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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흘러나오는 음악이 있을 법한 옥다방. (2023년 11월)  정은영 제공
아직도 흘러나오는 음악이 있을 법한 옥다방. (2023년 11월) 정은영 제공

울산지역 다방 마지막 이야기

울산 다방 이야기를 이쯤에서 울주 삼남읍 중남리 옥다방으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아직도 울산지역 여러 곳에 숨은 다방들이 있으리라 믿는다. 내 눈에 띄지 않은 다방은 훗날 기회가 되면 소개하리라 작정한다. 

 돌아보니 다방 이야기를 처음 시작한 지 15년이 넘었다. 까마득한 세월이 흘렀다. 다방 이야기를 쓰게 된 동기는 이렇다. 직장에서 자신만만 사표를 내고 나왔는데 사회는 냉엄했다. 오라고 하는 데가 한 곳이 없었다. 방황의 세월이 시작됐고 백수 처지가 오래 지속됐다. 겨우 어느 대학에서 한두 학기 강의할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고작이었다. 

 아직도 젊은데, 무작정 놀 수만은 없었다. 집에 종일 있기보다는 돌아다녀야 하겠다고 아침부터 집을 나섰지만 어디 마땅히 갈만한 곳이 없었다. 궁리 끝에 아침부터 다방으로 출근하는 방안을 선택했다. 하지만 다방도 오전 10시 이전에는 문을 열지 않아서 몇 곳을 헤매야 했다. 

 그렇게 애써 찾아간 다방도 대부분 문을 닫았고 불이 꺼진 간판만 덩그러니 붙어있었다. 

 다행스럽게도 그때는 다방이 영업하지 않아도 간판은 그대로 있었다. 우두커니 다방 간판을 쳐다보다 한 생각이 떠올랐다. 

 "간판을 사진으로 남겨보자" 그때부터 시간이 나면 다방 간판을 찍으러 다녔다. 문을 연 다방은 커피도 한잔 팔아주었다. 차를 운전하고 가다가 다방이 보이면 차 안에서도 찍었다. 그 흔적들이 지금 나만의 보물이 됐다.

삼남읍 중심. 파출소가 보인다. (2023년 11월) 정은영 제공
삼남읍 중심. 파출소가 보인다. (2023년 11월) 정은영 제공

작천정 지나 삼남읍 중남리로 무작정 옮긴 발걸음 

마지막 다방에 대한 글을 쓴다고 생각하니 지나왔던 길들이 돌아다 보인다. 한마디로 아쉬움이 남는다. 그 또한 인연 아닐까 한다. 지난 2023년 이야기다. 그해 11월 18일 울산에 첫눈이 내렸다. 기상청은 예년보다 보름이나 빠르다고 한다. 이날 첫눈은 새벽녘 손님처럼 다녀갔다. 희미한 가로등 불빛 사이로 내리는 눈은 낭만이다. 첫눈을 맞으며 흘러간 추억에 목이 메는 청춘들도 있을 것 같다. 

 첫눈은 서설이라고 해서 복을 가져다준다는 속설이 있다. 사람들은 첫눈이 내린 아침 해가 뜨기 전부터 마당에 나와 서성거리며 즐거워했다. 그러나 올해 첫눈이 내린 날 울산의 아침 기온은 영하로 곤두박질했다. 이런 날을 골라 다방으로 직행한다. 그것도 낭만의 시골 다방이다.

 7080 청춘들은 추위가 기승을 부리면 따끈한 다방 커피가 눈에 선하다. 모락모락 피어나는 커피잔을 들고 시 한 수를 생각해내면 꽁꽁 언 겨울에도 가슴이 따뜻해지는 운치가 있다. 

 '시몬 너는 아느냐 낙엽 밟는 소리가…'. 

 날이 추워지면 다방의 온기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것도 옛날식 다방이면 좋겠다. 마담이 출입문을 열어주면서 간드러진 목소리로 길손을 맞아주던 옛날식 다방 말이다. 그런 다방이 울산 어디에 있을까, 손바닥에 침을 뱉어놓고 탁 때려서 침이 많이 튀는 방향으로 잡을까. 언뜻 삼남읍 중남리가 떠올랐다. 

