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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 ⓒ장세련
삽화. ⓒ장세련

사람들은 웃고 떠들며 즐거워했다. 누구보다도 난감한 것은 영월 군수와 임영복이었다. 보다 못한 영월 군수가 버럭 고함을 쳤다.

 "무슨 짓들이오? 방금 주상전하께서 승하하셨다 하지 않소. 모두가 무릎을 꿇고 곡을 하시오."

 웃음소리가 잠시 끊어지기는 했지만, 곡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떼꾼으로 일하는 산 사람이 당돌하게 앞으로 나섰다.

 "이렇게 좋은 잔칫날 곡을 왜 합니까? 곡은 내일부터 하고 오늘은 즐겁게 놀아봅시다. 얼쑤 좋다. 왜 이리 좋을꼬."

 이선달이 임영복의 안색을 살피니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이제 네놈의 운도 다한 것 같구나. 너도 천하제일의 살수놈 저승길을 따라가야 하지 않겠느냐."

 임영복이 고개를 홱 돌려 이선달을 노려보았다. 눈에서 파란 불꽃이 튀었다. 그때 다시 영월 군수가 나섰다.

 "네놈들을 모두 반역자로 처단할 것이다."

 "영월도 순흥처럼 사람이 살지 못하는 고장으로 만드시게요. 잘해보시오."

 "저런 발칙한 놈이 있나. 여봐라. 방금 저놈을 묶어라."

 포졸들이 떼꾼을 잡으려고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나 남사당패를 비롯한 한 떼의 무리들이 떼꾼을 에워쌌다. 양쪽 사이에 가벼운 실랑이가 벌어졌다.

 "모두 멈추어라. 잔치 분위기가 이렇게 되었으니 할 수 없다. 오늘 밤까지 기다릴 게 뭐 있겠느냐. 지금 당장 승부를 짓도록 하겠다."

 각동 돌밭에는 급하게 대결장이 벌어졌다. 모래와 작은 주먹돌로 다져진 강변 바닥은 대결을 펼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모여 있던 사람들이 둥글게 원을 만들었다. 임영복의 대결 자세는 십 년 전과 조금도 달라진 게 없었다. 양손의 주먹을 단단하게 쥐고 팔꿈치를 몸에 바짝 붙였다. 어깨너비로 벌린 양발은 고목처럼 땅속에 묻혀 있는 듯했다.

 반대로 이선달의 자세는 예전과 판이하게 달라져 있었다. 무릎을 예전처럼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해 그런지 몸을 가볍게 움직이지 못했다. 임영복처럼 바닥에 버티고 선 자세에서 마주 바라보았다. 예전에는 손바닥을 편 상태로 대결을 했는데 이번에는 단단하게 쥐어져 있었다.

 "네놈 꼴을 보니 가소롭구나. 그런 자세로 조선 최고의 살수를 꺾어보겠다는 것이냐?"

 "말이 많구나. 어디 옛날 솜씨를 내놓아 보아라."

 이선달이 반걸음 앞으로 다가갔다. 임영복은 이선달이 뻗정다리로 발차기 공격을 하지 못할 것이라 짐작했다. 발차기는커녕 걸음을 옮기는 것조차 수월하지 않은 상태였다. 자신감이 넘친 임영복이 한 걸음 앞으로 내디디며 짧게 주먹을 질렀다. 너무나 짧은 거리여서 구경꾼들 눈에는 주먹이 나오는 것이 보이지도 않았다.  

 주먹이 이선달의 얼굴에 닿으려 하는 순간이었다. 딱 소리와 함께 얼굴 앞에 먼지가 풀썩 일어났다. 임영복의 주먹이 이선달의 손바닥에 쥐어져 있는 작은 돌멩이를 가격했다. 무른 호박돌이나 팥죽석이 아니라 단단하기 이를 데 없는 검은 숙암석이었다. 임영복의 관자놀이에 핏대가 불끈 솟아올랐다. 왼손을 거두어들인 임영복은 재차 오른손 주먹을 뻗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딱 소리와 함께 이선달의 얼굴 앞에서 먼지가 일었다. 야문 숙암석이 산산조각이 나 손바닥에서 흘러내렸다.

 "참으로 웃기는 일이구나. 이제 어린애 장난 같은 꼼수를 사용하는구나."

 임영복은 자신 있게 말했지만, 양쪽 주먹에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바닥에 있는 돌을 내리치는 것과 상대방의 손안에 든 야물고 모난 돌을 치는 것은 달랐다. 이선달은 양쪽 손안의 돌이 부서지자 바닥에서 다른 돌을 집어 들었다. 역시 야물고 모가 난 돌이었다.

