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역사동화. 김미영 제공
역사동화. 김미영 제공

 

궁우리 친구들을 만나다

돌망치를 받아 동굴에서 나온 대호교수는 앞으로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두렵지 않을 듯했다. 마음의 방패처럼 든든하게 느껴지는 돌망치를 가방에 넣고 교수는 바쁘게 걸었다. 발밑에서 사르락사르락 낙엽 밟히는 소리가 퍼져나갔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나무 타는 듯한 냄새가 은근히 풍겨왔다. 바깥에서 요리를 할 때 태우는 나무 냄새 같았다. 교수는 코끝을 벌름거리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이 근처에 마을이 있는 건가?'

 그는 고개를 들어 냄새가 나는 쪽을 살폈다. 바람이 방향을 바꿀 때마다 냄새가 진해졌다 옅어지곤 했다. 교수는 점점 걸음을 재촉해 계곡을 걸었다.

 길을 따라 내려가던 그의 귀에 우우웅 거리는 소리가 들려 따라가다가, 눈앞의 풍경을 보고 깜짝 놀라 발을 멈추었다. 어미고래와 아기고래가 나란히 손을 꼭 잡고 걸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고래가 육지 위를?'

 눈을 의심했지만 틀림없었다. 아기고래가 아이처럼 또박또박 걸으며 뭔가 말을 하고 있었다. 교수가 얼른 목걸이를 톡톡 두드려 열었다.

 "엄마, 어디 간다고 길을 나선 거야? 그렇게 함부로 길을 나서면 어떡해. 내가 얼마나 찾아 헤매었는지 알아?"

 서운함과 애정이 뒤섞여 있는 아기고개의 소리가 다 들렸다.

 "길을 찾는 무리가 있어서 말이야" 어미고래는 미안한 듯 대꾸했다.

 "엄만, 길도 잘 잃어버리면서 남한테 길 안내를 해 준 거야?"

 "앞으로는 바다에만 있을게. 걱정 마라. …가만!"

 어미고래가 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대호 교수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호기심 많은 교수가 다가가자, 역시 고래도 눈동자에 호기심을 반짝거리며 다가왔다.

 "너도 혹시 길을 잃었니? 조금 전 너와 비슷한 무리를 바다 향기가 나는 길로 데려다 주었는데. 키가 큰 남자와 아이들 다섯이었지"

 순간, 대호교수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는 여기 올만한 그런 무리를 떠올려봤다.

 '키 큰 남자라면 임 국장이고 키가 작은 아이 다섯이면 혹시 궁우리인가? 이들이 맞다면, 내 뒤를 따라온 게 분명해'

 교수는 그들이 자신을 따라 이 세계에 들어왔다면 빨리 찾아야 했다. 그는 놀람과 동시에 반가움이 밀려와 다급히 물었다.

 "그 무리가 어디 있습니까?"

 "내가 데려다 주었으니 알지. 그런데 이상하군. 방금 전엔 냄새를 따라갔는데 지금은 그 냄새가 안 나"

 어미고래의 목소리는 덩치만큼이나 우렁찼다.

 "냄새요?"

 교수도 코를 벌름거리며 여기저기 킁킁거렸다. 조금 전에 맡았던 냄새도 나지 않았다. 바람의 방향이 바뀐 것도 아닌데 이상했다.

 그때 아기고래가 손을 흔들며 말했다.

 "엄마, 용네 집 말이야?"

 "그렇지, 아가야. 용네 집이지"

 "그럼 저 오솔 계곡으로 가다가 왼쪽으로 꺾어서 가세요"

 아기고래가 손가락으로 길을 가리켰다. 그러고 두 모자는 다시 우우우웅 소리를 내며 걸어갔다. 그 소리는 바다의 파도처럼 깊고 멀리 울려 퍼졌다.

 그들이 간 후, 교수는 계곡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아기고래가 가르쳐 준 길을 따라 아무리 걸어도 냄새가 나지 않아 계속 걷고 또 걸었다. 거북산 앞까지 왔을 때에서야 아까 전에 맡았던 그 냄새가 코에 스미더니 귀에 아이들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말 궁우리들일까, 반가운 마음에 달려가자, 눈앞에 임 국장과 궁우리 아이들이 보였다. 그들은 식탁에 잘 차려진 음식상 앞에 앉아 있었다.

 "얘들아!"

 대호 교수는 너무나 반갑고 놀라운 마음에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단숨에 달려가며 아이들의 얼굴을 확인했다. 이들을 만났다는 반가움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할아버지! 어떻게 여기까지 오셨어요? 우리 좀 구해 주세요!"

 그런데 아이들은 즐거워하는 것이 아니라 얼굴이 벌겋게 입술이 새파라며 눈물이 배인 목소리로 외쳤다.

 "안 돼요, 교수님! 가까이 오지 마세요!"

 임 국장도 소리쳤다. 모두들 소리에 왠지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가슴이 쿵 놀란 교수는 조심스레 궁우리 일행 곁으로 다가가며 물었다.

