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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을사년 새해를 여는 태양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1일 울산시 동구 대왕암에서 행운의 오메가(Ω)  일출을 만났다. ⓒ이상원
2025년 을사년 새해를 여는 태양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1일 울산시 동구 대왕암에서 행운의 오메가(Ω) 일출을 만났다. ⓒ이상원
울산시 동구 방어진항의 슬도 등대의 해돋이 모습. 나란히 서 있는 3개의 등대가 아침 햇살에 빛난다 (2024.12.23). ⓒ이상원
울산시 동구 방어진항 슬도 등대의 해돋이 모습. 나란히 서 있는 3개의 등대가 아침 햇살에 빛난다 (2024.12.23). ⓒ이상원
울산시 동구 방어진항 슬도 등대의 해돋이 모습. 행운의 오메가 일출을 만났다 (2024.12.23). ⓒ이상원
울산시 동구 방어진항 슬도 등대의 해돋이 모습. 행운의 오메가 일출을 만났다 (2024.12.23). ⓒ이상원
울산시 울주군 명선도의 해돋이 모습 (2024. 12. 27). ⓒ이상원
울산시 울주군 서생면 명선도의 해돋이 모습 (2024. 12. 27). ⓒ이상원
경북 포항시 장기 모포리 해변 일출. 썰물 때 바위 틈을 드나드는 파도의 장노출 촬영지로 유명해졌다 (2024.12.24).  ⓒ이상원
경북 포항시 장기 모포리 해변 일출. 썰물 때 바위 틈을 드나드는 파도의 장노출 촬영지로 유명해졌다 (2024.12.24). ⓒ이상원
경북 포항시 장기 일출암 일출. 육당 최남선이 이곳의 일출을 조선 10경의 하나로 꼽았다 (2024.12.24). ⓒ이상원
경북 포항시 장기 일출암 일출. 육당 최남선이 이곳의 일출을 조선 10경의 하나로 꼽았다 (2024.12.24). ⓒ이상원
경남 합천군 오도산(해발 1,134m)에서 맞은 일출. 고려 창건주 왕건과 인연이 깊은 도선국사가 깨달음을 얻었다고 산 이름이 지어졌고, 운해가 유명하다 (2024.12.19). ⓒ이상원
경남 합천군 오도산(해발 1,134m)에서 맞은 일출. 고려 창건주 왕건과 인연이 깊은 도선국사가 깨달음을 얻었다고 산 이름이 지어졌고, 운해가 유명하다 (2024.12.19). ⓒ이상원

 

2025년 새해가 밝았다. 새해 첫날, 울산 방어진 대왕암에서 일출을 보며 아침을 맞이했다. 올해는 을사년, ‘푸른 뱀의 해’이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시간이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들로 채워져 갈 것이다. 나는 일출 사진을 찍으며 빛과 함께 올해를 시작했다. 

   새해가 밝으면 늘 내가 찍은 일출 사진으로 연하장을 보낸다. 처음 이 일을 시작한 것은 직장생활을 시작했을 때였다. 주위 동료와 고객들에게 우체국 연하장에 일출 사진을 한 장씩 넣어 보낸 게 계기가 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새해 인사가 어느덧 42년이라는 세월 동안 이어져 왔다. 단 한 해도 빠짐없이 일출 사진에 희망과 기원의 메시지를 담아 많은 사람들에게 배달하는 일은 이제 나에게 하나의 소중한 의식이 되었다. 이번에도 작년 12월 하순부터 여러 곳을 찾아 가장 멋진 일출을 사진에 담으려고 준비를 했다. 

   디지털이 본격화 되기 전, 필름 카메라 시절의 연하장 작업은 참으로 복잡하고 손이 많이 갔다.  촬영지로 향하는 차 안에서 제야의 종소리를 듣기 일쑤였고, 힘들게 목적지에 도착해 차가운 새벽 공기를 마시며 일출을 필름에 담았다. 그 사진은 곧바로 확인할 수 없었다. 그 필름을 현상소에 보내고 기다려서 현상된 필름을 받고 나서 사진을 고르고 인화를 맡겼다. 그리고 인화한 사진 뒷면에 인사말을 양면 테이프로 붙였다. 그렇게 완성된 연하장은 봉투에 담아, 인쇄된 주소를 붙여 우체국을 통해 보냈고, 직장에서는 사내 행랑을 이용해 전달했다. 

   해마다 사진을 보낼 대상은 늘어났고, 사진의 사이즈도 커져서 그만큼 비용도 만만치 않았고, 시간도 많이 들었다. 처음엔 부정적인 시각으로 불편해 하던 아내도 시간이 지나면서 그 작업을 적극적으로 도와 주는 자원봉사자의 역할을 해주었다.