 임영복은 망설이지 않고 다음 공격을 감행했다. 이번에는 얼굴이 아닌 몸통을 노리고 주먹을 날렸다. 임영복의 주먹은 돌처럼 야문 목표물을 가격하기에는 적합했다. 뼈가 없는 물렁한 부위를 공격하는 데는 위력적이지 않았다. 이선달 역시 정면으로 들어오는 주먹을 받아치기에는 좋아도 몸통 가운데로 들어오는 것은 맞받아치기가 힘들었다.

 몇 번인가 주먹 공격을 어렵게 피한 이선달이 손안에 쥐고 있던 돌멩이를 바닥에 버렸다. 그런 다음 품 안에서 칼을 뽑아 들었다. 소나 돼지의 뼈를 추릴 때 사용하는 일곱 치 짧은 무쇠 칼이었다. 임영복은 아무런 주저 없이 주먹 공격을 계속했다.

 임영복의 오른쪽 주먹이 이선달의 왼쪽 옆구리로 들어왔을 때였다. 이선달의 왼손이 들어온 팔목을 붙잡았다. 그런 다음 오른손이 부채를 부치듯 아래위로 재빨리 움직였다. 마치 돼지족발의 털을 깎는 듯했다. 

 "아악!"

 임영복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비명이 터져 나왔다. 둘러선 구경꾼들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지도 못했다. 이선달이 잡은 손목을 놓았다. 임영복은 재빨리 자신의 주먹을 거두어들였다. 다시 주먹을 쥐려 해도 쥐어지지 않았다. 다섯 손가락 사이사이가 모두 벌어져 뼈가 하얗게 드러나 있었다. 잠시 후에 선홍빛 피가 흰 뼈마디를 적시고 흘러내렸다. 임영복은 왼손으로 오른손 손목을 움켜쥐고 어쩔 줄 몰랐다.

 이선달의 뻗정다리가 임영복의 장딴지를 걷어찼다. 임영복이 맥없이 그 자리에 자빠졌다. 이선달이 잽싸게 달려들어 임영복의 왼손 팔목을 낚아챘다. 그런 다음 오른손과 마찬가지로 손가락 사이사이를 모조리 갈라놓았다. 양쪽 손을 모두 못 쓰게 된 임영복은 피가 철철 흐르는 양손을 들고 부들부들 떨었다. 잔뜩 긴장해 있던 구경꾼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영월 군수의 낯빛이 완전히 사색이 되었다.

 "뭣들 하느냐? 얼른 저놈을 쳐라."

 그러나 열 명 남짓한 영월 군사 중에 앞으로 나서는 자가 없었다. 

 "이것으로 네 명도 다하였구나. 저승길에 너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한두 명이 아닐 터, 심심하지는 않겠구나. 거기 가서도 주먹질을 할까 염려가 되니 아예 손모가지를 잘라버리고 가려무나."

 이선달이 임영복의 손목을 절단하려는 순간에 윤미가 달려왔다. 윤미는 임영복의 몸을 감싸 안았다.

 "아제, 안됩니다. 이 사람을 죽이면 이 아이들은 어찌합니까?"

 이선달은 윤미의 청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일이 이렇게 복잡하게 꼬인 것은 모두가 자기의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잡았던 임영복의 팔을 놓고 뒤로 물러섰다. 윤미가 구경꾼들을 향해 다급하게 소리쳤다.

 "누가 좀 도와주세요." 

 털보가 임영복에게로 다가갔다. 자신의 저고리를 벗어 북북 찢었다. 피가 철철 흐르는 임영복의 팔목을 묶어 지혈했다.

 "오늘 네 주인을 따라갔으면 좋았을 걸 그랬구나. 다시 한양으로 올라가 사대문 안에서 갓을 쓰고 다닐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이제는 주먹이 아닌 혓바닥으로 주인 발등을 핥으며 살아야겠구나. 남은 생을 어떻게 마치든 억울하게 죽은 순흥 사람들을 한 시라도 잊지 말아라. 조선왕조는 순흥 사람들의 원귀가 끝까지 달라붙어 피바람을 일으킬 것이다."

 말을 마친 이선달은 일곱 치 무쇠 칼을 남한강 강물 속으로 휙 던져버렸다. 그런 다음 물살이 낮은 여울목을 휘적휘적 건너갔다. 그 뒤를 떼꾼을 비롯한 예전의 산사람들이 따라갔다. 강 건너편에 뼝대바우가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었다. 바위와 바위 사이에는 좁고 가파른 길이 꼭대기로 이어져 있었다. 뼝대바우를 넘어서면 소백산 줄기의 크고 작은 산봉우리가 끝없이 펼쳐져있었다. 산사람들을 품은 산은 예전과 다름없이 넉넉했다.  김태환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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