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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케티 츠민다 사메바 교회 Gergeti Trinity Church.
게르케티 츠민다 사메바 교회 Gergeti Trinity Church.

조지아, 이름도 생소한 이 나라가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조차 몰랐던 조그마한 땅! 그러던 어느 날, 아름다운 흑해를 품고 프로메테우스의 신화를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며 인정이 넘치는 나라임을 알게 되었다. 그날 이후 어린애가 인형을 안고 자듯이 날마다 조지아를 품에 안고 잤다. 그것도 몇 달을 끙끙 앓듯이 뒤척이다 끝내 주섬주섬 짐을 챙기고 무작정 집을 떠났다. 

 그곳 5월은 우기, 아직 끝나지 않은 코로나, 그러나 이런저런 이유를 갖고 내 발걸음을 붙잡고 싶지 않았다. 마치 첫사랑을 만나러 가듯 설렘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되었고 즐거움이었다. 그곳에서 많은 사람을 만났고, 이웃의 다정한 환대와 해맑은 미소, 70년대 우리네 시골처럼 풋풋한 정과 따스한 웃음에 그만 헤어나올 수 없는 깊디깊은 매력에 풍덩 빠지고 말았다. 돌아와서도 그들을 잊지 못해 1년을 참지 못하고 재방문을 했다. 다시 만난 그들과의 재회는 평생 잊지 못할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으며, 나는 어느새 조지아를 알리는 전도자가 되어 있었다. 감마르조바, 조지아! (반갑습니다, 조지아!) 

조지아 상공에서 내려다 본 수도 트빌리시 풍경.
조지아 상공에서 내려다 본 수도 트빌리시 풍경.

몇달 끙끙 앓듯이 뒤척이다 주섬주섬 짐을 챙겨

 끝없는 사막 같은 광활한 산맥 위로 지나가고 있다. 여기가 어디쯤일까. 지구의 크기를 깊이 가늠해 본 적이 없었던 터라 상상이 되지 않는다. 티베트 고원쯤일까, 아니면 카스피해를 지나고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에 뒤척이는데 그때쯤에서야 창가에 앉은 남자가 눈에 들어온다. 새벽을 지나고 있으니 모두가 꿈속이었지만, 쉬이 잠을 청할 수 없는 건 둘 다 같은 마음이었으을까. “어디까지 가십니까?" 가장 평범하고도 멋없는 질문이었다. 그는 웃으며 “로마로 갑니다." 이탈리아 로마로 간다는 그는 머리를 다 밀었다. '스님인가?' 아니면 '자기만의 스탈인가?' 나보다 열 살쯤은 젊어 보이는 그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스님이 아니라 신부님이었다. 카톨릭에 대해선 잘 모르니 그냥 이해인 수녀님으로 화재를 올렸더니 신부님은 그분과 친하다며 같이 찍은 사진이랑 나눈 문자를 보여준다. 

 내 문학의 첫 출발도 수녀님의 시집을 읽으며 꿈을 키웠으니 함께 대화가 즐겁다. 로마로 유학을 떠나는 길이라며 5년 정도 머물 거란다. 평범한 청년에서 뜻이 있어 사제의 길로 턴을 했다는 그는 조용하고 눈빛이 맑았다. 더디 가던 시간이 우리의 조곤조곤한 대화 속에 어느덧 터키 상공을 지나고 있는지 곧 이스탄불 공항에 도착한다는 기내 방송이 나왔다. 

감쪽같이 사라졌던 여권이 왜 뒷주머니에

 겸연쩍은 눈인사를 나누고 헤어지기가 무섭게 나는 냅다 뛰었다. 환승 시간까지는 1시간밖에 여유가 없다. 비행기 놓치는 것이 이번 초행길을 준비하면서 가장 큰 걱정이었다. 영어도 잘 모르는 데 국제 미아가 되면 어쩌려나. 처음 외국 여행인데 가이드도 없이 무식해서 용감했다. 뛰고 뛰어 그 큰 이스탄불 공항을 휘저으며 겨우 게이트에 도착했다. 이미 긴 줄에 간신히 끼어 내 차례가 돌아왔다. 간단한 짐가방을 검색대로 통과시키고 여권을 찾는데 아뿔싸! 여권이 없다. 분명히 방금 손에 들고 있었던 기억이 나는데…. 하늘이 쿵, 가슴팍으로 떨어지는 기분이다. 아무리 웃옷을 뒤지고 다시 가방을 샅샅이 수색해도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다. 공항 직원은 그 많은 사람을 다 비켜 세우고 검색대 작동기마저 멈춘 채 기계 밑까지 샅샅이 뒤졌다. 모두가 여권을 찾느라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는데 나는 어찌할 바를 몰라 발만 동동거렸다. 아직 최종 목적지의 땅도 밟지 못했는데 여기서 어쩌란 말인가. 이렇게 쉽사리 소매치기라도 당한 걸까, 헐레벌떡 달려오면서 떨어뜨린 건지, 도무지 생각이 돌아오지 않았다. 

트빌리시 국제공항에서의 필자.<br>
트빌리시 국제공항에서의 필자.

