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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 ⓒ왕생이
삽화. ⓒ왕생이

사람 팔자 모른다더니 
옥다방 주인은 "내가 여기, 이 농촌에 살 줄 누가 알았겠어요. 참말로 사람 일이란 아무도 모른다더니"라고 했다. 말씨가 울산사람이 아닌 것 같아서 고향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경남 마산이라고 했다. 경남 의령이 고향이라고 했더니 반갑다는 의미로 웃었다. 참고로 의령사람들은 마산과 부산에 많이 산다. 그녀는 커피를 앞에 놓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런저런 살아온 이야기를 했다. 

 그녀의 인생유전 이야기를 대략 정리하면 이렇다. 이 다방은 60년쯤 됐다고 했다. 앞서 밝혔듯이 처음에는 집주인이 개업했으며 중간에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게 됐고 결국 자기에게로 까지 이어졌다고 했다. 주인은 다방 경험이 전혀 없었던 상태에서 인수했다고 했다. 마산에서 다른 일을 하다가 좀 쉬고 있는데 앞서 이 다방을 하던 사람에게서 어느 날 연락이 와서 만났더니 옥다방을 해보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고 했다. 

 그 사람과는 평소 친분이 조금 있었는데, 처음에는 못한다고 딱 잡아뗐다. 그러나 그 사람이 몸이 아파서 수술하기 위해 병원에 수개월 또는 1년 이상을 입원해야 하는데 퇴원할 때까지만이라도 좀 봐주면 좋겠다고 사정했고, 그때 생각이 어차피 놀고 있는 상태에서 퇴원할 때까지만 있으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한철 입을 옷가지만 겨우 챙겨서 여기로 왔다.

 그렇게 와서 주저앉은 게 오늘에 이른다고 했다. 이렇게 사는 것도 팔자 아닐까. 처음 다방을 인수했을 때는 레지 아가씨도 2명 있었다. 당시는 레지들이 바쁠 정도로 영업이 잘됐다. 다방 손님들도 외지 사람보다는 지역민들이 대부분이었고 그러다 보니 단골들이 많아서 예상외로 수입이 제법 '짭짤' 했다는 것이다. 다방에 오는 손님들 인심도 야박하지 않았다고 했다.

주인장이 13년전 옥다방을 인수하면서 새로 바꾼 탁자들. (2023년 11월) 정은영 제공
주인장이 13년전 옥다방을 인수하면서 새로 바꾼 탁자들. (2023년 11월) 정은영 제공

 

 이만하면 촌에서 다방도 할만한 업종이라는 생각에 열심히 일했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 레지 아가씨들이 금고에 손을 대기 시작하는 것을 알았다. 하는 수없이 아가씨들을 내보내고 결국 주인은 혼자서 다방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바쁘기는 해도 혼자 운영하면서는 마음도 편했다. 수입도 레지들이 있을 때 보다 나았다고 했다.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도 전기난로는 열기를 내뿜고 있었다. 곧 문을 닫을 텐데 전기난로를 끄라고 했더니 그녀는 문 닫고 나갈 때 끄겠다고 했다. 손님에 대한 예의였다.

 주인은 말을 이었다. 작천정 등 인근에 대형카페가 여러 곳 생겨도 옥다방은 단골들이 있어서 괜찮았다고 했다. 그럭저럭 걱정하지 않고 살았는데 근래 삼남면이 읍으로 승격하면서 읍사무소를 새로 지어서 옮겨가 버렸다고 했다. 그 바람에 손님이 뚝 끊어졌고 요즘은 정말 하루에 커피 한잔, 두 잔도 팔지 못할 때가 있어서 사실 다방을 접어야 하나 마나를 고민 중이라고 했다.

 

읍사무소 이전 후 뚝 떨어진 매출
주인은 그나저나 옥다방이 문을 닫는다고 해도 그간 지역 단골들이 베풀어준 정은 있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여기 와서 어느 해였던가. 가을날 다방에 손님이 없을 때 다방 앞 들판에 나가봤더니 벼가 익어서 만들어진 황금벌판에 넋을 빼앗길 정도였다면서 이 지역 사람들 인심이 후한 게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했다. 

 주인은 요즘 다방 문을 닫으면 그래도 간혹 찾아오던 단골들이 갈 곳을 잃어버리지 않을까 하는 고민이 크다고 했다. 하루 커피 한 잔 못 팔더라도 당분간은 다방 문을 닫지 않을 것이라는 게 주인의 지금 생각이다. 

 그녀는 여태 다방을 운영하면서 손님들과 단, 한 번도 다투지도 않았고 누가 술 마시고 와서 크게 소리 한번 나지 않은 것도 이 지역 사람들의 넉넉한 인심을 꼽았다. 인근에 농협이 있고 또 바로 파출소가 있는 것도 다방이 편안하게 운영되는 데 도움을 주었다고 했다.    

 

나이는 영업 비밀
'묻지 마세요. 물어보지 마세요/ 내 나이 물어보지 마세요' '묻지 마세요' 이 노래는 탤런트 김성환이 불러서 인기를 얻었고 요즘은 트로트 가수 박서진이 불러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숙녀의 나이를 묻는 게 실례일까.

 필자 나이를 들이대면서 옥다방 주인의 나이를 물었다. 주인은 웃으면서 아직 이 근방에서 그녀의 나이를 아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고 했다. "아하! 그게 영업 비밀이었구나" 싶었다. 남자들은 여자를 만나면 먼저 나이를 묻는 고약한 버릇이 있다. 나이를 가르쳐주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동생이라 부르리까, 누님이라 부르리까", 곤란한 문제가 한두 개가 아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 "님이라 부르리까" 할 수 있음이다. 궁금했지만 주인의 나이는 영원히 영업 비밀로 덮어두었다. 

