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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에서 유일하게 남은 샘 다방. 강동농협 앞 사거리에서 50m, 울산 시내 나가는 길목 건물 2층에 있다. 정은영 제공
정자에서 유일하게 남은 샘 다방. 강동농협 앞 사거리에서 50m, 울산 시내 나가는 길목 건물 2층에 있다. 정은영 제공
영업중단으로 간판만 남은 정다방. 정은영 제공
영업중단으로 간판만 남은 정다방. 정은영 제공
영업중단으로 간판만 남은 해변다방.
영업중단으로 간판만 남은 해변다방.
정자 시장 도로를 물고 있는 강동동 우체국. 정은영 제공
정자 시장 도로를 물고 있는 강동동 우체국. 정은영 제공
바다에서 잡은 생선들이 거래되는 정자시장. 정은영 제공
바다에서 잡은 생선들이 거래되는 정자시장. 정은영 제공

 

해변다방

이 다방은 앞서 언급했듯이 정자시장을 물고 있다. 지난 2022년 여름, 전 울산사진작가협회 이항룡 회장이 서진길 예총 고문님과 함께 점심을 하자고 해서 정자로 갔는데 이 회장 사무실 앞 부두로 나가는 골목에서 해변다방 간판을 봤다. 

 반가운 마음에 급하게 사진 몇 장을 찍었다. 그리고 근 1년 묵혀 두었다가 2023년 추석즈음에 찾았다. 그러나 아뿔싸! 였다. 그새 해변다방은 간판을 모두 내리고 문을 닫았다. 해변다방 골목은 20년 전만 해도 정자리 해변마을의 번화가였다. 정자 장터 길과 맞물고 있었기에 사람들의 왕래가 잦았다고 보면 된다. 

 다방 영업의 첫째 조건은 사람들 눈에 잘 띄는 곳이어야 함은 당연하다. 해변다방은 장터를 물고 있다. 위치가 좋은 편에 속한다. 항구 쪽으로 신도로가 나기 전에는 이 길이 정자항으로 드나드는 주요 길목이었다. 시장이 있다는 것은 바다에서 잡은 생선들이 주로 거래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직도 강동동 우체국은 정자시장 도로를 물고 있다. 

 여기서 잠깐 한마디를 덧붙인다. 정자는 북구 강동면 정자리다. 리 단위 마을인데도 5일 장 이름이 강동시장 대신 정자시장이다. 그만큼 정자리가 강동면의 중심이라는 뜻이다. 

 시장 골목을 돌아서 바닷가로 나오면 울산수협 강동지점이 있다. 우체국 등 기관들이 몰려있다는 것은 여기가 정자리의 중심이라는 의미다. 과거에는 시장에서 가깝게 멀게 골목을 따라 몇 개 다방들이 영업했다. 

 2023년 가을, 겨우 남은 해변다방도 문을 닫았다. 생각하면 지난해 여름 다방 간판을 봤을 때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다방 문을 밀치고 들어가서 커피를 한잔 팔아줘야 했는데, 생각하니 버스 떠나고 난 뒤 손드는 꼴이다. 

 해변다방 골목을 한참 서성이다 갑자기 '노래하는 정자 바다'가 생각났다. 현 울산문인협회 고은희 회장의 '울산 포구기행'에 실렸던 것을 기억했다. 집에 와서 책을 펼쳐보고 이 노래를 작사한 장세련 아동문학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파도가 푸르른 날 정자 바다는 아무도 없지만 재미있어요/ 파도가 와아와아 달려 나오면 자갈도 자갈자갈 뒤척인대요(중략)

 장세련 작가가 지난 2007년에 쓴 '노래하는 정자 바다'다. 정홍근 선생이 작곡했다. 지금도 이 노래는 많이 불러 진다고 한다. 장세련 작가와 전화통화를 하는데 '노래하는 정자 바다' 노래가 전화기에 실려 들려왔다. 장 작가 옆에 있던 남편이 들려준 것이다. 자갈자갈 대는 몽돌의 노래가 정겹다. 

 그냥 무심히 정자항에 온 사람들에게 다방은 그리 대수로운 장소가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어선에 커피 배달 가는 레지 아가씨의 머플러 날리는 다방 이야기를 찾는 사람에게는 어느 다방의 어느 귀퉁이, 그곳에서 다듬지 않은 더벅머리 총각과 레지 아가씨가 밀담을 나누는, 그런 허접한 이야기는 인심이 사나울 대로 사나워진 작금의 시대에 한 토막이라도 소중하리라는 생각을 한다. 

정다방

이 다방은 간판만 남아있다. 과거 이 다방을 본 기억이 없다. 이번에 정자 다방 찾기에 나서면서 간판만 만났다. 정다방은 봉계에도 있다. 봉계 정다방은 아직도 영업 중이다. 그러나 정자 정다방은 간판만 남았다. 

