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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서파(西坡, 해발 2,470m) 코스의 공식적인 입산은 도로 보수공사 때문에 4일 후부터여서 출입이 불가능할 수도 있었으나 백두산 전문 사진작가이자 노련한 마당발 가이드인 조선족 맹철 님의 활약으로 입산이 가능했다. 

   어렵게 서파 주차장 옆 여행객 휴게소에 숙소를 정해 짐을 내리고, 한국식 비빔밥으로 점심을 먹었다. 비빔밥은 우리 비빔밥과 재료와 맛이 비슷했고, 백두산 인근 식당의 대표 메뉴로 자리잡고 있었다. 

   밤에 은하수와 별 사진 촬영을 위해 천지에 갈 예정이어서 같이 간 일행 중 일부는 남고, 일부는 낮 풍경 촬영을 위해 서파로 향했다. 카메라에 광각렌즈 1개만 꽂아 가볍게 갈까 하는 유혹을 뿌리치고 모든 장비를 챙겨 올랐다. 그 유명한 1,442개 계단을 올라 서파에 도착했다.
 

천지의 주인이 되다

   천지는 청명했다. 백두산에서 맑은 천지를 보려면 3대 적선, 심지어 5대 적선을 해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어려운데, 이번에 북파에 이어 서파에서도 맑은 천지를 보았으니 큰 행운이었다. 

백두산 서파에서 바라본 천지와 일출. ⓒ이상원
백두산 서파에서 바라본 천지와 일출. ⓒ이상원

   지금까지 6번 오면서 한 번도 천지를 보지 못한 적은 없었으니 우리 조상들이 후손을 위해 많은 덕을 쌓은 덕분이라 생각하며 감사를 드렸다. 그 흔한 안개도 없고, 구름 사이로 푸른 하늘이 보이고, 바람을 따라 구름이 움직이면서 생긴 그림자가 천지와 여러 봉우리에 큰 파도처럼 끊임없이 일렁이고 있었다. 

   입산이 허용된 소수의 단체 관광객과 같이 온 일행이 모두 하산하고 나니 나 혼자 남게 되었다. 빼어난 풍광을 자랑하는 백두산 봉우리와 광활한 천지를 앞에 두고 마치 백두산의 주인이 된 듯한 호사를 누리며, 느긋하게 촬영을 했다. 옛날 서파에서 백운봉까지 왕복 10시간의 산행을 하며, 자욱한 안개 속에서 기다렸다가 잠깐 천지가 열렸을 때 환상적인 사진을 찍었던 기억도 스쳐갔다. 

   해발 2,189m에 위치한 천지는 둘레가 14.4km, 길이는 남북으로 4.4km, 동서로 3.7km이다. 평균 수심은 213m, 최대 수심은 384m로 세계에서 가장 깊은 화산호이다. 수량은 약 20억 톤으로 대부분 지하수로 채워지고, 일부분은 비와 눈으로 채워져 장백폭포 쪽으로 계속 물이 흐르면서 일년 내내 수량이 일정하게 유지된다. 

   이 호수를 중심으로 2,500m가 넘는 16개의 봉우리가 갖가지 모양으로 둘러싸고 있으니 세계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풍경이 아닐까 싶다.   
 

산 꼭대기에서 밤을 새다 

   계단을 걸어 하산 후 저녁을 먹고 캄캄한 밤에 랜턴을 켜고 다시 촬영을 위해 서파로 향했다. 같은 코스를 두 번이나 연달아 오르니 무척 힘이 들었다. 한 걸음씩 옮길 때마다 하나씩 줄어드는 1,442개 계단의 숫자를 보며 힘을 내어 백두산 서파에 오르니 안개가 자욱했다. 

   천지가 넓게 보이는 곳에 삼각대를 세우고 있으니 온몸이 떨렸다. 두툼한 겨울 옷을 입고, 핫팩까지 호주머니에 넣었는데도 한기는 가시지 않았다.  

백두산 서파에서 촬영한 천지와 별 궤적. ⓒ이상원
백두산 서파에서 촬영한 천지와 별 궤적. ⓒ이상원

 안개가 계속 바람을 따라 천지를 덮었다 걷혔다 반복하는 가운데 북파 쪽에서 은하수가 떠올랐다. 그 은하수는 시간이 지나자 동남쪽 하늘로 서서히 이동을 했다. 어두운 밤하늘이라 은하수 촬영을 위해서는 15초 정도의 노출이 필요한데 그새 안개가 하늘을 덮어버리곤 해서 애를 태우게 했다. 일행 중 일부는 철수하고 남은 사람들은 아침까지 버티기로 했다. 

