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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동화. 김미영 제공<br>
역사동화. 김미영 제공

고래산에 이르자 휴대폰에서 카톡 소리가 울렸다. 대호 교수는 얼른 확인했다. 암각화연구원을 확인할 암호를 암각화연구소에서 보낸 문자였다.

 '원서 연구원이 어디 있기에 아직 찾지 못한 걸까. 과연 내가 잘 찾을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다가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 해질 무렵 고즈넉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고, 높다란 산이 포근히 감싸고 있는 깊은 계곡이 넓은 호수와 연결돼 있는, 말 그대로 그림 같은 반구대 계곡을 보고 대호 교수는 감탄했다.

 암각화 전망터에 온 대호 교수는 연구원이 있나 둘러보았다. 그러나 아무도 없었다. 관광객도 해설사도 모두 떠난 후였다. 호수 위로 어둠이 스며드는 것을 바라보며 그의 마음이 조급해졌다. 연구원과의 약속 시간이 한참 지나 있었지만, 휴대폰을 확인해 봐도 연락은 없었다.

 '무슨 일이 생긴 걸까?'

 불안한 마음이 서서히 차올랐다. 이곳은 깊은 산속이라 신호가 닿지 않을 수도 있지만, 혹시 연구원에게도 무슨 일이 생겼을까? 대호 교수는 다시 전망터 주변을 살폈으나 여전히 인기척은 없었다. 점점 주위가 어둑해지면서 공기가 차가워졌다. 달빛이 호수 위로 길게 드리워졌고, 이대로 기다리는 것은 무리라 판단했다. 근처에 있는 작은 찻집이 떠올랐다. 그는 그곳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

 찻집은 전망터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다. 대호 교수는 주변을 경계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산길은 점점 어두워졌고, 나뭇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부엉이 울음소리가 낯설게 느껴졌다. 

 다행히 찻집의 문은 열려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 손전등을 비춰보니, 좁은 공간 안에 탁자와 의자가 놓여 있었다. 예전에 차를 마시던 곳에 앉았으나, 이제는 더 이상 아늑한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는 창가에 앉아 작은 창문 너머로 보이는 호수를 바라보았다.

 잔잔한 수면 위로 달빛이 부서지고 있었다. 풍경은 아름다웠으나, 그의 마음은 불안감으로 가득했다. 원서 연구원은 어디 있으며, 온다던 연구원은 대체 무슨 일로 나타나지 않는 걸까? 혹시 두 사람 모두 위험에 처한 것은 아닐까? 그는 긴 한숨을 내쉬며 바닥에 몸을 뉘었다. 집 안은 고요했고, 밖에서는 바람 부는 소리만 들려왔다.

 다음 날 아침, 대호 교수는 가방에서 빵을 꺼내 간단히 아침을 해결한 후 밖으로 나왔다. 안개가 끼어 서늘한 공기가 피부를 스쳤다. 호수에는 여전히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주변을 둘러보았으나 연구원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조금 더 기다려 보았으나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결국 그는 날이 밝아져서야 호수로 내려가 보기로 결심하고 전망터의 울타리 대문 앞에 섰다. 목걸이를 갖다 대자 금속음과 함께 문이 열렸다. 깊은 숨을 들이마신 그는 조심스럽게 안으로 발을 들였다.

 언덕 아래로 내려가자 갑자기 땅이 흔들리더니 강한 바람이 몰아쳤다. 눈앞에 파도가 고래산기슭까지 몰려왔다. 마치 호수 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 깨어나는 듯한 느낌이었다.

 '호수에 갑자기 파도가 치다니! 이 사람은 어디 있나?'

 대호 교수는 놀란 표정으로 호숫가로 다가갔다. 그러나 아무리 둘러보아도 사람의 흔적은 없었다. 만나야 하는 장소가 분명 이곳이라 했는데, 목을 빼고 여기저기 보고 있을 그때, 호수에서 삐거덕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기슭으로 빈 배가 파도에 떠오고 있었다.

 '연구원은 어디 가고 배만 오나?'

 그는 놀라 황급히 배 곁으로 다가갔다. 그러나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더 둘러봐야겠다고 생각하며 호숫가를 서성거리던 순간, 파도에 떠밀려 온 배 한 척이 다가왔다. 그 배 안에는 누군가가 타고 있었다.

