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루 앞 장터. 가마 주변에 네댓의 가마꾼과 양반 차림의 조선인, 그리고 허름한 차림의 시종으로 보이는 이들이 서 있다. 오른편에 아이 한 명과 개 한 마리가 보인다. 전설 속의 토종개 '동경이'다.
아이는 동경이의 주인인 듯하며 이를 통해 당시 울산에도 동경이가 적지 않게 살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한다.
촬영 시기는 1910년대와 1930년대로 추정한다. 태화루(학성관) 앞에서 찍힌 동경이는 품종 표준화의 실마리를 제공한 만큼 역사적 가치가 크다. 현재 남아 있는 동경이 사진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마지막 흔적인 셈이다.
1500여 년 동안 우리 민족과 함께했던 동경이는 자취를 감추었다가 2012년 11월 6일에 재발견했다. 경주시 건천읍 용명공단길 138-14의 개체 200두가 '천연기념물 제540호(경주개 동경이)'로 지정된 것이다.
'댕견''댕갱이''동동개'로도 불리던 동경이는 꼬리가 없거나 5㎝ 이하의 짧은 것이 큰 특징이다. 외형은 진돗개와 비슷하며 성격이 온순하고 사람을 잘 따르고 주인에 대한 복종심이 강하다. 사냥 능력도 매우 뛰어나며 털은 흰색, 검은색, 누런색, 호랑이무늬 등 다양하다.
1920년대에 5~6세기 경주 고분군에서 나온 수십개의 개 토우와 토기 파편에서 동경이가 확인됐다. 삼국사기에는 '야생노루 같이 생긴 개가 서쪽에서 사비성 왕궁을 향해 짖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1669년 경주부윤 민주면의 《동경잡기》에 '동경구(東京狗)'라는 명칭이 처음 등장한다. 이 외에 《증보문헌비고》《성호사설》《오주연문장전산고》《임하필기》등 다양한 고문헌에 동경이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다.
박목월 시인은 동시 '얼룩송아지'에서 "엄마 소도 얼룩소, 두 귀도 얼룩 귀"라고 노래했고, 정지용 시인은 "얼룩빼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을 차마 잊지 못하겠다고 읊었다. 화가 이중섭은 말라비틀어진 흰 소와 검은 줄무늬가 있는 황소를 그렸으며, 고구려인들은 4세기 안악 3호분 남쪽 벽화에 시커먼 소와 외양간을 남겼다. 신라인은 울진 봉평비에 "신라 6부는 반우(斑牛, 얼룩소)를 잡고 술을 빚었다"는 기록을 새겼다.
예전엔 이런 소들을 단순히 젖소나 황소라 여겼지만 알고 보니 아니었다. 모두 칡소였다. 칡넝쿨을 감아 놓은 듯 검은 줄무늬가 있는 칡소는 오래 전부터 얼룩소 혹은 호랑이 무늬를 빗대 호반우(虎斑牛)라고도 했다. 우리 민족과 오랜 역사를 함께 했지만 일제강점기 때 검정소와 함께 일본으로 반출돼 숫자가 급감했다.
'얼룩빼기 황소-칡소'가 울산에도 있었다. 이정한 선생은 1718년에서 1722년까지 방어진 목장의 감목관을 지낸 홍세태의 시 '작촌(雀村)'을 소개했는데 "농부는 두 마리 굳센 소로 애써 밭을 간다"(田翁氣力雙牛健)라는 구절이 있다. '작촌을 지나 불당골에 이르러 가을 보리를 뿌리는 것을 보았다'는 부제가 달렸다. 중양절 즈음 남목 불당골에서 농부가 두 마리의 강건한 소를 묶어 보리밭을 갈던 모습을 시로 읊은 것으로 보인다. 동구 불당골과 목장의 말이란 표현에 비춰 배경은 동구 남목동사무소 일대 '작은 마을'일 가능성이 크다.
멍에를 메고 밭갈이하던 '두 마리 굳센 소'는 곧 '겨릿소'였고 통상 칡소를 일컫는다. 겨리는 두 마리 소가 쟁기를 끄는 것이고 한 마리가 끄는 것은 '호리' 또는 '단우려'라 불렸다.
울산이나 경상도에서 보기 드문 장면이지만 홍세태는 울산 동구에서 겨리 농경을 보았고 그겨릿소가 칡소였던 것이다. 귀하고도 희소한 동경이와 칡소가 울산에 실재했다는 사실은 사진과 시를 통해 우리가 확인할 수 있다. 역사가 숨쉬던 현장, 마지막 모습을 보인 장소는 바로 울산이었다.
현대사회는 나를 기다려 주지 않을 정도로 가속도가 붙었다. 그 속에서 우리는 '외모지상주의와 속도경쟁'에 매몰돼 더 빠르고 더 예리한 것을 좇아왔다.
심성은 거칠어졌고, 생각이 다른 상대와 날을 세우며 갈등을 빚었다. 그러나 우보천리 동행만리(牛步千里 同行萬里)라고 했다. 늘 빠르고 예리한 것만이 좋은 것이 아니며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고 긴 여정을 함께 걷는 꾸준함이 더 값지다. 게으르고 아무런 생각 없이 걷는 것과 다르다. 동경이와 칡소가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를 화두로 던지는 것 같아서 하는 말이다.
김잠출 울산역사연구소 사무국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