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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거의 내리지 않는 울산에도 올 11월 중순 첫눈이 내렸다. 많이 쌓이지 않았고 햇살에 오래지 않아 녹았지만 그 눈이 반가웠다. 펑펑 쏟아지는 눈, 세상을 온통 하얗게 덮어버리는 설경이 새삼 그리웠다. 눈보라 속에서 매서운 강추위를 견디며, 설경 촬영을 위해 갖은 애를 다 썼던 지난 날들이 머리를 스쳐갔다. 이제는 체험할 수 없는 일이기에 더욱 소중한 추억이었다. 내 가슴은 다시 뛰기 시작했다. 그 설경에 이야기를 담아본다. 

아아~! 백두산!

백두산 북파에서 바라본 연봉(連峰)의 설경과 천지(天池) 풍경. ⓒ이상원
백두산 북파에서 바라본 연봉(連峰)의 설경과 천지(天池) 풍경. ⓒ이상원

우리 한민족의 영산(靈山), 백두산을 떠올리면 먼저 ‘아아~!’ 감탄사부터 나온다. 여러 백두산 봉우리와 천지의 다양하고도 경이로운 풍경에 늘 감동했기 때문이다. 2004년 6월, 처음으로 백두산에 갔던 날, 봉우리 사이에 눈이 남아 있고, 푸른 하늘에 구름이 떠있는 쾌청한 날씨였다. 북파(北坡) 관할 관계자의 허락을 얻어 천문봉 아래 천지수면으로 내려 갔을 때 백두산의 대표적인 야생화인 노랑만병초와 좀참꽃이 만발해 있었다. 눈 녹은 천지의 차가운 물에 발을 담그고 건너편에 바로 보이는 북한 쪽 봉우리들을 애절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첫 출사에 최고로 좋은 날씨를 만나 환상적인 사진을 찍었으니 엄청난 행운이었다. 그 뒤 사계절 모두 갔을 때도 좋은 날씨를 만나는 행운은 이어졌고, 그 행운에 늘 감사하곤 했다. 안개 낀 날이 연중 240일이나 되어 일반 관광객이 맑은 천지를 볼 수 있는 확률은 20% 정도라고 하는데도 말이다.   

백두산 북파 달문에서 촬영한 천지수면의 겨울 풍경. ⓒ이상원
백두산 북파 달문에서 촬영한 천지수면의 겨울 풍경. ⓒ이상원

2010년 11월 초, 사진을 찍기 위해 백두산에 갔을 때 마침 많은 눈이 내렸다. 북파 천문기상대에서 숙식을 하고, 새벽 일찍 천문봉(해발 2,670m)에 오르니 여명이 밝아 오면서 북한 쪽의 백두산 최고봉인 장군봉(해발 2,744m)과 눈 덮인 남파, 서파의 여러 봉우리들이 환하게 인사를 하는 듯 했고, 군청색의 천지는 어둠에서 막 깨어나고 있었다. 달문으로 내려가 마주한 천지수면(해발 2,190m)은 아직 얼기 전이라 바람에 출렁였고, 물이 넘나드는 바위 부분은 얼고, 아래에는 얼음 구슬이 조롱조롱 예쁘게 달려 있었다. 

한때는 백두산은 일부 사진가들에게 인기가 있었을 뿐 중국인 관광객은 거의 오지 않아 무척 한적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백두산이 중국인들 사이에 최고의 인기 관광지가 되어 사계절 내내 인파로 붐비고 있고, 이로 인해 백두산은 몸살을 앓고 있다. 또한 천지수면 출입과 산행은 일절 금지되었다. “어휴~! 백두산!”
 

정초에 지리산 천왕봉에서 만난 최고의 일출과 설경!

