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 사람은 인샬라! 가 일상어다. 만나면 인샬라, 헤어질 때도 인샬라! 그냥 평소의 후렴구처럼 즐겨 쓰는 단어다. 즉, 모든 것은 신의 뜻대로 하소서! 이러니 무슨 약속을 해도 시간 개념이 없다. 혼자 기다리게 해 놓고서도 태연하게 신의 뜻이 그러했다면 만사가 통용된다. 신의 뜻이 과연 어디에 있기에 이 파키스탄은 가난을 면치 못하는가. 아이러니하다.
라왈핀더버스터미널서 출발
계획하고 온 여정의 첫 목적지는 나란 밸리. 하루 정도 수도를 여행하고 싶었지만, 4월인데도 이미 35도를 웃돌아 너무 덥고 딱히 갈만한 곳도 모르는지라 내일 가려던 일정을 앞당겨 라왈핀더버스터미널(Bus Terminal Rawalpindi)로 간다. 그런데 아직도 그곳은 겨울이라 길이 열리지 않아 갈 수가 없단다. 하는 수 없이 길기트(Gilgit)로 가야겠다. 거기까지는 버스로 장장 18시간, 그것도 정상적으로 운행했을 때의 시간이다. 산사태로 길이 막히면 24시간도 걸린다며 매표소 아저씨는 아무렇지 않게 설명한다. 나는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하는데, 그 사이 이 나라 파리떼가 내 입으로 다 들어올 것만 같다. 지금 마지막 버스표 한 장 남았다며 직원은 내 손을 잡고 어서 결정을 재촉한다. '그래, 가보자. 어쩌겠어.' 이곳 국내선 비행기도 일주일에 서너 번은 날씨 탓으로 결항이 더 많다고 하니 버스를 타기로 했다. 그러자 직원은 바로 비자 복사 열다섯 장을 요구한다. 옆 가게에서 복사를 맡겼더니 이건 또 무슨 바가지인지 우리 돈 3만 원이란다. 이런 날강도 같으니라고! (나중에 안 일이지만 도로 곳곳에 검문 검색이 이루어지고 그때마다 외국인은 비자 복사본을 제출해야 함)
파키스탄의 버스는 우리나라 대우버스를 최고로 인정한다. 중고 버스지만 이곳에서는 아주 잘 달리고 있다며 이 버스터미널도 일명 대우버스터미널이라고 할 만큼 우리나라의 위상이 대단하다. 그러나 예외도 있는 법, 몇 번이나 “프롬 코리아"(from korea)라고 해도 눈길조차 주지 않으니 복사비 깎는 건 포기할 수밖에 없는 이 처량한 신세를 어디 가서 하소연하겠나.
버스로 장장 18시간 길 막히면 24시간 걸려
오후 5시에 출발하는 버스표를 샀다. 4,260 루피 우리 돈 약 2만 원이다. 이슬라마바드에서 북부지방의 중심 도시 길기트까지는 약 512km, 생수 몇 병을 사서 버스의 맨 뒷자리에 앉았다.
앞이 훤히 보이는 탁 트인 시야로 은근히 비행기를 탄 기분이다. 낯선 도시의 풍경이 차창 밖으로 길게 이어진다. 양을 몰고 와서 시장에서 파는 사람들, 손수레에 수박을 가득 싣고 와 파는 사람들, 검은 히잡을 둘러쓰고 눈만 내놓고 다니는 무슬림의 여인들, 백미러도 없는 오토바이에 5명의 가족을 태우고 경적을 울리며 좁은 길을 달리는 아저씨 …. 모두가 이 환경에서도 그저 제 삶의 일부분임을 받아들이며 사는 사람들임을 알겠다.
