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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영 그림.
역사동화. 김미영 제공

해마다 5월, 반구마을이 일 년 중 가장 시끌벅적한 때가 온다. 산골 축제가 열리는 때이다. 축제에 신청한 궁우리 아이들이 용등산 자락에 있는 궁터에서 활쏘기 연습을 하고 있었다.

 “난 과녁이 잘 보이지 않아." 

 윤서가 활을 내리며 투덜댔다.

 “나도 그래. 이제 쏠 만큼 쐈으니 내일 다시 하자!" 

 산이가 아이들을 부추기자, 경주가 허리를 쫙 펴며 재빨리 말했다.

 “나도 팔 아파! 그만 쏠래."

 “난 더 연습해야 해."

 영서는 침울한 표정으로 활을 내려다보았다.

 “넌 누구보다 연습을 많이 했잖아. 잘할 텐데, 무슨 걱정이야?"

 윤서가 영서 등을 톡톡 치며 안심시켰다. 하지만 유주는 여전히 활을 쏘고 있었다.

 “유주, 그만하고 가자!"

 훈이가 유주의 옷깃을 당겼지만, 유주는 움직이지 않았다.

 “한 번이라도 명중하면 갈게. 너희 먼저 가."

 유주는 친구들에게 먼저 가라고 손짓한 뒤, 다시 활쏘기에 집중했다.

 한동안 활을 쏘던 유주는 문득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해가 거북산 위에 가 있었다.

 “어머, 내가 너무 오래 쐈나?"

 허겁지겁 활과 화살을 챙긴 유주가 뜰을 걷고 있을 때였다. 반대쪽에서 오고 있던 대호 교수와 딱 마주쳤다. 올봄에 정년퇴직한 대호 교수. 그는 암각화연구소 선사세계 탐사국으로부터 여름 강의를 요청받고, 계곡을 탐사하고 돌아오던 길이었다. 둥근 챙 모자에 등에 멘 가방까지, 탐험자 차림새가 한적한 반구마을과 딱 어울렸다.

 “어,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유주가 발걸음을 멈추고 인사했다. 대호 교수는 아이들이 자신을 할아버지라 불러도 이제 교수보다 그 이름이 더 친근하게 느껴졌다.

 “응, 유주구나! 아직 연습하고 있었어?"

 대호 교수는 유주가 든 활과 화살을 힐끗 바라보았다.

 “제가…… 실력이 좀 부족해서요."

 “축제가 다가와서 그렇구나! 힘내. 여름방학에 특별한 체험을 준비하고 있으니 기대해도 좋아."

 “정말요? 어떤 체험이에요?"

 “반구대 선사마을 체험 강의를 맡게 됐거든. 여기는 선사 시대 유물과 유적들이 곳곳에 있단다. 전설과 신화도 많고."

 “우와, 기대돼요! 친구들한테 말할게요!"

 유주는 눈빛이 초롱초롱해지면서, 뜰을 걸어갔다. 대호 교수는 사무실로 향했다. 자료를 정리하고 집으로 가야 했기 때문이다. 사무실 앞에 도착했을 때, 휴대폰 벨이 울리며 '긴급 연락' 이라는 제목이 화면에 떴다 잠시 후 사라졌다.

활 쏘는 사람 그림 도장.
활 쏘는 사람 그림 도장.

 대호 교수는 재빨리 사무실로 들어가 휴대폰을 열었다. 암각화연구소에서 온 문자는 원서 연구원을 찾기 위한 긴급 요청이었다. 이를 받아들인다면 급히 전화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끝에는 암각화연구소 선사세계 탐사국 임하우 국장 이름 뒤에, 반구대암각화에 새겨진 활 쏘는 사람 그림이 도장처럼 찍혀있었다. 

 대호 교수랑 궁우리 아이들은 암각화연구소와 관련된 일을 하기 위해 미리 교육을 받아 두었다. 그런데 대호 교수가 이런 문자를 받은 건 처음이었다. 그는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임 국장님, 대호 교수입니다."

 “교수님, 이렇게 빨리 연락을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국장의 말에 대호 교수는 호기심과 걱정이 섞인 채 물었다.

 “원서 연구원을 찾는다고요?"

 “네! 교수님밖에 이번 일을 해결 할 수 있는 분이 없을 것 같아 연락드렸습니다. 당장 도와주십시오!"

