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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들면서 날이 갑자기 춥다. 서울 등지에는 폭설이 내렸고 전국이 꽁꽁 얼어붙었다. 갑진년 끝자락에서 꽁꽁 언 마음을 녹여줄 수 있는 공간이 바로 다방이다. 울산권역에서 방어진을 제외하면 다방들이 거의 사라졌다. 그러나 아직도 흘러나오는 노래는 옛 향기겠지요 라고 한다면 두툼한 외투 걸쳐 입고 봉계로 가 볼 일이다. 봉계에 가면 따끈한 다방 커피를 마실 수 있다. 봉계는 전통 다방들이 생각보다 많다. 

삽화. ⓒ왕생이
삽화. ⓒ왕생이

 사실 다방이 많은 봉계는 한우 생고기 특구로 유명한데 생고기는 양념을 전혀 하지 않은 상태의 고기를 말한다. 생고기를 불판에 올리고 굵은 막 소금을 뿌려서 간을 맞추는, 대한민국에서 한우 생고기 문화를 만들어냈던 울주군 두동면 봉계리에 가면 지금도 여섯 곳 다방이 있다. 

 봉계에 들어서면 불고기 식당이 많은데 놀라고, 한 번 더 놀라는 것은 이 작은 마을에 다방이 수두룩하다는 점이다.  

 근래 봉계는 생고기 수요가 줄면서 여러 어려움이 있다는 소문이 들려오지만, 아직도 한우 생고기를 찾는 사람들에게는 봉계가 소중한 먹거리 마을로 알려져 있다. 

 한우 생고기 원조로 알려진 식당은 봉계 장터 숯불 고깃집으로, 수십 년 전, 처음에는 간판도 있는 둥 없는 둥 장터 한쪽 허름한 집이었다. 이 집이 오늘날 봉계 불고기 특구를 만든 시작점이다. 

 봉계는 언양에서 경주 내남으로 가는 길목이다. 봉계 버스 종점에서 울산보다는 오히려 경주 가는 버스가 많았던 봉계가 전국에서 유명한 한우 불고기 단지로 급성장하면서 언양불고기 단지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한우 불고기 단지로 발전한 봉계는 다방이 있어서 유명세를 견인하고 있다. 만약 봉계에 다방이 없다면 무슨 재미가 있을까. 봉계에는 다방이 여섯 곳이나 있는데 유사한 영업을 하는 카페까지 합치면 그 수는 열 개를 헤아린다. 봉계는 다방이 그럭저럭 먹고사는 수단으로 아직은 괜찮은 것 같다. 

봉계시외버스 터미널. 사람들이 머물다 간 흔적이 곳곳에 묻어 있다. 정은영 제공
봉계시외버스 터미널. 사람들이 머물다 간 흔적이 곳곳에 묻어 있다. 정은영 제공

 한우 불고기 단지로 급성장한 봉계는 한마디로 상전벽해가 된 마을이다. 특히 교통 오지에서 교통 요지로 변하면서 발전의 속도를 더해가고 있다. 들판에서 벼가 자라는 한적한 농촌으로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봉계지역이 교통요지가 된데는 수년 전 경부고속도로 봉계나들목(활천)이 생기면서 고속도로를 이용한 접근성이 크게 좋아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양에서 경주 가는 자동차 전용도로를 비롯해 곳곳으로 연결된 여러 도로가 봉계의 발전을 이끌고 있다. 특히 봉계는 언양의 오랜 전통인 석쇠불고기 맛 대신 생고기로 승부를 걸었는데 식도락가들로부터 인정을 받으면서 생고기 특구로 지정받기에 이르렀다.

 국내 1호 먹거리 특구로 지정된 언양과 봉계는 언양과 함께 짝수 해는 언양에서, 홀수 해는 봉계에서 번갈아 한우 불고기 축제를 개최해왔으나 최근 몇 년간은 '코로나 19' 등의 외부적 영향으로 축제가 열리지 못하면서 약간 침체기에 들어섰다는 사람들이 많다.

정다방은 50년 전통을 자랑한다. 정은영 제공
정다방은 50년 전통을 자랑한다. 정은영 제공

 30년 전, 어느 가을이었다. 산야에 단풍이 곱게 물들었던 기억이 나는 것을 보면 아마 가을이 절정이었던 11월 어느 날로 기억된다. 필자가 경상일보 문화부에 근무하고 있을 때인데 당시 울산연예예술인협회 한기철 회장이 삐삐로 전화번호를 남겼다. 무슨 일인가 싶어 전화를 걸었더니 몇 월 며칠, 점심때 시간을 좀 내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괜찮다고 했더니 봉계 생고기 맛을 보러 가자고 했다. 

 연협 회원들과 몇이 봉계로 갔다. 한 회장은 두동면이 고향으로 필자에게 고향의 특미 한우 생고기 맛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그때는 두동면사무소 소재지에서 월평을 거쳐 봉계로 가는 길 일부가 비포장이었다. 먼지를 일으키며 달리는 시골길, 지금도 영화의 한 장면처럼 기억에 남아있다. 

 원 플러스 원으로 1973년 듀엣 활동을 시작해 서정성이 강한 노래를 불렀던 정종숙이 1975년 솔로 앨범을 발표하면서 '둘이 걸었네' 등으로 인기를 구가했는데 그 노래 중에 '달구지'라는 노래가 있다. 