한 시간쯤 달렸을까. 도심을 벗어나 본격적인 시골 풍경이다. 옆에 앉은 젊은 친구는 끝없이 전화 통화다. 무슨 말인지도 모르니 듣는 것 또한 여간 곤욕도 아니다. 전화 상태가 좋지 않아 계속 끊어지기를 반복하지만, 그때마다 다시 통화를 시도하며 계속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서서히 나의 한계도 절정을 향해 달린다. 이 고통의 시간은 앞으로 벌어질 한계상황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란 걸 까마득히 모른 채 지금의 저 통화에 온 귀가 짜증을 내며 투덜투덜 함께 산을 넘고 있다.
굽이굽이 높은 산봉우리 카라코람 하이웨이 달려
얼마나 달렸을까. 굽이굽이 높은 산봉우리가 파도처럼 끝없이 이어진다. 나무 한 그루 없는 오로지 바위뿐인 척박한 돌산이다. 저 천애의 절벽을 깎아 길을 내고 사람의 왕래를 허락한 세계에서 가장 높은 도로 중 하나인 카라코람 하이웨이(KKH)를 달린다. 예전 이 길은 말과 사람, 실크로드 상인들과 고승들이 인도에 불교 경전을 구하러 다니던 험한 길이었다. 이후, 두 나라의 교역을 위해 1959년 공사가 시작되어 자그마치 20년이 소요되어 마침내 1979년에 개통되었단다. 이 험난한 산악지역을 공사하면서 인부 사망자가 1,010명이라고 하니 공사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카라코람산맥을 통과하며 해발 4,693미터에 이르는 쿤자랍 패스(khunjerab pass)를 넘어간다. 길이가 무려 1,300km로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카슈카르에서 파키스탄의 아보타바드까지 이어진다. 사실 숫자로는 이 도로의 길이를 가늠하기 어렵다. 우리나라 지도를 비교해 보면 어림잡아 제주도 마라도에서 북한 최북단 함경북도 온성시 유포진까지의 길이가 약 1,110km다. 우리나라 한반도의 길이보다도 약 200km가 더 길다.
어둠이 금방 몰려와 주위는 깜깜한 암흑이다. 전기사정도 좋지 않아 간혹 마을이 보여도 불빛은 없으니 어디를 달려가고 있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가도 가도 끝이 없을 것 같은 길을 그냥 몸을 맡긴 채 수백 번 눈을 감았다 떴다를 무한 반복이다. 뒤척이기도 어려운 좁은 버스 맨 뒷자리, 이제야 옆 친구는 전화를 끄고 곤한 잠에 들었다. 모두가 이 아슬한 고도 위에서 편안하게 꿈속으로 달려가는 사람들 속에서 나만 혼자 뒤척이고 있다. 가끔 검문을 위해 검문소에 정차하면 나는 일부러 눈을 감는다. 운전기사는 군인에게 “사우스 코리아"라고 설명하면 군인은 아무런 질문도 없이 무사통과다. 국격의 이 위대한 대한민국이 자랑스럽지 않을 수 없다.
산은 높고 나무는 없으니 비만 오면 산에서 바위가 굴러 내려오고 산사태가 나서 트럭들이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사고가 빈번하다. 또한 2023년 12월에 무장단체의 공격으로 사고가 발생해 8명이 사망하고 26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나라를 여행 위험 경고 지역으로 모두가 기피 한다. 그런데도 기어이 이곳으로 온 고집은 뭘까 싶다. 모험심도 없는 걸 스스로 잘 알면서도 지금 끝없는 대륙을 횡단하고 있지만 실은 이 밤을 무사히 넘겨 목적지에 잘 닿아주기만을 기도하고 있을 뿐이다.
비만 오면 산에서 바위 굴러 내려오고 사고 빈번
설핏 잠이 들었다 싶었는데 운전기사는 막무가내로 탑승자들을 전부 깨운다. 얼떨결에 눈을 떴다. 비상 상황인가? 무장단체라도 나타난 건지 아니면, 백만 대군 인도의 공습인가? 이도 저도 아니면 아프간 괴한의 침투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비몽사몽이다. 모두가 우르르 차 밖으로 나간다. 여기서 사고라도 난다면 그야말로 낭패다. 본능적으로 여권과 가방만 챙겨 후다닥 차에서 내렸다. 도대체 여기가 어디며, 왜 잠든 모두를 깨워 이리도 야단법석이란 말인가. 모두가 건물 안으로 재빠르게 들어간다. 앞뒤 분별도 못 한 채 덩달아 저들의 꽁무니를 따라 들어선다.