 

최백호의 표현대로' 옛날식 다방'

30년 전만 해도 삼남 중남리는 한적한 시골이었다. 당시 농촌 총각들은 눈 오는 날 어디로 갔을까. 마을 뒷산인 신불산에 토끼몰이하러 갔을 수도 있다. 아니면 또래들 몇이 옥다방에 몰려와서 커피라도 한 잔 마셨을까. 그러다가 다방 장작 난로를 뒤적이면서 쓸데없는 이야기로 히득히득했겠지. 좀 별난 청춘은 레지 아가씨의 미니스커트 입은 모습에 홀랑 빠져서는, 눈은 레지 아가씨 뒷모습에 두고 손은 커피잔을 쥐다가 그만 바짓가랑이에 커피잔을 쏟거나 아니면 그냥 넋 놓고 있지나 않았을까. 

 흘러간 대중가요에서 옛 청춘들의 흔적을 찾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대중가요는 시대를 노래한 것들이다. 그 시절 유행한 대중가요를 들추면 옛 청춘들의 자화상을 마주하는 느낌이다. 옛날식 다방에 왔으니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라는 노래를 먼저 듣는다.

궂은 비 내리는 날/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 앉아
도라지 위스키 한 잔에다/ 짙은 색소폰 소릴 들어보렴
새빨간 립스틱에/ 나름대로 멋을 부린 마담에게
실없이 던지는 농담 사이로/ 짙은 색소폰 소릴 들어보렴
이제 와 새삼 이 나이에/ 실연의 달콤함이야 있겠냐마는
왠지 한 곳이 비어있는/ 내 가슴이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중략)

 노랫말이 더 짙게 느껴지려면 옥다방을 찾아간 날은 오늘처럼 쨍쨍한 햇볕 대신 최소한 비나 눈이 와야 했다. 추적이는 겨울비나 눈을 맞으며 옛날식 다방에 들어서는 운치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최백호의 표현대로라면 옥다방은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임이 분명하다. 

 옥다방은 모양새 나는 실내장식을 한 것도 아니다. 옥다방이 있는 집도 납작 엎드린 땅개 같은, 볼품없는 요샛말로 노포다.

 하루가 급변하는 요즘에 이런 곳이 아직도 있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옥다방에는 '나름대로 멋을 부린 마담'이 있다. 또 '왠지 한곳이 비어있는 내 가슴에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를 보상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는 옥다방에서 옛날식 다방 풍경을 영화의 한 장면처럼 오버랩 시켰다. 

 

옥다방에서 커피한잔. (2023년 11월) 정은영 제공
옥다방에서 커피한잔. (2023년 11월) 정은영 제공

 

깊게 파인 블라우스와 향긋한 분 냄새
기억 속, 옛날 다방 마담들은 참 예뻤다. 시내 가로수 다방의 마담은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자태가 돋보였다. 어떤 마담은 유명대학을 나왔다는 소문이 났을 만큼 아는 것도 많았다. 단지 팔자가 세다는 것이 그녀들이 벗어 던지지 못한 운명의 굴레였다. 

 1975년이었을까. 부산 조방 앞 전신전화국 뒤 어느 다방에서 아버지를 기다렸던 적이 있다. 고교 교복을 입은 채로 다방에 들어갔는데 레지 누나들이 자꾸 쳐다봐서 심히 부끄러워했던 기억이 났다. 아버지는 약속된 시간에 오시지를 않았다. 참으로 난감한 시간이 속절없이 흘렀다. 손님들도 다방에 들어와서 교복 입은 나를 힐끔힐끔 쳐다봤다. 사람들의 눈길이 송곳처럼 빡빡머리에 와 박히는 느낌이었다. 

 그런 순간에도 짧은 치마, 긴 머리, 그리고 가슴이 깊게 파인 블라우스를 입은 레지 누나들의 향긋한 분 냄새가 정신을 몽롱하게 만들었다. 고백하면 그 시절 다방 분위기는 사춘기의 나를 킁킁거리는 개 코로 만들었음이다.

 

다방열전을 마치며
2000년대 들어서 다방은 휴게 음식점으로 업종이 바뀌었다. 그 이전까지 다방은 청소년 출입금지시설에 속했다. 그러나 다방은 지금도 여전히 청소년들의 출입이 자유로운 공간은 아니다.     

 옥다방에서 마지막 한 모금 남은 커피가 담긴 잔을 들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옥다방이 만약 레지 아가씨들이 있는 40~50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아버지를 만나러 갔던 부산 조방 앞 그 다방 풍경에 버금 할 것 같다고 말이다. 이쯤에서 '과거는 흘러갔다'라는 노래를 부르며 촌 다방,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의 추억을 접는다. 이 노래 1968년 9월 세상에 나왔으며 작곡가는 전오승, 작사가는 정두수이며 노래는 가수 여 운이 불렀다.

 즐거웠던 그 날이 올 수 있다면/ 아련히 떠오르는 과거로 돌아가서
지금의 내 심정을 전해보련만/ 아무리 뉘우쳐도 과거는 흘러갔다(중략).

 그래 맞다. 과거는 물처럼 한시도 쉼 없이 흘러가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흘러간다. 옛날식 다방도 그렇게 과거 속으로 흘러가고 있다. 그 시절 청춘들만 남겨둔 채 말이다. 정은영 울산불교문인협회장

정은영 울산불교문인협회장
정은영 울산불교문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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