 “그래요? 제가 뭘 도우면 되죠?"

 대호 교수가 다급하게 묻자, 국장도 단숨에 말했다.

 “원서 연구원이 반구대암각화 절벽에서 뭔가를 발견했다는 통화를 하던 중 연락이 끊겼습니다. 생명이 위험할지도 모르니 급히 찾고자 합니다. 교수님이라면 분명 원서 연구원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최선을 다해 찾아볼게요."

 대호 교수의 목소리가 떨렸다.

 “고맙습니다. 한 연구원이 암각화 전망터 앞 호수에서 교수님을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알았어요. 지금 당장 그곳으로 갈게요."

 전화를 끊고, 대호 교수는 곧바로 아내한테 전화를 걸었다. 임무가 주어져 늦어질 것 같다고 말하자, 아내는 조심하라고 당부했다. 전화를 끊었을 때, 대호 교수는 누군가 사무실을 엿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의심스러운 마음에 창문을 활짝 열었다.

 사무실 뒤뜰엔 이 마을에 사는 민구가 고양이를 안고 있을 뿐, 아무도 없었다. 대호 교수는 눈을 찡그리며 창문을 닫았다. 그러고는 책상 서랍에서 목걸이를 꺼내 목에 걸었다. 암각화연구소와 관련된 일을 하게 되어 받아 둔 목걸이였다. 목걸이를 이렇게 빨리 목에 걸게 될 줄 몰랐던 대호 교수는 손전등을 가방에 넣고 곧바로 사무실을 나왔다. 

 손전등은 산속이라 어두워질 것에 대비한 거였다.

 대호 교수는 사무실을 나와 걷는 길에 궁우리들을 만났다.

 “왜 아직 집에 안 가고 있어?"

 “네. 얘들이 계곡에서 놀고 있어서요. 근데 할아버지, 곧 어두워질 텐데 어디 가세요?"

 아이들이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쉿! 비밀 임무를 부탁 받았어. 암각화연구소에 급한 일이 생겨서."

 대호 교수는 최대한 작은 소리로 말했다.

 “거기 부탁이라면 저희도 같이 가야 하는 거 아녀요?"

 유주가 흥분한 소리로 물었다. 대호 교수는 소리를 낮췄다.

 “쉿, 조용! 너희는 어서 차타고 집에 가야지."

 아이들은 대호 할아버지가 걱정되어 그대로 서 있었다. 그때 발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 보고 있다고 느낀 대호 교수가 고개를 획 돌렸다. 이번 역시 궁우리 또래 민구였다.

 “민구야, 혹시 엿듣는 거냐?"

 민구는 움찔하다가 입을 실룩거리며 등을 돌렸다. 그러나 무언가 말하고 싶어 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민구야, 관심이 있으면 정정당당하게 참여하는 게 어때?"

 대호 교수의 말에 민구는 대답 없이 사라졌다. 궁우리 아이들은 자연스럽다는 듯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할아버지, 무슨 일인지 말해 주고 가세요."

 산이가 앞으로 나와서 말했다. 대호 교수가 주위를 휘 한 번 둘러보고 작게 말했다.

 “조금 전에 암각화연구소의 비밀 부서인 선사세계 탐사국 임하우 국장으로부터 부탁을 받았어. 원서 연구원을 찾아달라는. 암각화 절벽에 있다는 말을 남긴 뒤 연락이 끊어졌다는데 해가 저물기 전에 빨리 찾아야 해."

 “그런 일이라면, 저희도 같이 가요. 혼자는 위험할 수 있어요!"

 아이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김미영 글·그림<br>'반구대 고래, 꽃무' 출간·울산문인협회 회원
김미영 글·그림
'반구대 고래, 꽃무' 출간·울산문인협회 회원

 “혼자 아니야, 연구원이 기다리고 있으니, 너희는 어서 가. 걱정해 줘서 고마워!"

 대호 교수는 아이들을 다독이고 거북산을 올려다봤다. 용머리산 그림자가 반쯤 드리워져 있었다.

 “이런, 더 늦어지면 안 되겠어. 미안해, 함께 가지 못해서. 그럼 잘 가!"

 대호 교수는 아이들과 헤어져 고래산으로 향했다. 부탁받은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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