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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을 밝히는 별을 바라보고 있는 스피츠코프의 바위들. 앞으로 나의 성지가 될 곳이다. ⓒ서영교
어둠을 밝히는 별을 바라보고 있는 스피츠코프의 바위들. 앞으로 나의 성지가 될 곳이다. ⓒ서영교

치과의사이자 아마추어 사진작가로 활동 중인 서영교 치과원장의 아프리카 등 1년여 간 세계 각국을 일주하며 겪었던 체험기를 생동감 있는 현장의 사진과 함께 월 1회 연재한다. 편집자

한국에서 직선거리로 1만3,000㎞, 지구 반대편 아프리카의 나미비아. 사막과 야생동물들의 초원, 대서양을 가진 그곳으로 간다. 아침 일찍 울산을 출발해 광명역과 인천공항을 거쳐 홍콩과 요하네스버그 공항. 총 이동시간을 계산하다 번번이 실패하고 마는, 앉아서 하는 대장정이다. 그리고 드디어 빈트후크 공항으로 가는 마지막 비행기. 울산에서부터 갑자기 찾아온 감기 기운에 온몸이 떨렸지만, 바이러스도 피곤해 죽었는지 마지막 비행에서 컨디션이 회복되었다. 책을 읽으며 마음을 추스르는 데, 옆에 앉은 꼬마 아가씨가 엄마에게 책에 적힌 신기한 문자에 대해 물었나보다. 한글이라는 한국 문자라고 이야기해주고 이름을 물어보니 마리아나라고 한다. 그 이름을 한글로 적어주고 옆에 my friend, 나의 친구. 이렇게 적어주었더니 좋아한다. 먼 이국땅에서 내게 처음 관심을 보여준 꼬마 아가씨, 너를 여행 중 나의 수호천사로 임명한다.

# 부시맨의 성지 '스피츠코프'
장시간의 이동에 피곤했던 우리는 앞으로 있을 텐트 생활을 미리 위로하듯 까슬까슬한 침대에서 쾌적한 휴식을 취하며 첫날밤을 보냈다. 그리고 아침 일찍 나미비아의 마테호른이라는 스피츠코프를 향해 출발한다. 한반도의 4배나 되는 면적에 고작 250만명 정도가 씨 뿌리듯 흩어져 사는 이곳에선 사람 구경하기가 쉽지 않다. 수도 빈트후크를 벗어나자 바로 비포장도로가 시작된다. 처음 눈에 들어온 풍경이 무한반복 재생되는 듯한 길을 230㎞를 달려야 한다. 아프리카의 풍경은 '비어 있다'. 차의 궤도와 지평선만이 평행선을 이루며 달린다. 허허벌판이라는 단어에서 난생처음 '허허'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그렇게 초점 둘 곳 없는 길을 한참 달리다 보니 난데없는 멋진 돌산들이 눈에 들어온다. 스피츠코프다. 비지터센터(visitor center)를 지키는 청년들이 근엄한 표정으로 뭔가를 설명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반갑다며 카메라를 들이대자 근엄한 표정은 온데 간 데 없이 사라지고 장난스런 표정으로 포즈를 취한다. 악수를 하고 캠핑 장소를 물색하러 이동한다. 이곳은 엄밀히 말하면 캠핑장이 아니라 캠핑을 해도 되는 들판이다. 물이고 전기고 아무 것도 없고 바위가 이곳의 주인이다. 차를 몰고 한참을 들어가니 간이 화장실이 하나 눈에 들어온다. 화장실 옆의 찝찝함을 피할 것이냐, 아니면 깜깜한 밤에 뭐가 나올지 모르는 길을 걸어오는 불편함을 감수할 것이냐를 두고 고민하다 결국 화장실을 택한다.