지리산 천왕봉(해발 1,915m)에서 만난 일출, 상고대와 설경. ⓒ이상원
지리산 천왕봉(해발 1,915m)에서 만난 일출, 상고대와 설경. ⓒ이상원

국립공원 제1호인 지리산은 종주도 여러 차례 했고, 사진을 찍기 위해 혼자 야영도 하면서 정상인 천왕봉(해발 1,915m)에만 스무 번 정도 올랐다. 지리산 정상에서는 ‘3대(代)가 적선(積善)을 해야 일출을 볼 수 있다’는 속설이 있는데, 나는 그 일출을 여러 번 보았으니 잇달은 행운을 만난 셈이다.

2005년 정초에 지리산 정상 천왕봉(해발 1,915m)에서 맞은 일출, 상고대와 설경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히 남아있다. 새해 첫날 장터목대피소에서 어렵게 자리를 구해 1박을 하고, 다음 날 새벽 3시에 출발해 눈보라를 헤치고 천왕봉을 거쳐 중봉에 도착하니 안개가 자욱했다. 필름 카메라 시절, 무거운 카메라 장비와 방한 채비로 배낭의 무게는 25kg이 넘었고, 바람까지 세게 불어 체감온도는 영하 30도가 넘었다. 눈 속에 빠져 감각이 없어져 가는 발을 계속 움직이며 안개가 걷혀 일출을 볼 수 있기를 기다렸다. 추위를 견디기 위해 휴대용 금속 위스키통에서 일행과 양주를 1잔씩 나눠 마시면서 40도의 독한 술이 식도를 타고 내려갈 때 느껴지던 짜릿한 기분은 지금도 생생하다.

지리산 천왕봉의 운해와 구상나무 설경. ⓒ이상원
지리산 천왕봉의 운해와 구상나무 설경. ⓒ이상원

짙은 안개가 서서히 걷히면서 먼산 위로 해가 떠오르자 안개에 살짝 가려진 천왕봉과 함께 햇살에 붉게 물던 설화와 상고대가 눈 앞에 장엄하게 펼쳐졌을 때 그 감동! 그 장면을 놓치지 않으려고 이곳 저곳 옮겨 다니면서 숨가쁘게 사진을 찍었던 그날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지금은 내 체력이 그때와 같지 않고, 지리산에도 지구 온난화로 눈이 많이 내리지 않아 그런 사진을 다시 찍기 어려워졌다.
 

설악산은 나의 스승!

설악산 용아장성의 설경. ⓒ이상원
설악산 용아장성의 설경. ⓒ이상원
설악산 용아장성의 설경과 동해의 여명. ⓒ이상원
설악산 용아장성의 설경과 동해의 여명. ⓒ이상원

설악산은 또 얼마나 많이 갔던가. 치열한 직장생활을 하면서 피폐해진 심신을 주말에 설악산을 산행하고 사진을 찍으며 치유했고,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길렀다. 20번은 족히 올랐을 설악산 정상 대청봉(해발 1,708m)에서 힘들게 산에 오른 자에게만 주어지는 선물인 희열을 얻곤 했다. 날씨가 수시로 변하는 설악산에서 마음에 드는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한 순간을 위해 기다리며 인내를 배웠고,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오랜 기다림 끝에 하늘이 잠깐 허락해준 환상적인 장면에 감사했고, 끝내 촬영에 성공하지 못했을 때엔 세상의 일이 욕심을 부린다고 다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설악산은 나를 키워준 스승이었다. 

2007년 2월, 눈이 내린 날 설악산에 갔을 때 하늘은 잔뜩 찌푸려 설경 사진 찍는 걸 호락호락하게 허락하지 않았다. 소청대피소에서 숙박을 하며 계속 기다려서 촬영 포인트를 찾은 끝에 용아장성의 설경을 촬영할 수 있었다. 
 

폭설 속에 3시간을 기다려 촬영한 한라산 설경!

한라산 윗세오름 선작지왓 설경. ⓒ이상원
한라산 윗세오름 선작지왓 설경. ⓒ이상원

2008년 12월, 한라산에 폭설이 내린 날, 새벽에 어리목 코스로 한라산 산행을 시작했다. 사제비동산 약수터부터는 쌓인 눈 때문에 길이 보이지 않아 무릎까지 빠지는 눈을 다져가며 길을 만들어야 했다. 만세동산을 지나 힘겹게 윗세오름대피소에 도착하니 안개가 자욱했다. 허기진 배에 컵라면 하나, 커피 한 잔, 육포 한 쪽은 그야말로 만찬이었다. 대피소 안에서 기다리는 동안 108배 절을 했다. 매일 108배를 하던 때였고, 그날도 절을 하며 기도를 했다.

