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나무 넝쿨이 3층까지 푸른 잎을 드리운 베란다에 앉았다. 탱글탱글 포도송이가 앙증스럽게 익어가고 있다. 검푸른 한 알을 슬쩍 따 입에 넣었다. 새큼한 맛이 입 안 가득 환하게 돌아 나갔다. 화이트 하우스는 올 때마다 이용하는 숙소다. 주인은 젊고 키가 크며 서글서글한 인상에 수염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올 때마다 친구라고 부르며 살갑게 맞이해 주며 친절하다. "감마르조바!" 마당에서 손을 흔들며 나에게 인사를 했다. 나도 손을 흔들어 주었다. 이른 아침인데도 부지런한 그가 미덥다. 멀리서 성당의 종소리가 뎅그렁뎅그렁 꼭 굴렁쇠를 굴러가는 모양으로 다가온다.
조지아 정교회 상징 '사메바 츠민다 대성당'
행복한 아침이다.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고 하얀 대문을 밀치고 길을 나섰다. 개들이 꼬리를 흔들며 성큼성큼 다가왔다. 개들의 천국인 이곳은 온 골목에 개들이 진을 치고 산다. 줄 게 없는 데도 끝까지 졸졸 골목길을 함께 걸었다. 두어 평의 작은 노점상도 문을 열고 있다. 서너 가지 채소와 과일을 정리하고 있다.
우리네의 삶과 다름없는 이곳 사람들도 희망이라는 꿈을 품고 미래를 향해 달리고 있다. 허리는 굽고 이마의 주름살은 깊지만, 이방인을 보고 손을 흔든다. 나는 고개를 숙였다.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웃는 인상이 좋다. 기찻길 위의 구름다리를 건넜다.
그 사이 성당의 종소리가 멎었다. 대문은 웅장하고 크다. 검은 옷으로 온몸을 감은 채 눈만 내놓은 여인들이 손을 내민다. 동냥이다. 연신 허리를 굽히며 손을 내민다. 눈먼 소경의 성경 속 인물처럼 자비를 베푸소서! 속으로 기도를 드리고 성당을 들어선다. 아침 햇살을 받은 첨탑이 웅장하다 못해 고개를 다 젖혀야 할 만큼 높다. 사메바 츠민다 대성당이다.
이 거대한 성당은 트빌리시 어디에서나 보일 만큼 규모가 엄청났다. 계단을 올라 위대한 성당을 다시 바로 앞에서 마주했다. 경건한 마음이 저절로 생길 만큼 화려하면서도 기품이 있으며 단아하면서도 위엄해 보였다. '츠민다'는 조지아어로 거룩하고 성스럽다는 뜻이며, '사메바'는 성 삼위일체를 의미한다. 엘리야 언덕 위의 세워진 이 위대한 성전은 이 나라, 이 도시를 두 팔 벌려 포근히 감싸주려는 듯 아름답게 세워져 있다.
조지아 정교회 독립 1,500주년과 조지아 독립 공화국 설립을 기념해서 건축되었다. 1995년 11월 조지아 총대주교 일리아 2세가 첫 삽을 뜬 이후 9년 뒤 2004년이 되어서야 완공되었다. 전 국민의 성금과 국외교포까지 모금에 참여하여 전 세계에서 정교회 성당 가운데 세 번째로 큰 교회가 완공되었으니 그들의 자부심 또한 대단하다.
가만히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이른 아침인데도 일찍 온 사람들이 기도를 올리고 있다. 발소리조차 조심스러울 만큼 숨을 죽인다. 작은 촛불이 군데군데 켜져 있다. 맨 뒤에 가서 섰다. 아치형의 천장에서 들어오는 빛은 성스러운 기품으로 더욱 신성하고 아름답다. 종교가 달라도 누구나 이곳에 들어서면 저절로 두 손을 맞잡게 된다.
성가가 새벽에 들었던 종소리처럼 은은하게 들려온다. 걸음을 멈추고 의자에 앉았다. 남자들만의 묵직하고 성스러운 찬양이 엄청난 성당 내부를 휘감고 있다. 누군가 녹음된 음악을 틀어주는 것이 아니었다. 수십 명의 사제 수도사가 부르는 아침 성가였다. 반주도 없이 오로지 목소리만으로 화음을 넣어 부른 성가, 눈을 감았다. 성호를 긋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어주는 듯한 이 의식 앞에서 이곳을 감히 나설 용기를 잃고 말았다.
신과 인간, 이 거룩하고도 아름다움의 하나 되는 일체감, 이것이 바로 종교의 위대한 힘이 아닐는지.
