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수도 트빌리시 근교의 므츠헤타(Mtskheta)로 갔다. 쿠라강과 아라그비강의 두 물줄기가 하나로 모여, 다시 흘러가는 삼각지에 있는 작은 도시다. 그러나 규모가 작다고 해서 무시할 수 없는 위용을 조용히 품고 있는 외유내강형이다. 기원전 4세기경부터 사람들이 거주한 비옥한 땅으로, 고대 왕국인 이베리아의 수도였다. 또한 조지아 나라가 태생된 곳이라고도 할 수 있다. 특히 이곳은 기독교의 초기 유적인 스베티츠호벨리 대성당, 즈바리 수도원 등이 있어 수많은 관광객의 발길이 매일 끊이지 않고 있다.
마을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해거름 녘에 도착해서 우선 숙소부터 정해야 했다. 성당 가까운 곳에 여정을 풀고 저녁 산책도 할 수 있을 곳을 찾기 위해 작은 골목을 걸었다. 마침 정원에는 포도나무 넝쿨이 우거져 있고, 담장 너머로 이름 모를 나무가 가득한 주택의 초인종을 눌렀다. 한참 있으니 영화 '시스터 액터'에 나오는 원장 수녀님인 '매기 스미스'처럼 완고해 보이는 인상의 할머니가 문을 열어주었다. 잘못 눌렀다고 얼버무리며 돌아서고 싶었지만, 함께 나온 남편 할아버지는 벌써 내 가방을 반쯤 대문 안으로 당겨 놓았다. 할 수 없이 안내된 2층 방의 침대는 삐걱거리고 낡았지만 정말 푸근한 고향 집처럼 마음에 들었다. 역시 겉모습만으로는 판단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듯, 우리 돈 3만 원 정도라서 하룻밤의 휴식 공간으로 분에 넘칠 만큼 좋다.
테라스에 앉으니 바로 앞에 성당이다. 사실 이 풍경이 그저 좋았기에 다른 건 그다지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짐도 그냥 둔 채 더 어두워지기 전에 무작정 성당부터 갔다. 요새 같은 높은 담장을 둘렀으며 4세기 건립된 것으로 이베리아 왕국 최초의 성당이다. 마치 고궁 안으로 들어가는 듯한 웅장함에 잠시 걸음이 멈칫했다. 혼자 들어서면 밖에서 누군가가 덜컥 문을 닫아걸어 버리면 어쩌나 싶었던 게다. 꿈속으로 쑥 들어가 수백 년 전 시대에서 나 홀로 서 있을 것만 같은 착각! 돌아갈 출구는 찾지 못한 채 수도원에 갇혀 '들로리스'처럼 천방지축 헤매고 있을 나, 여기가 어디인지 알 수 없는 왕조 시대에서 낙오자로 혼자 울고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다고 여기서 그냥 돌아설 수는 없잖은가. 거대한 나무 문을 삐그덕 밀자, 정원에는 많은 아이가 동화 속의 주인공처럼 뛰어놀고 있었다. 그제야 내 염려가 한갓 기우였음에랴! 6시를 알리는 성당의 종소리가 저 천상에서 울려오는 신의 음성 같다. 종교가 없는 이라고 해도 이 엄숙함 앞에서는 저절로 밀레의 종소리에 나오는 농부처럼 두 손을 모으지 않을 수 없겠다. 잔디밭에 털썩 주저앉았다.
알아들을 수 없는 조지아의 말이지만 아이들이 환하게 웃으며 토끼처럼 뛰어노는 게 무척이나 귀여웠다. 이 나라는 역사적 유물이라고 해서 특별히 더 챙기거나 보존을 위해 보호막을 쳐놓거나 하는 게 없다. 그냥 사람과 자연과 유적이 함께 공존하며 삶의 일부분인 것 같다. 아이들은 저 담장에 올라가 뛰어다니며 놀고 있으니 우리 시선의 편견이란 게 작은 생각의 차이란 걸 느끼겠다. 평화란 이런 것인가. 오랜 외세의 지배에 있었던 나라가 독립과 함께 이토록 자유롭고 화평한 시대에 살고 있는 아이들이 그냥 좋았다. 역사는 무력에 의한 억지로 수레바퀴를 굴리는 게 아니라 사랑과 온유, 자유에 의해서 돌아가는 것임을 믿는다.
조지아 정교의 중심 '스베티츠호벨리 대성당'
성당을 들어서면 거대한 성화가 압도한다. 특히 이 건물을 받치고 선 6개의 기둥에 전해오는 이야기가 있다. 예수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 매달려 못 박혀 죽자, 이때 우연히 이곳 조지아 출신의 유대인인 엘리야가 예수의 성의를 로마 군인에게 사서 갖고 돌아왔다. 그 옷이 바로 이 대성당의 한 기둥 아래에 묻혀있다. 하여, 이 스베티츠호벨리는 조지아어로 '스베티'는 '기둥'을 '츠호벨리'는 '삶을 주는' 또는 '살아있는'을 의미한다. 즉, '살아있는 기둥' 혹은 '생명을 주는 기둥'이라는 뜻이라고 하니 정말 위대하지 않은가. 또한 조지아 정교의 본산이 바로 이 성당인 만큼 유서가 깊고 의미가 남다르다. 고개를 아무리 뒤로 젖혀도 다 담을 수 없을 만큼 웅장하고 아름다운 실내에 걸음마저 쉽게 뗄 수가 없었다.