 “반구대암각화는 남쪽을 보고 있지요?"

 “아니요, 북쪽을 보고 있어요."

 노를 젓던 사람이 대답했다. 그것은 연구원과 주고받는 비밀 암호였다.

 “반갑습니다. 저는 대호 교수입니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암각화 연구원 전상우입니다. 기다리셨지요? 조심 해서 어서 타세요."

 전상우 연구원은 30대 초반의 젊은이였다. 대호 교수는 배에 올라 물결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바람 때문에 늦었나요? 원서 연구원과 연락은 닿았나요? 절벽에 왜 간 걸까요?"

 “아직요! 반구대암각화를 연구하는 사람이니 저기에 갈 수밖에 없지요. 어제 저는 연락을 받은 즉시 배를 타고 주변을 둘러봤지만, 바위 쪽은 어두워서 사람이 보이지 않았어요. 교수님과 연락도 되지 않았고요."

 “그랬군요. 원서 연구원이 정말 절벽에 갔다면, 우리가 직접 확인해 봐야겠어요. 신중히 접근합시다."

 대호 교수의 말에 상우 연구원이 배를 노 저어 호수를 보며 말했다.  

 “이상해요. 어제까지만 해도 잔잔했던 호수가 갑자기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리는 건 처음이에요. 호수물이 불어나 절벽이 멀어진 것도 처음 보고요. 언젠가 원서 연구원이 말한 적이 있어요. 전설에 용머리산에 사는 용이 열을 내면 그 산 정상에 김이 나고 땅이 흔들리고 바람까지 심하게 분다고요."

 “상우 씨는 그 전설을 믿나요?"  

 “용이 선사시대부터 전해오는 이 계곡을 관할하는 왕이라는데, 요즘 그 말을 누가 믿어요?"

 상우 연구원은 말하고 노를 저으며 대호 교수를 희뜩 보았다.

 “왜요, 난 아직 용왕이랑 산신을 믿는걸요."

 상우 연구원이 대호 교수를 의아한 눈으로 보았다.

 “교수님, 갑자기 땅이 흔들리는 건 지진 때문이지, 용왕이니 용왕 성질 때문이라는 건 말이 안 되죠."

 “요즘 젊은 학자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 있죠. 그래, 과학적 분석으로 실종된 원서 연구원이 어디 있을 것 같나요?"

 상우 연구원은 얼굴을 대호 교수 쪽으로 돌리고 말했다.

 “교수님, 원서 연구원과 마지막으로 통화했을 때 암각화가 새겨져 있는 절벽에 있다고 했답니다. 그런데 저기는 선사시대 사람들이 죽은 동물이 다시 살아오기를 바라며 제사 지내고 그림을 새긴 곳이라, 약간 으스스해서 저는 조금 두려워요. 예전에 원서 연구원을 따라 절벽까지 간 적이 있어요. 절벽 가까이에서 이상한 바람이 새어 나오고, 마치 무언가 속삭이는 듯한 기이한 소리 같기도 했는데, 설마, 그 안에 정말 길이 숨겨져 있는 건 아니겠지요?"

김미영 글·그림​​​​​​​'반구대 고래, 꽃무' 출간·울산문인협회 회원
김미영 글·그림'반구대 고래, 꽃무' 출간·울산문인협회 회원

 “전설에 따르면 바위 속에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통로가 숨겨져 있다고 해요. 오랜 세월 동안 이곳 사람들은 이 바위가 신성한 힘을 품고 있으며, 동물의 영혼이 그 길을 따라 이동한다고 믿어 오고 있어요. 나야 자주 가던 곳이니 같이 가 봅시다."

 상우 연구원은 절벽을 바라보며 고개를 꺄우뚱하면서 배를 저어나갔다. 

 “교수님, 저 절벽에는 배를 묶을 곳조차 없습니다. 바람이 세게 불어 배가 떠내려가면 우린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어요."

 노를 젓는 상우 연구원 얼굴이 어두워졌다. 대호 교수도 심각한 표정으로 절벽을 바라봤다. 수십 년 동안 연구하며 익숙했던 바위였건만, 오늘은 왠지 거대한 존재로 자신을 지켜보는 듯한 위압감이 느껴졌다. 어쩌면 저곳에 우리가 모르는 세계가 숨겨져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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