   지금은 카카오톡 같은 다양한 SNS를 통해 한꺼번에 사진과 메시지를 보낼 수 있으니 참 편리한세상이 되었다. 다른 나라에 살고 있는 친지에게도 실시간으로 전달할 수 있게 되었다. 나도 편해졌고, 아내도 무보수의 과중한 노동에서 벗어났다.   

   왜 긴 세월 동안 귀찮고 힘든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었을까? 세상이 깨어나지 않은 시간에 길을 나서 촬영지에서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만나는 신선한 새벽! 해가 떠오르면서 빛이 어둠을 밀어내는 생생한 장면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느끼는 희열! 한 해를 되돌아보며 갖게 되는 성찰의 시간! 그리고 수많은 일들에 감사하는 마음! 그것들이 저절로 선물처럼 주어졌다. 나아가 내 사진은 업그레이드 될 수 있었고, 내 삶에 열정과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사진 연하장을 받은 많은 사람에게서 고맙다는 인사를 받게 된다. 그 사진 덕분에 많은 사람과의 인연을 이어갈 수 있게 되었고, 덕담을 주고 받으며 정을 나누는 보람은 나에게도 감사한 일이었다. 직장에 다니던 시절, 해마다 내 사진을 기다리는 직원들이 많았고, 곳곳에서 내 사진을 볼 수 있었다. 고객들 또한 내 사진을 소중히 여겼다. '가족들이 매일 보는 거울에 붙여 둔다.' '업무 다이어리 속에 넣어 두었다가 새 사진이 오면 바꾼다.' '응접실 탁자 유리판 밑에 두고, 고객과 함께 본다' 등등 반응은 다양했다. 

   어쩌다 한 해 빠뜨리면 무척 섭섭해 하기도 했다. 사진으로 인한 에피소드도 참 많다. 가족과 식당에 갔을 때 우연히 만난 어느 선배가 “좋은 사진을 받고도 인사를 못했다”고 하면서 밥값을 대신 내어준 적이 있었다. 어느 후배는 내가 보내준 일출 사진을 수험생 아들 책상 앞에 붙여두고 좋은 기운을 받게 한 덕분에 원하는 대학에 합격했다며 기쁜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직장 선배의 부인인 수필가 정선모 님은 남편을 통해 전해 받고 직장 사보에 '빛으로 여는 길'이라는 제목으로 사진과 함께 글을 기고했다. 나는 가족들에게 그 사보를 당당하게 보여주었다. 그 뒤 '빛으로 여는 길'은 그 분의 첫 수필집 제목이 되었고, 그 책에는 내 사진과 관련된 또 다른 글도 실렸다. 

   비행기 추락이라는 비극으로 공식 해맞이 행사가 취소되었음에도, 대왕암에는 새해 첫 일출을 보러 나온 사람들이 엄청 많이 모였다. 이 어수선하고 우울한 시기에도 일출을 보면서 소망을 빌고, 스스로의 마음 속에 희망의 불씨를 심으려는 사람들이라 그들의 모습이 반가웠다. 그들은 휴대폰으로 찍은 일출 사진을 일출을 보지 못한 가족과 지인들에게 보내고, 그 사진을 받은 이들은 새해의 첫 태양이 주는 기운으로 기분 좋게 새해를 시작할 것이다. 

   오늘 새해 첫 일출은 참으로 깨끗하고 장엄했다. 바다에서 곧바로 떠오르는 행운의 오메가(Ω) 일출이었다. 하늘도 부지런한 사람들에게 좋은 선물을 준 것 같다. 

   내가 보내는 사진은 사진가가 발품을 팔아 정성을 다해 촬영한 것이니 기성품 연하장이 넘쳐나는 시대에도 특별한 의미로 전달될 것이다. 늘 그러하듯 받은 사람들은 그것을 자신들의 가족과 지인들에게 SNS를 통해 전달하며 희망의 메시지는 두루 퍼져나갈 것이다. 앞으로도 내가 보내는 일출 사진이 누군가에게 희망과 기쁨의 씨앗이 되고, 세상을 밝히는 작은 빛이 될 수 있다면 그것이 내가 할 일이라고 스스로 다짐한다. 

   ‘인류의 가장 위대한 점은 추상적인 시간을 일정한 단위로 쪼갠 것’이라는 말에 새삼 공감을 하게 된다. 낮과 밤, 계절의 변화가 무한히 반복되지만, 특히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을 때면 시간의 흐름은 더욱 깊은 의미로 다가온다.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고, 삶에 새로운 질서를 부여하고, 나아갈 방향을 정해야 할 때이다.  