텐트를 치고 땀에 젖은 몸을 물티슈로 대충 해결한 후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한다. 저 돌산이 해발 1,700m라는 얘기에 깜짝 놀랐고 여기가 해발 1,000m의 고원이라는 것에 다시 놀랐다. 그래서인지 그렇게 덥지 않다. 그래도 저 돌산이 700m 높이라니, 낯선 공간감에 당황스럽다.
주변은 적막하고 바람조차 없다. 재채기라도 하면 거인들이 놀라 깨어날 듯한 적막이었다. 바위산을 타고 오르니 풍화와 침식이 만들어낸 아치가 모습을 드러낸다. 중력을 거스르며 서 있는 그 모습은 경이로운 자연의 예술이다. 모든 것이 확대 인화한 사진 같은 이 광경에서 내가 만든 그림자는 왜소하기만 해서 마치 그림자극의 배우가 된 것 같은 기분이다.

끝도 보이지 않는 모래평원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을 줄 몰랐다. 이곳도 그들에겐 삶의 터전이라는 것을 새삼 느낀다. ⓒ서영교
끝도 보이지 않는 모래평원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을 줄 몰랐다. 이곳도 그들에겐 삶의 터전이라는 것을 새삼 느낀다. ⓒ서영교

쏟아질듯한 사막의 별아래 누워
뭔가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시간에 쫓기는 강박감도 놓아버리니
이순간이 바로 내인생의 절정

스피츠코프 비지터센터를 지키는 청년들.
스피츠코프 비지터센터를 지키는 청년들. ⓒ서영교

# 모든 것이 인화한 사진 같은 풍경
해가 지평선 너머로 내려앉기 시작하며 대지가 붉은 기운에 물들기 시작할 때 모닥불을 피웠다. 불을 보며 상념에 잠긴다. 어쩌면 이곳은 사람의 마음을 본떠 만든 것이 아닐까. 저 바위들처럼 우리도 외부 세계와 부대끼며 닳고 닳지만 자신이 만들어내는 내면의 상처는 칼에 베인 듯 팽팽하고 예리하게 남는다.

어느새 별들이 가득하다. 다시 바위산을 올라 별사진을 찍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 문득 다 부질없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수천 번 셔터를 눌러 그 사진을 이어붙인들 거기에는 노이즈와 흰 점만 있을 뿐, 이 순간의 본질은 아니다. 본질은 그냥 별이나 보는 것이다.
내 기억이 닿는 한에서 별과의 첫 조우는 군대에서였다. 유격훈련장으로 향하는 야간행군. 선두에서 '10분간 휴식'을 외치면 후미까지 전달되어 걸음을 멈추는데 벌써 5분은 흐른다. 남은 5분은 군장을 맨 채로 드러누워 하늘을 보는 것으로 쓰게 된다. 내 머리 위에 별의 바다가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그 순간이었다.

다음으로 생각나는 것은 이라크의 밤하늘이다. 이라크 전쟁 당시 의료지원단으로 원치 않는 파병을 가게 되었을 때였다. 주변에 건물이라곤 천막밖에 없는 그곳에선 턱만 살짝 치켜들어도 시야 가득 별밭이었다. 저 별들이 쭉 이어져 수천㎞ 떨어진 한국의 누군가도 저 별을 보고 있겠지 하고 생각했던, 참으로 외로운 이국땅이었다.

그리고 지금 여기 나미비아의 스피츠코프에서 잊고 있던 별의 바다를 다시 보고 있다. 사람들이 하나둘 텐트로 돌아가고, 혼자 남은 나는 그대로 거대한 바위 위에 드러누워 버렸다. 뭔가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시간에 쫓기는 강박도 스물 스물 몸에서 빠져나가고 중력의 속박에서도 벗어나는 느낌이었다. 밤하늘의 반대편에는 오롯이 대자연 속의 나 하나였다. 이대로 밤을 새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다 문득 내가 이 순간을 위해 살아왔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노력하고 쌓아올리고 견고히 하고 그런 삶이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쌓아올린 만큼 무거워지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아무것도 지니지 않고 바위 위에 드러누워 있는 이 순간이 내 인생의 절정이라니, 참 아이러니하다.

