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의 풍경과 하나 된 삶이 보여주는 원초적 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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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울산신문
  • 2020.07.09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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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교의 여행하는 나무] 2. 나미비아 힘바족 마을
붉은 흙으로 치장한 힘바족 소녀의 머리 장식.
붉은 흙으로 치장한 힘바족 소녀의 머리 장식.

끝도 없이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하루였다. 달리는 차 안은 먼지가 자욱했고, 갇힌 모래먼지를 빼기 위해 창문을 열면 새로운 모래먼지가 들어왔다. 차갑지만 빌빌거리며 내 몸에 닿지 않는 에어컨 바람과, 뜨겁지만 내 몸의 열기를 잠시나마 훑어가주는 모래바람 사이에서 끝없이 갈등해야만 했다. 차창 밖으로 황량한 벌판과 그 너머로 보이는 산들이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산과 나 사이에 무한히 존재하는 공기가 태양에 뜨겁게 달궈져 내 시야를 아른아른 흔들어놓아 저 산들을 고흐의 풍경화처럼 만든다. 그 사이에 드문드문 보이는 스프링복스나 오릭스는 그 공기를 타고 마치 춤을 추는 듯하다.

어머니의 머리를 손질하고 있는 딸.
어머니의 머리를 손질하고 있는 딸.
천진난만한 모습의 아이들.
천진난만한 모습의 아이들.

# 가슴을 드러낸 전통의상을 입은 여인들
오후 늦은 시각에 힘바족 마을이 있는 도시 오푸오(Opuwo)에 도착, 마을 사람들에게 선물할 생필품들을 마트에서 구매한 후 바로 힘바족 마을로 이동했다. 먼저 마을의 족장에게 인사를 했는데, 그는 보잘것없는 철제의자에 드러눕다시피 하고 있었지만 세월의 힘으로 위엄을 갖추고 있었다.
아프리카에선 노인 한 명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사라지는 것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사람에서 사람으로 이어지는 지혜를 소중히 생각한다. 
힘바족은 전통적으로 가축을 키우며 반유목 생활을 하기에, 집은 소의 배설물과 진흙을 섞어 소탈하게 지어졌고 집안에는 특별히 가구랄 것도 없다.
한쪽 구석에선 마침 아이들이 시골에서나 볼 수 있는 가마솥을 끼고 앉아 식사 중이었는데, 나를 보더니 뼈다귀 하나를 건넨다. '나 오늘 고기 먹었다' 자랑하는 것인지 아니면 '늦게 와서 먹을 건 없지만 이거라도 빨아 봐'라는 것인지 알 순 없지만, 진지한 그 표정이 귀엽기만 하다. '네 입가에 묻은 것만 떼먹어도 배 부르겠다' 생각하며 자리를 옮긴다.

어른이고 아이들이고 할 것 없이 자신들을 찍은 사진을 손가락으로 넘겨가며 보고 즐거워한다. 물론 여기서도 아저씨들은 과묵하다. 체면을 잃지 않는 방식으로 이방인의 관심을 끄는데, 예를 들면 아들을 보란 듯이 높이 들어 올리며 놀아주는 것인데, 그 몸놀림이 칼을 든 새댁처럼 위태롭고 어설퍼 보인다. 여자들은 마당에 나와 앉아 우리를 반기면서 각자의 일을 하는데, 어머니의 머리를 다듬어 주는 딸의 손길이 예쁘고, 가슴을 드러낸 채 아기에게 젖을 물리는 엄마의 모습도 자연스럽다. 

소년과 소녀의 행동은 강아지와 고양이의 그것처럼 다르다. 소년들은 모여서 자기들끼리 놀다가도 빈틈이 보이면 바로 파고들어 강아지가 주인 주위를 깡총깡총 뛰며 핥아대듯이 내게 장난을 건다.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해대며 자기들끼리 웃음을 터뜨린다. 서로 더 앞에 서려고 싸우기도 한다. 소녀는 호기심과 경계심을 동시에 가진 고양이처럼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반쯤 몸을 가린 채, 무심한 듯 보이지만 낯선 이방인에게 호기심의 끈을 놓지 않고 소리 없이 맴돌고 있다. 두 갈래로 머리를 땋아 이마 앞쪽으로 늘어뜨린 독특한 머리 모양은 결혼을 하지 않은 소녀를 의미한다. 힘바족 여인들은 붉은 색 돌을 갈아 만든 흙과 기름을 섞은 반죽을 땋은 머리에 바르고 정수리에는 아기염소 가죽으로 만든 족두리 같은 걸로 치장하고 있다. 몸에도 붉은 흙을 발라 피부가 검다기보다는 붉다. 가죽으로 만든 짧은 치마가 옷의 전부이고 젖가슴을 다 드러내고 있지만 목걸이나 팔찌 등으로 옷을 대신하고 있다. 여성의 발찌는 지금까지 낳은 아기의 수를 의미한다는데, 여러 엑서사리에도 우리가 모르는 의미들이 있지 않을까 싶다.

힘바족 여인의 전통복장.
힘바족 여인의 전통복장.