 

 그때 문득 연암(박지원)이 도강록 편에 보면 청나라로 들어가는 국경인 책문에서 일어나 일이 떠올랐다. 그의 하인 장복이 자물쇠를 잃어버렸다. 연암은 장복을 꾸짖으며 “네가 행장에 마음을 두지 않고 언제나 한눈을 팔고 다니니 겨우 책문에 왔을 뿐인데 벌써 잊어버리고 말았다. '사흘 걸릴 일을 하루도 못간다'고 하는 말마따나 황성(연경)까지 가는 길이 왕복 2천 리인데 돌아오는 길에는 네 녀석 몸속의 오장도 잃어버리겠구나" 하니, 장복은 머리를 긁으며 대꾸하기를 “쇤네가 두 손으로 눈을 지키는데 누가 뽑아 가겠습니까요" 한다.      

 장복이처럼 두 손으로 꼭 쥐고 있어야 할 여권을 잊어버렸으니 한심한 장복과 무에 다르랴!

 허무하기 짝이 없었다.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람! 뒷주머니가 빳빳하고 불룩하다. 손을 넣으니 맙소사 거기에 있었다. 직원에게 여권을 손에 들고 보여주자 모두가 놀라며 그 큰 눈이 몇 배나 더 커진다. “쏘리, 쏘리" 뒤도 안 돌아보고 나는 탑승구로 들어가 삼십육계 줄행랑을 치고 말았다. 이 부끄러움을 달리 면할 방법이 없잖은가.

조지아 지도.
조지아 지도.

 

신이 숨겨두고 인간에게 나눠주지 않으려 했던 

 직항이 없는 관계로 장장 열 시간 이상을 날아왔지만, 다시 온 하늘길을 돌아 2시간을 가야 한다. 흑해를 지나는지 까마득한 창공 아래가 온통 푸르다. 이제야 조금 정신을 차렸다. '그래, 나는 지금 조지아(Georgia)로 가고 있지' 조지아는 우리나라 사람에게도 다소 생소한 나라다. 처음엔 조지아는 미국의 조지아주(州)로만 알았던 터라 이렇게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런데 나는 왜 이 먼 나라로 가고 있는가. 그것은 온전히 강력한 이끌림에 의한 길이었다고밖에 볼 수 없다. 단 한 장의 사진, 2,000m가 넘는 고원 정상에 있는 교회와 푸른 산을 배경으로 한 위용의 엄숙함, 그 매료에 블랙홀처럼 빠져들었기 때문이었다. 저 사진 속의 배경은 도대체 어느 나라인가. 이 물음에서부터 시작된 파고듦이 오늘의 시간까지 오게 했다.

 잠깐 조지아 나라를 소개하자면, 정식 국가명은 조지아공화국(Republic of Georgia)이다. 1919년 제정러시아로부터 독립하였으나, 1921년 볼셰비키 붉은 군대의 침공으로 다시 소련연방의 일원이 되었으며, 1991년 구소련의 몰락과 함께 독립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튀르키예(Turkiye)와 러시아 사이에 끼인 조지아는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를 이루는 카프카즈산맥 상에 위치하고 있다. 남한 면적보다 조금 작으며, 인구는 부산과 엇비슷한 약 350만 명 정도이다. 

 신(神)이 자기 주머니에 꼭꼭 숨겨두고 인간에게 나눠주지 않으려 했으리만치 아름다운 나라가 바로 조지아다. 지리적 여건으로 로마, 몽골, 비잔틴, 페르시아, 오스만제국 등으로부터 수많은 외세 침략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족적 정체성을 잃지 않은 것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기독교를 공인한 종교적 신념이 큰 힘과 뿌리가 되어주었던 게 분명하다.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스탈린(1878~1953)도 조지아 태생이며, 세계에서 와인을 처음 만든 나라라고 하면 조금은 조지아 나라에 대해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것 같다.

이서원 시조시인
이서원 시조시인

너희들이 참기름 맛을 알기나 해?

비행기는 드디어 트빌리시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국제공항이라고 해도 그냥 우리나라의 도시 터미널 수준 정도다. 서둘러 가방을 찾았다. 무사히 나와 함께 이 먼 낯선 땅에 도착한 것에 무한 감사하다. 가방을 끌고 공항을 빠져나가려는데 많은 사람이 나를 계속 힐끗힐끗 쳐다본다. 낯선 동양의 이방인이라 신기했던 것일까. 그런데 가방에서 뭔가 액체가 흘러나온다. 걸음을 멈추고 가방을 열어보았다. 맙소사! 소중하게 갖고 온 병이 깨졌다. 꼭꼭 싸매고 여미었는데도 어찌 된 이유인지 모르겠다. 옷이랑 갖가지 것이 축축하고 흥건하다. 일순간 공항의 그 넓은 로비는 향유에 온통 말려들었다. 가지고 온 게 무에 그리 많은가. 닦아도 닦아도 새 나오는 이 향기(?)를 어쩌랴. 지나는 사람마다 쳐다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하기야, 그들이 이 대한민국의 고소하고 맛있는 향내를 어찌 알랴. 혼자 아껴 먹으리라고 챙겨온 건 다름 아닌 참기름이었으니. 

 실상은 웃어도 웃는 내가 아니었다. 그저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주섬주섬 깨진 병을 치웠다. 태연한 척 공항으로 바이러스처럼 퍼져나가는 부끄러운 향기가 어서 사라져 주기를 간절히 바라며 애써 표정을 숨긴 채 출구를 빠져나오며 속으로 크게 외쳤다. 너희들이 이 맛을 알기나 해!'

이서원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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