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야음시장 한다방. 정은영 제공
야음시장 한다방. 정은영 제공

수암로 내 유일하게 살아남은 까치다방

까치다방에서 한걸음에 수암시장이 있다. 수암시장은 울산 재래시장 중에서 신정시장과 더불어 쌍두마차라고 해도 될 만큼 장사가 잘된다. 시장 규모는 그리 크지 않다. 처음에는 마을 소방도로를 중심으로 난전을 펴다 점차 확대되면서 오늘날의 시장 규모를 갖추었다. 

 재래시장은 비좁은 골목이 매력이다. 골목이 널찍하면 횅댕그렁한데 비좁다 보니 어깨가 부딪히고 그래서 이웃끼리 정이 든다고 한다. 수암시장은 특히 한우고기가 유명하다. 이 지역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야음시장과 혼동하기도 한다.

 수암시장 덕분에 이 지역 일대가 주거지역으로 급발전한다는 말이 빈말이 아니다. 

 언젠가는 까치다방도 문을 닫을 것이다. 까치다방까지 문을 닫으면 더 이상 수암로에서 다방은 없다. 현재 수암로 일대는 재래식 마을이 헐리기가 무섭게 주상복합 아파트들이 키재기를 하고 있다. 수암시장을 지나 야음시장 방향으로 가다 보니 대현고등학교가 있고 대현동 행정복지센터가 있다. 그리고 바로 만나는 곳이 야음동 사거리다. 야음사거리는 번화가다. 혹시 하는 생각으로 다방을 찾았다. 그러나 없다. 

야음시장 한다방과 공주다방서 떠올린 옛 추억

야음시장은 수암시장보다 더 재래시장이다. 수암로를 따라 지어진 상가건물과 그 안쪽의 재래식 건물들이 어울려서 시장을 형성했다. 그 상가건물에 좀 전에 까치다방 주인이 운영했다는 한다방 등이 있었다. 경남은행 야음동지점을 가운데 두고 양 날개처럼 있었던 다방이 한다방과 공주다방이다. 

 현재는 재개발을 앞두고 울타리가 쳐졌고 그 안에 겨우 간판만 울타리 너머 목을 내밀고 있다. 문을 닫은 이 다방들도 당연히 한때는 영화를 누렸던 시절이 있었다. 1970년대 상가가 형성되고 여천동에 배 조합이 있을 때는 단골들만 상대해도 수입이 괜찮았다. 아침부터 출근 도장을 찍는 단골 덕분에 다방 천장은 아침부터 담배 연기로 뭉게구름을 만들었다. 미니스커트를 입고 엉덩이를 흔들며 사내의 눈길을 끌었던 레지도 3~4명은 기본이었다. 

 "오빠 오늘은 일찍 왔네예" 

 알루미늄 쟁반을 들고 배달 나가던 레지 숙이가 아쉬운 듯 눈꼬리를 내리깔고 말했다. 그러자 중년의 남자가 그 말이 땅에 떨어지게 하지 않으려고 하듯 받는다. 

 "그래 커피 한 잔 마시고 갈라꼬 왔다 아이가"

 "오빠, 빨리 배달 갔다가 올게요, 나하고 커피 한잔 하입시더" 

 그리고는 다방 앞 오토바이를 타고 부리나케 배달 가던 시절은 야음동 앞 들판 달동과 삼산 즉 달삼 지구가 개발되기 이전이었다. 

카페문화에 밀려 설 자리 잃은 도심 다방

세상이 바뀌었다. 도심다방은 사라지는 업종의 대표선수가 된 지 오래다. 겨우 항구를 중심으로 살아남은 다방들이 있기는 하지만 이 다방들도 언제 문을 닫을지는 알 수 없다. 울산은 산업화 이후 대한민국 대표 공단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울산으로 몰려드는 청춘들을 따라오듯 다방들이 곳곳에 문을 열었다. 

 시외버스, 고속버스 터미널 주변은 물론이고 골목마다 사람 사는 냄새를 풍기면서 다방들이 아침마다 울산의 새벽을 챙겼다. 영원할 것 같았던 다방들이 새로운 카페문화라는 것이 들어오면서 한 방에 훅 가버렸다. 