# 천진난만한 호기심으로 이방인을 맞은 소년들
어느새 땅거미가 지기 시작하고 게으른 자유를 만끽하던 염소들도 울타리로 향한다. 마을의 울타리 밖에는 하루의 일을 마치고 머리에 보따리를 인 채 집으로 돌아오는 여인의 그림자가 짙게 깔린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이 마을에서는 여자들의 강한 생명력이 느껴진다. 남자들은 대식구에 둘러싸여 그 생명력을 나눠 받은 허수아비처럼 의자와 혼연일체가 되어 있다. 일부다처제인 이 부족은 결혼할 때 남자는 소 세 마리 정도가 필요하다고 하는데, 일단 결혼하고 나면 일은 주로 여자가 하고 남자는 퇴직연금을 받듯 투자금을 회수한다. 바람직한 제도라고 귓속말하고 있을 남성들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이들은 독일 점령 시절 많은 남자들이 싸우다 죽었다고 한다.
일부다처제의 배경에는 항상 이런 피비린내 나는 역사의 그림자가 있다.

다음날 또 다른 힘바족 마을을 새벽부터 방문했다. 원래 이렇게 아침을 일찍 맞는 것인지 우리가 온다고 해서 기다리고 있는 것인지, 불을 피우고 아이들이 모여 앉아 있다. 눈이 마주치기도 하지만 눈길은 이내 나를 스치고 부산하게 돌아다닌다. 바쁜 듯도 하고 아무 할 일이 없는 듯도 하다.

# 전통을 돈벌이로 삼는다는 불편한 시선도
힘바족 마을이라고 해서 모두 전통 복장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학교에 다닐 법한 아이들은 더러 옷을 입고 있었고, 각자 형편에 따라 맨발이거나 운동화를 신고 있기도 했다. 허리에 끈을 매고 아무 천이나 끼워 넣어 타잔같은 복장을 하고 있는 아이들은 장난을 치며 뛸 때마다 귀여운 엉덩이가 살짝 삐져나온다. 성인 여자들만 전통복장을 하고 있었는데, 전통복장을 하고 있다고 해야 할지 전통에 따라 벗었다고 해야 할지 난감한 복장이다.
한 울타리 안에서는 초등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녀가 염소들을 돌보고 있다. 말을 듣지 않는 놈의 뿔을 잡고 안간힘을 써보지만 이내 자기가 뭘 하려던 것인지 잊어버린 무심한 소녀의 표정으로 놈들 사이에 스며든다. 깡마른 덕에 더 커 보이는 몸에 길고 가느다란 팔 다리가 있어야 할 곳을 찾지 못해 흐느적대는 느낌이다. 그 팔을 추스르려는 듯 가슴 앞쪽에 가지런히 모은 모습은 소녀의 수줍음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들을 보고 있자니 운동화에 모자, 카메라까지 맨 내 모습이 불만스러워진다. 이들의 모습은 새벽의 여명, 갓 떠오른 태양의 빛, 대지의 모래, 이 모든 아프리카의 시간, 아프리카의 풍경과 하나가 되어 있었고, 나는 그 아름다운 그림에 실수로 튄 물감 한 방울처럼 어울리지 않았다.

간혹 힘바족 마을을 체험하는 것을 '인간동물원'이라 폄하하며 불쾌했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그들의 주장이 선의에서 나온 것이라 믿고 싶다. 확실히 원주민들은 문명의 혜택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런 생각의 근원이 삶의 가치를 물질적 풍요에만 두고 그것을 잣대로 서열을 매기는 것과 같은 뿌리에서 나온 것은 아닌가 하는 질문을 던져 본다. 혹시 맨발로 혹은 구멍 난 신발을 신고, 헝겊으로 옷을 대신하는 아이들을 보고 우리가 우월하다고 느끼는가? 많은 유럽의 도시들이 관광객의 지갑을 열기 위해 갖가지 페스티발을 열고 현지인들이 지금은 입지도 않는 전통복장을 하고 다닌다고 해서 그들을 동물원의 동물 보듯이 하는 사람이 있는가. 우리는 우리의 가치와 리듬으로, 그들은 그들의 가치와 리듬으로 산다. 아프리카의 리듬으로 살아본 적 없는 이가 그것을 평가할 수는 없다.

이웃부족과 친밀하게 지내는 힘바족 여인.
이웃부족과 친밀하게 지내는 힘바족 여인.

# 그들도 나도 서로의 가치대로 살아가는 것일 뿐
진정한 의미의 여행은 사라졌다고들 한다. 세상에는 이미 정보가 넘쳐나고 오지는 사라졌으며 여행지는 비슷비슷해졌다. 어쩌면 힘바족 역시 원초적 향수를 느끼고 싶어 하는 관광객들에게 원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생계의 한 방편을 삼는지도 모른다. 이방인이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보는 일은 불가능해졌다. 요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태도에 달려 있다. 이들이 내가 가진 스마트폰의 터치스크린을 이해하듯이 나도 이들이 왜 진흙으로 머리를 장식하는지, 왜 젖가슴을 드러내고 다니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들도 흔치 않은 동양인을 궁금해 하고 만나고 싶어 하며, 여기에 동물원의 울타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서영교 (1971년생, 현 CK치과병원 원장. 울산대 평생교육원 사진창작반 수료단체 및 그룹전 7회) class614@naver.com
서영교 (1971년생, 현 CK치과병원 원장. 울산대 평생교육원 사진창작반 수료단체 및 그룹전 7회) class61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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