 

눈을 감으면 저 멀리서/ 다가오는 다정한 그림자/ 옛 얘기도 잊었다 하자/ 약속의 말씀도 잊었다 하자 

 

 이용복의 노래 '그 얼굴에 햇살을'을 부르며 신나게 삼남읍 중남리로 달렸다. 삼남에 과연 옛날식 다방이 있을까. 가면서도 걱정이 됐다. 삼남 중남리를 지나칠 때 다방을 본 기억이 없어서다. 언양에서 통도사로 가는 길을 따라 작천정을 지나고 삼남 중남리다. 언양에서 약 4㎞ 정도, 삼남읍 중심인 중남리 들면서부터는 차의 속도를 20㎞ 이하로 크게 줄였다. 혹시 다방을 지나치면 도로 아미타불이다. 

있을 것 다 있는 메뉴. (2023년 11월) 정은영 제공
있을 것 다 있는 메뉴. (2023년 11월) 정은영 제공

10평 남짓 오밀조밀한 구조 영락없는 옛날식 다방

삼남읍 중남리에서 옛날식 다방을 찾았다. 그 이름도 옥다방이다. 외형은 초라하다. 이 다방은 중남초등학교를 마주 보고 있으며 삼남농협과 파출소가 이웃이다. 농협은 담장을 물고 있다. 농협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한때 읍사무소가 있었던 중남리에서 마지막 남은 다방이다. 과거 다방들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지금은 이 다방이 중남리 남정네들의 유일한 사랑방으로 문을 열고 있다. 중남초등학교 동쪽으로 언양에서 양산가는 자동차 전용도로가 개설되기 전에는 옥다방 앞 왕복 2차선 도로가 주요 도로 역할을 했다. 

 옥다방은 문 앞에 오토바이 두어대 정도 주차할 공간이 있다. 도로를 물고 있어서 창문을 열면 신작로 소음이 와글와글 다 몰려들 것 같은 낮은 창, 그 창 안쪽 풍경이 궁금해서 출입문을 당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옥다방"

 이름이 촌 동네에 어울리지 않을 만큼 고급스럽다. 옥다방은 100여 년은 족히 넘었을 법한 단층 기와집 1층을 반으로 나눈, 그중의 반쪽 공간이다. 평범한 농가 주택 수준을 넘지 않았다. 단지 도로를 물고 있어서 다방이 문을 연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옥다방으로 이름을 지은 이유가 있을 것 같다. 바깥에서 건물 사진을 찍고 다방 문을 두드렸다. 몇 번을 두드렸을까. 아무 소식이 없다. 이 다방도 문을 닫아버린 것일까 하는 순간에 '삐거덕' 하고 문이 열렸다. 하지만 주인은 다방에 온 손님을 맞는 자세가 아니었다. 도리어 낭패한 표정을 지었다. 

 주인의 첫마디가 "오늘 문을 안 여는데요"였다. 의아해서 "토요일인데 왜 문을 열지 않나요?" 했더니 그녀는 "지금 막 나가려는 중인데요"라고 했다.  

과거 옛날식 다방에 가면 이런 풍경도 흔했지. (2023년 11월) 정은영 제공
과거 옛날식 다방에 가면 이런 풍경도 흔했지. (2023년 11월) 정은영 제공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 오기 위해 나선 걸음인데 낭패였다. 겨우 옥다방을 찾았는데 주인은 외출해야 한다. 어째야 할까. 하필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이럴 때는 못 들은 척하고 그냥 밀고 들어가는 수밖에 별도리가 없다. 

 "다방 구경이나 하고 커피 한잔합시다"

 주인도 난감한 눈치였다. 순간 판단으로 안 되겠다 싶었는지 들어서는 나를 보고 한마디를 덧붙였다. "창원에서 친척 아들 결혼식이 있어서 거기 가야 하므로 오늘은 문을 닫는데 일찍 오면 오후에 문을 열 수 있을 것 같다"라고 했다.