3시간을 기다리니 안개가 걷히고, 파란 하늘이 드러나며 해가 얼굴을 내밀었다. 눈길을 헤치고 광활한 설원, ‘선작지왓’에 서니 흰 눈의 천지가 펼쳐졌다. ‘선작지왓’은 윗세오름대피소에서 영실 가는 쪽에 있는 넓은 평원으로 제주도 말로 ‘작은 돌들이 널려있는 벌판’이란 뜻이다. 큰 구상나무가 눈을 뒤집어 쓴 당당한 모습이 백록담 외벽 왕관바위 설경과 함께 멋진 주인공이었다. 눈 속의 작은 나무가 모두 빛나는 조연이었다. 구상나무가 눈을 뒤집어 쓰고 만든 터널을 고개 숙여 걷는 재미도 쏠쏠했다. 새벽부터 무거운 카메라 장비를 메고 눈 위에 길을 만들며 부지런히 올라와서 포기하고 않고 기다린 덕분에 일생에 다시 볼 수 있을까 싶은 자연의 선물이자 하늘의 축복을 받았다. 경쾌한 카메라 셔터 소리를 원 없이 설원에 남기며 손맛을 제대로 보았다. 

한라산 만세동산 설경. ⓒ이상원
한라산 만세동산 설경. ⓒ이상원

동아일보 조성하 여행전문 기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 겨울에 흰 눈 덮인 한라산 설경을 두루 살피지 않은 이가 있다면, 삼천리 금수강산의 화려한 자연을 품평할 자격이 없음을 알아두시라...’ 그는 또 ‘윗세오름의 선작지왓 눈꽃 설원 트레킹은 죽기 전에 해봐야 할 여행, 순위 1번에 놓을 만한 비경 코스’라고도 했다. 

생에 한번은 한라산 설원에 서서 자연이 주는 고귀한 선물을 마음껏 즐겨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한라산에 눈이 몽땅 사라지기 전에…... 
 

눈 내린 덕유산 정상에서 찍은 별사진!

덕유산 향적봉(해발 1,614m)에서 바라본 설경과 운해가 깔려 있는 능선의 파노라마 풍경. ⓒ이상원
덕유산 향적봉(해발 1,614m)에서 바라본 설경과 운해가 깔려 있는 능선의 파노라마 풍경. ⓒ이상원

대학교 2학년 겨울방학에 친구와 둘이서 전국을 배낭여행을 할 때, 무주 구천동 백련사에서 폭설이 내려 쌓인 덕유산을 처음으로 올랐다. 먼저 눈길을 걸어간 한 산악인의 발자국이 좋은 길잡이가 되어 주었다. 제대로 된 장비도 갖추지 않은 채 눈에 푹푹 빠져가면서 겁 없이 그 설산에 올랐던 내 청년 시절의 풋풋함이 새삼 그리워진다. 

수많은 덕유산 출사 중에서 2015년 12월, 눈이 많이 내린 날, 숙소로 정한 향적봉대피소에서 한밤중에 혼자 카메라 장비를 챙겨서 향적봉(해발 1,614m)에 가서 추위 속에 별사진을 찍었던 일을 잊지 못한다. 북두칠성을 보고 북극성을 찾아 그 방향으로 튼튼한 삼각대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노출을 맞춘 후 30초마다 별의 궤적을 담을 수 있게 연속 촬영 모드로 설정을 했다.

