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켜야 했던 불
대호 교수가 나간 후 상우 연구원은 동굴에서 불을 지키고 있었다. 불이 꺼져버리면 대호 교수가 원서 연구원을 찾더라도 돌아올 수 없기 때문에 불을 지켜야했다. 오랫동안 한 곳에서 계속 불을 지키는 상우는 점점 지쳤다. 불을 꺼트리지 않으려고 몰려오는 졸음을 쫓으며 무진 애를 썼다. 그러나 깜박깜박 졸려오는 졸음을 물리치기는 힘들었다.
비몽사몽간에 동굴이 무너질 듯 큰 소리가 울리더니 동굴이 흔들렸다. 깜짝 놀란 상우는 불을 제일 먼저 보았다. 꺼지지 않은 불을 보고 상우는 안심했다. 상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불을 들고 주위를 살폈다. 그러다가 들려오는 소리에 상우는 가슴이 철렁했다. 동굴 안으로 큰 물결이 출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상우는 불을 들고 동굴 입구로 나가려다 발걸음을 딱 멈추고 절망했다. 동굴 안으로 높은 파도가 마치 짐승 떼처럼 밀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바람에 거센 바람까지 불어 불이 한쪽으로 휘날렸다.
"아, 안 돼! 곧 파도가 이곳을 덮칠 것 같아! 이 불을 지켜야 돼!"
상우는 꺼지려는 불을 손으로 막고 돌아서서 뛰었다.
"어떡해! 길이 없어졌는데 교수님은 어디로 온단 말이야! 나까지 이곳에 갇히게 되면 교수님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있는 사람이 없어져버려. 빨리 암각화연구소로 보고해야겠어"
상우 연구원은 어떻게 해야 교수님을 구할 수 있을지 잠깐 동안 신중하게 생각했다. 그리고는 암각화연구소로 전화를 걸려고 했지만 휴대폰이 연결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상우는 불을 들고 동굴 속으로 걸어 들어왔던 길에서 방향을 바꾸었다. 교수님을 달리 구하려면 돌아가서 모터보터를 타고 가야할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이 되걸어 나갔다. 불빛이 흔들리며 어두운 동굴 벽에 그림자를 만들었다.
돌아보니 점점 불어난 물이 종유석 사이를 휘감았다.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불 위로 톡톡 튀며 불꽃이 '치익' 하고 소리를 냈다. 상우는 불을 높이 들고 허리를 숙여 종유석 사이를 지나쳤다. 조금만 몸을 돌려도 불이 꺼질 것 같았다. 물을 피해 나가는데 갑자기 발 밑 돌이 미끄러졌다. 균형을 잃고 넘어질 뻔했다. 손에 든 불이 휘청, 거의 꺼질 듯 깜박였다. 상우는 불을 급히 손으로 감싸 안고 걸었다.
"안 돼, 제발… 꺼지면 안 돼…"
나무 막대기가 얼마 남지 않아 손이 몹시 뜨겁게 느껴졌다. 그때 어디선가 들어온 바람에 불이 흔들리더니 바로 섰다. 순간, 멀리서 희미하게 빛나는 빛이 보였다.
상우는 힘을 짜내 외쳤다.
"제발, 저기까지 만이라도!"
상우는 이를 악물고 그곳으로 발을 내디뎌 앞으로 나아갔다. 타오르는 불이 그의 얼굴을 붉게 비췄다. 동굴을 나가기 전까지는 이 불이 있어야 했다.
저 곳으로 나가는 길이 교수님을 돌아올 수 있게 하는 길이었으니. 상우는 동굴에 비친 빛을 향해 서둘러 나갔다.
궁우리들이 산언저리에 왔을 때 계곡 한 곳에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할아버지, 마을이 있나 봐요. 밥 짓는 연기 같아요"
유주가 발 뒷굽을 높이 들고 궁금한 목소리로 말했다.
"설마 저기도 용이 살까요? 원서 아저씨가 있는 마을이 있으면 좋겠어요"
지산이도 궁금해 했다.
"역사학자들 연구에 따르면 이 마을은 씨족이 살던 곳으로 되어 있어"
"할아버지, 그렇다면 원서 아저씨가 누구에게 쫓기다 저곳으로 숨어들었을 수도 있을 거예요"
"유주 추리 대단해!"
윤서가 무릎을 치며 말했다.
"반대로 원서 아저씨가 가지고 있는 사슴 뼈 화살을 혹시 이 마을 사람이 빼앗아 원서 아저씨를 가둔 건 아닐까요?"
"모든 추측을 가정하고 여기까지 왔으니 가서 찾아보도록 하자!"
대호 교수의 말에 윤서가 결의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요, 할아버지 빨리 가 봐요!"