 "만나서 반갑다. 그런데 지금 무슨 일 있니? 무슨 까닭이야?"

 그 순간, 앞쪽에서 커다란 용이 굵고 웅장한 목소리로 인사하며 다가오고 있었다.

 "오오, 어르신! 근사한 어르신이 오셨군요. 잘 오셨습니다!"

 교수는 깜짝 놀라 용을 보았다. 꼬리가 기다랗게 늘어진 용이 음식 접시를 들고 있었다. 황금빛 비늘이 산 위에서 비추는 햇빛을 받아 번쩍였다.

 "아… 안녕하세요? 처음 뵙습니다"

 교수는 놀람을 감추지 못한 채 인사했다. 이곳에 용이 살고 있다는 말은 들었으나 실제로 눈앞에서 보니 등골이 서늘해졌다.

 "요즘 우리 마을 소식을 널리 전할 어른이 왔다기에 어떤 사람인가 궁금했는데 이렇게 만나게 되어 반가워요. 자, 거기 서 있지 말고 이쪽에 와 앉아요!"

 음식을 놓고 온 용은 탁자 하나를 더 들어 옮겨 교수를 안내했다.

 "안돼요! 할아버지, 앉지 마세요!"

 "네, 교수님, 아이들 말 들으세요!"

 교수는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용의 말을 거절하는 것이 무례일 것 같아 의자에 앉아야할지 말아야할지 난처했다.

 대호 교수가 어리둥절해하는 사이, 용은 활짝 웃으며 음식을 들고 왔다.

 "오늘은 무척 기쁜 날이군요. 이렇게 근사한 양반한테 음식을 대접하게 될 줄이야! 여기 앉아 어서 드세요."

 어미용이 가리킨 자리 앞에 대호 교수가 좋아하는 청어구이가 놓였다. 굽은 청어에 기름이 자글자글거리고 있었다. 대호 교수가 침을 꿀꺽 삼키자 유주가 심상치 않은 눈짓으로 대호 교수를 불렀다.

 "할아버지, 배가 고프시더라도 조금만 참고 제 말 좀 들어보세요"

 대호 교수는 유주 말에 귀를 기울였다. 유주가 눈동자로 의자를 가리키며 엉덩이를 달삭거렸으나 떨어지지 않았다.

 "알았어, 당장 갔다 오마!"

 대호 교수는 유주 말이 끝나자마자 곧장 그곳에서 빠져나와 숲속을 달렸다. 그러자 아기용이 대호 교수 뒤에서 돌아오라고 소리치며 따라왔다. 그 소리가 얼마나 큰지, 저쪽에서 우우우웅 하고, 대답하는 소리까지 들렸다. 대호 교수가 크게 우우우웅! 하고 외치자 고래 두 마리가 달려오고 있었다.

 "헉헉, 아직 가지 않고 있었네. 반가워요!"

 대호 교수가 큰 소리로 말했다. 다가 온 고래 두 마리가 대호 교수를 보았다.

 "아기용의 생일에 초대하러 왔어"

 교수가 숨을 진정시키며 하는 말에 아기고래가 눈을 반짝이며 아기용을 보고 말했다.

 "알고 있었는데……, 지금이라도 초대해 주어 고마워! 선물은 한 달 동안 헤엄치는 법 가르쳐주면 되겠지? 아니 우리 엄마까지 가면 한 달 반 동안 가르쳐 줄게"

 "좋아! 아까 어디 갔었어? 빨리 가자!"

 뒤따라 온 아기용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기고래는 어미고래의 손을 잡고 걸었다. 대호 교수는 어미고래 뒤를 따라 걸어서 궁우리 일행 앞으로 갔다.

 "와! 배고팠는데 잘 됐어. 초대해 주어서 고마워!"

 어미고래가 차려놓은 식탁 앞으로 다가가며 말했다. 그러자 커다란 어미용이 안심하는 눈빛으로 궁우리 일행을 보았다.

김미영 글·그림​​​​​​​'반구대 고래, 꽃무' 출간·울산문인협회 회원
김미영 글·그림'반구대 고래, 꽃무' 출간·울산문인협회 회원

 

 "이제 너희는 가도 되겠어. 난 음식이 남을까 걱정했는데 고래들이라면 충분히 다 먹을 수 있겠어. 그러니 이제 가 봐!"

 그 말에 궁우리 일행이 벌떡 일어나자 붙어 있었던 엉덩이가 달랑 떨어졌다. 교수는 사실 배가 고팠지만 쏜살같이 나가는 궁우리를 뒤따라 나왔다.

 "다음에 또 와요!"

 크게 외치는 어미용 소리가 들렸다. 궁우리 일행도 큰 소리로 인사를 하고 용의 집에서 급히 나오고 말았다. 어미고래와 아기고래가 음식 먹는 소리가 멀리까지 들려왔다. (계속)  글·그림 김미영 울산문인협회 회원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