백두산 서파에서 바라본 천지와 은하수. ⓒ이상원
백두산 서파에서 바라본 천지와 은하수. ⓒ이상원

   새벽이 되자 북파 천문봉 쪽에서 하현달이 떠오르고 안개도 걷히기 시작했다. 먼동이 터오자 하늘이 맑아지고 깨끗한 천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또 좋은 날씨를 만났고, 추위 속에 10시간을 견딘 덕분에 은하수, 여명과 일출 사진을 잘 찍었다. 또 한 번의 행운이었다. 촬영을 마치고 무거운 배낭을 메고 내려오는 길은 힘들어도 행복했다. 

백두산 서파의 야생화 군락과 원형 무지개. ⓒ이상원
백두산 서파의 야생화 군락과 원형 무지개. ⓒ이상원

   백두산 아래 언덕에는 수많은 야생화가 피어 있었다. 8개월이나 되는 백두산의 겨울을 견디며 살아남기 위해 특별한 종(種)으로 변하기도 하며, 종류가 다른 꽃들이 짧은 기간에 마치 순서를 정하 듯 피었다가 지곤 하는 그들만의 질서가 그저 놀랍다. 수많은 동식물이 존재하고 있어 백두산을 ‘생태계의 보고’라고도 부른다. 

   밑에 내려와서 보니 백두산 남쪽 봉우리 위에는 태양을 중심으로 둥근 무지개가 떠 있었다. 백두산의 특이한 기상이 만든 희귀한 풍경이었다. 

   백두산 천지를 볼 수 있는 코스는 4개인데 중국을 통해 북파, 서파, 남파로 갈 수 있고, 동파는 북한에서 갈 수 있다. 파(坡)는 언덕, 고개를 뜻한다. 이번에 남파는 입산이 허용되지 않아 아쉬웠다. 
 

백두산을 갈라 놓은 국경경계비와 북·중 비밀 의정서

   백두산에는 북한과 중국의 국경을 가르는 국경표지석이 여러 있는데, 서파 산정에 37호 국경표지석을 만날 수 있다. 

백두산 서파의 북중 국경경계비 제37호. ⓒ이상원
백두산 서파의 북중 국경경계비 제37호. ⓒ이상원

   1962년 10월에 비밀리에 북한의 김일성과 중국의 주언라이(周恩來)가 서명한 ‘조중변계조약(朝中邊界條約)’이 맺어지고, 이후 2년간 국경 조사를 통해 1964년 베이징에서 양국이 ‘조중변계의정서(朝中邊界議定書)’를 체결했다. 

  이때 백두산 천지도 쪼개져 천지의 54.5%는 북한, 45.5%는 중국의 관할이 됐다. 천지를 분할하는 경계 지점에 세워진 것이 서파의 ‘37호 국경표지석’과 북파의 ‘38호 국경표지석’이다.    그때 압록강, 백두산, 두만강을 따라 국경을 정했는데, 조선이 압록강 하류의 비단섬(신도), 위화도, 황금평(황초평) 등 큰 섬들과 백두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 장군봉(일명 병사봉, 해발 2,744m) 및 천지의 반 이상을 차지 했으니 조선이 적지 않은 이득을 보았다는 의견도 있다.    이후 저우언라이(周恩來) 당시 중국 총리는 조선에 너무 많이 양보했다고 대만에서 비판을 받았고, 김일성 당시 조선 수상은 백두산을 중국에 뺏겼다, 팔아먹었다고 한국에서 비난을 받았다. 
 

용암이 만든 금강대협곡

   화산 폭발로 용암이 흘러내리면서 만들어진, 전체 길이 70km, 평균 깊이 80m, 폭 100m의 V자 형태 협곡이다. 화산 폭발 당시의 모습 그대로 기묘하게 생긴 바위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보존되어 있다. 

