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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인해 닫혔던 하늘길이 열리면서 사진가 일행과 함께 일본 속의 또 다른 일본! 홋카이도(北海道)로 올해 2월에 7박 8일 일정으로 사진 여행을 떠났다.

홋카이도(北海道)는 일본 열도의 최북단에 위치한 본슈(本州) 다음으로 큰 섬으로 일본 열도의 약 20%를 차지하고 있다. 세계의 섬 중에서는 아일랜드에 이어 21번째 규모이며 남한의 83%에 해당한다. 전체 인구는 약 530만 명이고 도청 소재지인 삿포로에 약 196만 명이 살고 있다. 또한 전체 면적의 70%가 국립공원으로 지정될 만큼 사계절 경관이 뛰어나다. 눈의 고장답게 삿포로의 경우 1월엔 하루 이틀 빼고 매일 눈이 내리고 연간 적설량은 630cm로 제설 비용만 하루에 약 1억 3천만 엔이 든다고 한다. 어디서나 제설 차량을 볼 수 있으며, 집집마다 삽이나 손수레는 기본이고 엔진이 달린 제설기구도 갖추고 있다. 홋카이도의 겨울은 눈으로 시작해서 눈으로 끝난다는 말이 실감이 났다. 

 

언덕이 아름다운 설경의 비에이(美瑛)!

비에이 오무라(大村) 언덕. ⓒ이상원
비에이 오무라(大村) 언덕. ⓒ이상원

홋카이도에서의 촬영 여정은 사륜구동 승합차를 렌트하여 신치토세공항에서 비에이(美瑛)로 이동해서 시작되었다. 코로나 사태가 풀리면서 겨울 성수기에 비에이 지역에서 숙소 잡기가 어려운데 다행히 시로가네온천(白金溫泉) 마을에 호텔을 잡을 수 있었다. 비에이는 인구 1만 명이 채 안 되는 작은 마을로 농업이 주산업이다. 일본의 가장 아름다운 마을 연합에 가입되어 있는 마을이기도 하다. 한국인에게 인기가 있어 삿포로와 함께 이곳에서는 한국인 단체 관광객을 많이 만나게 된다.   

 

크리스마스트리 나무(クリスマスの木)! 

비에이 '크리스마스트리 나무의 야경'. ⓒ이상원
비에이 '크리스마스트리 나무의 야경'. ⓒ이상원

광활한 설원에 홀로 서있는 한 그루의 ‘크리스마스트리!’ 첫날 숙소로 가던 중 어둑해진 시간에 그 나무를 마주했을 때 갑자기 함박눈이 펑펑 쏟아졌다. 눈 때문에 사진은 제대로 찍을 수 없었으나 멀리서 온 나그네를 환영하는 축복의 눈처럼 여겨졌다. 이튿날 새벽 5시에 호텔을 나서 영하 14도의 추위 속에 으스름한 달빛을 받은 그 나무를 다시 촬영을 했다. 낮이면 수많은 관광객의 인정샷 모델이 된다. 

 

청의 연못(靑い池, 아오이이케)!

비에이 청의 연못(靑い池) 야경. ⓒ이상원

화산 분화로 주변 마을을 지키기 위해 제방을 쌓는 과정에서 생긴 인공연못이다. 겨울을 제외한 계절의 맑은 날엔 연못의 물이 우윳빛 푸른 색이라 ‘신비의 연못’이라 불린다. 애플 맥북의 배경화면으로 쓰여져 유명해졌다. 밤엔 조명이 켜지고 일정 간격으로 조명의 패턴이 바뀐다. 꽁꽁 언 연못에 쌓인 눈 위에 야생동물이 지나간 자국이 보이고, 낙엽송 고사목이 조명을 받아 긴 그림자가 드리워져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흰 수염 폭포(白髥の滝, 시라히게노타키)!

비에이 '흰 수염 폭포(白髥の滝,)'. ⓒ이상원
비에이 '흰 수염 폭포(白髥の滝,)'. ⓒ이상원

겨울에도 얼지 않는 흰 수염을 연상시키는 폭포와 푸른색의 비에이강(美瑛江)의 조화가 아름다운명소이다. 날씨가 맑아서 눈이 쌓인 주변의 풍경과 흰 수염의 물줄기, 푸른 강물, 멀리 활화산인 도카치다케(十勝岳)의 연봉에서 뿜어져 나오는 화산 연기까지 담을 수 있어 행운이었다. 

