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에 연기를 거듭해 오던 정부의 분산에너지 특화지역 지정에서 울산이 보류됐다는 소식이다. 이는 울산시가 전력 공급과 수요의 불합리성을 인식하고 전국 처음으로 지역별 차등요금제 도입을 주장해 특별법 제정을 주도하는 등 기반을 마련한 것을 외면한 결과라 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정부가 내놓은 보류 이유는 분산에너지 특화지역의 에너지원이 현 정부가 추구하는 신재생에너지원이 아닌, 기존 LNG와 LPG 등 기존 에너지원을 활용한 것이 사업 목적에 맞지 않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불가피한 사정이야 왜 없을까마는 이것이 행여 외부에 드러나지 않은 미묘한 견해차로 인한 것이라면 더더욱 실망스럽다. 명분도 있고 사회적 공감대도 어느 정도 형성된 사안일수록 불필요한 오해와 정치적 논란을 피하는 게 옳다.
울산시 입법화 주도·AI데이터센터 유치 효과 반감
당초 분산에너지는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전력소비 불균형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인식으로 시작됐기 때문이다. 수도권은 전국 전력 소비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반면, 생산은 대부분 비수도권에서 이뤄진다. 현재 우리나라는 제주를 제외한 전국 모든 지역이 동일한 요금체계가 적용하고 있다. 발전소와 송전탑, 송전선로가 밀집해 전력 자립률이 높은 지역과 그렇지 않은 소비 지역을 구분해 생산 지역은 상대적으로 요금을 낮추고 소비 지역은 요금을 더 부담하는 지역별 차등 전기요금제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이는 국가 균형발전과 전력 생산지역의 경제 활성화를 위해서는 반드시 도입해야 하는 정책이다.
울산시는 일찌감치 이런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특화지역 운영계획 수립, 분산에너지 조례 제정, 산·학·연 전문가로 구성된 추진단 구성, 전국 최초 분산에너지 지원센터 발족 등을 준비해왔다. 더욱이 울산시는 연료비 연동제와 탄소배출권 연계 등 요금 절감 효과를 바탕으로 지난 6월 국내 최대 규모인 SK·아마존 AI데이터센터를 유치한 바 있다.
분산특구에서는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에 근거해 한전을 거치지 않고 전력 직거래를 할 수 있다. 발전사들은 직접 전력 판매시장에 진입하고 기업은 그만큼 저렴한 비용으로 공급받는 구조가 가능해진다. 당장 다음달부터 SK MU가 지난 7월 완공된 LNG·LPG 열병합발전소에서 시간당 300MW규모로 전력을 생산해 남구·북구·북구 효문연암동 일대 미포국산단내 기업들에게 판매할 계획이었다. 여기에다 울산은 2030년까지 새울원전 3·4호기 발전과 부유식 해상풍력사업 등으로 총 9GW의 신규 전원이 추가된다. 그렇게 되면 현재 총생산 능력이 6.6GW에서 2030년 15.6GW가 된다. 전력 자립도도 지난해 103%에서 내년 238%, 2030년에는 303%가 예상된다. 대규모 전력소비산업을 신규 유치할 전력 기반이 더 탄탄해지는 것이다.
기업 투자 유치·일자리 창출 기대 국가 균형발전 외면
하지만 울산이 지금껏 추진해 온 선제적인 모델 구축화의 노력은 이번 심의 보류로 어디에서도 보상받을 수 없는 허탈감으로 돌아왔다는 게 지역 여론의 분위기다. 울산이 연말 예정된 재심의에서조차 선정되지 못한다면 대한민국 에너지 거점도시이자 AI수도로 완성할 핵심 키를 잃어버리는 꼴이다. 추가적인 기업투자 유치는 물론, 이로 인해 기대되는 인구 증가, 청년 일자리 창출, 인재 양성까지 물거품 될 위기에 처한다. 지금껏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온 지방자치단체 의지가 꺾이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정부입장에서는 작은 것 하나라도 지방정부에서는 어느 것보다 소중한 것이 될 수 있다. 그것이 지방시대를 이끄는 정책의 출발이고 국가균형발전의 초석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비생산적인 논란으로 국력을 낭비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원칙과 기준을 명확히 세워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것도 정부의 몫이다. 중앙정부는 발전을 위해 피땀 흘리는 지방자치단체의 노고를 잘 살펴야 한다. 다음 심의를 주목하는 이유다.