백두산 자락의 금강대협곡, 화산 폭발로 생긴 기암괴석과 빼어난 경관으로 동양의 그랜드 캐년이라고도 불린다. ⓒ이상원
백두산 자락의 금강대협곡, 화산 폭발로 생긴 기암괴석과 빼어난 경관으로 동양의 그랜드 캐년이라고도 불린다. ⓒ이상원

   1989년 8월, 태풍이 지나간 뒤 산림을 정리하던 인부가 발견하여 세상에 알려졌고, 기암괴석과 빼어난 자연경관으로 ‘동양의 그랜드 캐년’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번에 갔을 때는 예전과 달리 2km 정도의 데크길로만 탐방이 가능했다. 다양한 야생화와 다람쥐가 눈에 띄었다. 
 

호사비오리의 서식지 흑하 

북중 국경 인근 '흑하(黑河)'의 장노출 사진, 세계적인 희귀 조류인 호사비오리의 서식지. ⓒ이상원
북중 국경 인근 '흑하(黑河)'의 장노출 사진, 세계적인 희귀 조류인 호사비오리의 서식지. ⓒ이상원

   흑하는 북한과 가까운 곳에 있는 숲 속의 강으로 호사비오리가 서식하는 곳이다. 

   호사비오리는 우리나라의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 1급으로 세계에서 3,000마리 정도만 남아 있는 희귀 조류이다. 

   이곳으로 갈 때와 올 때 모두 검문소에서 중국 공안이 여권과 비자를 일일이 확인하며 검문을 까다롭게 했다. 북한과 중국의 관계가 좋았던 시절에는 북한 땅이 바로 보이는 압록강변에서 촬영하기도 했으나 최근 양국 간의 관계가 나빠져 출입이 통제되고, 심지어는 촬영한 메모리 카드를 뺏기도 한다고 했다. 

   이곳에서 빠르게 흘러가는 구름과 작은 폭포가 되어 흐르는 강 줄기를 장노출로 촬영도 하며 여유로운 시간을 가졌다. 촬영 후 들른 현지 식당에서 눈에 보이게 진열해 놓은 신선한 재료를 골라 주문해서 즉석에서 만들어 나온 여러 요리는 별미였다. 
 

민족의 성산

   우리나라 애국가의 첫 구절,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에도 나오듯이 우리는 백두산을 ‘우리 민족의 성산(聖山)’으로 여긴다. 

백두산 서파의 천지 풍경. ⓒ이상원
백두산 서파의 천지 풍경. ⓒ이상원

   분단의 아픔, 통일에 대한 염원을 기리는 상징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또한 백두산은 한반도의 시작점이다. 백두산부터 지리산(智異山)까지 이르는 백두대간(白頭大幹)은 한반도의 기본 산줄기로 총 길이가 1,625km이고, 지리산에서 향로봉까지의 남한 구간만 690km에 이른다.

   북한은 백두산을 ‘혁명의 성산’이라 부르며,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3대 세습을 백두산에 빗대어 백두혈통이라고 한다. 

   중국은 올 3월에 백두산을 창바이산(長白山)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에 등재를 마쳤다. 북한도 2019년에 백두산을 유네스코에 세계지질공원 등재 신청을 하였으나 코로나 등을 이유로 실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아직 진행이 되지 않은 상태이다.   

   백두산 서파에서 나오는 날, 제주도에서 자녀들과 함께 온 한 노인을 만났다. 죽기 전에 백두산을 한 번 보고 싶다는 아버지의 염원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 자녀들이 가마를 타면 오를 수 있다고 모시고 온 것이었다. 

   그 전날에는 가마꾼이 여기 저기 보었으나 이튿날엔 모두 사라져 버렸다. 머리를 빡빡 깎은, 검은색 정장 차림의 공산당 고위 간부가 아침에 순회하고 나서 이루어진 조치였다. 

이상원 사진가 swl5836@naver.com
이상원 사진가 swl5836@naver.com

   결국 자녀들만 천지를 향해 계단을 걸어 오르고 그 노인은 자녀들이 내려올 때까지 주차장에 홀로 남아 있어야 했다. 이번에 백두산 천지를 한 번 보았으면 그 가슴 벅찬 추억 하나로도 남은 삶을 살아가는 데 힘이 되었을 텐데…… 

   그 노인의 쓸쓸한 뒷모습이 마치 미래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짠해졌다. 하고자 하는 일은 미루지 말고 실행하라! 

이상원 사진가 swl583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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