아뿔싸! 전쟁터 같지만 모두 신이 나서 웃음이 끊이질 않는 식당이다. 역시 먹는 것만큼 즐거운 일도 없나 보다. 젊은 청년들은 연신 땀을 흘리며 모처럼 고객이 들어온 이 새벽 시간을 즐기고 있다. 이 나라에 와서 처음으로 본토 음식을 먹어야 할 판이다. 무얼 어떻게 주문해야 할지 도무지 알 길이 없어 엉거주춤 서 있자 눈치 빠른 젊은 친구가 신기한 듯 나를 쳐다보더니 알아서 갖고 오겠다는 듯 기다리라며 손을 잡아 자리로 안내한다. 이미 식당 안은 우리 버스의 탑승객으로 만원, 입구 로비에 앉는다. 생경한 이방의 야식 풍경이다. 인터넷도 안되니 고립무원, 조금 있으니 청년이 빵과 오이와 닭볶음을 갖고 온다. 한 상 가득 푸짐하다. 빵과 오이는 먹을 만하지만 도무지 닭고기는 못 먹겠다. 이 새벽에 난리가 난 난리가 전쟁터보다 더 왁자하다. 모두가 저녁도 아니고 아침도 아닌 이 두어 시 경에 저리도 먹음직스럽게 식사를 할 수 있는 게 대단하다 싶다.
우리나라는 여행 위험 경고 지역으로 기피
한 시간 정도의 식사 시간이 끝나지 다시 기약 없는 버스는 다시 수천 미터의 고개를 한 마리의 나무늘보처럼 기어서 간다. 이 스피드 시대에 올드 버스의 속도로 이만한 거리를 가는 건 어지간한 인내심이 아니고는 어렵다. 그러나 모두 평온한 저 표정은 도대체 무얼까. 속도보다 유유자적 자신만의 비법을 터득하여 이 버스에 올라탄 무림 권법의 최고수 같다. 고개를 앞으로 젖히거나, 옆으로 기대거나, 옆좌석 사람과 서로 머리를 맞대거나, 제 웃옷을 머리에 덮어쓰고 코를 골거나 자신만의 필살기로 분별없는 시야를 운전기사에게 맡기고 이 밤을 다시 간다.
그러다 드디어 올 게 왔는가 보다. 차가 멈추었다. 산봉우리가 어렴풋이 그림자처럼 드리워진 어느 비탈에 시동을 끈다. 그래도 모두가 자기 집 안방처럼 잠을 잔다. 나는 차에서 내렸다. 눈산의 영향인지 제법 새벽바람이 차다. 저 아래는 까마득한 절벽, 물소리가 굉음을 내며 마치 전차처럼 가고 있다. 한 승객이 나의 손을 잡아끈다. 잘못 발을 헛디디면 죽는다는 뜻이다. 친절한 그는 5시 30분이 되어야 열릴 것이라며, 어제 산사태로 길이 막혀서 지금 공사 중이란다. 그는 이야기하고 싶어 했지만, 나는 눈길을 계속 피하자 하는 수 없었던지 내게 어서 남은 잠을 청하라며 차로 들어가라며 버스에 오른다. 볼일이 급한 나는 아랫도리 바지를 엉거주춤 잡으며 차에서 저만큼 떨어진 바위 뒤로 들어섰다. 몇 시간째 화장실도 못 갔기도 했지만, 처음 먹은 이 나라의 야식으로 아까부터 꾸르륵꾸르륵 야단법석을 떨며 신호를 보내오고 있었기도 했다. 인정사정 볼 것도 없이 앉았다. 별은 더 많이 반짝이며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데 무안함과 난감함, 그 너머로 교차한 이 편안함을 누가 알랴! 이 서 원 시조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