저출산 극복에 기여한 일리아 2세 총대주교
오늘도 뜨거운 볕이 우리나라의 여름과 다르지 않다. 챙 넓은 모자를 쓰고 쿠라강 평화의 다리를 건넜다. 시내를 걷다가 수많은 인파가 교회 안과 담장 밖에 서 있기에 호기심으로 걸음을 멈췄다. 모두가 시내의 작은 교회 안으로 온 시선이 집중되어 있다. 카메라 기자들 또한 취재 경쟁이 뜨거웠다. 이 나라의 위대한 인물 장례식인가 싶어 옆 사람에게 무슨 의식을 치르느냐고 물었다.
그는 일리아 2세 총대주교가 지금 이곳에 와 있다고 했다. 아침에 들렀던 츠민다 사메바 대성당 건축을 추진했던 조지아에서 존경받는 바로 그가 지금 나온다고 했다. 나도 걸음을 멈추고 까치발을 세워 안으로 목을 한껏 빼 들여다보았다. 마침 사제가 종을 연신 치기 시작하자, 일제히 환호 소리가 들려왔다. 대주교가 굽은 허리를 펴지 못한 채 부축을 받으며 걸어 나왔다. 1933년생으로 90세가 넘어 걷기가 불편했지만 시민들을 위해 힘겨운 손이라도 한 번쯤 흔들어 인사를 해주었으면 좋으련만 홀연히 떠나고 말았다. 일리아 2세는 1977년에 조지아 정교회 총대주교에 선출된 이래 지금까지 그 지위에 있다.
그의 말이 얼마나 영향력이 있었던지 성경에 있는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말로 수천 명의 신생아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그 결과 대가족 출산을 개인의 선택에서 신성한 의무로 격상시켰다고 한다. 이후 결혼율이 상승하고 낙태율이 감소했으며 지금 인구가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다정한 사람들과 따뜻한 추억
사거리를 지났다. 키 큰 가로수 우거진 길가에는 많은 사람이 온갖 물건을 들고나와 시장을 이루고 있다. 일명 벼룩시장이다. 오래된 골동품부터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잡동사니들이 모여 있다. 몇 번을 오가며 물건을 들고 이리저리 살펴본다. 백 년은 족히 넘은 접시와 나무 물통, 카메라, 그림 등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그들은 굳이 물건을 팔려고 애태우지 않는다. 누군가 사면 팔고 못 팔면 그만인 듯 태연하다. 그림 하나를 들었다. 카즈베기에 있는 츠민다 교회를 그린 유화 작품이다. 누가 그렸냐고 물으니 자신이 그렸다며 웃는다. 눈이 내린 뒷산을 배경으로 있는 게르게티 츠민다 교회가 그저 좋았다. 이름 없는 화가지만 그의 눈빛에서 보이는 작은 정성이 좋았다. 그림을 샀다. 유화의 두꺼운 붓 터치가 다소 거칠고 투박해도 그게 오히려 내 마음을 이끌었다. 이제 이곳을 떠나면 언제 다시 오랴. 츠민다 교회를 서재에 세워두고 가끔 눈을 감으리라.
3년 동안 만났던 한 사람 한 사람을 떠올려 봐도 좋겠다. 눈이 녹지 않은 주타에서 시린 발을 동동 그리며 돌아섰던 기억, 바르지아 동굴에서 만났던 이름 모를 수도사의 은은한 눈빛, 그리고 무엇보다 루누와의 눈물겨운 해후 ….
비록 그림은 작지만, 이 속에 담긴 나의 조지아는 평생을 그리워하며 살게 될 그리움이 될 것이다. 그녀에게 부탁했다. 자신의 이름을 써 달라고. 겸연쩍어하며 조지아어로 자신의 이름을 적어 주었다. 이 또한 아름다운 추억으로 가슴에 쟁여둔다. 이제 안녕 조지아!
에필로그
22년부터 3년을 조지아 나라를 두루 탐방했다. 갈 때마다 늘 새로운 모습으로 맞이해 준 그곳 자연의 위대함과 사람들에 매료되었다. 누군가 물었다. 거기가 도대체 뭐가 좋기에 그렇게 가느냐고. 꼭 하나로는 증명하기 어려운 질문이었지만, 한결같은 내 대답은 사람들이었다. 친절한 그들을 잊을 수 없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기보다 처음 만났던 사람들을 다시 만나는 정겨움이 눈물겹게 좋았다. 하룻밤 자고 가라는 그들의 손잡음을 쉽게 떨칠 수 없었던 친절함을 어디에 비할 수 있겠나.
돌아와서도 내내 조지아를 알리는 전도자가 되어 있는 나를 보면서 이끌림으로 오는 인연이 이토록 클 줄을 미처 몰랐다. 아마 나는 또 갈 것이 뻔하다. 몇 번을 더 갈지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신의 음성처럼 날마다 그들의 부름이 내 귓전에 들리고 있다는 거다. 이제 조지아도 더 이상의 가난한 나라는 아니다. 더 발전되고 변하겠지만 나는 믿고 싶다. 믿음과 사랑, 때 묻지 않은 심성만은 영원할 거라고. (끝) 이서원 시조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