 

오야코 나무(親子の木)!

비에이 오야코 나무(親子の木). ⓒ이상원
비에이 오야코 나무(親子の木). ⓒ이상원

큰 나무 두 그루 사이에 키가 작은 나무가 서 있는 모습이 부모와 자식 같다고 이름 붙여진 떡갈나무 가족이다. 설경과 함께 멀리서 보는 게 아름답다. 

 

호쿠세이오카 전망공원(北西の丘展望公園)!

비에이 호쿠세이노오카 전망공원(北西の丘展望公園)의 아침. ⓒ이상원
비에이 호쿠세이노오카 전망공원(北西の丘展望公園)의 아침. ⓒ이상원

광활한 언덕에 쌓인 아무도 밟지 않은 숫눈이 아침햇살을 받아 빛나는 모습을 숨가쁘게 담으며 행복했다. 눈 속에 서있는 나무들은 참으로 기품이 있고, 당당했다. 
 
비에이는 구릉과 언덕이 많아 눈 속에 서있는 나무는 모두 훌륭한 모델이 된다. 실제 광고 모델이 되어 유명해진 ‘세븐스타 나무(セブンスタの木)’, ‘캔과 메리의 나무(ケンとメリ-の木)’ 등도 많은 관광객이 찾고, 사진을 찍는다. 안타깝게도 많은 이의 사랑을 받던 ‘철학의 나무(哲學の木)’, ‘마일드세븐 언덕의 나무(マイルドセブンの木)’는 무단침입하는 관광객들 때문에 주인이 베어버렸다고 한다. 

지금은 온통 눈이 덮여 있지만 4월이 되어 눈이 녹으면 비에이의 언덕은 새로운 생명력으로 거듭날 것이다. 토쿄보다 한 달 늦은 5월에 벚꽃이 피고, 7월엔 감자꽃이 필 것이다. ‘시키사이의 언덕(四季彩の丘)’, ‘제부르의 언덕(ぜぶるの丘)’ 등 여러 언덕에는 수많은 작물과 꽃들이 패치워크처럼 채워지고, 푸른 풀밭, 꽃동산, 아득한 산자락이 어우러져 멋진 풍광을 뽐내리라. 

 

낭만의 도시, 오타루(小樽)!

오타루 오타루운하의 야경. ⓒ이상원
오타루 오타루운하의 야경. ⓒ이상원

삿포로에서 40km 떨어져 있는 인구 12만 명의 홋카이도 서부의 도시이다. 오타루는 아이누족의언어로 ‘모래 속에 흐르는 강’이라는 의미이다. 전기가 없을 때 불을 밝힐 유리로 된 가스등을 만들고, 청어잡이용 유리 어구를 만들면서 유리 공예가 발달하게 되었다. 한때는 중요한 물류도시였으나 경제의 중심이 인근 삿포로로 이동하면서 재정이 어려워져 도시의 건물을 고칠 수 없게 되어 오래된 건물이 예전의 모습 그대로 보존되게 되었다. 그 건물들은 다양한 예술가들의 공방으로 재탄생 하면서 공예 예술이 발달하게 되었다. 또한 여긴 오르골의 본고장이다. 상점이지만 오타루 여행의 필수 코스의 하나인 <오타루 오르골당(小樽オルゴ-ル)>은 1912년 홋카이도 미곡회사의 건물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고, 1만5천여 점의 오르골이 전시되어 있다. 단순한 장난감이 아니라 멋진 예술품임을 확인하게 된다. 전에 왔던 여행에서 들었던 아름다운 오르골의 멜로디가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오타루는 안타까운 첫사랑 이야기인 영화 ‘러브 레터(Love Letter)’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다. 순백의 설원에서 산을 향하여 여주인공이 외치던 ‘오겡끼데스까(おげんきですか)’가 귀에 쟁쟁하다.

오타루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오타루운하이다.