 그녀는 늦어도 20~30분 후에는 출발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그 시간이면 커피 한 잔 마시는 데 충분하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통도사 가다가 다방이 눈에 띄어서 들어왔다고 했다. 얼굴이 고운 주인은 나이가 들어 뵈지 않는 60대 후반 정도로 보였다. 그리고 첫인상이 부드러웠다. 

 주인이 바쁘다고 하니 자리를 잡고 앉으면서 커피부터 시켰다. 주인은 웃음을 띠며 설탕 커피를 마실 거냐, 아니냐를 물었다. 그냥 봉다리 즉 다방 커피를 주문했다. 같이 한 잔 마시자고 했더니 고맙다고 했다. 

 주인이 커피를 타는 동안 다방 안을 이리저리 둘러봤다. 전체 크기는 10평 남짓 될까 말까 했다. 그야말로 다방 규모와 오밀조밀한 내부 구조를 보면 영락없는 옛날식 다방이다. 단지 화목난로 대신 전기난로가 있다. 아쉽지만 이 정도면 최백호가 말한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 분위기는 충분히 살릴 수가 있었다. 

 옥다방은 탁자가 둥그런 고급 원목이다. 주인은 13년 전인가, 확실하지는 않지만 처음 이 다방을 인수하고 나서 담뱃불로 지지고 성냥불에 그을린 꾀죄죄한 탁자들을 모두 이것으로 바꾸었다고 했다. 

 주인이 문을 닫자며 일어서기 전에 물어봐야 할 것이 몇 개 남았다. 먼저 왜 옥다방이라고 이름을 지었느냐고 물었다. 주인은 무슨 호구조사 나온 사람이냐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자기는 모른다고 했다. 처음에 이 다방 문을 열었던 이 집주인이 작명했고 지금까지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옥다방이라 한 데 대해 무슨 끄나풀이라도 잡을 수 있을까 싶어서 인터넷을 뒤적였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울주군 삼남읍 일대는 인근 자수정 광산에서 품질이 우수한 자수정이 채굴됐다고 했다. 그래서 옥다방 이름이 생겼지 않았을까 짐작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정은영 울산불교문인협회장
정은영 울산불교문인협회장

그시절 넘쳐난 언양 자수정에서 따온 것 같은 이름

언양 자수정에 대해 한마디를 더 보태야겠다. 언양 자수정은 언양을 중심으로 삼남읍 일대에서 채광된 후 언양에서 가공된 명품보석을 말한다. 내가 1978년 5월 직장을 구해서 울산 왔을 때 결혼을 앞둔 형들이 신부에게 선물할 반지, 목걸이용으로 언양 가서 사는 것을 봤던 기억이 났다. 먼저 자수정에 대한 사전적 의미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수정류는 자수정·연수정·흑수정·백수정 등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이 중에서 자수정이 가장 귀중한 것으로 꼽힌다. 특히 언양 자수정은 세계적으로 매우 우수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언양 일대에서 자수정이 본격적으로 채굴, 가공 및 판매되기 시작한 것은 1945년 광복 이후부터이다. 언양 일대에서 채광된 자수정은 주로 언양의 가공공장으로 옮겨져 여러 가지 모양의 보석으로 가공된다. 가공된 자수정이 티 없이 맑고 깨끗하고 색상이 짙고 아름다우면 1등품, 그다음으로 2등품, 3등품으로 구분된다. 

 그러나 1990년대 들면서 자수정 광산은 수익성이 낮아지면서 채광을 중단했다. 광산이 문을 닫으면서 가끔 이 다방에 들렀던 광부들도 한사람, 두 사람 여기를 떠나기 시작했다. 그 후 자수정 동굴은 한동안 휴업기를 거쳐 지금은 사찰도 있고 동굴체험도 가능한 휴양시설로 바뀌었다.

 현재는 자수정 광산으로 가는 길 주변에 대형카페와 숙박업소들이 우후죽순 들어서 있다. 자수정을 싣고 들락거렸던 화물차량 대신 고급승용차들이 뻔질나게 다니고 있다. 이 깊은 산중에 카페 모텔이 즐비하다는 것이 신기할 뿐이다. 정은영 울산불교문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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