야음시장 공주다방. 정은영 제공
야음시장 공주다방. 정은영 제공

 멀리 전국을 들먹일 필요도 없다. 울산의 절경 동구 주전이나 북구 정자해변 어디를 가도 어김없이 대형 커피점들이 자리 잡고 있다. 그 바람에 이제는 해안 길 드라이브 코스가 재미없다. 바닷가 조망권이 이들 카페와 펜션으로 거의 막혀 버렸다. 울산 바닷가는 몽돌 해변으로 유명한데 이곳 역시 조망이 좋은 곳은 어김없이 카페차지다. 대형 카페들은 수십억, 수백억이 투자금으로 들어갔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이제는 카페가 기업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다방은 이들 기업 카페와 모든 면에서 비교 불가하다. 당연히 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만약에, 만약에 말이다. 주전 몽돌 해변 풍광이 수려한 곳에 다방이 떡 버티고 있다면 어떨까, 감히 건방지게 이런 상상을 해볼 때가 가끔 있다. 작은 어선에, 아니면 바닷가 몽돌밭 텐트에 엉덩이를 흔들면서 배달하러 가는 레지 아가씨가 있다면 울산의 새로운 명소다방이 될 것이다. 낭만이란 그런 것 아닐까 한다. 

 현재로부터 과거로 달려가면 지난 20년은 카페가 다방을 밀어내는 시기였다. 자고 나면 다방이 사라졌다. 재개발에 들어가서, 혹은 장사가 안돼서 등등 이유는 다양했다. 재개발로 어느 지역의 다방이 사라진다는 소문을 들으면 잰걸음에 그 다방 간판 사진을 찍는다. 이제는 다방 간판을 찍은 사진이 한 시대의 유물 같은 생각이 들어서다. 

 수암로 다방 탐색은 한마디로 맹탕이었지만 한다방이나 공주다방 간판이라도 찍어둔 것에 만족했다. 그리고 까치다방이 그나마 수암로 다방 체면을 살려주었다. 그리고 주인의 이런저런 이야기가 어느 다방 많은 지역을 돌아본 것보다 영양가가 높았다. 방어진 어느 다방에서도 커피 한 잔 마시고 나면 염치 불문하고 종업원들이 일어서버리는 바람에 말 한마디 제대로 걸어보지 못한 경우도 많았기 때문이다. 

정은영 작가
정은영 울산불교문인협회장

낡고 허접한 간판일지라도 사진으로 남겨본다

다방을 찾는 일이 갈수록 어렵다. 불과 몇 개월 전에 있었던 다방이 흔적 없이 사라지는 일이 허다한 요즘이다. 남구 신정동 울산시청 주변도 도로변 상가들이 헐리면서 다방도 함께 묻히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어디에 공사가 추진된다는 소문을 들으면 급히 달려가 본다. 혹시 다방이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지금은 허접한 다방 간판 사진일지 몰라도 훗날에는 울산 근대문화유산의 자료로 사용되지 않을까 하는 약간의 기대감에 먼지 쌓인 간판일지라도 닦아서 사진을 찍고 싶다.

 수암로 다방들은 최소 20년 전에만이라도 최소 10개 다방은 챙겼을 것 같다. 그러나 지나간 세월을 탓해 무엇하랴. 사람들은 이런 나를 보고 다방에 빠진 사람이라고 한다. 나는 그 소리가 나쁘지 않다. 

 울산 다방 이야기에 빠져 사는 필자를 보고 을사년 새해 인사차 전화를 건 아동문학가 조희양 선생은 아예 필명을 다방으로 했으면 좋겠다고 한다. 듣고 보니 그것도 그럴듯하다.  

 커피가 문학의 소재로 등장한 최초의 시를 소개하면서 수암로 다방 순례를 접고자 한다. 이슬람 수피교도인 잘랄 앗 딘 알루미의 '입술 없는 꽃'이다.

깨어나라, 아침이므로/ 

아침의 포도주를 마시고 취할 시간이다/ 

팔을 벌리라/ 영접할 아름다운 이가 왔도다….

 여기서 아침의 포도주는 커피를 상징한다.  정은영 울산불교문인협회장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