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월다방
잠시 언급했듯이 함월다방도 수년 전 문을 닫았다. 지하 입구 출입문에는 거미줄이 처져 있다. 계단에 쌓인 빛바랜 우편물이 문 닫은 지가 제법 됐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 다방은 10년 전에 왔을 때만 해도 마담이 혼자서 장사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때도 마담을 만나지는 못했다. 문이 닫혀 있었다. 이웃한 현대다방에 가서 함월다방 마담 소식을 들었다. 현대다방 마담은 함월다방 마담이 아파서 근래 병원에 자주 들락거린다고 했다.
그시절 최대 번화가 약속장소로 인기
함월다방은 이 일대 지명인 함월 즉 달을 품은 마을이란 이름을 달고 있어서 유명했다. 지역을 대표하는 다방이었다. 울산역에서는 좀 먼, 학산로 끄트머리에 있지만, 함월초등학교 삼거리를 문 코너 다방이었기 때문에 복산성당이나 울산교회를 지나는 사람들의 눈에 띄었다. 잘 보이는 위치는 약속장소로 안성맞춤이었다. 주제에서 약간 빗나가는 이야기지만 과거 지금의 태화동에 있는 학성여중이 학성타운 자리에 있고 제일중학교가 울산교회 뒤 제일아파트(현재는 번영로 센트리움) 자리에 있을 때는 울산역 앞 학산로가 시계탑 사거리 다음으로 잘 나갔다.
이 이야기를 굳이 들먹이는 이유는 그만큼 함월다방 주변이 번화가였다는 말이다.
당시 이 다방은 학산로 일대에서는 권리금이 비싼 축에 들었다고 한다. 자릿값이 대단했다는 증명이다. 그만큼 장사도 잘됐다. 역 앞 다방들보다 조용한 분위기가 손님들을 불러보았다고 보면 된다. 현대다방과는 이웃사촌이면서 한때는 단골을 놓고 경쟁했던 다방이기도 했다.
현대다방
현대다방은 함월다방에서 구, 울산역 방향으로 한걸음에 닫을 수 있는 다방이다. 울산역이 밤낮으로 붐비던 호시절에는 문을 열기가 바쁘게 빈자리가 없었다. 반지하 다방이라서 창문이 있는 쪽이 담배 연기가 잘 빠져나간다는 이점 때문에 창 아래 자리는 수시로 드나드는 단골이 못 박아놓았다. 하지만 그때는 여우가 노래하고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다.
이 다방도 함월다방과 함께 문을 닫았다. 2년 전 간판에 불이 들어왔을 때 필자가 찍은 사진이 있다. 최소한 2년 전에는 까지는 영업했던 것이 증명된다. 지금은 불 꺼진 창이다. 지하 입구로 내려서자 초여름인데도 냉기로 인해 썰렁하다.
지금 나는 우울해 왜냐고 묻지 말아요
오늘 밤 나는 우울해 그녀 집 갔다 온 후로
오늘 밤 나는 보았네 그녀의 불 꺼진 창을
희미한 두 사람의 그림자를 오늘 밤 나는 보았네
조영남의 노래다. 이 노래 역시 20여 년 금지곡으로 세상에 빛을 보지 못했다. 불 꺼진 다방을 보고 온 후의 느낌이다.
함월이나 현대다방 가운데 한 곳이라도 살아남아야 이야기가 되는데 모두 문을 닫아버렸으니 어디 가서 학산로 다방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 10년 전 울산에 눈이 너무 많이 내려서 무룡산 낙락장송이 부러지고 울산 시내 곳곳의 교통이 두절 됐던 날이 있었는데 그날 현대다방을 찾아갔던 기억이다.
그 기억을 둘춘다. 2014년 2월 13일, 울산에 보기 드문 눈이 내려서 거리가 온통 질퍽했다. 이런 날 다방은 어떨까 하는 궁금증에 울산시 중구 복산동 함월초등학교 앞 네거리 현대다방을 찾아갔다. 이날도 진눈깨비가 한여름 소낙비처럼 오락가락했다. 우산을 펴면 그치고 우산을 접으면 진눈깨비가 내렸다.