일정상 밤에 도착했을 때 마침 눈이 내리고 있었다. 운하를 따라 늘어선 옛 창고 건물 지붕엔 눈이 두껍게 쌓여 있고 처마엔 고드름이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산책로 옆 높게 쌓인 눈 속에 켜진 많은 양초가 운치를 더했고, 운하 옆 산책로에 해질녘부터 켜지는 63개의 가스등이 은은하게 불을 밝혀 낭만의 밤 풍경으로 만들었다.  

밤새 또 많은 눈이 내렸다. 우리나라 기준으로 본다면 폭설로 도로가 마비될 상황인데, 스노우 타이어를 장착한 차들은 별 사고 없이 잘 움직이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캄캄한 새벽 5시에 무거운 카메라 가방을 챙겨 눈길을 달려 촬영 포인트를 찾아갔다. 그 시간에 이미 큰 길뿐 아니라 인가가 있는 오지 마을에도 제설차량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샤코탄미사키(積丹岬)의 촛대바위(ろうそく岩, 로소쿠이와)!

오타루 사코탄미사키(積丹岬)의 촛대바위(ろうそく岩). ⓒ이상원
오타루 사코탄미사키(積丹岬)의 촛대바위(ろうそく岩). ⓒ이상원

낮은 기온 때문에 바위엔 바닷물이 얼어 붙어 있고, 바위 주위의 파도는 높았다. 눈이 내리다가 햇살이 비쳤다.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거기엔 아무도 없었다. 일반 관광객이 눈으로 차량 운행이 쉽지 않은 이 바닷가에 새벽 일찍 찾아 오겠는가. 우린 참으로 별난 사람들이었다. 

 

요이치(余市) 해변의 ‘에비스 바위(エビス岩)’!

오타루, 요이치(余市) 해변의 에비스바위(エビス岩)’. ⓒ이상원
오타루, 요이치(余市) 해변의 에비스바위(エビス岩)’. ⓒ이상원

이 바위에도 눈이 쌓여 있었다. 곧 넘어질 것 같은데도 오랜 세월을 견디고 있는 바위의 모습이 신비로웠다. 여기서도 눈이 내리다가 다시 햇살이 비쳤다. 언덕에 올려진 작은 배에도 눈이 가득 쌓여 있었다. 새벽부터 찾아와 늘 보는 그 바위를 앞에 두고 열심히 사진 찍고 있는 우리 일행을 근처 민가의 노인이 눈을 치우다가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는 듯 했다. 

일정 내내 대부분 새벽 일찍 나갔다가 저녁에 호텔로 들어오는 강행군의 연속이었다. 숙소 밖에는 가게도 없을뿐더러 모든 가게가 일찍 문을 닫아 나갈 수도 없는 상황에서 온천욕을 할 수 있어 그나마 괜찮았다. 뜨거운 온천수와 영하 10도가 넘는 추위 속에 노천탕에 들어가 그나마 느긋하게 얼마간의 시간을 보내고, 일행과 함께 홋카이도 한정 판매인 ‘삿포로 클래식 캔 맥주’를 마시는 것이 이번 여행의 또 하나의 묘미였다.

이상원 사진가 swl5836@naver.com
이상원 사진가 swl5836@naver.com

나이가 들어 대자연의 멋진 풍광을 만날 때마다 언제 이런 장면을 다시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 법! 여행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서 당장 누릴 수 있는 작은 기쁨과 행복을 기약 없는 먼 훗날의 큰 행복을 위해 미루지 말라는 것이 아닐까 싶다. 

청춘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여행길에 나서 다양하게 즐기는 모습이 부러웠다. 우리 일행은 각종 카메라 장비를 들고 힘들게 다니면서 좋은 작품 하나 찍겠다고 오로지 피사체에만 집중하는데 어느 곳에서나 그들은 자신들의 모습을 스마트폰으로 유쾌하게 담기에 바빴다. 다시 가더라도 만나기 어려운 멋진 장면 앞에서 흔한 기념사진 한 장 남기지 못한 채 급하게 카메라를 챙겨 이동해야 했다.

참으로 바보 같은 짓이었다. 결단이 필요하겠지만 다음에 여행을 간다면 카메라를 아예 두고 스마트폰 하나만 들고 떠나면 좀 더 자유롭고 여유로울 수 있을까. 욕심을 내려놓는 것!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화두(話頭)이다! 이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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