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실록(1412.2.3)에 '정당한 이유 없이 본처를 버린 언양 감무 정포를 파직시키다.' 라는 기사가 있다.
감무는 속현이나 작은 지방에 파견된 지방관인 수령이다. 정포는 최 씨와 결혼해 부친상을 함께 치른 뒤 안 씨에게 새로 장가들었다. 부모상을 함께 치른 아내는 칠거지악에도 해당하지 않는데 특이한 경우다. 정포는 다시 전처인 최 씨를 찾아와 자식을 낳았는데 까닭 없이 최 씨를 또 내버렸다. 두 번이나 버림받은 최 씨가 고발했다. 인간으로서의 기본 도리를 저버린 범죄, 강상죄에 해당한다. 구속된 정포는 아내의 부정을 허위로 꾸며대고 아들이 자신의 핏줄이 아니라는 강변을 했다. 결국 최 씨와 대질 끝에 거짓이 탄로 나 파직됐지만, 그가 받은 벌은 그걸로 끝이었다. "일이 사유(赦宥·사면)하기 전에 있었으므로 파직만 했다"는데 지금과는 기준이 아주 다르다.
1447년 10월 16일 언양에 사는 전농시 여종 선비(善非)라는 여인이 능지처사(凌遲處死) 선고를 받았다. 그녀는 정을 통하고 있던 애인과 모의해 남편을 죽였다. 1494년 언양 사람 김개동(金介同)은 장 100대를 맞고 삼천리 이상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라는 선고를 받았다. 아내 막덕을 때려서 죽인 그는 "아내가 저한테 심한 욕을 했습니다"라고 진술했다. 성종실록은 어이없게도 "아내가 남편을 향해 악언을 퍼붓지 않았더라면 생기지 않았을 비극"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범인 김개동에게 일방적으로 우호적이다. 남편을 살해한 경우는 엄하게 처벌했다. 1561년 5월 굴화역의 역녀(驛女) 천금(千今)이 남편 살해 죄로 복주(伏誅·형벌을 받아 죽임을 당함)를 당했다.
지울산군사 전시귀(田時貴)·언양 현감 김사제 등이 울산군성을 감독해 쌓았는데, 두어 달이 못 되어 무너지니 사헌부에서 그 죄를 청해 직첩을 거두고 죄를 대신했다. 1416년 10월 10일 둘 다 해임됐다.
강상과 장오죄를 함께 범한 사례도 있다. 1439년 9월 15일, 지울산군사 최징(崔澄)과 언양 현감 김중종(金仲宗)을 자자(刺字)형에 처하려다 그만두라는 왕의 명이 있었다. 둘은 쌀과 콩을 청구해 경주 기생에게 주고, 창기의 집에서 자고 기생 아비의 기일에 스스로 재(齋)를 올리고 불공까지 드렸다. 법대로라면 장(杖) 80대, 자자형이 맞지만 왕의 명에 따랐다. 18세기 언양 현감 유한주(柳漢柱)는 능침(陵寢)의 제관이면서 술에 취해 체통을 잃고 제대로 한 일이 하나도 없었다. 언양 현감 홍낙순은 굶어 죽는 백성을 파악해 보고하면서 정밀하지 못해 무능으로 찍혀 1762년 파직당하고 언양 현감 국대범(鞠大範)은 출신이 미천하여 백성 구호하는 책임을 기대하기 어려워 1575년 즉시 교체됐다.
광해군 때(1622.6.11) 언양 현감 양두남은 '용렬하고 비천한 사람'으로 오로지 자기를 살찌우는 것만 일삼고 있다면서 농사철도 생각 않고 쇠를 불리며 옥을 캐어 '잔약한 수백 호구'가 거의 다 유망했다. 당연히 사간원의 탄핵을 받았다.
황희 정승의 현손 여헌이 중종조에 울산군수를 지냈다. 그는 군민들의 노비를 많이 사들이고, 백성과 재인·백정을 자기 집에 불러 몰래 사역을 시켰다. 요즘의 갑질에 해당한다. 또 관용이라고 속여 헐값으로 소나 솥을 사들여 자신이 착복했다가 사헌부에 적발되었다. 공사 구분을 못 하고 사리사욕에 눈먼 현감은 또 있었다. 관내에서 거둔 시노비(寺奴婢·관청 소속 공노비)의 신공(身貢) 면포를 착복해 처벌받은 언양 현감 김찬과 감수(監守)하던 돈과 양식을 도둑질한 이산두 전 지울산군사는 1437년 파직과 유배형을 받았다. 성종 때 염포 만호 이종산도 공금에 손댔다가 처벌받았다.
1855년 울산부사를 지낸 심원열은 1857년 8월 암행어사 감찰에서 공금횡령으로 지목돼 근무지였던 울산에 유배됐다. 그는 공금횡령 죄목이 부당하다며 암행어사의 불법 감찰과 그들의 부정을 폭로했다.
조선시대 강상죄는 패륜범죄요 장오죄는 뇌물죄이다. 둘은 사면 대상에서도 제외했다. 특히 사면된 죄인도 장오죄가 드러나면 취소했다. '대가성 없는 돈'이란 조선 시대에는 통하지 않았다. 강상과 장오죄를 기록한 이유는 '아름다운 이름은 후세에 길이 전하고, 더러운 이름은 역사에 영원히 남는다'는 유방백세 유취만년(流芳百世 遺臭萬年)을 가르치기 위함이다. 공직자의 패륜범죄와 뇌물죄는 자신은 물론 조상과 후손의 이름까지 더럽힌다는 것을 알라는 말이다.
김잠출 울산역사연구소 사무국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