"마을 입구를 찾아야 돼. 여기 저기 길이 많은 것 같아도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는 하나거든"
아이들이 발걸음을 딱 멈추고 대호 교수를 바라보았다.
"거짓 입구가 많은 것은 침입해 오는 적을 교란시키기 위한 거지. 강한 무기가 없는 선사인들은 마을 사람들 힘으로 소중한 것들을 지켰어. 사슴 뼈 화살은 누구에게나 중요한 무기일 수 있어. 그런 사슴 뼈 화살을 가진 원서를 보았다면 그들이 어떻게 대하고 있을지 모르니 조심해서 가야할 거야"
대호 교수 말에 궁우리 아이들은 각오를 새롭게 하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날은 어두워져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불이 있으면 좋겠어요"
"있어봐, 내가 켜 볼게"
영서가 말하고 두 돌을 비벼 불씨를 만들더니 마른 나뭇잎에 불을 붙였다. 그러자 아이들이 나무막대기를 주워와 불을 붙여 들었다.
"아, 밝다!"
"책에서 봤어. 선사인들이 불을 어떻게 켰을까 궁금했거든"
"영서 멋져!"
유주와 영서 말이 끝나자 대호 교수는 불을 들고 아이들을 앞서 걷기 시작했다. 길을 찾지 못할 때는 하늘의 별을 보고 길을 찾아 걸었다. 한참 물이 흐르는 계곡을 따라 걷자 어지럽게 뒤엉킨 숲이 나왔다. 유난히 어지럽게 보여 이상한 마음에 대호 교수가 들여다보았더니 숲 사이로 길이 보였다. 아이들과 교수가 다가가보니 나무를 엮어 만든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누구 안 계세요! 문 좀 열어주세요!"
교수가 문을 두드리며 말했으나 들려오는 소리는 바람 부는 소리와 물 흐르는 소리뿐이었다. 그 때 대호 교수는 바오가 준 돌망치가 생각났다. 그래서 얼른 가방에서 돌망치를 꺼내 문을 두드렸다. 망치 소리가 나는 찰라, 갑자기 자갈돌 밟는 소리가 왁자하게 들리더니 무리 앞에서 딱 멈췄다. 교수는 뭔가 불길한 낌새가 확 느껴져 아이들에게 소리 죽여 말했다.
"얼른 불을 꺼!"
불을 다 끄자 문이 스르르 열렸다. 그런데 그 순간, 무리는 눈이 동그래졌다. 삐죽삐죽한 창살이 얼굴 앞에 다가왔기 때문이다.
"누구……?"
무리가 놀라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은 건 당연했다. 횃불을 들고 눈을 부릅뜬 사람들은 창을 들이대고 그들을 찌르려했다. 놈들은 모두 수염이 길고 작은 눈이 불빛에 반짝거렸다. 대호 교수는 손을 번쩍 들고 아이들에게 차분하게 하라 말하고 그 자들에게 물었다.
"여기가 시선 마을이오? 우리는 당신들을 해치거나 뭘 훔치러 온 사람이 아니고 누굴 찾아왔소"
"그런 말에 속을 우리가 아니지. 누가 훔치러 왔다하고 오는 도둑 봤어? 누굴 찾아왔다는 거야? 우리 시선 마을에?"
수염이 검고 날렵해 보이는 몸집이 큰 젊은이가 소리쳤다. 일단 시선 마을임을 확인한 대호 교수는 마음이 다급해졌다.
"원서라는 이름을 가진 젊은이요!"
대호 교수가 목소리를 높이자 그들은 눈을 둥그렇게 뜨고 말했다.
"원서라는 이름은 몰라도 낯선 이는 있어. 다른 세상에서 온 것 같아 우리가 필요해 좀 가둬뒀어. 너희도 어디서 왔는지 검사해야하니 따라와!"
그 말에 모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는 무리를 휘둘러보고 말했다.
"조용히 따라와! 엉뚱한 짓 할 생각 말고!"
수염이 긴 그들은 궁우리 무리를 험한 길로 데려갔다. 대호 교수는 과연 원서 연구원을 만날 수 있을까 궁금한 마음이 점점 커졌다. 그들은 계곡을 가로지른 나무다리를 건너고 징검다리도 건너고 길이 끊어지는 숲속 오솔길을 걷고 또 걸었다. 돌망치로 열었던 문이 마을 입구가 아니었다. 어디에도 불빛이 없었다. 아이들이 지쳐 발걸음이 터덜터덜해질 무렵 멀리 작은 불빛이 보였다.
"저기, 집이다!"
윤서가 힘을 내어 말했다.
어둠에 갇힌 집은 마치 유령이 눈을 뜨고 있는 것 같았다. 긴 수염 사내들은 무리를 그쪽으로 이끌었다. (계속) 글·그림 김미영 울산문인협회 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