   연말 연초 일출 촬영을 위해서는 어둠이 깔린 이른 새벽에 집을 나서야 한다. 단잠을 떨쳐내고   운전하면서 졸음을 쫓기 위해 창문을 열어 찬 바람을 맞으며 하루가 시작된다. 촬영지에 도착하면 스마트폰 앱으로 태양의 방위각을 확인하고, 구도를 맞춰 일출 방향으로 삼각대를 세운다. 붉게 물드는 여명을 보며 해가 떠오는 순간을 기다리는 동안은 시간의 흐름이 멈춘 것 같다. 

   얼굴을 스치는 찬 바람은 정신을 맑게 하고, 고요 속에 긴장감이 흐른다. 해가 드디어 수평선 위로 고개를 내밀면 손길이 바빠진다. 더 나은 촬영 포인트를 찾기 위해 발빠르게 이동하기도 한다. 해는 순식간에 솟아 오르고, 잠시 멈춘 듯 했던 시간은 빠르게 돌아간다. 짧은 시간에도 풍경은 계속 변하고 살아 숨쉰다. 우주의 신비가 눈 앞에 펼쳐지고, 자연이 만든 최고의 예술품과 마주하게 된다. 햇살에 반짝이는 금빛 바다는 생명력으로 가득 채워지고, 갈매기도 태양의 기운을 받아 비상한다. 

   촬영을 마친 뒤 가만히 바다를 쳐다본다. 멀리 보이는 작은 어선은 어둠을 헤치고 바다로 나선 사람들의 치열한 삶의 상징이라 그 모습이 애틋하게 다가온다. 파도를 바라보며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파도는 바다의 주연 배우이자 자연의 음악가다. 세찬 바람이 불면 더욱 커지는 파도 소리는 세상의 삿된 소리에 찌든 내 귀를 정화시킨다. 머리가 가벼워지고, 마음이 비워지고, 그 자리에 잔잔한 충만감이 채워진다. 그리하여 일출 촬영은 단순한 작업을 넘어 자연과 교감하며, 스스로를 정화하고 충전하는 내 삶의 중요한 의식이다. 

   파도에게 물었습니다

   왜 잠도 안자고

   쉬지도 않고

   밤이나 낮이나 하얗게 일어서느냐고,

   일어서지 않으면

   내 이름이 없습니다. 

   파도의 대답이었습니다

                                  - 유승우의 시 <파도> 전문 –

   파도가 일어서지 않으면 어찌 파도이겠는가. 바다에 파도가 없다면 과연 바다이겠는가. 파도가 파도이기 위해, 바다를 바다로 만들기 위해 끝없이 부딪쳐 쓰러지고도 일어서지 않는가! 파도가 있기에 바다는 외롭지 않고, 세상의 슬픔까지 쓸어 담을 수 있다. 

   내게도 묻는다. 나는 내 이름값을 하고 있는가? 

   새해가 되면 흔히 헛되이 보낸 지나간 시간에 대한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이 거창한 다짐을 하고, 원대한 계획을 세우곤 한다. 무슨 일을 하기 전에 많은 준비를 하고 완벽한 때를 기다린다. 그러다 미루고 핑계 대다가 시작조차 못한 일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시작하지 못하는 이유는 시작하지 않기 때문이다. 시작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냥 시작하는 것이다’,  ‘완벽한 때를 기다리다가 몸에 때만 낀다’/‘모든 것의 시작은 위험하다. 그러나 무엇을 막론하고 시작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는다 (니체).’ - 최근에 읽은 책에서 밑줄 그은 부분- 

   나의 경우도 원고를 쓰려고 했지만 막막해서 계속 핑계거리를 찾으며 미루었다. 그러다가 처음 한 줄을 대충이라도 쓰고 나니 조금씩 채워져 갔다. 일출 촬영도 춥고 어두운 새벽에 집 밖으로 나가는 게 힘들어서 가지 않을 이유를 찾으며 머뭇거렸지만, 막상 카메라를 챙겨 집을 나서서 목적지에 도착하면 나의 선택이 옳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상원 사진가 swl5836@naver.com

   멈춰선 자리에서는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성장과 성취는 항상 한 걸음의 움직임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가장 절실한 것은 지금 당장 시작하는 것! 작은 것이라도 진지하게 실천을 반복하면 아직 텅 비어 있는 올해의 광활한 곳간에 소소한 행복이 하나씩 채워지지 않을까 싶다. 삶의 속도를 조금 줄이고 시야를 넓혀, 앞만 보고 가느라 보지 못 했던 주변의 꽃도 보고, 새 소리도 들었으면 좋겠다. 삶에 지치거든 때로는 편안하게 체념도 하고, 쉬어 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2025년, 세상이 어수선하고, 시끄러워도 흔들림없이 함께 힘과 지혜를 모아 을사년이 더 이상 을씨년스럽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오늘의 어둠이 아무리 깊어도 새벽이 오고, 내일도 해는 뜬다!

이상원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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