/'매 초당 7조 5499억 5047만 2325개의 별빛을 받으며 살았다/ 그렇게 대단한 1초라는 걸 알았더라면 아빠는 울지도 않았을 텐데/아빠 인생의 1초가 그렇게 많은 빛으로 가득했다는 걸 알았더라면 말이죠/-김연수의 '원더보이' 중에서

이곳에 벽화를 남긴 부시맨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사람에게는 영혼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자신만의 성지가 필요하다. 여러 생명체들을 신으로 섬기는 이유는 자신의 땅을 성지로 만듦으로써 스스로의 존재 의미를 찾기 위함이다. 일상의 번잡한 문제들이 나를 괴롭힐 때, '그래서, 뭣이 중헌디?' 하는 생각이 든다면, 나는 별이 쏟아지는 지금 이곳 스피츠코프의 바위를 떠올릴 것이다.

여행은 뺄수록 기억이 남고 인생도 덜어낼수록 살아나

#여행을 떠나며
14년째 CK치과병원 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직업상 카메라를 많이 다루기는 하지만 아빠진사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던 중 울산대학교 평생교육원을 통해 사진 스승 안남용을 만난다. 사진을 배우고 수차례 전시회도 함께 하는 즐거움도 잠시. 새로운 배움은 새로운 고통과 갈증을 수반한다. 내가 갇혀 있는 틀을 깨야하기 때문이다. 이왕 깰 거 제대로 깨보자는 마음으로 1년간의 휴직을 선택, 대략 절반을 여행하는 데 쓰고 절반을 '방콕'했다.

서영교<br>​​​​​​​class614@naver.com<br>1971년생, 현 CK치과병원 원장<br>울산대 평생교육원 사진창작반 수료<br>단체 및 그룹전 7회<br>
서영교
class614@naver.com
1971년생, 현 CK치과병원 원장
울산대 평생교육원 사진창작반 수료
단체 및 그룹전 7회

나는 아웃사이더의 기질을 타고났다. 어딘가 속해 있을 땐 불편했고 벗어나면 불안했다. 대학에선 나이트클럽과 소개팅의 유혹을 물리치고 학생운동권의 길을 갔으나 그 속에서도 신분상승이나 경찰의 관심을 끌지는 못한 채 '운동권학생2' 정도의 엑스트라에 머물렀다. 친구들이 개업전선에 뛰어들 때 힘들다는 구강외과를 선택했다. 나름 도전이었지만 교수님들께 그리 주목받지는 못했다. 지금도 내가 나름 단골이라고 생각하는 식당에 가도 사장님은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

충동적이고 우발적인 선택의 연속이었으나 인생의 반을 살아온 지금 돌이켜보면 큰 선에 그리 벗어나진 않았다고 생각한다. 있어야 할 곳에 있었고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났다.
그래서 이 1년간의 멈춤은 해야 할 일을 한 것이라 믿고 있다. '잠시 멈춤'이 필요한 것은 '지친 말'일까, '질주하는 말'일까. 50을 눈앞에 둔 시점이었다. 치과의사로선 전성기에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두려움없이 달리다 느닷없이 길이 끊어지는 낭패감을 겪고 싶지 않았다. 열등감에 쩐 나를 긍정하고 스스로 길을 이어붙이기 위한 준비가 필요했고, 사진과 여행을 선택했다.

사진과 여행은 닮아 있다. 사진이 뺄셈의 미학이듯이 여행도 뺄수록 기억에 남고 인생도 덜어낼수록 색이 살아난다. 사진과 함께 하는 여행은 피사체를 찾아다니는 헌터의 자세가 아니고 낯선 곳, 낯선 이들을 통해 거울을 들여다  보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언젠가 호시노 미치오의 '여행하는 나무'라는 책을 본 적이 있다. 한곳에 뿌리내린 나무가 강물을 휩쓸려 바다로 흘러들어가 먼 길을 떠돈 끝에 나무가 자라지 못하는 알래스카의 한 바닷가에서 새들의 쉼터가 되고 자연의 양분으로 되돌아갔다는 일화를 이야기했다. 나는 이 자연의 선순환에 감동했고 이제 그 이름을 빌려 여행을 시작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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