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쯤에서 울산의 다방들을 거의 찾아냈다고 한 것이 건방진 생각이었다. 아직도 필자의 눈에 띄지 않은 다방들이 울산 곳곳에 있다. 엊그제 을사년 2월 15일 통일교육위원회 울산협의회 이상문 회장님과 점심을 하러 교동 어느 돼지국밥집을 가다 우연히 다방을 발견했다.
준 다방이다. 북정동 우체국 앞 옛길을 따라 우정동 방향으로 가다 장원다방 가기 전 고개 내리막 왼편에 준 다방 간판이 눈에 띄었다. 반갑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인근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나와서 이 회장님이 차를 돌리는 동안 필자는 준 다방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간판과 건물 사진을 찍었다.
재개발 바람이 불어서 곧 헐릴 것 같은 동네의 중심 건물 3층의 2층에 있는, 준 다방은 아직도 불이 켜져 있었다. 이럴 때 필자는 무지 기분이 좋다. 가끔 이삭 줍듯 다방을 찾아낼 때 울산 과거 골목 문화를 알 수 있음은 당연하다.
2023년 10월 중순, 단풍이 산 아래까지 내려왔다. 일교차가 15도에 이른다. 기온도 하루가 다르게 뚝뚝 떨어진다. 멋쟁이 아가씨의 반소매 차림이 어느 순간 간곳없다. 성급한 사람들은 벌써 두꺼운 옷을 입었다. 계절의 변화는 당장 옷차림도 바꾸었다.
선선한 바람이 차갑다는 느낌이 드는 날 오후, 다방열전을 쓰기 위해 정자항을 찾았다. 본격적 다방 탐구가 시작된 것이다. 정자 다방 글을 쓰기 위해 취재를 몇 번 했다. 필자의 글 쓰는 스타일이 현장을 눈으로 확인하는, 또 신발이 닿도록 걷고 마음으로 골목을 걸어야 글이 써지는 체질이다. 아마 이것도 오랫동안 신문사 기자로 살아온 일종의 직업병인지도 모른다.
차를 주차하기 위해 먼저 정자항 부두로 갔다. 정자항은 크고 작은 어선들로 빈틈이 없다. 입항한 어선들에서 비릿한 생선 냄새가 진동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비린내가 항구를 덮어씌웠다.
부두는 구릿빛 얼굴의 어부들이 어창 가득 잡아 온 고기 상자를 배에서 내리고 있었다. 어부들의 굵은 힘줄이 불거진 팔뚝을 보면서 저들이 진정한 바다 사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깃배가 들어와서 고기 상자를 내리려고 하면 생선비린내를 맡은 갈매기들이 어선 주변으로 떼를 지어서 몰려들었다.
우선 이 마을에 왔으니 마을 이름의 내력을 살폈다. 정자라는 이름은 과거 24그루의 포구 나무(느티나무) 정자가 있어서 유래됐다고 한다. 알고 보면 별것 아닌데 모르면 궁금하다. 정자항은 강동동 일대 당사항 등 8개 포구 가운데 중심 어항이다. 그리고 해안선이 아기자기해서 바다를 보려는 관광객들이 연중 많이 찾아온다. 아름다운 만큼 정자항을 소재로 쓴 책들도 제법 눈에 띈다.
순천대 교수를 역임한 곽재구 시인은 2002년 10월 펴낸 '포구기행'에서 울산의 여러 포구 가운데 유일하게 정자항 풍경을 글로 그렸다. 전국에 유명 포구가 수백 곳 있을 터인데 그중 정자항이 수십 개 포구에 선정돼 유명시인의 글로 탄생 됐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또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정자항도 덩달아 유명해졌다. 지난 2018년도에도 3쇄 본이 출판됐다. 3쇄 본 82페이지 밑에서 여섯 번째 줄에 정자항 다방 이야기가 조금 비치기 시작했다. 금맥을 찾은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찬란히 떠오르는 동해의 일출을 보는 듯 책을 읽어 나갔다.
'빨간 스웨터의 아가씨는 다음 배로 건너가 물과 커피를 나눈다. 쭈그려 앉은 아가씨의 살빛이 드러난다. 힘든 하루의 노동이 끝나면 뱃사람들이 찾아갈 곳은? 나는 조금 불안해졌다.' 그리고 또 있다. 84페이지 위에서 다섯 번째 줄에
'숙소를 정하고 나와 K는 함께 바다로 나왔다. 동해다방의 불빛이 보인다. 우리는 동해다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선창에서 붉은 스웨터의 아가씨를 보는 순간, 이 방문은 예정된 것이었다. 다방 안은 조금 떠들썩했다. 유자차를 따뜻하게 끓여 내온 아가씨는 뜻밖의 이야기를 했다. '뱃사람들 일은 독하게 하는데 목이 말라도 마실 물이 없어요. 그 사람들 여기가 고향이 아니라 통영 사람들이거든요. 물 한 잔 내놓을 뿐인데 너무 고마워해요. 물론 장삿속이 전혀 없지는 않아요. 일이 끝나면 우리 집에 와서 차를 마실 때도 있으니까요. 술요? 그 사람들 일이 너무 힘들어 술 못 해요. 다음 날 새벽이면 다시 멸치잡이에 나서야 하니까요.'