연중 눈이 거의 내리지 않는 울산은 지난 일요일(2월 9일) 오후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하더니 울산 북구에 30여㎝의 대기록을 세웠다. 남구 삼산과 울주군 언양은 상대적으로 눈이 적게 내렸다. 범서읍이 겨우 10㎝의 적설량을 기록한 데 비해 동대산 자락인 북구 호계와 중구 병영은 눈 폭탄을 맞았다.
이번에 내린 눈으로 북구 연암과 효문공단 기업체 공장이 무너져 내리는 피해를 입었다는 소식이 연일 톱 뉴스가 되고 있다. 눈이 처음 내리기 시작한 날은 밤 8시가 넘어서면서 진눈깨비가 함박눈으로 바뀌어 한순간에 볼품없는 회색 도시를 아름다운 설국으로 만들었다.
세상변하면서 결국은 사라져
눈이 내리자 처음에는 반가웠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눈은 걱정으로 쌓였고 이튿날 울산지역 상당수 학교가 휴교를 했거나 늦게 등교를 하는 상황으로 바뀌었다. 눈이 내린 지 5일이 지난 오늘은 목요일이다. 하지만 여전히 진눈깨비는 소낙비처럼 '그쳤다, 내렸다'를 반복하고 있다. 이런 날은 어디로 나가기도 곤란하다. 진눈깨비가 내리는 날 다방 풍경은 어떨까 싶었다. 그래서 정한 다방이 한때는 울산 번화가로 이름을 날렸던 함월초등학교 앞 다방을 찾아간 것이 현대다방이다.
처음에는 현대다방 이웃인 함월초등학교 앞 함월다방을 찾아갔다. 지하 다방은 계단에 불이 꺼져 있다. 눈이 내려 찾아오는 손님이 없자 문을 닫은 것으로 짐작했다. 하는 수 없이 되돌아 나왔다.
꿩 아니면 닭이라고 했던가. 함월다방 옆 현대다방으로 들어섰다. 울산에서는 현대라는 이름은 흔하다. 미장원, 이발소, 목욕탕을 등 업종을 가리지 않고 현대라는 글자를 상호 앞에 썼다. 현대다방이라는 너무 흔한 이름이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진눈깨비라도 피할 겸해서 들어갔다. 함월다방이 완전 지하 다방이라면 현대다방은 반지하 다방이다. 반지하 다방은 바깥 빛을 어느 정도 받아들이는 들창이 있다. 그래서 출입구가 함월다방처럼 깜깜하지는 않았다.
우산을 접고 다방 문을 열었다. 마담 혼자 TV 앞에서 오락프로를 보며 홀을 지키고 있다. 그냥 손님을 만나러 왔다고 했더니 전기장판이 깔린 테이블로 안내를 했다. 내가 들어오기 전 마담이 앉아있던 자리라서 그런지 더 따뜻하다.
다방 시계는 낮 2시 30분을 지나고 있다. 마담은 심심하던 차에 손님이 들어오니 반색을 하며 반겼다.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은 공치는 날이라는 말이 있다. 손님이 왜 없느냐고 물었더니 방금 손님들이 와서 피자를 시켜 먹고 갔다고 했다. 마담의 목소리가 허스키하다. 마담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데 가수 윤시내의 목소리가 기억 저편에서 들려오는 듯했다.
함월다방이 오늘 문을 닫았다고 했더니 "그 언니 또 아픈 가배" 한다. 다방 영업은 단골손님이 장사밑천인데 아프면 큰일이라고 걱정을 했다. 근래 들어 자주 문을 닫는 바람에 그 다방 손님들이 현대다방을 찾아온다. 그래서 함월다방 마담이 아픈 줄을 안다고 했다.
함월다방이나 현대다방은 이 골목의 터줏대감이다. 함월초등학교에서 저 멀리 일직선으로 보이는 E-마트까지가 1970년대와 1990년대 초까지는 울산 교통의 중심지였다. E-마트 주변에 울산역이 있었다.