 

 해 밝은 길을/ 삐거덕삐거덕/ 달구지가 흔들려가네

 덜거덕덜거덕 삐거덕삐거덕/ 흔들흔들 흔들려가네 (중략)

 

 비포장도로를 달리면서 차 안에 타고 있던 여럿이서 이 노래를 불렀던 기억이 어제 같다. 차가 크게 흔들려서 멀미가 난다고 했던 사람도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봉계에 갔다. 정말이지 소달구지처럼 승용차가 거의 기다시피 먼지를 뒤집어쓰고 간 봉계는 어느 시골에서나 볼 수 있는 한적한 시골 장터에 사람은 거의 볼 수 없었다. 

 한 회장은 이런 분위기를 아는지 모르는지 그냥 봉계 장터 안으로 들어섰다. 우리도 줄을 이어 장터 안으로 따라 들어갔더니 장터 한쪽에 유일하게 불고기 간판을 단 허름한 집이 있었다. 

 "이런 곳도 있네, 고기를 팔기는 하나"

 하면서 우리는 서로 힐끗힐끗 쳐다보며 제각기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메뉴가 몇 가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주인장 할머니는 사람 수를 헤아리는 듯하시더니 그냥 주방으로 들어가셨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고기가 나왔는데 양념을 전혀 하지 않은 선혈이 맺힌 생고기였다. 우린 뜨악했지만 한 회장은 서슴없이 참숯불에 생고기를 얹고는 막 소금을 뿌렸다. 그리고 적당히 구워지자 앞 접시에 담아주었다. 

 소금으로 간을 맞춘 참기름에 찍어 먹었다. 처음에는 약간 낯설었지만 먹을수록 진 맛이 나서 결국 고기를 몇 번 더 시켰다. 먹을수록 당기는 입맛이었다. 실컷 한우 생고기를 먹은 다음 우리는 커피 생각이 났다. 

 "한 회장님! 이 근방에 다방 없습니까?"

 "당연히 다방이 있지요. 따라 오이소"

 또 그의 뒤를 따라 우르르 봉계 버스 종점 앞 정다방으로 향했다. 

정다방 벽에 옛글 그림이 걸려 있다.(2023년 7월) 정은영 제공
정다방 벽에 옛글 그림이 걸려 있다.(2023년 7월) 정은영 제공

 감초한의원 옆 지금의 유통불고기 터에 있던 기와집이 정다방이었다. 입구도 문턱이 낮아서 머리를 약간 숙여야 이마를 다칠 염려가 없었다. 그 인연으로 나는 그날 봉계에 처음 갔고 정다방을 알게 된 것이다. 

 정다방에 들어갔더니 다방 안은 촌로들이 이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거의 만석이었다. 구석구석 자리를 차지한 촌로들은 다방 아가씨들과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아마 울산 시내나 경주 시내 갔다 오다가 집에 바로 들어가기는 아직 좀 이르고 해서 커피나 한잔하는 것 같았다.

 우리도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서 삼삼삼 커피를 한잔했다. (이미 어느 다방에서 설명했지만 333 커피는 커피 3숟갈, 프리마 3숟갈, 설탕 3숟갈을 말한다. 그게 지금의 봉다리 커피 원조다. 레지와 손잡고 마시는 삼삼한 커피로 오해는 하지 말기를 바란다.) 

 그렇게 봉계와 나의 인연은 만들어졌다. 이후 봉계는 자주 가는 곳이 됐다. 봉계 덕분에 경주 남산을 한 번이라도 더 가는 즐거움도 누렸다. 경주 남산 삼릉이나 용잠골에 갔다 올 때는 봉계에 들러서 저녁을 먹고 커피도 한잔했을 정도였다. 

 근래 TV에서 다방이라는 코너가 자주 등장하는 것을 본다. 다방이 과거 어른들이 생각하는 청소년 금지구역이 아니라 지금은 따뜻함이 있는, 정이 넘치는 삶의 또 다른 문화공간인 것으로 소개되는 것을 보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TV에서는 추억의 음악다방 코너 등이 시청자들의 눈길을 끈다. 문화산책 코너에서도 가끔 다방이 등장한다. 한때는 우리 삶의 중심에 있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불륜의 공간처럼 뉘앙스를 풍겼던 곳이 다방이었다. 

정은영 울산불교문인협회장
정은영 울산불교문인협회장

 그런데 말이다. 세월이 약이라고 했던가, 다방이 도심에서 거의 사라진 지금 다방을 무대로 꾸미는 다양한 문화행사들이 개최되고 있음은 놀랄 일이다. 유행은 돌고 도는 것이라고 했지만 다방에 대한 인식이 이렇게 바뀌는 것은 뭐라 설명을 해야 할까. 세상은 참말로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십수 년 전 울주군에서는 울주문화예술회관에서 해마다 시월에 울주문화예술회관에서 추억의 음악다방을 주제로 군민들이 즐길 수 있는 문화예술축제를 열었다.  

 이런 축제들뿐만 아니라 각 방송사에서도 늦가을이나 초겨울에 감성을 자극하는 문화예술 코너를 만들었다. 

 많은 사람이 다방에 대한 추억으로 만추의 가을을 느끼게 했던 것이다. 이런 대중문화행사는 지방에서도 잊을 만하면 열린다. 

 수년 전 어느 일간 신문사가 울산 태화강 둔치에서 추억의 다방 문화축제를 열었을 때 나는 졸저 '다방열전' 몇 권을 전달했다. 행운권 추첨 때 쓰라면서…. 정은영 울산불교문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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