 새 건물인 것으로 봐서 정다방이 영업을 시작한 지는 오래된 것 같지는 않았고 개업했으나 영업이 신통찮아서 그냥 문을 닫았을 것 같다. 다방 간판이라도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남았으니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다방들은 영업을 중단해도 이렇게 간판이 남아있는 경우가 많다. 인근 해변다방과 정다방이 커피 배달 경쟁을 벌였을 당시는 다방이 제법 잘 나갔을 것 같다.

 레지들이 어선에 배달 경쟁을 하던 시절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산전수전 겪어서 페인트칠이 벗겨진 어선이 항구에 정박해 있고 미니스커트를 입은 아가씨가 그 어선 갑판으로 배달 가는 풍경은 상상만으로도 건사한 그림이 된다.  

샘 다방

정자에서 다방은 샘 다방이 유일하다. 강동농협 앞 사거리에서 50m, 울산 시내 나가는 길목 건물 2층에 있다. 샘 다방은 시내 성남동 국민은행(과거 주택은행) 성남지점 후문 쪽에 유사한 이름의 새미 다방이 있었는데 수년 전 문을 닫았다. 

 정자에서 한곳 남은 샘 다방이지만 영업력은 공격적이다. 계단 입구에 신속배달 등이 입 간판으로 붙어 있다. 어디까지 배달이 될까. 궁금증이 스멀스멀했다. 한참 다방을 쳐다보며 "아직도 배달되는 다방이 있는 갑네" 혼자 속으로 중얼거리며 자리를 떴다. 쟁반에 커피포트를 담아 묶은 아가씨가 졸래졸래 배달 가는 그림이 좋다. 정자 어디 아는 사람의 가게라도 있다면 다방 커피를 열 잔쯤 시켜보고 싶었다. 예쁜 머리띠를 한 레지 아가씨가 커피를 배달오는 풍경이 그려진다. 

 다방에서 커피가 배달된다는 간판은 샘 다방이 과거 분위기를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는 증명서다. 부두에 정박한 어선에서 배달 커피 한 잔 마시는 어부의 웃음 띤 얼굴을 볼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지만, 상상일 뿐이다. 만약 어선에 배달이 되면 레지 아가씨가 따라주는 커피 한잔에 험한 뱃일로 쌓인 어부의 피로가 한방에 싹 풀릴 것 같다. 

추억

과거에는 강동농협 앞 사거리 일대가 시내버스와 시외버스 정류소 덕분으로 사람들의 이동이 많았다. 그리고 강동농협 맞은편 정자 장터 방향에, 다시 말해 지금의 빈터에 강동파출소가 있었다. 이 파출소는 불심검문으로 주당들에게는 공포의 검문소로 알려지기도 했다. 지금이야 감포 방향이나 주전 방향으로 가는 자동차 전용도로가 생겼지만, 과거에는 정자 강동파출소 앞 도로가 유일했다.

 여기서 검문하면 달아날 생각은 아예 하지 말아야 했다. 그래서 주말에 정자횟집에서 한잔했던 운전자들이 공포에 떨었다. 하지만 이제는 모두가 흘러가 버린 그리운 추억일 뿐이다. 정자 횟집에서 술 마시고 무룡산 너머 울산 시내까지 대리운전했던 그 시절, 대리운전비가 아깝지만 하는 수 없었던 그 시절을 지금 그리워하는 것은 정 때문일 것이다. 그때 한잔 술에 흥이 넘쳤던 그 사람들은 지금 모두 어디로 갔을까. 이 길을 지나다 보면 가끔 바리 게이트를 설치하고 검문했던 경찰들이 있을까 하고 쳐다보는 버릇은 여전하다. 

 

정은영 작가
정은영 작가

 

마무리

울산에서 다방은 방어진항 일대만 남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방어진항과 정자항은 똑같은 어항이다. 그러나 정자항에는 이제 다방이 한곳 남았다. 이 다방도 언제 간판을 내릴지 사실 아무도 모른다. 엊저녁에도 가족들과 정자 어느 대형카페에 갔다 오면서 불이 켜진 샘 다방을 스쳐 지나오는 데 마음 한구석에 미안한 뭔가가, 그런 께름칙함이 남았다. 울산지역 다방을 찾아다니는 사람도 다방을 가지 않은 것에 대해 잘못했다는 반성문이라도 써야 하는 것 아닐까 하고 나 자신에게 자문자답해본다. 

 정자항과 방어진항은 같은 목적의 항구다. 울산에서 다방은 방어진이 그래도 자존심을 세워준다. 포경산업의 전진기지였던 장생포에도 겨우 다방이 한 곳 있다. 반 촌으로 발전한 범서, 웅촌 등지에서는 다방이 오래전 종말을 고했다. 다시 정자 회 센터를 돌아서 나왔다. 항구에 가득한 오징어 배의 유등이 흔들린다. 정자방파제를 때리는 파도 소리가 거칠다. 정자 다방 이야기를 이쯤에서 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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