광장 앞에 앉아 조지아 전통 음식인 낀깔리와 와인 한 잔을 시켜 놓고 저 강 건너 언덕을 바라보았다. 저녁 불빛이 별처럼 반짝이는 저기는 바로 즈바리 수도원으로 조용히 이 므츠헤타를 두 팔 벌려 안아주는 모양이다. 내일 아침은 저기를 다녀와야겠다.
새벽에 성당의 종소리를 들으며 눈을 떴다. 천상인지 천하인지 구분이 안 될 만큼 깊은 잠에 빠졌던 모양이었다. 새소리도 아름답게 지저귀는 숙소 마당을 나와 즈바리 수도원에 올랐다.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부지런한 말 두 마리가 벌써 올라와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저 멀리 아침 해가 떠오르는 듯 붉은 기운이 상쾌함을 더해 주는 난간에 앉았다. 아래로는 천 길 낭떠러지다. 몸을 움츠리며 시선을 멀리 두었다. 므츠헤타의 오밀조밀한 집들이 햇살을 받아 붉은 벽돌이 더 아름답게 들어온다. 옆으로 어제 들렀던 대성당의 종탑이 마치 아버지처럼 우뚝 솟아 있다.
강을 끼고 곧게 벋은 일명 군사 도로가 국가의 경제적 위상을 보여주려는 듯 차들이 쉼 없이 내달리고 있다. 우리나라 돈으로 약 50만 원 정도가 남자 평균 월급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꼭 우리의 80년대 개발도상국 시절처럼 활기가 넘친다. 유리창이 깨진 차, 범퍼가 없는 차 등 전 세계의 중고차를 이곳에 모아둔 것처럼 각양각색으로 우스꽝스럽지만 머잖아 선진국으로 도약할 희망이 보이는 것 같다. 특히 아직은 열악한 도로 사정이지만 코카서스의 산을 뚫는 터널 공사가 중국 기업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었다. 지금은 모든 도로가 수도 트빌리시를 거치지 않고는 다른 도시로 쉽게 이동할 수 없다. 마치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하듯이.
조지아인들이 신성시 여기는 '즈바리 수도원'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수도원을 걷는다. 아침 바람이 절벽을 타고 올라와 상쾌하다. 말 등에 앉은 새 한 마리조차도 풍경이 되고 그림이 된다. 저 건너 쿠라강과 아라그비강이 조용히 흘러가는 게 참 아늑하고 평온하다. 왕조는 무너지고 다시 세워지며 이 나라의 역사가 지금까지 사라지지 않고 왔다. 그 아픔과 슬픔을 다 아는 저 물줄기는 포용의 의미일까. 잠잠하게 소리 없이 아래로 더 낮은 아래로 가고 있다.
두 강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오스만, 그리스, 로마 등의 제국들이 끝없이 저 물길을 통해 침략이 이어져 왔던 슬픈 역사의 줄기이기도 했다. 하는 수 없이 6세기경, 고르가살리 왕은 이곳에서 차로 약 20분 거리에 있는 지금의 트빌리시로 수도를 옮길 수밖에 없었다. 이후 이곳은 급격하게 쇠락해져 갔으며 현재의 모습에 이르렀다. 수도원의 문을 열고자 했으나 너무 일찍 온 탓일까, 잠겨 있다. 이 수도원도 역시 4세기경에 세워졌으며, 이베리아 왕 마리안 3세가 기독교를 받아들이며 세상에 더 널리 알리고자 이곳에 십자가를 세웠다. 이후, 다시 여기에 교회를 지었으며, 바로 지금의 수도원이다. 조지아어로 '즈바리'는 '십자가'란 뜻이라고 한다. 우리 인간은 가지면 가질수록 더 갖고 싶은 욕심이 존재한다. 그러나 십자가의 사랑은 나누고 또 나누라고 한다. 이 두 충돌로 종교는 우리를 중재하고 때로는 시험하며 더러는 용서와 화해를 요구하기도 한다. 내 안에 잔재한 용서할 수 없었던 마음이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매일 무릎을 꿇어도 변명과 이기심으로 더 가득 찼던 일상, 여기쯤에서 내려놓을 수 있을까.
붉은 태양이 어느덧 수도원으로 환하게 비추며 절벽을 타고 내려가고 있다. 그사이 가녀린 풀잎들이 이슬을 틀며 고개를 든다. 날것들의 기운생동이 또 하루를 찬란하게 열어주었다. 여행객의 여정은 그저 끝없는 호기심과 이 낯섦의 조화 속에서 얻는 평화가 행복 아닐까. 키 낮은 나무숲을 헤치며 저만치 또 다른 내가 걸어가고 있었다. 이서원 시조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