화가 세계유산 등재의 전 단계인 잠정목록으로 등재된 때로부터 15년, 암각화가 발견된 지 55년 만에 이룬 쾌거이다. 세계유산 등재를 둘러싼 기나긴 여정을 관찰한 필자로서도 감개가 무량하다. 울산시민들에게 진심으로 축하의 인사를 전한다.
세계유산으로 등재된다는 것은 유산의 가치를 보존하고 그 가치를 확산시키겠다고 국제사회와 미래세대에 약속하는 행위이다. 한국의 17번째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반구천 암각화는 기후변화가 문화유산에 미치는 영향을 어떻게 극복하는지 해결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는 시금석이자, 개발과 보존의 균형을 모색한 시대적 아이콘이 되었다.
유산의 보존방안을 둘러싸고 이해관계자간 입장차를 좀처럼 좁히지 못했기 때문에 등재까지 오랜 기간이 걸렸다.
지나온 등재과정이 매우 험난했으므로 반구천 암각화가 앞으로 꽃길만 걸었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필자가 맡고 있는 우리나라의 12번째 세계유산인 '백제역사유적지구'도 벌써 등재된 지 10주년을 맞이하였다.
백제역사유적지구도 세계유산 등재 후 잠시나마 관람객이 늘었다. 그러나 여전히 세계유산이자 고도(古都)인 공주와 부여 그리고 익산을 찾는 관람객 숫자는 더디 늘고 있으며, 아직도 관람컨텐츠와 숙박 등 관람인프라를 만드는 일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면 해당 지역주민과 지자체는 등재로 인해 달라진 모습을 기대한다. 관람객 증가로 인한 지역경제 활성화는 물론이고, 세계유산을 품은 역사문화도시라는 명예를 바라기도 한다.
2025년 7월 15일 김두겸 울산시장은 프레스센터 기자회견에서 5대 전략과제 22개 핵심사업을 발표하였다. 향후 반구천 암각화가 가야할 길을 비교적 잘 제시하였다고 생각한다.
울산을 세계유산도시로 자리매김하는 과제, 세계암각화센터를 만들어 세계유산 등재 후속조치와 연구활동을 계속하는 일, 관광활성화를 위해 인적·물적 기반을 다지는 일, 국민들에게 반구천 암각화를 알리는 것 등 모두 필요한 일일 것이다.
반구천 암각화는 등재기준에서 창조적인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았으므로 전세계에 분포한 세계유산인 암각화 유산들의 맹주가 될 자격이 있다.
따라서 반구천 세계암각화 센터를 건립할 때, 전세계 암각화 연구의 허브역할을 맡을 수 있도록 역할과 규모를 처음부터 크게 구상했으면 한다. 필요하다면 국제적 암각화 연합체를 창설할 것을 제안한다.
이제 세계유산이 된 지금 울산시의 역할은 반구천 암각화의 체계적 보존과 지속가능한 활용에 힘쓰는 것이다.
AI시대에 첨단 과학적 기법으로 유산을 보존하고, 세계유산 영향평가 제도가 법제화 되었으므로 이에 따른 보존 역량을 갖추게 되기를 바란다. 아울러 의사결정과정에서 주민들의 역량과 아이디어를 활용하는 것을 진지하게 검토했으면 한다. 왜냐하면 유산의 보존과 활용에 이제는 주민들이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국제기준이 되었기 때문이다.
세계유산보존협의회에 주민대표가 공식적으로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제도가 이미 세계유산법(세계유산의 보존·관리 및 활용에 관한 법률)에 마련되어 있다. 그리고 유산가치를 확산시키기 위한 노력도 주민들과 함께 하였으면 한다.
이것이 반구천 암각화를 지속가능하게 유지시켜주기 때문이다. 또한 문화유산 제도 선진국가로서 모범을 보이기 위해 문화유산 영향평가를 공정하고 신뢰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선결과제이다.
해마다 우기철이 되면 수위가 얼마나 오를지 전전긍긍하는 것이 결코 반구천 암각화의 바람직한 미래가 될 수는 없다. 지금 추진중인 사연댐 수위조절방안이 성공적으로 진척되기를 바란다.
반구천 암각화의 세계유산 등재는 많은 이해관계자간의 갈등에도 불구하고 문화유산이 주요쟁점의 맨 앞에 상수로 자리매김하는 상징적인 존재가 되었다. 이를 통해 유산보존과 수자원 관리의 조화라는 국내 협치형 보존 모델로 평가받고는 있으나, 반구천 암각화의 미래는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다시 한번 온 국민과 더불어 반구천 암각화의 세계유산 등재를 축하하며 막내 세계유산이 보존관리기법과 활용체계에서 모범적인 맏형이 되기를 희망한다.
정규연 (재)백제세계유산센터장·전 국가유산청 부이사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