현대다방 마담은 비가 오고 손님이 없는, 오늘 같은 날은 오후 8시 이전에 문을 닫는다고 했다. 그냥 있으면 처량해지는 기분 때문일까. 이런 날은 누구나 비에 젖어 사랑에 젖어본 지난날들을 반추하며 커피를 마시는 것이 격에 어울리지만 나는 사이다를 마셨다. 알싸한 탄산이 목젖을 타고 넘는다. 아련했던 세월의 고개를 또 한고비 넘기는 기분이다. 현대다방에서 커피는 한 잔에 2,500원이다.
10년 세월은 강산도 변하게 했다. 울산역이 옮겨가고 그 터에 지어진 E-마트는 지난 2022년 주상복합건물로 재건축이 됐다. 현대다방은 함월다방과 함께 세파를 넘지 못하고 결국 문을 닫았다. 아쉬운 결말이 나는 통속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연상케 했다. 청춘들이 기차 시간에 맞춰 들렀던 다방들이 사라진 거리는 한산하기 그지없다.
세민다방
이 다방은 학산로에서 전투력이 강한 다방이다. 역전다방 간판을 붙이고 개업한 이 다방은 주변의 다방들이 모두 사라진 지금에도 당당히 살아남은 다방이다. 인근의 바오르병원이 세민병원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다도 세민다방으로 이름표를 바꾸었다. 그 후 현재까지 이 지역 터줏대감으로 남아 다방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만약 이 다방이 문을 닫으면 학산로에서 더는 다방을 볼 수 없다.
당시 경제 정보 공유의 장…당당히 살아남아
세민다방 창가에 자리를 잡으면 옥교동에서 학성공원으로 가는 일방통행도로의 모든 움직임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울산역 방향으로 학성파출소, 또 함월초등학교 학산 거리도 한눈에 들어온다.
학산로는 자동차 정비업체 몇 군데가 영업하고 있고 나머지 점포들은 영업하는지조차 불분명해 보일 만큼 조용하다. 생동감이 떨어진 거리가 됐다. 세민다방 맞은편 코너에 과거 화신기업이라고 하는 공구상가가 있었는데 없는 공구가 없다고 보면 될 만큼 많은 상품이 있어서 철공소 등 작은 기업을 운영하던 사람들은 대부분 화신기업에 와서 필요한 공구를 사갔다.
공구를 사고 나서 대부분 가까운 세민다방으로 가서 커피를 마셨다. 이 다방은 커피 마시는 일보다 주변 경제 돌아가는 사정을 알 수 있었기 때문에 정보를 공유하는 장소로도 한몫했다.
또 열차 시간을 맞추려는 사람들이 쉬는 장소로도 세민다방은 인기가 있었다. 다른 다방들이 저녁나절부터 손님이 들기 시작했지만, 이 다방은 열차 시간에 맞춰 붐볐다. 그래서일까. 이미 울산역은 옮겨갔지만, 오늘 밤에도 불이 켜진 세민다방이 등대처럼 우뚝해서 바라보는 느낌이 흐뭇하다.
명성다방·도심다방…지금은 텅빈 간판만
이외에도 울산역 근방은 다방들이 무수히 많았다. 세월이 흘러가면서 지금은 이름조차 감감하다. 함월다방과 현대다방보다 훨씬 먼저 복산성당 맞은편 구 역전시장 입구 명성다방은 오래전 노래방으로 바뀌었으며 새벽시장 삼거리 도심다방도 문을 닫았다. 도심다방에서 내려다보는 새벽 시장 풍경이 아슴아슴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리고 학성타운 앞 상가 2층에 있던 동경다방도 손님이 제법 있었는데….
하늘을 나는 택시가 등장하는 시대에 다방이 살아남는다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기보다 어렵다는 말이 실감 난다. 다방이 휴게 음식점으로 업종을 바꾸고도 결론은 문을 닫는 것에 이른다는 이야기는 슬프다. 세상이 변한 것을 탓해 무엇하랴 싶다. 정은영 울산불교문인협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