덕유산 향적봉(해발 1,614m)에서 2시간 30분 동안 촬영한 별 궤적. ⓒ이상원
덕유산 향적봉(해발 1,614m)에서 2시간 30분 동안 촬영한 별 궤적. ⓒ이상원

그 다음은 별의 궤적이 담길 수 있게 2시간 이상을 기다리는 것! 캄캄한 밤에 눈이 쌓인 덕유산 정상에서 혼자 2시간 이상을 보내는 것은 쉽지 않았다. 두꺼운 외투로 무장을 해도 작은 틈새로 파고드는 칼바람에 몸은 으스스 떨렸고, 무척이나 외로웠다. 그때 끊임없이 몸을 움직이며 동요까지 포함해 아는 노래 수십 곡을 불렀다. 나중에 별사진을 합성해서 완성했을 때 다양한 빛깔의 별 궤적이 그려진 하늘 아래에는 작은 불빛과 차의 헤드라이트 등 사람들의 흔적이 오랫동안 모여 거대한 불의 바다를 이루고 있었다. 

어두운 밤이 지나고 새벽에 그 자리에 다시 섰을 때 눈 앞에 펼쳐진 상고대와 설경, 운해가 깔린파노라마 능선이 또 다른 절경이었다. 
 

태백산 주목 군락의 설경!

태백산 주목군락의 설경. ⓒ이상원
태백산 주목군락의 설경. ⓒ이상원

2008년 3월 초, 태백산에 많은 눈이 내린 주말, 새벽에 태백산에 올랐을 때는 안개가 자욱하고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정상인 장군봉(해발 1,561m) 옆 천제단 근처에서 웅크리고 앉아 날씨가 맑아지기를 무작정 기다렸다. 다행히도 눈이 그치고 하늘이 트여 햇살이 비추기 시작했다. 태백산 겨울 사진의 주인공은 단연 설경과 주목 군락이다. 주목은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生千年 死千年)’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생명력이 강한 나무이다. 살아 있는 주목 옆에는 죽어 있는 주목이 있기 마련이라 사진가들은 그 나무들을 ‘생(生)과 사(死)’라고 부르곤 한다. 주목 군락에서 ‘생과 사’ 나무가 눈을 잔뜩 뒤집어쓰고 멋진 드라마를 펼치고 있었다. 촬영과 감독을 겸하며 그 장면을 신나게 찍었다. 

 

눈(雪) 이야기

눈의 모양은 흔히 육각형으로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6,000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또한 눈의 종류도 다양하여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눈’과 관련된 표준어만 추려도 30개가량 된다. ‘서설(瑞雪)’은 상서로운 눈이라는 뜻으로 연말연시 포근한 느낌이 나게 내리는 눈이고, ‘함박눈’은 큰 박꽃같이 내리는 하얀 눈, 기온이 낮을 때 내리는 쌀알 같은 눈은 ‘싸라기눈(싸락눈)’, 잘게 내리는 눈은 ‘가랑눈’, 가루처럼 작은 알갱이로 내리는 눈은 ‘가루눈’, 갑자기 쏟아지다가 곧 그치는 눈은 ‘소나기눈(소낙눈)’, 밤 사이 사람들 모르게 내리는 눈은 ‘도둑눈(도적눈)’이라고 한다. ‘자국눈’은 발자국이 겨우 날 만큼 적게 내린 눈, ‘포슬눈’은 가늘고 성가게 내리는 말을 일컫는다. 비가 섞이지 않고 내리는 눈은 ‘마른눈’, 비와 섞여 내리는 눈은 ‘진눈깨비’, 들판에 한 길이나 되게 많이 오면 ‘길눈(잣눈)’, 발등까지 빠지게 내리는 눈은 ‘발등눈’, 눈이 많이 쌓인 가운데 길은 ‘눈구멍길’, 눈이 와서 쌓인 상태 그대로의 깨끗한 눈은 ‘숫눈’, 온 세상을 하얗게 뒤덮은 눈 위를 아무도 지나가지 않은 길은 ‘숫눈길’이라고 한다. ‘풋눈’은 추겨울에 조금 내리는 눈, ‘복(福)눈’은 복을 가져다주는 눈이라는 뜻으로 겨울에 많이 내리는 눈을 이르는 말이고, ‘눈갈기’는 말갈기처럼 흩날리는 눈보라, ‘눈보라’는 거센 바람에 불려 드세게 휘몰아치는 눈, ‘눈설레’는 눈이 내리면서 세찬 바람이 몰아치는 현상을 말한다. ‘만년설’은 추운 지역이나 높은 산에 늘 녹지 않고 쌓여 있는 눈으로 도전과 경이로움의 대상이다. ‘상고대’는 서리가 나뭇가지에 매달려 얼어붙은 것으로 순수한 우리말로 나무서리, 얼음꽃으로도 불린다. 