곽 시인은 낮에 보았던 풍경을 다른 쪽으로 단정해 버린 것에 대해 진심으로 미안해하는 마음을 썼다. 곽 시인이 정자항을 쓸 당시만 해도 정자항에는 다방들이 곳곳에 있었다는 것이 평생을 이곳에서 산 토박이들의 기억이다.
토박이들은 바람이 불어서 배가 출항하지 않을 때는 마땅히 갈 곳이 없어서 다방에 가는 게 유일한 낙이었다고 했다. "그때야 돈이 좀 있을 때니까 다방에 가면 대우가 좋았지, 그것을 말로 다 할 수야 있나"하고 얼버무렸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표정에 아스라한 과거의 즐거움이 살아나는 듯했다.
곽 시인은 2024년 가을 울산문협이 주최한 '북 페스티벌' 초대문인으로 와서 직접 대면하는 기회를 얻었다.
정자항은 그냥 '정자'로 쓰면 표현상 뭔가 어감이 이상하다. 정자은행과 같은 이미지가 쌓일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과거에도 '정자 다방'이라는 이름보다는 '해변다방''동해다방' 등의 다방 이름이 지어졌는 것 같다.
정자로 가는 길은 울산에서 14번 국도를 따라가야 한다. 정자마을 입구 사거리에서 곧바로 직진하면 정자항과 시장으로 가는 길이다.
사실 이 비좁은 도로가 한때는 정자 중심도로였다. 파출소, 우체국, 동사무소가 이 도로를 물고 있었다. 지금은 동사무소가 이전하고 그 자리에는 화단이 조성돼 있다.
그리고 강동 블루마시티 산하지구 도시개발 이후 2014년 이후 아파트 단지들이 많이 들어섰다. 아파트들이 우후죽순 들어서면서 당연히 다방도 생겨나야 하는 데 정자에는 있던 다방마저 문을 닫고 대신 카페가 경치 좋은 곳을 모두 선점했다.
지금도 정자항 주변 산하지구는 신건물이 계속 지어지고 있다. 그리고 호텔들도 속속 개업하고 있다. 개발이 급속도로 이뤄지면서 정자 일대는 도심으로 변하고 있다. 낮에 산하지구 상가에 가면 주차 전쟁을 치러야 한다. 그들은 '울산의 해운대'라고 큰소리치지만 아직은 기반 시설이 턱없이 부족하다.
그러나 언젠가는 몽돌로 유명한 정자 해안이 해운대를 우습게 볼 날도 올지는 모른다. 세상일이란 게 감히 함부로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지금도 강동 산하지구는 하루가 다르게 변신하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특히 눈만 뜨면 카페가 새로 들어서고 있다. 어떤 사람은 커피 마시러 정자 지역 카페를 찾아간다고 했다.
잠시 곽 시인이 찾았던 그때를 추억하면 곽 시인이 정자항 동해다방을 갔을 무렵의 계절은 레지 아가씨가 스웨터를 입었다는 것으로 봐서 계절은 2002년 초겨울이었던 것 같다.
그때만 해도 항구 일대 다방은 시절이 좋았다. 미니스커트를 입은 레지 아가씨들이 쟁반을 들고 부지런히 어선으로 배달 가는 풍경은 언제나 볼 수 있는 일이었다.
곽 시인은 그때 제자와 사진작가 셋이서 갔다고 했다. 포구기행을 하려면 글솜씨도 좋아야 하지만 한 컷에 승부를 걸어야 하는 사진도 매우 중요했다. 1박을 하면서 그날 저녁 다방에 간 이야기는 글을 읽는 시간 내내 어땠을까. 남자 셋이 숙소에 있으려면 무료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바람도 쐴 겸 해서 바닷가로 나오다가 들른 곳이 다방이다. 그 다방에서 빨간 스웨터 아가씨가 타 주는 커피가 정말 맛있었을 것 같다. 그러나 레지 아가씨는 이들의 마음도 모르고 곽 시인 일행에게 따뜻한 유자차를 내주었다고 한다. 정은영 울산불교문인협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