우리나라엔 눈이 점점 내리지 않아 다양한 이름대로의 눈을 볼 수 있는 기회는 없어지고 있다. 내 어릴 적엔 울산에도 눈이 많이 왔고, 40년 전 2월, 결혼 직후 아내가 시골집으로 어른들께 처음 인사를 왔을 때도 함박눈이 쏟아졌었다. 지금은 기상 이변에 따른 일부 지방에 폭설이 내리기도 하나 전국적으로 눈이 많이 내리고 않고 있고, 고산에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첫눈이 오는 날 만나자’는 약속, 눈사람을 만들고, 눈싸움을 하던 아름다운 추억이 점차 사라져 가고 있다. 

한 송이 한 송이의 눈이 내려 나뭇가지에 소복소복 쌓여갈 때 한 송이가 더 내려앉는 순간 나뭇가지는 ‘뚝’하고 부러져 버린다. 가벼운 눈 한 송이의 무게로 큰 나뭇가지도 꺾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눈 한 송이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세상을 바꾸는 민초의 힘도 그러하지 않을까 생각해보았다. 

눈이 많이 내리면 교통대란이 일어나고, 농촌지역에서는 축사나 시설 하우스 붕괴 등 큰 피해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러나 눈은 다양한 기능을 한다. 눈은 식수와 농업용수 공급에 도움이 주어 가뭄을 방지한다. 또 습도를 높여 황사와 미세먼지, 가축 구제역이나 조류 인플루엔자(AI)를 방지한다. 한편 땅에서 나오는 반사열을 품어 식물의 싹을 보호하고, 무기성분을 포함한 눈 녹은 물이 토양에 스며들어 농작물의 생장에도 도움을 준다. 흡음재 역할을 해서 소음을 줄여주기도 한다. 무엇보다 최근 큰 재앙이 되고 있는 산불을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사람에게 주는 정서적 효과 외에도 눈이 필요한 이유이다.  

시인 김광균은 193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인 <설야(雪夜)>에서 눈 내리는 밤을 ‘머언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로 표현했다. 눈 관련 시를 말할 때 흔히 떠올리게 되는 구절이다. 다양한 해석들이 있지만 난 그저 이 시를 가슴 속에 품는다. 

이상원 사진가 swl5836@naver.com
이상원 사진가 swl5836@naver.com

고요하고 포근하고 복스러운 눈이 가끔씩 내려 모두가 설레고, 어릴 적 기억을 새록새록 떠올리며 행복해 하고, 삶에 지친 사람들이 기쁨과 위로를 얻었으면 좋겠다. 새하얀 눈이 혼탁한 세상을 덮어버리고, 소음과 잡음도 품어 버려서 그때만이라도 아름답고 평화로운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눈이 탐스럽게 내리거든 가는 길이 번거롭고, 힘들더라도 눈 덮인 산에 꼭 한번 가보시길…!

거기서 부지런한 자에게 주어지는 자연의 선물을 얻게 되리니, 그것은 빛나는 상고대와 설경이 펼치는 새롭고 신선한 풍경을 만나고, 느끼게 되는 환희 아니겠는가. 눈을 밟을 때 들리는 뽀드득거리는 소리로 겨울산과 대화하며 마음은 풍요로움으로 채워져, 가슴을 짓누르는 돌덩이, 복잡한 세상사도 잠시 내려놓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설원을 훑고 지나가는 매서운 바람에 마주선 자신을 따뜻하게 보듬을 수 있으리라. 이상원 swl583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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